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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91)화 (92/145)

091화

그날, 가장 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은 여운이었다. 그 역시 세화가 아침 일찍 친우와 함께 객잔을 떠났음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예전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낚시를 간다길래 이상하다 싶기는 했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사람이라면 조금씩 변하는 게 당연했다. 변한 건 사소한 취미나 습관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인들을 대하는 태도 또한 이전과는 달라진 듯했다. 어렸을 때는 늘 거침없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다면,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보다 이성적이었고 성격이 유해졌다.

그러니 다른 친우들도 사귈 수 있었던 거겠지. 세화가 혼자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까 걱정했던 여운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아무튼, 전날 객잔을 때려 부술 뻔했던 걸 생각하면 저는 죄인이었다. 거기다가 유치한 감정싸움으로 세화를 종일 귀찮게 했으니,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리 다녀올 생각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여운은 높은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협곡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니는 제하가 있었다. 그 모습만 보아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되어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세화는 살아 있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이 몇 년이고, 떨어져서 그리워한 시간이 몇 년인데. 그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면 제가 가장 먼저 알아차렸을 거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찾아야지.’

상처를 입어 어딘가에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빠른 유속에 휩쓸려 멀리까지 떠내려갔을지도 몰랐다.

중요한 건 세화가 겨우 그 정도로 목숨을 잃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모든 일들을 겪어내고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혼자 객잔을 운영하던 걸 생각하면 말이다.

세화의 친우가 말하길 그가 사라진 장소에 피가 잔뜩 고여있었다고 했고, 그 뒤에도 더 다쳤다면 아마 거동이 불편할 것이다. 그러니 강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강줄기만을 따라가기로 했다.

빠르기로는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여운은 협곡을 휙휙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오감을 기민하게 세워 자신이 알고 있는 세화에 대한 정보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체향, 체온, 숨소리. 그의 심장이 뛰는 속도. 아프거나 다쳤을 때는 맥이 어떻게 뛰는지.

분명 어떤 신호가 있을 것이다. 살아 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여운은 불안감을 억누르며 빠르게 나아갔다. 이럴 때 세화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그가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찾지 않았을 때와는 달랐다. 이번에는 가만히 서서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

강줄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장강삼협을 지나, 의창을 지나고, 또 무한을 지났다. 상단의 배가 불타 사라졌다는 곳에서 아주 멀리까지 온 셈이었다. 여운은 제하가 그랬듯이 강가를 샅샅이 뒤지지 않았다. 그저 세화가 어떠한 신호를 보내오기만을 기다리며 장소를 이동했다.

그러던 그의 발걸음이 우뚝 멈춘 건 날이 어둑해졌을 때쯤이었다. 어디선가 흘러온 향이 예민한 코끝을 맴돌았다.

복합적인 냄새였다. 가장 강한 건 생선 비린내와 타오르는 장작의 냄새였고, 그다음은 독한 술 냄새였다. 그리고 그다음은 어부들 특유의 물비린내가 잔뜩 밴 체취. 마지막으로 아주 미약하게 풍겨 오는 꽃향기가 있었다.

‘세화다.’

드디어 찾았다.

곧장 그 향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니 한적한 숲 지대가 나왔다. 머지않아 노인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세화의 목소리도 있었다.

“아니, 이게 아니라니까요? 누가 바둑을 이렇게 둡니까!”

여운은 다시 멈칫했다. 이번에 그의 걸음을 멈춘 건 당황스러움이었다. 많이 다쳐 의식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기운찬 목소리라니.

‘심지어 더 건강해졌어?’

그에게서 풍겨 오는 기운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계속해서 걸어가던 여운은 모닥불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한참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거기 있었다. 

“이렇게 마음대로 두실 거면 바둑은 왜 가르쳐달라고 하셨는지….”

세화는 바둑판을 내려다보며 훈수를 두는 동시에 나무 꼬챙이에 꿰인 생선을 한입 베어 물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멀쩡한 모습으로. 그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어라?”

인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들어 올린 그는 여운과 눈이 마주치자 입에 문 생선을 툭 떨어뜨렸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네가 왜 여기 있어?”

“…….”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

할 말을 잃은 여운이 그대로 몸을 굳히자 세화는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 달려왔다. 그의 뒤에다 대고 한 노인이 외쳤다.

“이거 봐주고 가야지, 어딜 가!”

“여태 봐 드렸잖아요! 일단 알아서들 하고 계세요!”

노인에게 대충 답한 세화는 여운의 앞에 멈춰 선 뒤, 눈치를 살살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찾으러 왔어?”

“…….”

“걱정했어? 미안. 나도 빨리 돌아가려고 했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배는 미친 듯이 고픈 거야. 그래서 지나가던 어부들이랑 잠깐 말을 섞었다가 생선을 얻어먹었는데 그 값을 좀 해야겠더라고. 전낭을 잃어버려서 돈 한 푼 없었거든.”

세화는 눈알을 굴리며 횡설수설 설명을 늘어놓았다.

“저 어르신들이 배 위에서 심심하면 바둑을 두신다고, 그런데 잘 모르니까 가르쳐달라고 하셔서… 그걸로라도 값을 치르려고… 하다가… 완전히 붙잡히는 바람에….”

여운의 굳은 표정을 살피며 변명하던 그는 말꼬리를 길게 늘이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여운은 마른세수를 한 뒤 힘겹게 말을 꺼냈다.

“너는… 너는 지금 그게 문제야?”

“…미안해. 나도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미안할 게 아니라, 나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얼마나 크게 다쳤을까, 의식은 있을까 노심초사하던 마음에 허탈함만이 남았다.

그래도 무사하니까 됐다. 뒤늦게 몰려오는 안도감에 깊은 한숨을 내쉰 여운은 세화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걱정했잖아.”

“미안해….”

품속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찔거리는 몸이 이전과는 달랐다. 오랫동안 무공을 가까이하지 않은 것치고 탄탄하게 단련된 듯한 몸이었다. 심지어 희미하지만 굳건하게 아랫배 부근에 자리 잡은 단전까지 느껴졌다.

놀란 여운은 세화의 몸을 안았던 팔을 풀고 그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마음속에 가득했던 걱정이 가시니 그제야 눈에 보였다. 그의 얼굴빛 또한 달라졌다. 더욱 매끄러워진 피부와 맑고 투명한 눈동자, 건강한 혈색이 도는 두 뺨이 그랬다. 약관을 갓 넘긴 청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게 있잖아….”

망설이며 답하려던 세화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몇 쌍의 시선이 있었다. 바둑을 두던 어부들이었다. 그들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우린, 크흠, 우린 아무것도 못 봤어.”

“…생선 잘 먹었습니다. 바둑도 충분히 가르쳐드렸으니 전 이제 갑니다!”

세화는 다급히 외치고는 여운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또다시 저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할까 발걸음을 서둘러 강가로 향했다.

잠시 후, 어부들과 충분히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세화는 걸음을 멈췄다. 밤이 깊어 강물에 반사된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여운을 바라보며 주저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나, 신을 만난 것 같아.”

***

배에서 피를 콸콸 쏟으며 강물로 떨어지던 중, 청연은 제하를 향해 입을 벙긋거렸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왜 또 나야, X발.’

차가운 강물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급속한 물살에 휩쓸리며, 청연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원작을 되짚어 보았다.

어느 날, 산길을 걷던 제하는 산적의 습격을 받은 상단과 마주치게 된다. 물건은 이미 전부 약탈당한 뒤였고, 중상을 입은 채 쓰러져있는 상단주를 발견해 그를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치료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피를 심하게 흘려 죽어 가던 상단주는 마지막까지 저를 살리려고 애쓰던 제하에게 중요한 정보 하나를 넘겨주었다. 이 근방에서 출몰한다는 어떤 영물에 대한 소문이었다.

제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죽어 가는 사람이 하는 터무니없는 소리쯤으로 넘겨 버렸다. 그러고서 다시 길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녹림과 마주친 제하는 정의로운 주인공답게 그들을 응징하려고 했다.

혼자서 떼로 덤비는 산적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주인공이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의 함정에 걸려들기 전까지는.

처음 가보는 산길의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탓에, 제하는 그들의 속임수에 당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물론, 이 모든 게 주인공에게 기연을 안겨 주기 위한 민아의 계획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원작에서는 그게 장강삼협을 지나 무한 부근이었던가. 그가 떨어진 곳은 사방이 높은 바위벽으로 막힌 어느 골짜기였는데, 아래에는 작은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그곳에서 그가 마주친 것은 수면 아래 똬리를 틀고 잠들어있던 교룡이었다.

‘절벽에서 떨어져 얻은 최고의 기연이었지.’

절벽 대신 배에서 떨어진 청연은 저를 구하기 위해 헤엄쳐오는 제하를 발견했다. 차라리 그가 빨리 와서 저 대신 기연을 손에 넣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세계는 원작처럼 돌아갈 생각이 추호도 없는 모양이었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수압 때문에 더욱 빠른 속도로 흘러나오는 피가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 힘이 빠진 청연은 그렇게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교룡의 내단을 제가 가져서는 안 됐다. 탐내서도 안 됐다. 그 이유는 첫째, 그것이 제하의 무위를 대폭 상승시켜 줄, 결국에는 정마대전에서 모두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둘째….

물속에 잠긴 청연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영물과 시선이 마주치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웬만한 성인 남자의 몸집만 한 금빛 눈 한 쌍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순한 것들만 먹고 사는 다른 영물들과 다르게, 교룡은 인간의 진기를 흡수하여 몸속에서 아주 맑게 정화한 뒤 내단에 쌓아놓는다고 했다. 고로 그것을 탐내서는 안 되는 두 번째 이유, 죽이지 못하면 먹힌다.

교룡의 입이 쩍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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