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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18)화 (119/145)

118

‘좋은 생각’이라는 게 이런 거였나.

무호는 팔짱을 끼고 앉아 앞에 놓인 그릇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물에서 맵싸한 냄새가 진동했다.

한밤중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이었지만 객잔 주방에는 등불이 타올랐다. 곧이어 주방에서 걸어 나온 제하가 탁자 위에 그릇 하나를 더 내려놓았다.

무호는 똑같은 내용물이 담긴 두 개의 그릇을 못마땅하게 응시하며 조금 전, 제하가 했던 말을 상기했다.

‘나도 싸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 우리가 여기서 싸우면 객잔이 파손될 거라고. 객주님께서도 매번 출입 금지를 들먹이며 말리시잖아.’

이게 무슨 소리지. 죽여 버릴 생각은 있어도 싸울 생각은 없는데.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죽을 놈들이 싸움은 무슨.

그러나 제하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게다가 누군가 다치기라도 하면 객주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어? 다시 말하지만 나도 진심으로 싸우고 싶은 건 똑같아. 절대 무서워서 말리는 게 아니야. 이건 전부 객주님을 위해서다.’

누가 뭐랬나.

‘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승부를 가리는 거다. 지난번 대작에서는 여운 도장이 졌으니 이번에는 매운 음식을 먹는 걸로 하자. 두 사람 중 먼저 물을 찾는 사람은 정정당당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객잔에서 나가는 걸로.’

하고많은 방법 중에 매운 음식 먹기라니 어이가 없었다. 저놈을 쫓아내고 싶으면 그냥 잡아서 밖으로 내던지면 될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뼈가 몇 군데 부러지고 내장이 조금 파열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착하다고 말해 주던 청연의 목소리가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 그런 짓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무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결을 거부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여운은 두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주춤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늘 차분하고 강직해 보이던 그의 눈에 처음으로 불안이 스쳤다.

“차라리 검으로 싸우지.”

무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빈정거렸다.

“자신 없나 보군.”

“…….”

“못하겠으면 꺼지시든가.”

그러자 여운의 이마에 빠직하고 힘줄이 돋았다. 지난번처럼 도발에 넘어가고 만 그는 결국 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이 바보짓을 시작하게 된 게 사건의 전말이었다.

“그런데….”

턱을 괴고 그릇을 내려다보던 무호가 입을 열었다.

“왜 그릇이 겨우 두 개지?”

설마 우리 둘을 동시에 보내 버리고 혼자 객잔에 남아 있으려는 속셈인 건 아니겠지.

그 말에 제하는 뜨끔한 듯 눈알을 굴리며 변명했다.

“나, 나는 예외 아니었나? 싸우는 건 두 사람이었으니….”

“그쪽도 역시 자신 없나 보군.”

“…….”

자고로 무인이라면 상대의 도발을 순순히 넘기지 않는 법이다. 탁자에는 이내 세 번째 그릇이 차려지고야 말았다.

대결의 결과를 요약하자면 여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동이에 머리를 처박았고, 제하는 그릇을 말끔히 비웠으나 마지막 국물 한 모금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무호는 혀를 쯧쯧 차며 미친 듯이 물을 들이마시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제가 어린 시절 지하 감옥에서 어떤 음식들을 먹고 자랐는지 알았다면 이런 대결을 걸어오지 않았을 터였다.

물 따위는 필요 없었다. 무호는 여유롭게 찬장에서 술병을 하나 꺼내 술을 따랐다. 술을 한 모금 넘기자 깔끔한 맛이 입 속에 남아 있던 매운 향을 씻어 내렸다.

술을 얼마나 따라 마셨을까, 어느새 콜록거리던 기침을 진정시킨 제하가 수척해진 얼굴로 다가왔다. 대결에서 졌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남아 있었는지, 그는 무호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자신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지난번엔 내가 이겼으니 이제 동점이군.”

“…그것도 이긴 걸로 친다면.”

무호가 잔을 집어 들자 제하도 질세라 자신의 잔을 들더니 거세게 부딪쳐왔다. 여차하면 잔을 깨뜨릴 기세였다. 가득 채워진 술이 찰랑이며 밖으로 흘러넘쳤다.

“잠깐.”

그때 다 죽어 가는 목소리가 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던 두 사람을 멈춰 세웠다.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던 여운이 어디선가 꺼내온 잔을 물로 가득 채웠다. 그는 말없이 자신의 잔을 높게 들어 보였다.

이윽고 세 사람은 동시에 각자의 잔을 비웠다. 승패가 어떻게 됐든 자존심만은 버릴 수 없었던 자들의 몸부림이었다.

***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청연은 준비한 음식을 내오며 투덜거렸다.

“오늘은 좀 심심하게 해봤어. 누가 밤새 향신료를 다 훔쳐 가서 매운 향을 못 냈거든. 입에 안 맞아도 참고 먹어.”

무호는 얌전히 젓가락을 들면서 답했다.

“잘됐네.”

“…뭐가 잘됐는데?”

“매운 음식은 질린 참이라.”

청연은 커지는 의심 속에 짜증을 꾹 눌러 참았다.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던지라 무호의 맞은편에 앉아 그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와중에 채 썬 오이 조각들이 젓가락에 밀려 그릇 한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매운 건 잘 먹어도 오이는 여전히 싫은가 봐.”

“지하 감옥에도 이런 건 없었거든.”

“…….”

이전처럼 다시 뻔뻔해진 걸 보니 어깨를 다치게 했다는 충격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나 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청연은 고민하며 삼매진화의 불길에 타들어 가는 오이 조각들을 눈에 담았다.

“아무튼 밥 다 먹으면 나랑 같이 시장에 가자. 향신료 도둑 때문에 사야 할 게 산더미야.”

그를 혼자 두는 건 불안하니 가능하면 종일 붙어 있을 생각이었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마음에 걸리던 게 한 가지 있었다.

‘왜 나랑 안 가?’

‘너는 공부해야지. 시장에서 뭐 필요한 거 있어? 있으면 사다 줄게.’

어린 무호를 떼어 놓고 시장에 갔다가 벌어진 일을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이 엄습했다. 그러니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시장이든 어디든 꼭 데려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다가온 누군가가 청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고개를 살짝 돌려 보니 그곳에는 민아가 서 있었다.

“왜?”

“식사 중인 거 아니면 나랑 잠깐 얘기 좀 해.”

무호의 눈치를 살핀 민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 자리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인 듯했다.

“지금은 어려운데…. 나중에 하면 안 돼?”

“잠깐이면 돼.”

청연은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다. 정말 급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나중에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민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힐끗 곁눈질로 무호를 살피자 그는 괜찮으니 가보라는 듯이 눈짓했다. 청연은 결국 무호의 이마를 다시 한번 짚어 열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진짜 잠깐이야.”

민아는 청연을 객잔 후원으로 끌고 갔다. 아주 깊숙한 구석에 도달해서야 걸음을 멈춘 그는 목소리를 작게 낮춰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거야. 너 신강에 가서 며칠 지내다가 어제저녁 때쯤 되어서야 돌아왔잖아. 그새 새로운 남자를 만났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네가 아무하고 하룻밤 보낼 성격도 아니고.”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저 사람, 내가 생각하는 걔가 맞아?”

“네가 생각하는 걔가 누군데.”

“천마.”

누가 듣기라도 할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말했다. 청연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 미쳤어?”

순간 민아의 얼굴에는 경악이 떠올랐다.

“아무리 내가 다른 사람 만나보라고 했다지만, 그렇다고 쟤를 만나면 어떡해? 선택지가 그거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아니, 그런 거 아니라고…. 그냥… 그냥 옆에서 잠만 같이 잔 거야. 그리고 내가 쟤랑 진짜 사귄다고 한들 뭐가 문제야? 어제도 설명했잖아. 흑막은 따로 있었다고.”

“그러니까 더 문제라는 거야!”

저도 모르게 소리를 친 민아는 화들짝 놀라 목을 쭉 빼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서는 청연을 구석으로 몰아넣으며 더욱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 말대로 천마가 최종 보스가 아니라고 쳐. 그러면 쟤가 아무리 널 좋아한다고 한들, 네가 쟤를 잘 설득한다고 한들 다른 누군가의 힘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건 막을 수 없다는 소리잖아.”

“…….”

“너도 그동안 여러 번 겪어봐서 알잖아.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게 쉬워? 쟤 열다섯 살 때 잡혀가는 것도 못 막았다며. 너 단전 복구했을 때도 거의 죽다 살아난 거 기억 안 나?”

그의 말을 듣던 청연은 불쾌해져 얼굴을 굳혔다.

“그러니까 무호가 정해진 운명대로 죽을 거라고? 지금 그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꼭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말고…. 내 말은 그냥 너무 위험하다는 거야. 안 그래도 마교주에 사람 쉽게 죽이는데 그 사술인지 뭔지까지 더해져 봐.”

민아는 여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친구로서 걱정되니까 말리는 거야. 너 그렇게 몸도 주고 마음도 줬다가 나중에 크게 상처받으면 어떡할래?”

“내가 대체 언제 몸을 줬… 됐다, 말을 말자.”

더 이상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청연은 무호에게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이며 걸음을 뗐다.

“한번 잘 생각해 봐. 지금 나랑 같이 중원을 떠나도 늦지 않아.”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는 애써 무시했다.

객잔 내부로 돌아온 청연은 다시 무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느새 식사를 마친 그는 남은 오이 조각을 던졌다 받았다 하며 놀고 있었다.

“먹는 걸로 장난치는 거 아니야.”

청연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무호는 그를 힐끔 보더니 물었다.

“얼굴이 왜 그래.”

“…아무 얘기 못 들었어?”

“남 얘기 엿듣는 취미는 없어서.”

무호는 그렇게 말하며 오이를 마저 태워 버렸다. 불길이 화르륵 타오르고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침 후원에서 돌아온 민아가 탁자 옆을 지나가자 무호는 그를 향해 눈짓하며 물었다.

“죽일까?”

별 뜻 없이 묻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청연은 차마 웃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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