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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16)화 (117/145)

116

뺨을 쓰다듬는 손끝이 거칠었다. 그러나 움직임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잘못했다간 얼굴이 부서지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손놀림이었다.

청연은 이 감각이 낯설지 않았다. 눈을 뜬 채 가만히 누워 그의 손길을 받자 슬그머니 전해져 오는 머뭇거림 또한 익숙했다.

“어차피 찾아올 거면서.”

잠긴 목소리가 청연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왜 그렇게 쫓아냈어.”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마자 보인 것은 역시 무호의 얼굴이었다. 청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그의 안색을 살피려 애썼다. 어두워서 잘 볼 수 없었지만 표정이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았다.

“몸은?”

청연은 넌지시 물었다. 지난번에 쫓겨나듯이 천산을 떠나야 했으니 다시 만나면 화가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의 얼굴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단지 걱정될 뿐이었다.

“좀 괜찮아?”

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열나나 보자.”

청연은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다행히 열이 내려 정상체온이었다.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 떠나고서 어떻게 했어?”

“…….”

말하기 싫은 건가. 청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무사하면 됐다.”

멀쩡하게 돌아왔으면 된 거지.

또 어딘가 다치지는 않았을까, 청연은 무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보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상은 전혀 없었다. 제대로 보려면 저 옷을 벗겨야 하나 고민하던 중, 무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나 뭐?”

이윽고 청연은 그의 시선이 자신의 어깨로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 나도 괜찮아. 뼈 다 붙었어. 저번에 그 의원님이 고쳐 주셨거든.”

확인해볼래? 하고 물으며 어깨를 내밀자 그의 손이 부러졌던 부분을 더듬어 만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툭 떨어진 손은 갈 곳을 잃었다.

무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손은 또 어떤 놈이 그랬어.”

그의 질문에 청연은 순간 뜨끔했다. 찢어진 손에 둘둘 감은 붕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청연은 다친 손을 슬쩍 등 뒤로 숨기며 답했다.

“내가. 요리하다가 혼자 다쳤어.”

“거짓말.”

“진짜야. 실수로 손등에 뜨거운 기름을 흘렸어.”

무호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누구의 짓인지 캐묻기라도 할까, 긴장한 청연은 식은땀을 흘리며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어깨 다 나았으니까 이제 나 피하지 마. 결국엔 너도 걱정돼서 이렇게 찾아올 거잖아.”

“…….”

“알겠어? 차라리 내 옆에 있으라고.”

그리하시면 위험하다 사정하는 제하의 외침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청연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무호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었다.

“이왕 온 거 당분간 여기 있을래? 내가 요즘 사술에 대한 책들을 좀 보고 있는데 너도 같이 보자. 그러다가 증상이 나타나면 더 자세히 뜯어볼 수 있잖아. 어때?”

“…그러다 네 객잔이 날아가.”

덤덤한 말투로 무서운 소리를 하는 무호에 청연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마음에 걸리는 건 사실이었다. 객잔이 날아가는 걸로 모자라서 사람들이 죽어 나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청연은 이상하게 자신이 있었다. 무호가 또 이성을 잃더라도 그를 멈춰 세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난번 신강에서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는 모두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자신에게만 집착했으니까.

무엇보다도 신강에 그를 혼자 두기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렸을 때 지켜 주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지켜 주고 싶었다. 뼈가 몇 군데 더 부러질지도 모르겠지만 모두의 평화를 위해 그 정도는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청연을 마주하고 있는 무호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결코 여기까지 오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불과 몇 시진 전까지만 해도 미쳐 날뛰며 제 손으로 교인 여럿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언제 또 정신이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 청연의 곁에 붙어 있는 건 위험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러진 어깨는 좀 나았는지, 무작정 쫓겨나는 바람에 화가 나지는 않았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대충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막상 청연과 대화를 시작하니 자리를 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당분간 객잔에 머물라는 말이 달콤한 유혹처럼 들렸다. 또 무슨 짓을 하게 될까 두려웠지만 그의 말대로 이곳에 머물고 싶었다.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게다가 그새 손을 다쳐 붕대를 감은 꼴이라니.

청연이 등 뒤로 감춘 손이 심히 거슬렸다. 제게 대화 좀 하자면서 불평하던 그를 생각하면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매번 부상에 대해 말하지 않고 숨기는 건 그도 매한가지였다. 숨기는 이유를 백번 이해하기에 별말 안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왜 그래?”

무호의 표정을 살피던 청연이 물었다. 무호는 잠시 생각을 접어 둔 채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을 눈에 가득 담았다.

낯 간지러운 생각이지만 청연이 보고 싶었다. 자신을 바라보던 염려 가득한 눈빛이 그리웠고, 어린애 대하듯 다그치다가도 토닥여 위로해 주던 손길이 그리웠다.

저를 격식 없이 대하는 유일한 사람. 이제는 두려움조차 지워 버린 듯,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옆에 있겠다 자처하는 사람.

무호는 문득 생각했다. 청연에게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나한테 할 말 있어?”

귀신같이 무호의 표정을 읽어 낸 청연이 물었다.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민하던 무호는 조용히 손을 뻗어 청연을 끌어안았다. 다쳤던 곳을 아프게 할까 힘을 거의 주지 않았음에도 그는 순순히 끌려와 품에 안겼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졌다.

“뭔데. 왜 그러는데.”

어깨 부근에 입술을 묻은 청연이 작은 목소리로 추궁했다. 그의 물음에도 입을 떼기 어려웠다. 하려던 말이 목구멍에 턱 걸린 것처럼 나오지 않았다.

“힘들어서 그래?”

다시금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 주는 듯한 손길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무호는 떨어지지 않던 입술을 열어 목구멍에 걸려 있던 말을 내뱉었다.

“미안해.”

그러자 청연의 손이 멈칫했다. 혹시 이상하게 들렸을까. 목소리가 이상했을까. 걱정되었지만 진심을 담아 다시 한번 말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건네는 사과였다.

“미안해.”

다치게 해서 미안해. 마음대로 끌고 가 가둬 두어서 미안해. 어렸을 때 꺼지라며 소리치고 버릇없이 굴어서 미안해. 항상 제멋대로여서 미안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모두 쏟아 내기엔 내가 아직 미숙하니까, 이 한마디로 용서해 주었으면.

“미안해.”

무호는 지난 십 년간의 감정을 한 마디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러자 멈추었던 청연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등을 토닥이는 게 아니라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래, 착하다.”

사과할 줄도 알고, 다 컸다. 속삭이는 청연의 목소리가 달았다. 그에게 위로받으니 어려서부터 개처럼 구르며 고생했던 기억도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원래 위로라는 게 그런 건가. 아니면 청연이라서 특별한 건가.

모르겠다. 애초에 제게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그런데 안 미안해도 돼. 너는 이미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다 갚았거든. 밥값 차고 넘치게 했잖아.”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마음을 간지럽혔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차라리 개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지도 않는 한 가지 걱정이 머릿속을 떠다니기는 했지만.

‘머릿결이 거칠 텐데. 누구와는 다르게.’

신강에 돌아가면 품질 좋은 향유를 구해 오라고 명해야겠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호는 숨을 죽인 채 가만히 그를 안고 있었다. 청연이 이렇게 저항 없이 자신을 안아 주는 건 처음이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잠이 덜 깬 상태였던 청연은 피곤했는지 금세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무호는 자신의 품속에서 고르게 숨을 내뱉는 그를 침상에 눕히고 이불을 꼼꼼히 덮어 주었다.

‘조금 전에는 꿈을 꾸는 것 같던데.’

이번에는 꿈꾸지 않고 편히 자기를.

무호는 청연의 얼굴을 응시했다. 안 그래도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외모였건만, 이제는 자신보다도 어려 보였다.

환골탈태하고 외양이 어려지면서 청연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졌다면 아쉬웠을 텐데, 다행히 그것만큼은 그대로였다. 내리쬐는 여름의 햇살. 더위를 식혀주는 말간 물빛. 무호가 느끼는 청연의 분위기는 그랬다.

‘이러니 벌레가 그렇게 꼬이지.’

무호는 붕대를 칭칭 감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뼈를 부러뜨린 일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누군가가 그의 몸에 손을 대고 상처 입혔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다. 이제 그 벌레를 잡아 사지를 찢어 죽일 시간이었다.

누가 벌인 짓인지 알려 주지 않는 걸 보면 아끼는 놈 중 하나겠지. 웬만해선 그놈들은 안 건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 밤, 청연에게 사과할 일이 하나 더 생기겠다.

무호는 청연을 뒤로한 채 방을 나섰다. 곤히 잠든 그가 소란에 깨어나지 않도록 문을 잘 닫고는 계단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객잔 일 층에서 두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더 이상 존재를 숨길 이유가 없어진 무호는 자신의 기척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계단을 모두 내려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두 쌍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 또…!”

부글부글 끓는 갈색 눈동자 한 쌍.

무호는 그를 가볍게 무시했다. 저 애송이 따위가 청연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손을 잡고 벌벌 떨기나 한다면 모를까.

“…….”

그리고 차분해 보이지만 경계를 바짝 세운 검은 눈동자 한 쌍.

무호는 그를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온몸을 감싼 새하얀 옷이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다시 시선을 들어 올려 그와 눈을 마주한 무호는 직감했다.

‘저놈이구나.’

청연을 다치게 한 놈이.

무호는 손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여운의 몸이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채 바닥으로 처박혔다.

나무 바닥에 쩌적쩌적 금이 번져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여운의 목덜미를 잡아 누른 무호는 눈을 붉게 빛냈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그의 백의를 피로 물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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