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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06)화 (107/145)

106화

청연은 무호를 몇 번이나 어르고 달랜 후에야 그에게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 약속하고 맹세까지 한 터라 마음이 급했다.

“당분간 이쪽 팔은 쓰시면 안 됩니다.”

의원이 그의 왼쪽 어깨에 붕대를 감으며 말했다. 하얀 어깨 위로 피멍이 가득했다. 결국 무호의 손아귀 힘에 뼈가 부러지고 말았지만 청연은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지홍이 착잡한 얼굴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두 분…. 교주님께는 이거 비밀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지홍은 고개를 저었다.

“금방 눈치채실 겁니다.”

“그래도 일단은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청연은 자신의 부상에 대해 함구할 것을 여러 번 부탁했다. 지난번 무호에게 목을 물어뜯긴 일로 그가 쩔쩔맸던 걸 생각하면 이번 일은 숨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 서신 한 장 쓸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렵겠습니다. 주군께서 정신이 돌아오시거든 그분께 말씀드리는 편이….”

하긴, 이런 예민한 일을 외부에 알리는 게 허용될 리 없었다. 소명에게 서신을 쓸 생각이었던 청연은 계획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계속 이러고 있다가는 무호가 또 언제 찾아올지 몰랐다. 청연은 최소한의 처치만 받은 채 다시 무호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뒤를 따르던 지홍이 그에게 물었다.

“정말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

괜찮을 거라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청연은 그저 어색하게 미소 짓고는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문 안쪽에서 튀어나온 손에 거칠게 끌려 들어갔다.

무호는 청연을 끌어당긴 뒤 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닫았다. 그의 손길에 놀라고 요란한 소리에 또 놀란 청연은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왜 또 화났어. 약속한 대로 금방 왔잖아.”

“…….”

“안 간다고 했잖아. 기억 안 나? 난 약속 지켰어.”

그러거나 말거나 무호는 여전히 잡아먹을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청연은 자신을 가둔 그의 두 팔을 밀어내려 시도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돌덩이 같은 몸이 화가 나서인지 더욱 단단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당분간 한쪽 팔을 쓰지 못할 거라는 사실에 마음이 갑갑해졌다. 청연은 한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알았어. 너 기분 안 좋은 건 알겠는데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

“이제 곧 잘 시간인데 잠도 이러고 잘 거야?”

잠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그의 팔이 문짝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풀려났구나 생각한 청연은 그대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한 걸음도 가지 못하고 다시 무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청연의 허리에 팔을 감아 번쩍 들어 올린 그는 침상으로 향했다. 그에게 들어 올려지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익숙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못 살겠다….”

지난번 일을 되짚어 보면 무호는 자신이 반항할수록 더욱 거칠어졌다. 반대로 그를 달래 주고, 그가 원하는 말을 해 주었을 때는 상대적으로 유순해졌다. 그러니 최대한 기분을 맞춰 주며 얌전히 있는 게 덜 다칠 수 있는 길이었다.

체념한 청연은 고분고분 침상 위에 눕혀졌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을 덮쳐오는 그림자에 눈앞이 아찔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불….”

“…….”

“불 좀 꺼줘…. 밝으면 잠을 못 자거든.”

그 말에 무호가 침상 밖으로 손을 휘둘렀다. 여기저기 놓인 등불이 한 번에 꺼지며 방 안이 어두워졌다.

“이제 자자. 얌전히 자는 거야. 알았지? 나 아무 데도 안 갈 거니까… 아니! 아니, 왜 또 깨무는데!”

귓바퀴를 잘근잘근 물린 청연은 부르르 떨었다. 무게로 자신의 몸을 짓누르며 얼굴을 빤히 응시하는 이 미친놈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다친 왼쪽 어깨는 눌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무리 단전을 복구하고 무공을 되찾으면 뭐 하나. 이놈한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손을 까딱하기만 해도 그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청연을 제압했다. 청연은 절대로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무거워.”

“…….”

“무거워서 이러고 어떻게 자. 나 숨 막혀.”

소심하게 불평을 늘어놓자 무호의 양손이 청연의 허리춤을 잡았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새에 반 바퀴를 빙글 돌아 청연을 자신의 몸 위에 앉혀놓았다.

청연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 상태로 뭘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제 안 무겁긴 한데 못 자는 건 매한가지야.”

그러니까 내려 줘.

청연은 다시 침상으로 내려가려 시도했으나 그가 골반을 단단히 붙든 채 놓아주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위에서 비비적거리기만 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잠 좀 자자, 응? 이거 놓고….”

한쪽 팔을 다쳐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무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휘청거리며 움직이던 청연은 멀쩡한 오른쪽 팔을 뻗어 그의 가슴께를 짚었다. 그리고 그 순간, 놀라 숨을 흡 들이쉬었다.

묵직한 무언가가 아래쪽에 닿아 있었다. 살을 꾹 누르다 못해 뚫고 들어올 것 같은 기세에 청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얌전히 굴기로 했던 것마저 잊어버리고 사색이 되어 외쳤다.

“미친놈아!”

그러자 자극받은 무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덕분에 청연은 균형을 잃고 앞으로 철퍼덕 엎어지고 말았다. 부딪친 왼쪽 어깨에서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전해져 왔다.

“아파…. 진짜 아파 죽을 것 같아. 내가 뼈까지 부러졌지만 너한테 고마운 일 많으니까 참는 거야.”

정신 돌아오기만 해봐. 당장 의원님 앞에다 앉혀 놓고 진찰받게 할 거야.

읊조리던 청연은 그의 가슴 위에 엎드린 채 축 늘어졌다. 더 이상 움직일 의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욱신거리는 어깨는 차라리 도려내고 싶었다.

청연이 품속에서 얌전해지자 무호의 움직임도 덩달아 잦아들었다. 통증이 사그라들 때까지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고르던 청연은 문득 뺨에 거친 천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옷의 감촉이 아니었다. 청연은 고개를 들고 자신의 얼굴이 놓여 있던 곳을 유심히 보았다. 무호의 벌어진 앞섶 사이로 하얀색의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이게 뭐야?”

청연은 다시 일어나 앉은 채 살며시 옷 매듭을 풀어 보았다. 윗옷을 펼치자 드러난 것은 흰 붕대였다. 자신의 어깨를 감고 있는 것과 같았다. 다만 이 붕대는 무호의 왼쪽 가슴을 중심으로 감겨 있었다.

“…….”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천마가 다칠 일이 뭐가 있어?’

누가 감히 그의 몸에 상처를 내겠나. 만에 하나 상처가 난다고 해도 금방 회복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이렇게 붕대까지 감았다는 건….

“이거 풀어 봐도 돼?”

붕대를 가리키며 묻자 무호는 마음껏 풀어 보라는 듯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청연은 멀쩡한 한 손으로 그의 윗옷을 마저 벗기고 어깨 위의 매듭을 이로 끊어 냈다.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질척하게 엉겨 붙는 손길은 애써 무시했다.

붕대가 풀려 스르르 떨어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청연은 그의 맨 가슴을 바라보며 눈만 끔뻑거렸다. 상처도, 흉터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붕대 안쪽에 묻은 핏자국을 보면 다쳤던 건 분명한데,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솔직히 말해봐. 다쳤어?”

청연은 무호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제 어깨를 부러뜨릴 때보다는 훨씬 덜했지만 여전히 붉은 빛을 띠는 눈동자가 생경했다.

“다친 거 맞아? 누가 그랬어?”

무호는 답이 없었다. 대신 다짜고짜 달려들어 입을 맞추려고 하는 통에 청연은 또다시 한참을 버둥거려야 했다.

“그만 좀 깨물어. 어깨도 아픈데 이제 입술까지 아프잖아. 아니, 거기 손 넣지 말고! 나는 벗기 싫단 말이야.”

“내 거야.”

“네 거 아니야. 네 거라고 해도 마음대로 벗기면 안 되는 거야. 이참에 제대로 교육을… 으아아, 알겠어! 그래, 네 거야. 네 거 맞아! 내가 잘못했어!”

죽겠다. 죽고 싶다.

청연은 기진맥진해져 어느새 얌전해진 무호의 옆에 털썩 드러누웠다. 욱신거리는 어깨에 입술에. 만신창이였다. 그 와중에 침상 옆으로 흘러내려 떨어진 붕대를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왜 다쳤는지 말 안 해 줄 거야?”

설마 가슴이 커서 가리려고 한 건 아닐 테고. 아니, 내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말 안 해 줄 거면 이제 진짜 자야겠어. 너한테 기운이 쪽 빨리니까 단전 없을 때랑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

“잘 자. 자고 일어났을 때는 꼭 제정신이었으면 좋겠다.”

왜 또 답이 없지.

불안해진 청연은 무호를 힐끗 바라보았다. 옆으로 돌아누운 그는 역시 눈을 똑똑히 뜬 채 청연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가 잠든 사이 도망칠 것을 걱정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안 간다니까.”

내가 떠나는 게 그렇게도 싫은가.

그 눈빛에 왠지 마음이 약해진 청연은 하는 수 없이 그에게로 조금 더 다가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끌어안는 손길에 얕은 한숨이 나왔다.

“널 어쩌면 좋냐….”

나도 널 도와주고 싶은데.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너는 왜 네 얘기를 통 안 해서는….

혼자서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기에 일단은 자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청연은 머리를 비우려고 노력하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들지 못했다.

“뜨거워….”

깜빡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무호가 이런 상태일 땐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다는 사실을.

아픈 어깨를 위로 한 채 옆으로 돌아누운 탓에 청연의 등판은 무호의 가슴에 밀착해 있었다. 심지어 그는 윗옷을 입지 않은 상태인지라 뜨거운 체온이 직접적으로 전달되었다.

덩달아 몸에 열이 오른 청연은 그에게서 조금씩 떨어지려 해보았지만 불가능했다. 그럴수록 오히려 그의 팔이 몸을 꽉 옥죄어 왔다.

결국 청연은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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