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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23)화 (124/145)

123

계단을 내려갈 시간 따위는 없었다. 청연은 곧장 창틀을 넘어 아래로 뛰어내리며 무호를 향해 외쳤다.

“하지 마!”

그 말에 대도를 들어 올리던 무호의 손이 멈췄다. 청연은 그의 뒤로 빠르게 달려가 너른 등을 끌어안았다. 다급하게 숨을 내쉬며 벌벌 떨리는 손으로 몸을 감싸니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커다란 대도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하지 마, 이 미친놈아….”

청연은 그의 등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끌어안은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몸 이상하면 나한테 말하랬잖아…. 왜, 왜 말을 안 하고 너 혼자서….”

몇 번이나 이런 일을 반복했을까. 저 무지막지한 흉기로 같은 자리를 얼마나 찔러댔을까.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동안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홀로 버티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무호가 슬며시 청연의 팔을 떼어 내려 했으나 청연은 더욱 힘을 주어 안고서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당황한 듯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무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잠깐….”

“안 그런다고 약속해.”

“…….”

“약속할 때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무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청연을 억지로 떼어 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몸이 굳어 버린 것처럼 이도 저도 못 하고 서 있었다.

“제발…. 나랑 약속해. 혼자서 버티지 않겠다고.”

청연은 애원하듯이 속삭였다. 이러다 정말 그가 죽어 버릴까 두려웠다. 끝까지 팔에 힘을 주고 버티자 무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청연의 팔을 풀고 돌아섰다. 마지못해 허리를 놓아준 청연은 불안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면서도 바닥에 떨어진 대도를 주워 등 뒤로 숨기며 단호하게 말했다.

“약속했으니까 이제 이거 쓸 생각 하지 마.”

무호는 착잡한 얼굴로 청연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알아.”

열이 그렇게 끓는데 내가 모르겠어? 청연이 말하며 그의 팔뚝을 잡았다.

“그러니까….”

청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술을 뗐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방으로 가. 지금.”

뼈 몇 군데가 더 부러져도, 살이 찢어져도 괜찮았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뭐가 됐든 무호가 가슴에 직접 칼을 꽂는 걸 지켜보는 것보다야 나았다.

“…….”

무호는 선뜻 그러겠다 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청연을 내려다보았다. 이성을 잃은 자신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의 눈에 스쳤다.

“날 죽이지 않을 거잖아.”

청연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안 죽일 거잖아.”

“그야….”

“다치지 않게 알아서 몸 사릴게. 나 예전처럼 그렇게 약하지도 않아.”

계속되는 설득에 무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못 참겠다는 듯이 청연을 다시 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조금 전보다도 높아진 체온에 어깨가 데일 것만 같았다. 청연은 흠칫 놀라면서도 그를 마주 안아 주었다.

“지금까지는 네가 날 지켜 줬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널 지키게 해 줘.”

“…….”

“옆에 있게 해 줘, 응?”

그러자 어깨 위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절절 끓는 열 때문인지 깊은 내적 갈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고통을 꾹 누르고 있는 것처럼 들려 마음이 아팠다. 청연은 입을 다물고 그의 등을 토닥였다.

“…잡아.”

“응?”

잠시 후 들려온 무호의 목소리에 청연이 되묻자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꽉 잡아.”

동시에 몸이 위로 치솟는 느낌이 들어 청연은 급히 무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두 사람은 이미 방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청연은 무호의 어깨에 둘렀던 팔을 풀고 창문을 굳게 닫았다. 후다닥 달려가 문까지 꼼꼼하게 걸어 잠그고 나서 뒤를 돌아보았을 땐 이미 무호의 눈이 붉게 변해 있었다. 그에게서 스멀스멀 흘러나온 마기가 방 안에 맴돌았다.

청연은 순식간에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놀라 주저하면서도 두려워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지난번처럼만 하면 된다. 최대한 말조심하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전부 받아 주면 된다.

“…착하지.”

청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한 걸음씩 다가갔다. 마치 성난 동물을 달래듯이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착하지. 얌전히 있자.”

그러나 무호가 얌전히 있을 리 없었다. 천천히 걸음을 떼던 청연과 다르게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청연을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붉게 빛나는 눈동자와 뜨거운 숨결이 위협적이었다.

뒷걸음질 치던 청연은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되자 눈을 꼭 감았다. 자신의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입술이 맞붙었다. 어젯밤보다 훨씬 거칠고 무자비한 입맞춤이었다. 무호가 자꾸만 이를 세워 물어뜯는 탓에 이러다 입술이 뜯겨 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쉴 틈조차 없어 호흡이 가빴다.

‘마기가….’

무호가 숨기지 않고 풀어놓은 마기에 온몸이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세화일 때의 경험이 있어서 버티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잠깐… 숨만 좀 쉬자.’

청연이 무호의 어깨를 살짝 밀어내려 하자 귀신같이 알아챈 그가 손바닥으로 옆에 있던 궤짝을 내리쳤다. 궤짝이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한 청연은 헛숨을 들이켰다.

‘겨우 이 정도에도 화가 나는 거냐고.’

다행히 그의 입술이 귓가로 옮겨 가자 숨통이 트였다. 청연은 급히 숨을 골랐다. 귓바퀴를 집요하게 깨물고 괴롭히던 입술은 점점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순간 청연의 머릿속에는 어젯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저기 쓰다듬던 손길과 그에 맞춰 반응하던 몸, 그리고 근질거리던 아랫배.

그 기억 때문인지 온몸이 예민해지는 것만 같았다. 마침 그의 손이 허리 부근을 지분거리고 있는 데다가 예민한 목덜미에 닿아오는 숨결까지 더해지자 절로 열이 올랐다.

‘미친. 내가 또 무슨 생각을….’

청연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생각을 떨쳐 냈다. 이건 다 무호를 돕기 위해 하는 일이다. 절대 개인적인 욕구 따위를 채우려고 하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고개를 젓는 걸 거부 의사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무호가 목에 자국을 남기던 일을 멈추고서는 시뻘건 눈으로 청연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저도 모르게 겁을 집어먹은 청연은 더듬더듬 말했다.

“계속, 계속해….”

그러고서는 그가 마음껏 자국을 남기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상한 생각하지 말자. 나는 그저 무호를 돕는 중일뿐이다.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지만 살결 위로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감각에 자꾸만 기분이 이상해졌다. 무호가 깨문 자리를 혀로 핥고 지나갈 때마다 청연은 히익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진짜 미치겠네….’

의지와는 다르게 움찔거리는 몸에 또다시 애꿎은 세화를 탓하게 되었다. 참고 또 참던 그는 결국 팔을 뻗어 무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러자 몸이 번쩍하고 들리며 두 발이 지면에서 떨어졌다.

이윽고 침상 위에 눕혀진 청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몸을 덮쳐오는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고 눈앞은 빙빙 돌았다.

온몸이 간지럽고 머리가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제 몸을 덮은 타인의 체온이 싫지 않았다.

청연은 숨을 헐떡이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세화의 탓이니 뭐니 하는 잡념까지 날아가 새하얗게 비어버린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에라 모르겠다.’

***

무호는 정신이 들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청연이 어디에 있는지는 찾을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바로 밑에 있었으니까.

“청….”

그를 부르려던 무호는 멈칫했다. 의식을 잃은 그의 몸이 침상 위에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고, 옷은 누군가 찢어발긴 것처럼 너덜거렸다. 심지어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몸에는 시퍼런 멍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청연….”

역시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냉큼 받아들이면 안 됐다. 결국 그를 또 다치게 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심지어….

무호는 떨리는 손끝으로 청연의 뺨을 쓸어보았다. 그러자 긴 속눈썹이 파르르 진동하더니 그의 눈이 조금씩 뜨였다. 예쁜 눈동자가 초점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청연.”

다시 한번 부르자 흐릿했던 눈빛이 점차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청연은 눈앞의 무호를 발견하고서는 갈라진 입술을 열었다.

“…몸은 괜찮아?”

형편없이 잠긴 목소리였다. 그 와중에도 무호의 몸 상태를 먼저 살피는 게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무호는 처참한 심경으로 물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했어?”

그러자 청연은 기운 없는 얼굴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안 했어.”

“안 했다고?”

믿을 수 없었다. 흰 피부는 멍 자국과 울혈로 가득하고, 옷은 거의 안 입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청연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진짜 안 했어, 바보야. 지난번처럼 접문하고 좀 깨문 게 다야.”

청연은 무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도 힘없는 손가락으로 팔뚝을 토닥거렸다.

“몸이 이 지경이 됐는데….”

청연이 고개를 저으며 무호의 어깨를 슬쩍 밀어냈다. 순순히 밀려나 몸을 일으킨 무호는 그의 몸을 조금 더 자세히 살폈다. 부러지거나 피가 난 곳은 없어 보였다.

“그거야 네가 못 도망가게 꾹 잡고 있었으니까 멍이 든 거고.”

“…….”

“알잖아. 너한테 맞았으면 겨우 이 정도로 안 끝났을 거.”

그렇게 말하며 청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줄곧 짓눌려 있던 몸을 쭉 펴자 관절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낮게 신음한 청연은 비틀비틀 걸어가더니 새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무호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그를 지켜보았다. 움직임이 조금 힘겨워 보였지만 통증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진짜야?”

“그렇다니까. 또 혼자 오해하고 책임진다느니 하는 말은 꺼내지도 마. 안 그래도 되니까.”

잠시 고민하던 무호는 청연에게 물었다.

“얼마나 이러고 있었는데?”

그 질문에 청연이 멈칫했다. 그는 이내 목소리를 큼큼 가다듬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사흘.”

그의 덤덤한 한마디는 무호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사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