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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87)화 (88/145)

087화

속이 울렁거렸다. 헛구역질을 몇 번 한 청연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깜빡였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세게 맞아서인가. 줄줄 흐르던 피는 이미 멎었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는 손목이 뒤로 포박되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뿐만 아니라 발목에는 쇠사슬이 치렁치렁 연결되어 있었는데, 끝에 무거운 추가 달려 있었다.

주변에는 커다란 나무 상자 몇 개가 보였다. 마치 어딘가로 큰 짐을 옮기고 있는 것 같았다. 청연은 그 사이에 묶인 채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그때 도박장에서 죽게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

손에 둔기를 든 채 자신을 향해 비릿하게 웃음 짓던 송원의 얼굴을 떠올린 순간 다시 한번 헛구역질이 나왔다. 청연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머리를 다쳐서 어지러운 게 아니라, 바닥이 통째로 출렁거리고 있어 그런 것임을.

위를 올려다보았다. 천장처럼 보이는 나무판자들 사이로 밝은 햇살이 새어 들어왔다. 그리고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뱃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갑판 아래인 건가.’

이 정도면 꽤 큰 배였다. 송원이 운영하던 상단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 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였다.

청연은 날카로운 물건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을 끊어낼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굳게 닫힌 상자들과 날아다니는 지푸라기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빠르게 포기한 청연은 등 뒤를 힐끔힐끔 살펴보며 밧줄을 상자 모서리에 문질렀다. 이렇게 해서 끊어질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밧줄을 푼다고 해도 여기서 어떻게 벗어나지. 배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하나. 발목에 쇳덩이가 묶여 있어 그대로 가라앉을 텐데.

혼자서 끙끙거리며 밧줄과 씨름하고 있을 때, 노랫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청연은 시선을 돌려 갑판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풀썩 엎어져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척했다. 술 냄새를 잔뜩 풍기는 남자들의 발소리가 쿵쿵 울렸다.

“역시 송 단주는 술대접을 할 줄 안다니까. 남경에 도착할 때까지 실컷 마시자고.”

남경? 남경이라면 강소성에 있는데. 중원 대륙의 최동단까지 수로를 통해 이동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도착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그런데 저기 묶여 있는 저놈은 뭔가? 피를 잔뜩 묻혔네.”

“저놈? 송 단주랑 어떻게 아는 사이라던데. 원한 관계이니 저 지경이 되도록 만들었겠지. 듣자 하니 구당협을 지날 때 강물에 던져버릴 거라는구먼.”

“아, 그래서 여기까지 끌고 왔구나.”

강물에 던진다니.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된 청연은 이를 악물었다.

장강 주류에 위치한 세 개의 협곡을 일컬어 장강삼협이라 부르는데, 그중의 하나가 방금 저들이 말한 구당협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 그곳에다가 던지겠다는 까닭은, 아무래도 얼마 전부터 퍼지기 시작한 흉흉한 소문 탓일 것이다.

그 협곡을 지날 때마다 물살이 거칠어지거나 태풍이 몰아쳐 배가 난파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들었다. 그리하여 규모가 큰 상단들은 중요한 거래를 앞두고 이곳을 지날 때 강의 신에게 바칠 제물을 준비하고는 했다. 주로 산 사람이었다.

객잔을 찾은 손님들이 그런 터무니없는 미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대충 흘려 넘겼는데, 자신이 그 제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번엔 누구였더라? 웬 여인을 한 명 돈 주고 사 왔다던데.”

“맞아. 그전에는 보통 연고 없는 노인이나 애들이었지. 이 짓도 관아에 걸리면 큰일이니까.”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심하게 거슬렸다. 그들에게서 풍겨 오는 술 냄새에 다시 속이 거북해져 구역질을 참아야 했다. 청연이 혼자서 고통스러워하는 동안, 남자들은 걸음을 옮겨 선실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또 다른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한 명이었다. 터벅터벅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남자의 신발이 보인 순간, 청연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일어났어?”

“…….”

“안색이 왜 그래? 내가 너무 세게 때렸나? 아니면 뱃멀미라도 하는 건가.”

싱긋 웃으며 다가오는 송원의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었다. 웃는 얼굴이 그렇게 기분 나쁠 수가 없었다.

청연은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맞은편 나무 상자에 걸터앉은 송원이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하필이면 거기서 그렇게 딱 마주치다니. 안 그래도 협곡에 제물로 바칠 인간을 찾고 있었는데.”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그때 나한테 그렇게 망신을 줬으면 다시 만났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질 것도 예상했어야지.”

“그래? 몇 대 맞았다고 정신없이 울길래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도 못할 줄 알았더니.”

“…….”

미소 짓던 송원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무호에게 얼굴이 퉁퉁 붓도록 맞았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치욕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겁도 없고….”

그러면서 품속에 손을 넣어 날카로운 비도를 꺼냈다.

“까불기도 잘 까불고….”

“새 비도 장만했나 봐. 그날 도박장에 흘리고 간 거랑 다른 모양이네.”

“입 다물어.”

“참, 그때는 팔이 부러져서 떨어뜨린 거 줍지도 못하고 그냥 갔지.”

청연은 계속해서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 어차피 구당협에 저를 던질 생각이면 그때까진 살려놓을 것이다. 그 전에 뭐라도 해야 하는데.

“맞다. 우리 못다 한 얘기 마저 해야 하지 않겠어?”

송원은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 일 있고 나서 나는 상단 일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느라 바빴거든. 사천에는 거의 못 돌아올 정도로.”

“본론부터 말해. 우리가 근황이나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니까.”

그와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불쾌해 빙빙 돌리는 말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았다.

“…돌아다니면서 또 이런저런 정보를 얻었단 말이지. 당신 뒷조사도 확실히 하고.”

“…….”

“세화 맞던데? 당신 본명.”

결국 송원도 알게 됐구나. 청연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몇 년 동안 집요하게 파보니까 또 새로운 게 나오더라? 당신, 곤륜의 파문제자라며?”

“…….”

“이거, 내가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을 건드린 것 같더라고. 그렇게 순진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평범한 객잔 주인으로 살아가는 거, 당신네 직원들은 알아?”

순진한 척. 그 말에 청연이 비웃음을 흘리자 송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계속 웃어 봐. 한때는 무인이었어도 지금은 그 허약한 몸뚱이밖에 없잖아.”

그는 천천히 다가와 청연의 코앞에 쭈그려 앉더니 아랫배 부근에 칼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손은 묶여 있지. 도망가봤자 사방은 죄다 강물이지. 단전까지 파괴된 주제에 뭘 어쩔 거야?”

칼날이 가볍게 청연의 몸을 훑었다. 아랫배에서 시작해 점점 올라가더니 심장 부근에서 멈춰 원을 그리고, 또 목으로 올라가 희게 드러난 살갗을 위협했다.

“아.”

송원은 씩 웃으며 말했다.

“허약한 몸뚱이밖에 없는 게 아니었네. 고운 낯짝도 있었지.”

뺨 위를 맴도는 칼날이 서늘했다. 언제든지 얼굴을 베어버릴 수 있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 낯짝에 평생 흉터 달고 살아가기 싫으면 한번 말해봐. 네가 알고 있는 거 전부.”

역시 그가 원한 건 고작 강물에 던질 제물 따위가 아니었다. 치욕을 갚기 위해 제게 시간을 쏟고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검을 찾고 있었다. 대대손손 먹고 살 만큼 큰돈을 벌게 해 줄, 진귀한 물건을.

“내가 원하는 걸 제대로 말하면 살려 줄 수도 있어.”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뒷조사까지 했다면서 이렇게 허술해서야.

“웃어?”

“지금 그 검이 뭔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네가 뭘 찾고 있는 건지는 아냐고.”

청연이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정도야 스스로 알아냈지. 당신이 곤륜에서 훔친 거잖아.”

“…….”

“곤륜 개파조사1)의 신물.”

그것 때문에 파문당한 거 아니었어? 여유롭게 웃으며 묻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청연은 충동을 억누르며 말했다.

“거기까지 알아냈는데 그 다음 내용은 왜 몰라? 내가 그걸 어디다 숨겼는지도 알아봤어야지.”

“…그래서 지금 상냥하게 묻고 있잖아. 알아보려고.”

“그럼 말해 줄까?”

청연은 그의 눈을 똑똑히 마주 보았다.

“천산. 마교에 있어. 어디 가져가려면 가져가 봐. 거기 한 발만 들여놓아도 바로 목이 잘릴 테니까.”

그러자 송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가셨다. 그의 눈빛이 분노로 달아오름과 동시에 아랫배에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강하게 걷어차인 청연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화풀이를 하려는 작정인지, 발길질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피하려고 해봐도 밧줄에 묶인 손목과 쇠사슬을 치렁치렁 달고 있는 발목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참을 얻어맞으며 기침을 토해 내자 붉은 피가 섞여 나왔다.

발길질을 멈춘 송원은 청연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몸이 억지로 일으켜졌다.

“이게 어디서 거짓말을….”

청연은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거짓말 같아? 내가 곤륜에서 파문당했다는 말만 듣고, 스승 몰래 마공을 익혔다는 말은 못 들었나 보지?”

그 말을 뱉음과 동시에 칼날이 번쩍하며 얼굴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깊게 베인 뺨에서 뜨거운 액체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청연은 턱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들을 바라보았다.

가소로웠다. 제가 이곳에 잡혀 온 이상 송원은 죽은 목숨이었다. 어차피 정해진 운명,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는지가 관건이었다만. 그는 본인의 손으로 착실하게 업보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앞으로 그에게 닥칠 미래가 걱정될 수준이었다.

이 얼굴에 상처 내면 그쪽 얼굴은 반으로 찢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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