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몸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나한테 말해야 해. 알겠어? 자고 있어도 깨워.”
무호는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는 청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에 다녀온 이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종일 넋이 나가 있던 청연은 일찍 잠자리에 들겠다며 침의로 갈아입은 뒤 등불을 껐다.
“그럼 잘 자.”
밤 인사를 건넨 청연이 곧장 반대 방향으로 돌아누웠다. 무호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천천히 몸을 뉘었다.
한 침상에서 함께 자는 걸 허락받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전부 다 그 빌어먹을 사술 때문이기는 하지만, 사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로 청연이 자신에게 훨씬 관대해진 것 같아 마냥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정이고 연민이라도 좋다. 자신의 삶은 십 년 전, 그의 동정을 산 날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기만 한다면 평생을 불쌍한 놈이라고 불려도 괜찮았다.
무호는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이 안 오나?’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청연이 아직 깨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둠 속에 한참을 누워 있으면서도 잠들지 못하는 걸 보면 잡생각이 많은 듯했다.
덩달아 생각이 많아진 무호는 청연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이불이 조금씩 들썩이며 오르내리고 있었다. 얇은 이불이 몸에 감겨 직선으로 곧게 뻗은 어깨와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무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했던 생각을 취소해야겠다. 한 침상에서 함께 자는 것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웠다.
‘만족은 무슨.’
오히려 꾹꾹 눌러왔던 욕망에 불이 붙는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불을 저 멀리 걷어버린 뒤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며 귓가에 속삭여 묻고 싶었다. 혹시 저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거라면 몸소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좋은 향기….’
무호는 청연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가벼운 손길로 그의 기다란 머리카락 끝부분을 어루만졌다. 손가락에 부드럽게 감기는 머리칼이 주인 몰래 저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얀 목덜미에 시선이 닿은 순간, 무호는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아졌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제멋대로 건드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얼마 못 가 무너지고 만다. 이게 다 청연이 폴폴 풍기는 저 향기 탓이라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차라리 주술 때문에 발작해 욕망의 노예가 된 거라면 적당한 핑곗거리가 됐을 텐데. 지금 무호는 너무나도 제정신이었다. 그리하여 몸속의 기혈을 자극해 스스로 체온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무호는 뜨거워진 몸을 이끌고 청연에게로 다가가 그를 정자세로 돌려 눕혔다. 아무 설명 없이 다짜고짜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니 그가 흠칫하며 놀라는 게 느껴졌다.
“뜨거워…. 너 괜찮아? 또 시작된 거야?”
무호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커다란 몸으로 그를 짓누르며 부드러운 살결에 뺨을 문지를 뿐이었다.
아무래도 청연을 쫓아다니는 그 애송이의 말이 맞는가 보다. 자신은 파렴치했다. 나름대로 착하게 굴기 위해 노력해 보았지만 타고난 본성은 숨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무호야, 얼굴 좀 보자. 응?”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청연은 자신의 눈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와 오래도록 살을 맞대기 위해서는 제정신이라는 걸 숨겨야 했다.
무호는 눈을 감은 채 청연의 목을 입술로 더듬어 올라갔다. 갸름한 턱선에 몇 번 입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그의 아랫입술에 도달하게 되었다.
“잠깐, 잠깐만….”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저지하는 손길이 어깨에 닿아왔지만, 무호는 그의 양 손목을 그대로 잡아 눌렀다.
꼼짝할 수 없게 된 청연의 아랫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물고 할짝대던 무호는 이내 갈라진 틈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그의 입술 위를 완벽하게 덮은 채 여린 안쪽 살을 괴롭히기 시작하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과 함께 더욱 커다란 욕심이 자라났다.
‘더 가까이 닿고 싶다.’
무호는 자꾸만 도망가려고 하는 청연의 혀를 집요하게 옭아매며 그에게 몸을 밀착했다. 일부러 끌어올린 체온 때문인지, 아니면 입맞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뇌가 살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미 사술이 제 몸을 지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걸 자각하지 못해 스스로가 제정신이라고 믿으며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건지도.
파렴치한 무호의 움직임에 맞춰 청연이 아래에서 움찔거렸다.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잡아 누른 손목을 살며시 놓아주어도 이불을 꾹 움켜쥐기만 할 뿐, 밀어내지 않았다.
‘불쌍해서 받아 주는 건가.’
무호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사술이 발동할 때마다 이렇게 순순히 받아 줬을까.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에 속이 끓었다. 청연과 몇 번이나 접문을 나누었을 과거의 자신에게 질투가 치밀었다.
‘더 불쌍해해 줘.’
무호는 침상 위로 길게 늘어진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더욱 깊게 입을 맞췄다. 어느새 도망치려던 시도조차 멈춘 청연이 조금씩 입술을 움직여 제게 반응해 오고 있었다.
불쌍하게 여겨 줘. 밀어내지 말아 줘. 오늘 하룻밤만 더 나를 받아 줘.
무호는 청연에게 전하지 못할 말들을 속으로 되뇌며 그의 혀를 살살 깨물어 자극했다. 타액이 질척하게 섞이는 소리와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한참 동안 접문을 이어 가던 무호는 번들거리는 입술을 떼어 내 다시 청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자신의 등을 안고 살며시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래 놓고 또 기억 못 할 거지, 바보야….”
청연이 힘겹게 숨을 고르며 말했다. 무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난 이제 모르겠어. 주변에서는 자꾸 위험하다고 말리는데….”
분명 그 애송이가 한 말이겠지. 안 봐도 뻔했다.
“전쟁이든 뭐든, 중원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간에… 나는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말이 무호의 마음속에 날아와 박혔다. 어린애 달래듯 토닥거리는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네가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무호야.”
무호는 청연의 옷자락 끝을 꾹 움켜쥐었다. 억지로 입을 맞추면서까지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고, 행복을 빌어 주는 그야말로 바보라 불려야 마땅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바보같이 굴려고….’
나였으면 이미 멀리 도망치고도 남았을 텐데.
이래도 가만히 있나 보자. 무호는 생각하며 슬슬 손을 움직였다. 얇은 침의 위로 청연의 쇄골 부근을 쓰다듬던 그는 천천히 손을 내려 판판한 가슴팍을 쓸고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허리에서 좁은 골반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더듬어 만지자 청연은 움찔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자신의 것과 다르게 부드럽고 섬세한 잔근육과 곧게 뻗은 뼈대의 감각이 옷을 사이에 두고서도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저도 모르게 호흡을 참고 있던 무호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지금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청연임에도 이상하게 자신의 숨이 가빠졌다. 당장 침의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지 않으면 미칠 것처럼 애가 달았다.
‘안 돼….’
접문은 몰라도 강제로 안을 생각은 절대 없었다. 무호는 희미해져 가는 이성의 끈을 꼭 붙잡으며 옷 위에서 안타까운 손짓을 이어 갔다.
어느새 하반신까지 내려간 손가락이 기다란 허벅지를 어루만졌다. 점점 허벅지 안쪽으로 향하는 손길에 청연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으….”
그는 간지러운지 자꾸만 허리를 비틀었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몸이 문질러져 이성을 유지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이대로 계속 참다가는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호는 청연의 몸을 부서져라 끌어안으며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멈춰 세웠다. 참았던 숨과 함께 터져 나온 거친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제발… 제발 가만히 좀 있어.”
그가 몸을 비트는 게 전부 자신의 손길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은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어?”
순간 흠칫 놀란 청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꿈틀거리던 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 무호를 바라보았다.
“너….”
“…….”
“너 지금….”
지금 제정신이야?
적잖이 충격받은 듯한 목소리에 무호는 그를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여전히 몸이 달았지만 더 이상 가다가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너 설마 처음부터….”
후다닥 몸을 일으킨 청연이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서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의 얼굴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띌 만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이….”
새하얗게 질린 피부는 머지않아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청연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무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미친놈아!”
할 말이 없어진 무호는 시선을 피했다. 지금이라도 제 앞에서 씩씩거리는 청연을 잡아 누르고 하던 일을 이어 가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지만 자제력을 간신히 긁어모아 참는 중이었다.
‘이러다가 등선하겠는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청연은 화를 내고 무호의 등짝을 찰싹찰싹 내리치다가 이내 휙 돌아서 방을 나가 버렸다. 우두커니 혼자 남겨진 무호는 간지러운 등짝을 슬슬 문지르고서는 침상 위에 엎어져 이불에 얼굴을 박았다.
아무래도 잠들긴 틀린 것 같았다.
***
방에서 빠져나온 청연은 발을 쾅쾅 구르며 주방으로 내려가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걸로는 모자라서 뜨거운 얼굴에 물을 들이부으니 조금은 화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가라앉힐 건 화뿐만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게… 이게 무슨… 아니 이게 왜….”
아래를 내려다보며 넋이 나가 중얼거리던 청연은 주방 벽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그동안 무호와 여러 번 접문하면서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신체 반응이 일어난 탓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돌았구나…. 진짜 정신이 나갔구나….”
내가 미친 게 아니고서야 무호한테….
안 그래도 낮의 일 때문에 싱숭생숭해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때마침 무호의 몸에서 열이 끓는 걸 보고 오늘 밤은 그가 원하는 걸 모두 받아 주자 결심한 것뿐이었는데.
그런데 입맞춤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심장이 요란하게 뛰고 몸이 떨렸다. 게다가 예민한 부위만 골라서 어루만지는 손길 때문에 결국은….
이마가 까지도록 벽을 내리치던 청연은 눈을 질끈 감고 결론을 내렸다.
‘이 또한 몸의 반응일 뿐이다.’
요새 무호와 붙어 있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함께 자는 걸로는 부족해서 자주 껴안고, 때때로 접문까지 해대니 몸이 착각을 일으킨 거다. 심지어 그렇게 여기저기 만져대니까 몸이 반응해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다.
스스로 최면을 걸던 청연은 급기야 애꿎은 사람을 탓하기에 이르렀다.
‘세화야, 새파랗게 어린애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