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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72)화 (73/145)

072화

사천으로 돌아온 청연은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손가락에 낀 반지만 만지작거렸다. 손님이나 직원들이 그를 부르는 소리도 놓치기 일쑤였다.

“객주님!”

“…….”

“객주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

“어어? 무슨 일이야?”

청연이 그제야 고개를 들며 답하자 해령이 물었다.

“오늘 약 드셨어요?”

“오늘… 오늘 약… 아, 안 먹었다.”

“무슨 정신을 그렇게 쏙 빼놓고 계세요? 그러다 또 쓰러지세요.”

“이제 그렇게 안 쓰러져.”

아무튼 고맙다, 말하며 청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서 해령에게 물었다.

“혹시 나 없는 동안 아무도 안 찾아왔어?”

“객주님을요? 아무도 안 왔는데.”

“…그래? 그럼 밥 얻어먹으러 온 애도 없었어? 저번에 그 애라든가, 다른 애라든가.”

“한 명도 없었어요. 왜요? 누구 기다리세요?”

“아, 아니야.”

방으로 향하려던 청연은 다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끼워져 있는 반지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가족의 유품이었고 잃어버렸던 물건이었다. 이게 무호의 손안에 있었다는 건 아무래도….

‘넌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해 주는데.’

청연은 반지를 매만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이 반지가 사람 말을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이렇게 답답하지 않을 텐데.

“무슨 한숨을 그렇게… 땅 꺼지겠어요.”

“해령아, 너 혹시 그때 기억나?”

“언제요?”

“구 년 전인가. 내가 십칠한테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잖아. 그때 걔가 뭐라고 답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오래된 일을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그런가? 아, 맞다. 그때 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객실에 이불 갈러 갔었지.”

“되게 세세한 걸 기억하고 계시네요. 꿈이라도 꾸셨어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청연은 자동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문간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땐 깜짝 놀랐다.

“제하야!”

그날 그렇게 헤어지고 속상하던 참이었다. 그가 비무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직접 보지도 못했을뿐더러 응원하러 가겠다 약속해놓고 실망하게 해버린 바람에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준 걸 보면 화가 많이 난 건 아닌가. 청연은 그에게로 달려갔다. 어딘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그의 표정이 어색해 보였다.

“대회 끝나자마자 온 거야? 다친 데는 없고?”

“어, 없습니다.”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아무튼 축하해. 이겼다며. 그럴 줄 알았어.”

“…….”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청연은 그의 얼굴을 꼼꼼히 뜯어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다친 데가 없다는 말은 거짓말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그의 몸을 살펴보려는데, 커다란 손이 어깨 위에 척하고 올라왔다.

“형님.”

“…형님?”

방금 형님이라고 부른 거야? 갑자기 왜?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우물쭈물하던 제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진지는 드셨냐?”

“…뭐라고?”

진지가 뭐 어쨌다고?

***

제하는 그날 청연에게 화를 내고 떠난 뒤 뼈저리게 후회했다. 객주님께서도 사정이 있으셨을 텐데, 무작정 화만 내버린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심지어 객주님의 건강을 걱정해 굳이 청해까지 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으면서, 막상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한 저 자신이 한심했다.

그리하여 비무대회에서 이긴 후에도 한동안 울적했다. 그런 저를 달래 준 건 도경이었다. 아니, 달래 준 건 아니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줬달까.

‘원하는 게 있으면 쟁취해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애송이처럼 물러나 있을 거야?’

‘쟁취라니요. 객주님이 무슨 물건도 아니고.’

‘너 그러다 뺏겨. 곤륜파 그 사람 못 봤어? 같은 사내가 봐도 아주 준수하던데.’

‘준수한 걸로 따지면 저도 제법입니다.’

‘그럼 뭐해. 애송인데.’

‘아니, 이 공자님이 보자 보자 하니까….’

사람을 쟁취한다느니, 뺏는다느니 하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스승님께서 늘 말씀하시길,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라 하셨다.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도경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객주님께서 정말로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떠나버리실까 봐 불안했다. 그래서 그에게 몇 가지 조언을 구하게 되었는데….

‘넌 지금 말투가 너무 딱딱해. 누가 정인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해? 좀 더 친근하게 굴어봐. 가까운 아우라도 된 것처럼.’

그렇다고 객주님께 무례하게 굴 수는 없지. 친근하되 예의 바르게 다가가 보자.

“진지는 드셨냐?”

“…뭐라고?”

아, 이게 아닌가.

제하는 심기일전해 다시 한번 시도했다.

“야, 밥은 먹었어요?”

“너 진짜 어디 아파?”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됐다. 객주님의 표정이 이상했다. 불쾌한 건 아닌데 걱정이 잔뜩 담긴 표정이랄까.

하나만 걸려라 하는 심정이었던 제하는 친근하게 다가가기 작전을 포기하고 빠르게 다음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는 도경이 건넨 두 번째 조언을 차근히 곱씹어 보았다.

‘네가 가지고 있는 걸 과시하는 거야. 그런데 너무 티 나게 하면 안 돼. 그냥 은연중에 살짝 흘리는 거지.’

공자님은 재력이 어마어마하시지 않은가. 객주님께서도 그동안 부를 축적하셨고.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닌데.

고민하던 제하는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물건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검이다.

티 나지 않게, 은연중에 흘리라고 하셨지.

“객주님, 이거 잠시만 들어주실래요?”

“뭐를? 네 검?”

“예. 잠시 운동 좀 해야겠습니다.”

“갑자기 무슨 운동을….”

“들어주세요.”

제하는 자신의 검을 청연의 품에 냅다 안겨 주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검을 건네받은 청연이 외쳤다.

“무거워!”

그러거나 말거나 제하는 객잔 한가운데서 팔굽혀펴기를 했다. 청연이 무거운 검을 들고 휘청거리는 중인 것도 모르는 채.

운동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제하는 뿌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 시간이면 그게 얼마나 귀한 검인지 알아보셨겠지.

“빨리 가져가….”

“그리 비싼 건 아닙니다. 검의 가치보다는 그 검을 쓰는 자의 실력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 모르겠고 진짜 무겁다고….”

제하는 청연에게서 검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도경의 세 번째 조언을 떠올렸다.

‘네가 그 사람을 얼마나 귀애하는지 보여 줘. 이건 티가 나도 돼. 사소한 부분을 귀여워해도 좋고 가벼운 신체접촉도 괜찮아.’

청연이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을 때, 제하는 그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객주님, 저랑 손 크기 재실래요?”

“손 크기를? 왜?”

제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그의 손목을 잡아끌어 손바닥을 맞댔다. 역시나 자신의 것보다 작은 손이 참 하얗고 고왔다.

“객주님은 손이 정말 작아요.”

“…어? 내 손 큰 편 아닌가? 작지는 않은데.”

“너무 귀여워요.”

“…….”

“으이구, 귀여워.”

다른 한 손을 뻗어 청연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자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번에도 무언가 잘못된 걸까 싶었지만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으이구.”

“아, 심각한데. 이거 진짜 심각한데. 제하야, 스승님은 어디 계셔?”

청연은 제하의 이마를 짚어보며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이제 회심의 한 방을 날려야 할 때가 되었다. 제하는 도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그 조언을 떠올렸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히면 단둘이서 오붓하게 보낼 시간을 만들어.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를 찾아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거야.’

제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객잔에 손님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래서야 무슨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겠는가.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야 할 듯싶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청연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여기 재미없죠?”

“…하지 마.”

“우리 나갈까요?”

“…….”

청연은 텅 빈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다가 이내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애한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객주님?”

“나가자. 당장 의원한테 가자.”

“예? 의원이라니요?”

제하는 자신을 몇 번이나 의원에게로 끌고 가려는 청연을 말리느라 진이 다 빠졌다. 결국 도경이 해 준 조언은 모두 쓰잘머리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 공자님께서는 왜 그렇게 잘못된 조언을 하셔서 일을 복잡하게 만드시는 걸까. 제하는 그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너 상태 안 좋으니까 들어가서 일찍 자. 알겠어?”

“예…. 객주님도 일찍 주무세요.”

시무룩해진 제하는 이 층으로 향하다 말고 청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객주님, 내일 아침 몇 시에 일어나세요?”

“나? 진시 초쯤에 일어나는데, 왜?”

“아침에 전음 해드릴까요?”

“…….”

“안녕히 주무세요.”

청연의 얼굴에 ‘의원에게 가자’라는 말이 쓰여있음을 읽어 낸 제하는 빠르게 밤 인사를 마치고 방으로 향했다. 너무 대놓고 마음을 드러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

다음 날 아침, 청연은 머릿속을 윙윙 울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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