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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03)화 (104/145)

103화

“마공을 익히는 게 숙명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내가 열넷쯤이었던가. 은인을 만나 이 몸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

“흡양비체(吸兩費體)라는 특이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구나.”

“빠, 빨리 본론이나….”

세화는 힘겹게 숨을 허덕이며 내뱉었다. 비겁한 간자의 이야기 따위 궁금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 체질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쓰임새가 다양하더구나. 정공과 마공을 동시에 익힐 수 있고, 한 번에 양쪽 모두를 운용하는 것도 가능하지.”

그게 말이 돼?

정공과 마공을 동시에 운용하다니. 상극인 두 내공 심법이 체내에서 합쳐진다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세화가 믿든 말든 그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혈맥을 반으로 나눠 한쪽에서는 정공을, 다른 한쪽에서는 마공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한쪽을 완벽하게 숨길 수도 있으니 일찍이 정파에 보내질 간자로 낙점되었지. 그 오랜 시간, 곤륜에 침투한 간자들이 전부 색출되는 동안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더구나.”

“…….”

“결국 장로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문파 내 기밀 사항에 접근하고, 무림맹 회의에 당당히 걸음 할 때까지도 내 앞길을 막는 자는 없었다.”

그래서 그 짓을 하고 다녔다는 건가. 문파 내부에서는 존경받는 장로 행세를 하면서 밖에서는 가면을 쓰고 기루에 들락거리며 사람을 죽였다고.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세화의 마음속엔 참지 못할 배신감이 차올랐다. 저런 것도 장로라고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밀이 새어 나갔을까.

“그 기루에서 널 처음 본 순간 알았다. 나와 같은 체질을 지녔다는 걸.”

“말도 안 되는….”

“지금 너 자신을 보거라. 주화입마에 빠졌느냐? 아니면 몸이 터져 죽기라도 했느냐? 내 눈엔 멀쩡히 살아 있는 것 같다만.”

“…….”

“처음이니 지금은 고통스럽겠지. 마기를 증폭시키는 단환을 삼켰으니 더더욱.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너도 나처럼 될 것이다. 자유롭게 정공과 마공을 사용하고, 숨기는 일에도 능숙해질 게야.”

“…그딴 거 안 궁금해.”

세화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특이체질이니 뭐니 하는 건 관심 없었다. 애초에 마공을 익힐 생각조차 없었으니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간자로 활동하면서 문도를 죽이고, 또….”

“신물을 훔쳤지.”

“뭐?”

세화의 눈이 커다래지자 그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올라갔다.

“무극진원검. 곤륜 개파조사의 신물을 훔쳐 교단에 넘기고 오는 길이다.”

‘…미친 거야?’

검은 곤륜산맥 아주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고 들었다. 자신을 포함한 웬만한 제자들은 검의 그림자조차 본 적 없을 정도였다. 장문인이 아닌 이상 접근하기 힘든 곳일 텐데, 장로로 지내는 동안 정보를 제대로 캐낸 모양이었다.

“신물을 잃은 곤륜의 기세는 곧 쇠퇴할 게다. 결국에는 몰락해 구파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게 되겠지. 중원으로 가는 첫 관문은 그렇게 뚫릴 것이다.”

또 헛소리.

세화는 속을 부글부글 끓였다. 신물이 아무리 중요한 물건이라고는 하나 그런 일로 곤륜이 망한다는 소리는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 전에 새로운 연줄을 하나 만들어 놓는 게 네게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묻겠다.”

세화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나와 함께 가겠느냐?”

답을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세화는 고통을 꾹 참으며 말했다.

“꺼져.”

허, 하고 헛웃음을 터뜨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너의 은인이 되어 주겠다는 말이다. 타고난 재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마. 충분히 숙련될 때까지….”

“그까짓 거 뭐에 쓸 건데. 간자 노릇 하는데?”

“정공만을 익히는 것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다. 강해지고 싶어 입문한 게 아니더냐. 밤중에 몰래 빠져나가 사파 놈들을 쥐잡듯이 패던데, 분명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을 터.”

다 알고 있었구나.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었구나.

세화는 이 모든 대화와 상황이 지긋지긋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정체를 알게 된 이상 선택지는 단 두 가지였다. 그와 한패가 되거나, 아니면 여기서 죽거나. 무위가 장로급으로 높았다면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은 고작 삼대제자였다.

게다가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온몸을 칼로 쑤시는 것만 같았다.

“…그냥 죽여.”

당신과 한패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으니까.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느냐. 내 손으로는 죽이지 않겠다고.”

“죽이지 않으면 내가 돌아가서 당신 정체를 다 까발릴 텐데.”

이를 악물고 답하자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그 몸으로 말이냐?”

아. 마기를 증폭시키는 단환을 먹였다고 했지.

이대로 돌아갔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마교의 간자로 몰릴 수도 있었다.

“마공을 익힌 몸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곤륜에 돌아가겠다고? 아직 숨기는 법도 모르지 않느냐.”

“…….”

“원한다면 가르쳐 주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 있도록.”

“집어치워.”

절대 그를 스승으로 모시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절을 올리느니 차라리 자결하는 게 나았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오늘 밤 벌어진 모든 일을 설명하고 설득할 것이다. 어떻게든 저 사람이 지은 죄를 처벌받게 할 것이다.

그는 세화를 바라보며 혀를 쯧쯧 찼다.

“그렇게 되면 신물을 훔친 누명도 쓰게 될 터인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일개 삼대제자가 신물이 숨겨진 곳에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믿겠나. 장로라면 모를까.

그들이 자신의 해명을 들어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곳에서 지낸 세월이 있고 쌓아 온 정이 있으니 다짜고짜 간자로 몰아가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게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파문으로는 모자라 이전의 다른 이들처럼 처형당하겠지. 이토록 기회를 주는데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냐.”

“죽일 생각 없으면… 꺼져….”

“마지막으로 묻겠다. 나와 함께….”

“꺼지라고….”

세화는 숨을 고르며 낮게 중얼거렸다.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았다.

말없이 그 모습을 구경하던 남자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죄를 뒤집어쓰는 수밖에.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다른 놈 몫이었을 텐데 이대로 아까운 재능을 썩히게 되었구나.”

그의 손이 다시 한번 다가왔다. 이번에는 세화의 목덜미를 향하고 있었다. 손등에다 침을 퉤 뱉으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기운이 없어 나오지 않았다.

“지난번 네게서 앗아간 단검은 잘 쓰고 있다. 이번엔 이걸 기념으로 가져가마. 꽤 중한 물건 같으니.”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서 멀어져갔다. 그렇게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통증이 어느 정도 잦아든 후였다. 동굴 속은 고요했다.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세화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왠지 목덜미가 허전한 것을 느꼈다. 아차 싶어 자신의 목 부근을 더듬더듬 만져 본 그는 망연자실했다.

‘안 돼….’

반지가 없었다. 아버지의 단검에 이어 어머니의 유품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곤륜으로 돌아가 장로 노릇을 하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배신감과 분노로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 당장 가서 그의 정체를 밝혀야만 했다.

세화는 성치 않은 몸으로 비틀비틀 동굴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점점 모래의 양이 많아지는 걸 보아하니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날이 밝아 뜨거운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입구에 도착한 그는 마침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의 기척을 느꼈다. 적어도 십여 명은 되는 것 같았다.

‘도움을 청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안도감이 물밀듯이 차올랐다.

곤륜의 도복을 입은 일대제자들이었다. 신물을 훔친 사람의 흔적을 추적하다가 여기까지 온 게 분명했다.

“제가,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잠긴 목소리로 더듬더듬 설명하려던 세화는 이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제게로 쏟아지는 십여 쌍의 시선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것만 같았다.

***

“당신 말이 맞더라고.”

아무도 믿어 주지 않더라고.

청연은 단검 자루를 만지작거리며 세화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날 아침, 세화의 침상 베갯잇 속에서 종이 한 장이 발견되었다. 신물이 숨겨진 곳의 위치와 진입 방법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종이였다. 누군가는 그 서체를 보고 말했다.

‘오래전 색출되었던 간자의 서체와 같다.’

세화는 해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줄줄이 내뱉었다. 그러다 운현의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는 장문인과 장로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은 미심쩍은 얼굴을 하면서도 세화의 말대로 수색을 진행했다. 그러나 세화가 그에게 빼앗긴 물건들과 가면을 비롯해 어떠한 물증도 찾아내지 못했으니, 그들이 믿을 것은 단 하나였다. 세화의 몸에 남겨진 마공을 익힌 흔적.

운현이 가진 특이체질에 대해 설명해보아도 소용없었다. 그와 관련된 어떠한 문헌도 남아 있지 않았고 청해에서 유명하다는 의원조차 그런 체질에 관해서는 알지 못했다.

세화는 간절하게 애원했다.

‘제가 오래전부터 마공을 익힌 게 사실이라면 지금은 어째서 그것을 숨기지 못하고 있겠습니까. 전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의적절하게 나타난 누군가의 증언에 그는 더 이상 해명할 의욕조차 잃고 말았다.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사제, 아니, 저놈이 입문 전에 정파를 모욕하는 말을 했습니다. 정파는 죄다 입으로만 의협을 떠드는 위선자들이라고요.’

그러니 마교에서 보낸 간자가 확실하다고.

끝나지 않는 의심 속에 사형제 간의 의리 같은 건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저놈이 한밤중에 몰래 침소에서 빠져나가는 걸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 밖에서 양민들을 상대로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을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세화는 처음 곤륜에 입문할 때부터 마교에서 심어둔 간자였으며, 이전에 다른 이의 손을 통해 마교로 넘어간 정보를 전해 받아 신물을 훔쳤다. 그리고 도주해 신물을 마교에 성공적으로 넘긴 뒤 신강의 어느 동굴 속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으며, 되려 문파의 높은 어른에게 덮어씌우려고 시도했다.

결국 심문 과정에서 단전이 파괴된 세화는 여운과 함께 도망쳤고, 운현은 그 자리에 당당히 남아 있었다. 세대교체가 진행되어 장로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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