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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80)화 (81/145)

080화

‘섭혼술….’

청연은 입술을 잘근 씹으며 머리를 굴렸다.

어느 중소 문파의 어린 제자는 그렇다고 치자. 이 사람은 그 유명한 무당파의 도사다. 이런 사람에게 사술을 걸었다는 건 시전자가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 시전자가 누구든지 간에 그들은 실험을 하고 있고, 일을 점점 크게 벌이려고 한다.

양민이 아닌 무인에게 사술을 건다는 건 당연히 그들이 가진 힘을 원한다는 뜻이다. 세뇌하여 자신의 노예로, 또는 무기로 사용해 사람들을 공격할 것이다.

이런 일이 지속된다면 정파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그들이 지목할 상대는 당연히 마교가 될 테고. 그 말인즉, 시전자는 마교의 뒤에 숨으려는 게 다가 아니라, 정과 마의 갈등이 심화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해서 전쟁이 일어나면 이득을 볼 사람. 그게 누구지?

청연은 제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말을 하던 사람이 지금은 완전히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천마….”

천마?

청연은 그가 조금이라도 더 다가오면 우산으로 후려칠 준비를 하며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천마께서 군림하시어 마도천하를 이룩하시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부아가 치밀었다. 정말 마교 짓으로 몰아가기로 작정을 했구나.

“만 마는 그의 앞에 무릎 꿇고 받들라….”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남자의 눈빛이 변하더니 청연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욕설을 내뱉은 청연은 우산을 접어 그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우산에 머리를 맞는 것 정도는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였다. 잠시 주춤하기는 했으나 곧장 다시 달려들었다. 커다란 몸이 덮쳐오는 걸 본 청연은 속으로 고민했다.

‘사술의 영향이 어느 정도지?’

사술에 걸린 채 기를 운용하는 게 가능하다면 절대로 상대할 수 없을 텐데. 그게 시전자가 원하는 바일 것이고. 이미 그 정도로 상대의 몸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걸까.

그러지 못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산으로 때린다고 가만히 맞고 있는 것도 그랬고, 저렇게 무작정 달려들기만 하는 것도 그랬다. 검을 가지고 있는 무인이 무슨 동네 개싸움 하듯이….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뛰어봤자 잡힌다. 부러 피하지 않은 청연은 그의 몸에 밀려 길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다. 차가운 빗물이 순식간에 스며들어 등을 적셨다. 부딪힌 몸이 아팠지만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진짜 내력 안 쓰네.’

아직 거기까지는 통제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지능마저 발끝까지 하락해버린 모습에 기가 막혔다.

이건 아무래도 그들 중 미숙한 누군가의 연습용 작품인가.

그렇다고 해서 그의 육체가 가진 힘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단단하게 단련된 몸에 짓눌리니 딱 죽을 맛이었다. 그가 얼굴을 향해 내리꽂은 주먹을 간신히 피한 청연은 바닥에 손 모양대로 파인 구덩이를 보고 기함했다.

아무리 지능이 떨어졌어도 무인을 힘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무기가 필요했다. 청연은 안간힘을 써서 버둥거리며 그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노렸다. 잡을만하면 주먹이 날아오고, 또 잡을만하면 빗물에 손이 미끄러졌다.

자꾸만 요리조리 피하자 짜증이 났는지, 그는 한 손으로 청연의 어깨를 짓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목을 움켜쥐었다.

‘아, 이건 잘못하면 죽겠는데.’

잘못하면이 아니라 확실히 죽을 것 같았다. 압박이 심해질수록 위기감은 커졌다. 청연의 손이 드디어 검 자루를 쥐었을 때는 이미 정신이 반쯤 혼미해져 있었다. 그렇게 기운 빠진 손으로 검을 뽑으려고 할 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날붙이가 남자의 머리를 뚫고 푹 박혔다. 환부에서 줄줄 흘러나온 붉은 피가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눈을 휘둥그레하게 뜬 그는 일말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옆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덕분에 자유로워진 청연은 콜록거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신선한 공기가 들어찬 가슴이 급하게 오르내렸고, 얼굴에는 빗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차가운 물줄기를 맞고 있음에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빨리 가서 시신이나 처리하고 와.”

“예.”

그 와중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어지럽게 울렸다. 그들의 검은 그림자가 주변을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분은 어쩌죠?”

“그러게 말이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 왜 하필….”

“우선 교주님께 보고드릴까요?”

교주님이라면….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기력이 없어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웠다. 청연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

청연은 힘없이 늘어진 몸을 웅크렸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더니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 저 멀리서 빗소리가 들려오는데 얼굴 위로 쏟아지던 빗방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살며시 눈을 뜨자 세상이 빙글 돌았다. 뜨거워서 녹아내릴 듯한 머리와 달리 몸은 금방이라도 얼어 버릴 것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추워….’

춥고 아팠다. 특별한 외상이 없음을 알고 있으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무래도 비를 쫄딱 맞아 지독한 몸살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제 몸을 덮고 있는 천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그 작은 동작에도 살을 에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청연은 손끝을 파르르 떨며 매끄러운 비단 천 하나에 의지해 몸을 녹였다. 그리고 그것이 이불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포…?’

누군가의 장포 같았다. 그것도 칠흑같이 검은색.

“청연.”

바로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진동했다. 청연은 뒤집어썼던 천을 조금씩 끄집어 내렸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흐린 눈을 억지로 깜빡이며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누군가의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무호 같은데. 목소리도 그렇고.

펄펄 끓는 체온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지금 무호 몸에 기대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제 허리를 감싸 안은 채였다. 체온으로 몸을 녹여주려는 듯 밀착한 자세가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무호와 함께 욕탕 속에 들어앉아 있을 때와 비슷했다.

‘여긴 어디야?’

꼭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보아도 어지러운 시야에 잡히는 건 바위벽과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 전부였다. 동굴 안을 채운 공기는 따뜻함을 넘어서 후덥지근할 정도인데, 몸이 느끼는 기온은 마치 한겨울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너무 오래 지났으면 안 되는데. 누님 상태를 살펴야 하는데.

“무호….”

억지로 쥐어짜 낸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저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한마디를 내뱉기도 어려웠다.

말을 하려고 시도한 탓인지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다. 한참을 고통스럽게 콜록거리고 있으려니 입가에 무언가가 닿아왔다.

이어서 입 안으로 따뜻한 물이 흘러들어왔다. 청연은 그게 퍽 반가워 의심 없이 꿀꺽꿀꺽 받아 마셨다. 부어서 좁아진 목구멍이 따끔거렸지만 마시기 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무호… 맞아?”

간신히 소리를 내어 묻자 기다리던 답이 돌아왔다.

“맞아.”

맞네. 낯선 사람의 품에 안겨있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눈을 감은 채 뜨거운 숨을 내쉬던 중, 그의 손가락이 입술 사이를 비집어 열더니 입 속에 동그란 무언가를 넣어주었다.

“삼켜.”

무호가 주는 거라면 약이겠거니, 대충 짐작한 청연은 고분고분 그것을 삼켰다.

커다란 손이 청연의 이마와 뺨을 차례차례 짚어보았다.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체온에 비하면 시원하게 느껴지는 손이었다.

“여기… 어디….”

여긴 어디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말이 띄엄띄엄 끊어져 나왔다. 무호는 그걸 용케 알아듣고 즉답했다.

“근처 산속.”

“얼마나….”

“반 시진.”

겨우 반 시진밖에 안 지났다니, 그 말에 안심한 청연은 무거운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을 것이다. 해 뜨기 전에 돌아가서 누님을 살펴야지.

청연은 거칠게 숨을 골랐다. 자리에서 일어설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아 어떻게 기루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이었지만, 조금 쉬다 보면 기운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까 몸은 다 말랐네.’

조금 전에는 온몸이 비에 젖어 있었는데, 지금은 머리와 옷이 뽀송했다. 무호가 내력을 이용해 말려 준 걸까.

혼몽한 머리로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가던 중, 정신을 잃기 전 있었던 일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천마께서 군림하시어 마도천하를 이룩하시니….’

사술에 걸린 도사가 뱉었던 그 말을 떠올리니 안 그래도 아픈 몸이 더욱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 청연은 겨우겨우 고개를 돌려 무호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흐릿한 눈앞에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있었다.

힘겹게 입을 연 청연은 모든 설명을 생략하고 물었다.

“…너 아니지?”

이렇게 물어도 그는 알아들을 테니까. 그저 아니라고. 역병도, 강시도, 사술도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고 답해 주기만을 바랐다. 다른 누군가의 짓일 거라고 예전부터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도 물음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청연은 마른 입술을 적시고 다시 한번 물었다.

“네가 그런 거… 아니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침이 터져 나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콜록거리자 무호에게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손이 턱을 쥐더니 입 안으로 물을 조금 더 흘려 넣어 주었다. 덕분에 기침을 진정시킨 청연은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마디만… 해. 아니라고…. 믿을 테니까.”

이번 감기는 정말로 오래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연은 꺼져가는 의식을 꼭 붙들고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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