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제하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뜬금없이 청연에게서 도착한 서신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교 교주를 진찰하는 일을 흔쾌히 수락하신 스승님, 그리고 천산에 제 발로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까지.
그러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걱정을 가득 담은 얼굴로 무호를 바라보는 청연이었다. 왜 저리도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계실까.
객주님께선 정이 많으신 분이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러니 개인적인 연이 있는 사람을 당연히 챙기려 하시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사람은 마교주 아닌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는 걸 넘어서 싫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납치해 강제로 끌고 간다거나, 그 사람의 몸에 상처를 남기는 일은 자신의 머리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객주님께선 왜 저런 눈을 하고 계시냐고.’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저 사람을 향한 청연의 눈빛이 지난번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제하의 입장에서 썩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다.
사술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서신을 읽어 알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더 위험했다. 객주님께서 저 사람의 곁에 계시도록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안 갈래. 다 알게 됐는데 혼자 두고 어떻게 가.”
떠나지 않겠다 고집부리는 청연의 목소리에 제하는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크게 다치고 싶어서 저러시는 걸까.
“여기 있을게.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지난번처럼… 아.”
무언가 말하려던 청연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이쯤 되니 제하는 점점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지난번?’
그 위험한 상황에 저 사람과 함께 계셨다는 건가. 뭘 어떻게 도와주셨길래.
자신은 항상 청연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그의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한발 뒤처져 뒷모습만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무려 열한 살 때부터 그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전부 부질없었다.
질투하지 말자. 질투 같은 건 쓸데없는 감정이다. 속으로 다짐하면서도 부글부글 올라오는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이러면 안 되는데.’
청연에게는 올곧고 바른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다. 어린 동생이 아닌 의젓한 사내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자기 기분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꼴이라니. 매번 그의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걸로 모자라서 이제는 질투하고, 시기하고 있었다.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다치지 않게 알아서 몸 사릴게. 그러니까 나 쫓아내지 마.”
“그만하고 가.”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하는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청연에게도, 그런 그에게 차가운 말투로 대꾸하는 무호에게도 화가 났다.
‘걱정돼서 저러시는 건데 좀 부드럽게 설득하면 뭐가 덧나? 누구는 지금 객주님이랑 대화하고 싶어도 못 하고 있건만 복에 겨워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매정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무호가 큰 보폭으로 걸어가 방을 나서자 청연이 그의 뒤를 따랐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제하도 덩달아 걸음을 옮겼다.
“왜 자꾸 피해? 내가 괜찮다잖아.”
청연은 계속해서 설득하려 했다. 빠른 속도로 걸어가던 무호는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디까지 따라오려고.”
“그러는 너는 그 몸으로 어디까지 갈 건데? 차라리 나랑 같이 방 안에 있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제하는 이를 꽉 깨물었다.
‘같이 방 안에? 단둘이?’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뜯어말릴 것이다.
그러나 제하가 뜯어말리기도 전에 언쟁은 끝이 났다. 골치가 아픈지 혈 자리를 문지르던 무호는 결국 주변의 흑의인들에게 까딱 손짓하더니 말했다.
“손님 가신단다.”
“너 진짜….”
청연은 한바탕 따지고 싶은 눈치였지만 더 이상 그를 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흑의인들이 우르르 다가와 청연의 주위를 에워쌌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동안 무호는 검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멀어져 갔다.
일 장 정도 떨어져 걷던 제하는 곧장 청연에게로 달려갔다. 손은 자연히 검 자루로 향했다. 저놈들 중 한 명이라도 그를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을 요량이었다.
“객주님.”
“…….”
“객주님, 우리 가요. 더 오래 계시면 위험해요. 제가 모실게요.”
“제하야.”
기운 빠진 목소리가 제하의 이름을 불렀다. 제하는 평소보다 유난히 하얗게 보이는 청연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가면 여긴 아무도 없어.”
“예?”
아무도 없다니. 제하는 이번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사람에게 충성하는 교인들이 이렇게 많다. 이들은 교주가 양민을 죽이든, 같은 교인을 죽이든 그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다.
그런데 객주님까지 꼭 여기에 계셔야 할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다. 가자.”
청연은 체념한 듯이 말하며 돌아섰다. 그 모습이 퍽 씁쓸해 보여 제하는 또 한 번 분을 삭였다.
청연을 포함한 네 사람은 천산에서 쫓겨나다시피 걸어 나왔다. 시간을 내서 진찰하러 와 주신 스승님에게까지 버릇없이 굴다니, 역시 마교 교주는 예의 따위 모르는 사람인가 보다.
제하는 이를 갈며 지나 온 길을 돌아보았다. 다시는 이곳에 올 일 없을 것이다.
“그만 성내고 앞이나 보거라.”
소명의 차분한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제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스승님께선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그자가 스승님께 무례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만하래도.”
“하지만….”
“몇 번이나 말해야겠느냐.”
“…….”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려다가 오히려 타박까지 당한 제하는 스승님 몰래 입술을 삐죽거렸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뒤에서 흉을 보는 일은 꺼리시는 분이었다. 그 상대가 아무리 마교주라고 해도 말이다.
스승님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소속과 무공으로 상대방을 평가하지 말고 그 사람의 내면을 보라고.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도 저 모양인데 내면을 들여다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제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곁눈질로 청연의 안색을 살폈다. 조금 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저, 대인.”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걷던 청연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술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돌아가서 문헌을 조금 살펴보려고 합니다만.”
“…그렇다면 제가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그의 말에 제하의 귀가 솔깃했다.
객주님께서 함께 가신다고?
“정보를 찾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시던 스승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자 제하의 마음속에는 희미한 기쁨이 차올랐다. 비록 마교주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사는 곳에 청연이 방문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여태 쌓아온 시기와 질투가 싹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연모하는 이를 개인적인 공간에 들인다는 건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청연이 찾아온다면 그를 어떻게 대접할지 여러 번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일단은 손님으로 극진히 모시고, 식사도 직접 준비해 드려야겠다.’
객잔에 갈 때마다 굳이 객주님이 만든 음식을 먹고 싶다며 그를 귀찮게 한 전적이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보답해야겠다. 누구처럼 귀한 손님을 박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하는 심란해하는 청연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제하와 소명이 함께 지내는 산은 산서성 북부에 위치했다. 신강에서부터 먼 길을 지나 산을 오른 청연은 주위 풍광을 보고서는 내심 감탄했다. 겉으로 보기에 멋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땅에서 느껴지는 기운 또한 영험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가도 신강에서 혼자 고생하고 있을 무호를 떠올리면 울적해졌다. 그놈의 사술 같은 게 없었다면 그도 경치 좋은 곳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객주님, 스승님과 문헌 찾아보시는 동안 제가 저녁 식사 만들어 드릴게요. 지금까지 항상 객주님께서 요리해 주셨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하겠습니다.”
“응? 아, 고마워.”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제하에게 대답한 뒤, 청연은 소명의 뒤를 따라 서고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입이 떡 벌어졌다.
‘돌아가서 문헌을 조금 살펴보려고 합니다만.’
조금이라면서요…?
작지 않은 크기의 서고가 장서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크고 작은 책장들이 미로처럼 진열되어 있어, 자칫 잘못하면 책 무더기 속에서 길을 잃겠다 싶은 정도였다.
‘민아가 묘사한 걸 떠올려 봐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청연은 몸을 한껏 움츠려 가며 책장 사이로 난 좁디좁은 길을 걸었다. 그러다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선 소명이 돌아보며 말했다.
“이쪽 서책들이 사술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책이 여느 탑 못지않게 쌓여 있었다. 사술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던 소명의 말을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편히 살펴보시면 됩니다.”
“예….”
편할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