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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10)화 (111/145)

110화

소명이 천산에 찾아왔다.

혼자 온 게 아니었다. 못마땅한 표정을 한 제하도 함께였다. 그는 지난번 청연을 구하기 위해 잠입했던 이유로 마교도들에게 끌려갈 뻔했지만 교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본인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말이다.

“저희가 가도 됐는데 이렇게 먼 길을 와주시다니요.”

마중을 나간 청연은 소명과 마주치기 무섭게 그의 예리한 시선이 왼쪽 어깨에 꽂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에 식은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그동안 입술과 발목은 모두 나았지만 어깨의 뼈는 아직 붙지 않았다. 겉으로 볼 때 부러진 게 티 나지 않도록 잘 고정해 놓았으나 역시 전문가의 눈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청연은 말없이 그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제발 제하의 앞에서 아무 말씀 말아 달라는 애원이었다. 무호 때문에 어깨를 다쳤다는 걸 제하가 알게 된다면 무슨 난리가 벌어질지 몰랐다.

다행히 청연의 눈빛을 읽은 소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면에 제하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또 강제로 끌려오신 겁니까?”

“이번에는 내 발로 왔어.”

“대체 무슨 일로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없어…. 멀쩡해.”

청연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고서는 소명에게 돌아섰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대인께서는 이곳에 걸음 하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마교주를 치료하려고 했다는 게 알려지면 정파 사람들에게 적으로 몰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물론 입단속은 철저히 하겠지만 말이다.

소명은 청연의 뜻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답했다.

“이미 손 씻은 늙은이가 어딜 가서 무얼 하든 누가 말을 얹겠습니까.”

“아….”

청연은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가 늙은이, 노인네 같은 단어로 자신을 지칭할 때마다 젊은 외모와 대비되어 괴리감이 들었다.

“의원과 의원의 제자가 할 일을 하러 왔을 뿐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대인. 그나저나 저분은 누구….”

그 자리에는 소명과 제하를 제외한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센 노인이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에이, 기대했는데 별거 없구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이거지.”

마치 마교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 같았다. 소명은 눈길을 돌려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실은 저이 때문에 직접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와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며 하도 떼를 쓰는 바람에….”

“예?”

“객주님께서도 보신 적 있을 겁니다. 몇 년 전에 객잔에서 함께 식사하다가 교룡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었던 그 친우입니다.”

어라, 교룡에 대한 정보라면….

“아, 그때 음식 이상하게 주문하시던 그분 말씀이십니까?”

어향육사에서 돼지고기를 빼고, 궁보계정에서 닭고기를 빼던. 그러면서 소채볶음을 시키는 건 싫다던 그 노인 아니던가.

“…예.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저자가 영 이상해 보여도 의외로 쓸모가 있습니다. 사특한 것들에 관심이 많아 사술에 관해서는 저보다 많이 알고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사술은 제 분야가 아닌지라.”

그때 그 노인을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이름이 뭐였더라.

미심쩍은 인상의 노인이지만 어찌 됐든 신기하고 반가운 인연이다. 사술에 관해서 많이 알고 있다는 이가 여기까지 걸음 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라고 청연은 생각했다. 그가 천마의 앞에서 망발을 내뱉기 전까지는.

“히야, 교주 인상을 보니 신강에 사막이 왜 그리 넓은지 알겠네. 풀 한 포기 나기 힘들겠어.”

청연은 경악했다. 저 사람이 지금 죽고 싶어서 수를 쓰는 건가. 새로운 자결 방안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마교주 면전에 대놓고 저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너무하네. 잘생긴 애한테 매번 무섭게 생겼다, 인상이 안 좋다 이런 말들만 해대니까 애가 더 삐뚤어지지. 설마 얘 자기가 잘생긴 것도 모르는 거 아니야?’

미남에다 몸도 좋은데. 게다가 목욕할 때는 나를 작아지게 만들… 아니, 이게 뭔 소리야.

정신을 차린 청연은 무호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다행히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사실은 아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죽은 눈을 한 채 지루한 듯 먼 산만 보고 앉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반면에 제하는 방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체 왜 스승님께서 마교주를 진찰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자네가 먼저 살펴보는 게 어떤가?”

소명이 노인을 향해 묻자 그는 좋다며 흔쾌히 앞으로 나섰다. 무호는 그를 대충 훑어볼 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청연이 팔을 톡톡 두드리자 그제야 마지못해 한쪽 팔을 내어 주고는 또다시 먼 산을 보았다.

“오, 혈도를 타고 흐르는 이 사특한 기운.”

그는 맥을 짚으며 돌팔이 점쟁이를 연상시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청연은 영 믿음이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래도 소명의 지인이니 돌팔이는 아닐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래그래, 다른 의원들이 발견하기 힘들만 하군.”

조금 전에는 맥을 짚자마자 사특한 기운이 느껴진다더니 이번에는 발견하기 힘들 거라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는 소명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자네도 와서 짚어봐. 아주 흥미로워.”

그러자 소명이 다가와 맥을 짚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무호는 귀찮음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냈다.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내 말이 맞지?”

소명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더 신이 난 듯 말했다.

“이 기운이 선천진기1) 바로 밑에서 흘러. 강력한 선천진기 아래에 숨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사술에 걸린 지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 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몸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겁니까?”

“그래.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종류가 몇 있다고 들었지.”

청연은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정확히 어떤 사술인지는 더 알아봐야겠지만, 그런 놈들은 대부분 생명력을 토대로 자라나. 당한 사람의 생명력이 강할수록 사술의 영향도 커진다는 거야. 보아하니 곧 있으면 몸을 완전히 집어삼키겠구먼.”

“그런….”

“이렇게 사악한 사술을 쓸 땐 그 방법도 사악하기 마련이지. 저 눈의 흉터 좀 봐.”

“흉터요?”

청연은 무호의 눈가에 크게 자리 잡은 흉터를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보다 더욱 진해져 붉은빛을 띠는, 잘생긴 얼굴에 해를 끼치는 흉터였다.

“시전자와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살을 찢고 그 사람의 피를 흘려 넣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러고 보니 다섯 살에 생긴 상처라고 했지. 처음 마교에 잡혀 와서 무공을 익히기도 전에, 누군가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고. 정말 그때부터 다 계획되었던 걸까.

‘…안쓰러워.’

다섯 살 조그마한 어린애 몸에 상처 낼 데가 어디 있다고 그렇게까지. 심지어 이따위 사술을 걸기 위해서였다니, 흉터를 응시하던 청연은 속을 끓였다.

“그러면 방법은요? 사술을 끊어낼 방법은 있습니까?”

“없어.”

“예?”

너무나도 빠르게 돌아온 노인의 대답에 청연의 눈이 커졌다.

“없다고. 이미 저주가 온몸 구석구석 혈관 하나하나까지 다 퍼졌는데 이걸 없애려면 몸을 통째로 갈아야 할걸.”

“…….”

말도 안 돼.

청연은 놀라서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쥐어짜 질문했다.

“환골탈태하면요?”

“젊은 놈이 그렇게도 머리가 안 돌아가나. 이런 사특한 게 몸을 짓누르고 있는데 환골탈태 같은 걸 하도록 내버려 둘 것 같아? 초기라면 모를까 지금은 사술이 몸을 완전히 차지하기 직전인데.”

“…그럼, 그러면 시전자를 죽이면요? 시전자가 죽어도 사술은 남는 겁니까?”

지난번에 무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으나 그때는 답을 듣지 못했다.

노인은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면 이자도 같이 죽어.”

“뭐요?”

“따라 죽는 거라고. 사술을 매개로 두 사람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

청연은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혈마가 죽으면 무호도 죽는다니, 그럴 수는 없는 거였다.

“너, 너 다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한테 말 안 해 준 거야?”

무호에게 물었으나 그는 답이 없었다. 놀라거나 충격받은 기색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와 같은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그 사람 처리하지도 못하고 내버려 둔 거야?”

“…….”

“어떻게 그걸… 아니….”

이제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청연이 어버버 거리고 있으려니 소명이 나서 진정시켰다.

“저이가 언행을 다소 경솔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희귀 사술인지 아직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니 너무 단정 짓지 마십시오.”

소명은 조금 더 살펴보겠다며 무호의 맥을 짚으려 했다. 그러자 무호가 성가시다는 듯 그의 손을 휙 쳐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청연을 향해 말했다.

“이제 가.”

“…어?”

“다 들었으니까 그만 가봐.”

“가긴 어딜 가라는 거야.”

청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담담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 이상하게 화가 났다.

‘나는 이렇게 화가 나는데 넌 왜 아무렇지도 않아?’

노인이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혈마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건데. 그러면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무호는 계속해서 시달려야 한다는 걸까. 사술에 잠식되어 이성을 잃고, 무자비한 학살을 벌이면서?

“가.”

“왜 자꾸 가래. 방법은 찾아야 할 거 아니야.”

청연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무호가 한숨을 내쉬더니 손목을 잡아 왔다.

그는 청연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동시에 청연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이마에서 열이 끓고 있었다.

“또….”

저번에 그 일 있고서 정신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런데 또 시작이라고?

“어서.”

청연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깨물자 무호가 재촉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단호하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깨가 부러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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