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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08)화 (109/145)

108화

“아니, 이게… 그….”

청연은 뒤늦게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상체를 일으켰다. 정말 울려던 건 아니었는데, 왜 하필 이때 눈물이 나와서는.

“우는 거 아니야. 오해하지 마.”

그러나 무호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누가 보면 꼭 청연이 그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가 들킨 것 같은 모양새였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이리 와서 나랑 얘기해. 더 멀어지지 말고… 어딜 가!”

점점 멀어져 가는 무호에게 외치자 그의 어깨가 움찔했다. 검은 눈동자는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청연은 목소리를 낮추며 최대한 무덤덤한 투로 말했다.

“제정신 아니었던 거 아니까 걱정하지 마. 평소에는 나 다치게 하지 않잖아. 그러니까 진정하고 이리 와서….”

“내가… 무슨 짓을….”

힘겹게 입을 연 그의 말에 청연은 착잡한 한숨을 삼켰다. 제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믿을 것 같지 않았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양쪽 발목이 박살 날 위기에 처해 있었던 지라 아직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지금 저놈을 진정시키지 못한다면 다시는 제대로 대화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안 오면 내가 간다?”

“…….”

말없이 시선을 피하는 그의 모습을 보다 못한 청연은 탁자 위에서 성큼 뛰어내렸다. 그러나 걸음을 내딛기 무섭게 발목이 심하게 욱신거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으….”

저도 모르게 발목을 붙잡으며 신음하던 청연은 무호의 눈치를 보고서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한 발짝도 가까이 오지 못한 채 주먹만 움켜쥐고 있었다.

“이런 건 금방 낫잖아…. 너도 알지? 부러진 것도 아닌데 뭐….”

청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다친 사람은 자신인데 이상하게 가해자가 된 기분이었다.

“일으켜 줄래?”

오른손을 내밀며 묻자 무호는 반사적으로 다가오려다가 말고 또 움찔거리며 멈춰 섰다. 그는 무거운 시선을 퉁퉁 부어오른 발목에 고정한 채 말했다.

“다른 데는.”

“응?”

“발목 말고… 다른 데는….”

이 상황에 네가 내 어깨마저 부러뜨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숨길 생각이긴 했지만.

“멀쩡해.”

“…….”

“진짜야. 아, 입술 좀 찢어지긴 했는데 이거야 뭐….”

계속해서 안심시키자 무호는 그제야 한 걸음씩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그는 내민 손을 잡는 대신 청연의 몸을 안아 올려 침상으로 데려가 앉혔다.

그러고서는 침상 앞에 꿇어앉아 부어오른 발목을 살폈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금방 나을 것 같지? 거봐, 내가 뭐랬어.”

“…….”

“걱정하지 마.”

발목을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무호는 청연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터지고 피가 맺힌 게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파?”

“아니.”

“울었잖아.”

“…운 거 아니라고.”

무호는 그제야 청연과 시선을 맞췄다.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래도 도망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사실 도망쳐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또 거짓말.”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하며 청연의 몸을 훑어보았다. 얼굴에서부터 내려와 목과 쇄골, 그리고 가슴으로 옮겨 가려던 시선은 이내 왼쪽 어깨 부근에서 멈췄다. 순간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잠깐.”

“어?”

청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치챘나?’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려고 했는데, 그냥 눈으로만 보고도 알아차렸다고? 이렇게 빨리?

“어깨가….”

“아니야.”

다급히 부정하자 그의 표정은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서늘한 검은색 눈동자를 바라보던 청연은 식은땀을 흘렸다. 해령이 누누이 말하던 ‘무섭게 생겼다’가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뭐가 아닌데?”

“그냥… 아니야.”

“…….”

“나, 나 배고파. 오늘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어. 밥부터 먹자.”

“…….”

“아니지. 너, 너는 업무 보러 가야 하지 않아? 어서 가봐.”

어이없다는 듯한 한숨 소리와 함께 무호의 손이 다가왔다. 저지할 틈도 없이 가까워지는 손을 피하려던 청연은 결국 중심을 잃고 넘어가 침상 위에 쓰러졌다. 침상에 부딪친 왼쪽 어깨에 큰 충격이 전해져 왔다.

“아흐….”

뼈가 부러진 데다 여태 처치도 제대로 못 받았고, 무호가 계속해서 팔을 잡아당기는 탓에 상태가 악화된 어깨였다. 게다가 여기저기 부딪치기까지 했으니 딱 죽을 만큼 아팠다.

“가만히 있어.”

어느새 침상 위로 올라온 무호가 반대쪽 어깨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하며 말했다. 그의 손이 망설임 없이 빠르게 윗옷을 벗겼다. 어깨에 칭칭 감은 붕대까지 풀자 비틀린 뼈대와 커다란 피멍으로 얼룩진 피부가 드러났다.

“…멀쩡하다며.”

그는 이제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친 사실을 숨긴 청연에게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다치게 한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명백히 분노하고 있었다.

어차피 들켰으니 솔직해지기로 결심한 청연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안 멀쩡해. 아파 죽겠어.”

“…….”

“어깨도 아프고 발목도 아프고 입술도 아파. 이거 다 네가 그랬어.”

“왜… 왜 나한테 말을….”

“너도 마찬가지잖아.”

청연은 다치지 않은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팍을 쿡 찔렀다. 어젯밤 붕대가 감겨있던 그 자리였다.

“너도 다친 거 숨겼잖아. 나 걱정할까 봐.”

“…….”

“나한테 끝까지 말 안 해 줬을 거잖아.”

내 말이 틀려? 하고 묻자 무호는 마른세수를 하며 몸을 일으켰다. 청연도 덩달아 일어나 뒤돌아 앉은 그의 등을 보며 말했다.

“대체 네가 다칠 일이 뭐가 있는지, 그리고 왜 자꾸 정신을 놓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내가 캐묻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숨길 거 다 알아. 아니야?”

“…….”

“그런데 너는 겨우 이거 하나 숨겼다고 화를 내? 나는 너에 대해서 하나도 알면 안 되고, 너는 나에 대해서 꼬치꼬치 다 알아야 해?”

무호는 묵묵부답이었다. 얼굴조차 보이지 않으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해졌다. 청연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돌려놓으려 하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 앉아.”

청연의 단호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무호는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 아직 말 안 끝났어.”

“…….”

“나랑 얘기 좀 하자니까. 대화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아니, 그러면 너는 말 안 해도 되니까 가지 말고 듣기만 해.”

그러나 그의 손은 문고리를 잡아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청연은 발목이 아파 따라가지도 못한 채 그의 등만 보며 말했다.

“가지 마. 너 그렇게 가면 혼자서 자책할 거잖아.”

“…그래도 싸.”

“그래도 싸긴 뭐가 싸! 당장 이리 와!”

답답함을 참지 못한 청연이 큰 소리로 외쳤지만 그는 끝내 문밖으로 나섰다.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뒤로 문이 다시 쿵 하고 닫혔다. 홀로 남겨진 청연은 분을 삭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침상 위에 앉은 채 넋을 놓고 있으려니 몇몇 사람들이 찾아와 청연에게 예를 갖췄다. 어제 보았던 의원과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러 온 시비들이었다.

발목은 다행히 부러진 건 아니었기에 간단한 처치를 받기 무섭게 부기가 가라앉았다. 통증도 제법 줄어 걷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청연은 발목을 빙글 돌려 보며 의원에게 물었다.

“교주님께서 보내신 거죠?”

“예.”

“어디 계세요?”

“대전으로 향하시는 걸 보았습니다.”

대전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을 텐데. 무호를 찾아갈 생각이었던 청연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대전에까지 마음대로 나타나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이걸 어쩌나. 곰곰이 고민하는 사이 의원은 부러진 어깨를 제대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한층 짙어진 피멍들이 하얀 피부 위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방 안에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안 올 것 같은데.’

무호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떠나지 않겠다고 어젯밤에 거듭 약속한 바였다. 저놈이 제대로 입을 열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그가 무얼 숨기고 있는 건지 이번에야말로 꼭 알아내겠다고 다짐했다.

***

그날 밤, 청연은 얇은 침의만 입은 채 방을 나섰다. 몇 시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무호를 찾아 나선 참이었다. 그가 어디에 있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기척을 느끼고 피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웅장한 전각 몇 개를 지나쳐 탁 트인 넓은 지대에 도착했다. 청연은 지대의 한가운데 위치한 나무들 사이로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갔다.

“역시 여기 있었네.”

무호는 바위에 등을 기댄 채 탕 속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청연이 온 걸 외면하는 중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피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거면 됐다.

“나 목욕하러 왔어.”

청연이 말하자 무호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감았던 눈을 떴다.

“네가 그랬잖아. 지난번처럼 같이 목욕하자고.”

“…….”

“해도 되지?”

그러자 무호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탕을 나가려고 했다. 여전히 대화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급해진 청연은 손을 빠르게 놀려 옷의 매듭을 풀었다. 침의가 벗겨져 그의 발치에 툭 떨어졌다.

“…지금 뭐 하는….”

무호의 눈이 즉각적으로 휘둥그레졌다. 나신이 된 청연은 탕 속으로 걸어 들어가 얼어붙은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긴장으로 굳은 팔뚝이 청연의 맨살에 스치기라도 할까 움츠러들었다.

청연은 지금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미치도록 민망했다.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목덜미가 붉게 달아오른 채였다.

‘창피해 죽겠네. 지금이라도 그만할까? 아니야, 대화는 꼭 하고 넘어가야지.’

의지를 굳게 다진 청연은 고개를 돌려 무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서는 지난번, 그가 이 탕 속에서 자신을 억지로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이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도망치려면 도망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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