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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82)화 (83/145)

082화

“세화야.”

“…….”

“세화야.”

어깨를 잡아 살살 흔드는 손길에 청연의 눈이 뜨였다.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은 그는 핑 도는 머리를 짚었다.

“너 괜찮아?”

“여기, 여기 어디야?”

“어디냐니?”

청연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기루 일 층의 어느 기다란 의자 위에 자리 잡은 채였다. 창을 통해 밝은 햇살이 새어 들어왔다.

“나 왜 여깄어? 네가 데리고 왔어?”

여운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청연을 바라보았다.

아, 혹시 내가 여기서 잠든 줄 아는 건가.

청연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어젯밤에 노인을 따라나섰다가 사술에 걸린 도사를 만났고, 거기서 쓰러졌고. 그다음에는 분명….

무호와 함께 있었다. 동굴 속이었다. 그와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혈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까지 기억이 났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는데 여기서 깨어났다는 건 그가 옮겨놓았다는 뜻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어젯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분명 마교도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이 했던 말로 유추해보면 일부러 저를 따라온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술에 걸린 그 도사를 쫓던 중인 듯했다.

청연이 머리를 헝클이자 여운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는 청연의 팔을 끌어다가 맥을 짚어보며 말했다.

“안색이 안 좋아.”

“아….”

맞다, 어젯밤에 엄청 아팠지.

그러고 보니 벌써 열이 내려 정상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분명 오래 갈 감기 같았는데, 기력이 부족하고 근육통이 조금 있는 걸 빼면 이미 멀쩡해진 느낌이었다.

“미안해.”

“뭐가?”

뜬금없는 여운의 사과에 청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술 마시고 널 불편하게 해서….”

“어? 아니야. 너 때문에 여기 나와서 잔 거 아니야.”

“그러면 왜?”

“그… 사실은 어젯밤에….”

주저하던 청연은 지난밤에 자신이 본 것들을 차분히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던 여운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마지막에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네가 그러는 동안 나는….”

“괜찮아, 시랑. 네 잘못 아니야.”

“다칠 수도 있었어.”

“내가 경솔하게 나갔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아무튼 멀쩡하니까 됐어. 도움도 받았고.”

“도움?”

“응….”

청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젯밤 자신을 도운 사람들이 마교 소속이며, 그들 덕분에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고. 그 말을 듣던 여운의 표정이 청연 못지않게 혼란스러워 보여, 마교주와의 개인적인 인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왜….”

“시랑.”

혈교에 관해 물으려던 청연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저번에 했던 대화를 생각하면 여운도 그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보였다.

“내가 방금 한 얘기는 전부 비밀로 해 줄래?”

“네가 원하면.”

아무래도 그 도사 곧 실종됐다고 소문날 것 같은데, 그를 처리한 게 마교인 건 사실이거든.

여운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청연은 그에게 물었다.

“누님은?”

“어제보다 좋아지셨어.”

“정말? 나 누님이랑 얘기할 수 있어?”

보화를 만날 생각을 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청연은 의자에서 일어나 누님의 방문 앞으로 향했다.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누님.”

제 목소리 들리세요? 하고 묻자 누군가가 문 너머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청연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세화니?”

오랜만에 듣는 그 목소리가 반가워 하마터면 울컥할 뻔했다. 한 달여 간 병을 앓아 지쳐있었지만, 보화의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였다. 곱게 노래를 부르던 그 시절과 같았다.

“누님, 몸은 어떠세요?”

“이제 좀 살만해졌어. 너랑 같이 온 그분이 얼마나 잘 보살펴주시는지 몰라.”

청연은 고개를 돌려 여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만들어 준 이 모든 순간에 감사했다.

“세화 너는 어때? 아직도 많이 아파?”

“…아프긴요.”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기신 분이 어찌 제 걱정을 하십니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객잔은?”

“저는 잘 지냈고… 객잔은….”

청연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들려주었다. 객잔에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부터, 삼 층을 증축하게 된 이야기까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

이틀이 지난 뒤, 청연은 드디어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화와 만날 수 있었다. 눈물겨운 재회가 끝난 후, 그는 누님께 책을 읽어드리거나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여운은 주로 옆에 가만히 앉아 청연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했다.

그러다 여운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보화는 목소리를 낮추며 청연에게 물었다.

“너 솔직하게 말해봐. 저 사람이랑 그냥 친우 사이인 거 아니지?”

“…예? 아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내가 기녀로 산 세월이 몇 년인데. 이제 그 정도는 눈빛만 봐도 알아. 다들 쉬쉬하고 숨겨서 그렇지, 요즘 사내들끼리 정인 관계를 맺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많다고요?”

“그렇다니까?”

답을 촉구하는 누님 탓에 청연은 진땀을 뺐다. 그도 그럴 게 여운과 자신이 무슨 사이인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를 피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데다가 솔직히 그와 마주할 때마다 기분 좋고 설렜으니 단순한 친우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그도 같은 마음인 게 확실했고, 어설프지만 짧은 입맞춤까지 했다.

그렇다고 다시 정인 사이로 돌아간 거냐 물으면 그것도 조금 애매한데.

“누님. 정인 사이냐 아니냐는 어떻게 판단합니까?”

“얘가 뭐라는 거야. 서로 좋아하면 그게 정인이지. 뭐가 더 필요해?”

“그래도 그걸 나누는 기준이 있지 않겠습니까? 친우끼리도 서로 좋아할 수 있는 건데….”

“그거랑 그거랑 같아? 모르겠으면 그 사람한테 직접 가서 물어봐. 뭐, 나는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알겠더라.”

“…….”

사실 청연도 알고 있었다. 여운에게 그 질문을 하는 순간 돌아올 답을. 그리고 자신이 그에게 내놓을 답도. 모두 알 것 같았다.

다만 이렇게 조심스럽고 망설여지는 건 아무래도 그를 떠나야 했던 과거 때문일 터였다.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그와 다시 애정으로 엮인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두려웠다.

“아무튼 좋은 사람 같더라. 네 걱정 많이 했는데 곁에 누군가 있어서 다행이야.”

“…죄송해요, 누님.”

“뭐가?”

“그때 연을 끊자고 말씀드린 거요. 혹시 저 때문에 누님이 피해를 보실까 봐 드린 말씀이었는데 그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처가 되긴. 내가 널 몰라? 그런 말 하면서 더 힘들었을 게 누군데.”

그러면서 보화는 청연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픈 사람에게 오히려 위로를 받는 느낌이라 죄스러웠다.

그때 마침 돌아온 여운의 손에는 짐보따리가 바리바리 들려있었다. 시장에 다녀온다더니 뭘 저렇게 사 왔나 싶어 짐을 풀자 온갖 종류의 간식거리와 여인이 착용할 만한 장신구들이 나왔다.

“이게… 다 뭐야?”

청연이 입을 헤벌리고 묻자 그는 시선을 피하며 말을 아꼈다. 부끄러워할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러자 보화는 청연에게 찡긋 눈짓하더니 감사를 표했다.

누님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방문을 닫고 나선 청연은 여운에게 물었다.

“무슨 선물을 그렇게 많이 사 왔어?”

“그야….”

“내 누님이니까?”

“응.”

“잘 보이고 싶어서?”

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청연은 자연히 보화가 했던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얘랑 뭘 어쩌고 싶은 걸까.’

조금 더 오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까. 청연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여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참, 너 이제 곧 돌아가 봐야 하지 않아? 내가 시간 너무 뺏은 것 같은데.”

여운은 조금 더 머물러도 된다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청연은 더 이상 그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았다. 이제 누님은 제가 충분히 돌볼 수 있었고, 그는 이미 너무 많은 일을 해 주었다.

그리하여 이만 돌아가 보라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자신은 호북성에 며칠 더 남아 누님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응. 걱정하지 마.”

“조심해야 해.”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몇 번이고 조심을 당부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은 뒤에야 발걸음을 돌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를 배웅하고 기루 안으로 들어오자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누님과 눈이 마주쳤다.

“왜 나와 계세요. 침상에서 더 쉬시지.”

“달다, 달아. 그래서 구경 나왔다. 네가 읽어주는 책보다 나은 것 같아.”

청연은 민망해져 머쓱하게 웃었다.

“아우가 사내를 만난다는데 말리시지는 못할망정.”

“내가 그걸 말려서 뭐 하겠어. 이리 와서 어깨나 좀 주물러.”

“예에.”

청연은 누님의 어깨를 주무르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물었다.

“혹시 이 근방에 동굴 같은 게 있습니까?”

“동굴? 그 어디냐, 저쪽 뒷산 중턱까지 올라가면 하나 있긴 한데. 길이 외져서 약초꾼들 아니면 아무도 안 가. 그건 왜?”

“아, 아닙니다.”

청연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 호북을 떠나기 전에 꼭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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