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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59)화 (60/145)

059화

무호는, 아니, 양양은 살벌한 눈빛을 한 채 계단에서 내려왔다. 청연의 시선을 따라가 그를 발견한 해령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슨 애가 저렇게 무섭게 생겼대.”

“그, 그렇지? 참 잘생겼지?”

“네?”

“너무 잘생겼어. 다 크면 얼마나 미남이 될까? 와….”

청연은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해령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객잔의 총관이 허무하게 살해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계단을 내려온 양양은 그만하라는 듯 짙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

“그럼 잘생긴 양양이는 이제 집에 가자!”

“집 없을 것 같은데요.”

“제발 조용히 좀 해….”

그렇게 청연이 진땀을 빼고 있을 때였다. 양양의 시선이 문간을 향했다. 마침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는 듯한 발소리에 청연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뜻밖의 사람이 서 있었다. 평소 입던 흑의를 집어 던지고 미색의 무명옷을 입은 지홍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오며 외쳤다.

“주…!”

그러다 아차 싶었는지 옆에 있는 의자로 몸을 날리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인장, 여기 오리구이 하나!”

청연과 눈을 마주친 양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놈을 죽일까 말까 고민하다 못해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다.

‘…호위대주가 저렇게 허술해도 되는 거냐고.’

청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홍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원작에서 묘사된 마교의 위압감 따위는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친근함을 넘어서 하찮게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예에, 금방 나옵니다.”

그는 대충 대답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드디어 복수의 칼날을 뽑을 날이 찾아왔다. 특별한 손님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해다 바칠 결전의 날이.

한 주먹 가득 움켜쥔 향신료에서 맵싸한 향이 올라왔다. 청연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

“객주님, 저기 저 손님 좀 이상한데요….”

“응? 뭐가?”

“오리구이를 저렇게 눈물 콧물 다 빼 가면서 먹는 사람은 처음 봐요. 손님이 맵게 해 달라고 말씀하신 거 맞아요? 여기까지 향이 강하게 나는 걸 보면 진짜 매운 것 같은데….”

“아, 걱정하지 마. 원래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래.”

“차라도 가져다드릴까요?”

“아니.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가져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어.”

“그래요? 그런데 객주님은 왜 그렇게 웃고 계세요?”

“내가 뭐?”

“아까부터 엄청 사악하게 웃고 계시는데요.”

청연은 올라간 입꼬리를 애써 끌어 내렸다. 해령이 지홍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나저나 너무하네요. 아들을 바로 앞에 앉혀 두고 혼자 먹을 음식만 주문하다니. 심지어 애한테는 저런 누더기를 입혀 놓다니요. 저는 부모 없는 앤 줄 알았지 뭐예요.”

지홍의 맞은편에는 양양이 팔짱을 낀 채 앉아 그를 한심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음식을 남기지 말고 싹싹 비우라고 명령하는 아들이라니, 이보다 더 효자일 수가 없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싶어진 청연은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손님, 음식은 입에 맞으세요?”

“예…? 예, 아주, 쓰읍, 아주 잘 맞습니다.”

“그것참 다행이네요. 제가 원래 요리를 잘 안 하는데 오늘만 특별히 해 봤거든요. 자주 오세요. 더 맛있게 해 드릴게요.”

“음… 오… 아… 예….”

청연은 양양에게 돌아서 싱긋 웃으며 물었다.

“아가도 뭐 먹을래? 오이 어때? 아삭아삭한 생오이.”

“…….”

“방금 사 온 거라 싱싱하고 향긋한데.”

양양의 이마에 참을 인 자가 새겨지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한 청연은 입을 합 다물었다. 놀리는 건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겠지.

“객주님, 이거 어제 자 정산인데 좀 봐 주실래요?”

무언가 잘못되었는지 인상을 쓴 채 장부를 들고 다가오던 해령은 지홍의 얼굴을 보더니 멈칫했다.

“손님, 진짜 괜찮으세요? 얼굴이 새빨개지셨어요.”

“아, 아하하. 괜찮습니다.”

“사천분도 아니신 거 같은데 뭘 그렇게 맵게 드세요? 그러다 탈 나요.”

“이 정도는 먹어야 사내라고 할 수 있죠. 하하.”

“네? 그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 아, 아무튼 객주님 이것 좀 봐 주세요.”

청연은 해령과 대화하는 지홍의 모습이 마치 고장 난 로봇 같다고 생각했다. 작위적인 웃음소리와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알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장부를 들고 자리를 옮기는 동안에도 자꾸만 따라오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쪽도 연애하기는 영 글렀구먼….”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청연은 멀리서 양양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어린아이의 얼굴을 한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혹시 저 얼굴이 무호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걸까, 그래서 그에 맞게 누더기를 입은 걸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왠지 이가 시렸다.

“뭘 그렇게 보세요?”

“손….”

“손이요?”

“응. 손이 되게 작네.”

아이의 작은 손이 소매 사이로 빼꼼 나온 채 꼼지락거렸다. 그걸 지켜보던 청연은 생각했다. 그래도 나름 귀여운 면이 있긴 하다고.

***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객잔은 평화로웠다.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청연은 틈날 때마다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충했다. 제하나 무호의 일은 웬만하면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으니까.

누군가와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애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 왔다. 그래서 연애 상대로 느껴지지도 않을뿐더러 나이 차이가 주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그나마 남자와 사귀는 데는 거부감이 없어졌지만.’

그는 빙의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온전한 이성애자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남자와 연애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무호의 앞에서는 무슨 남자끼리 목욕이냐며 질겁하긴 했지만, 그건 오랜 습관에서 나온 무의식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세화의 몸에 들어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동성 연인을 가진 꿈을 오랫동안 꾸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열린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더 이상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애들과 사귀는 건 무리겠지만.

“객주님, 아침부터 망치 들고 뭐 하세요?”

“으응, 뭐 좀 만들려고.”

객잔 구석에 틀어박혀 망치를 두드리던 청연은 점소이의 물음에 답했다. 양양이 다녀간 뒤 꼭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내일 도경이랑 같이 청해로 출발하기로 했으니까 꼭 오늘 안에 완성해야지.’

어느새 비무대회를 보러 갈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도경과 서신을 주고받던 중, 그가 청해 까지 함께 가자고 제안하길래 흔쾌히 수락한 참이었다. 그가 사는 안휘에서 청해로 가려면 어차피 사천을 통과해야 하니 중간에 만나 서로 말동무나 하면 좋을 듯했다.

청연은 객잔의 빈 공간에 넓게 울타리를 쳤다. 그리고 바닥에는 볏짚과 오래되어 안 쓰는 이불들을 두툼하게 깔았다. 마음껏 뛰어놀다가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이제 올 때가 됐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한동안 구부렸던 허리를 쭉쭉 펴고 있을 때, 마침 목수들이 커다란 수레 몇 대를 줄줄이 끌고 객잔 앞에 도착했다. 청연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지난번에 유 객주가 보내 준 설계도대로 만들어 오긴 했는데, 제대로 된 건지 잘 모르겠소.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나 있어야지, 원.”

“그래도 우리 목수님들 실력이 어디 가겠습니까? 어디 한번 봅시다.”

그들은 수레에서 물건을 내리더니 그 자리에서 뚝딱뚝딱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큼직한 조형물 몇 개가 만들어졌다. 목수 하나가 소매로 땀을 훔치며 물었다.

“저 기다란 경사로 같이 생긴 건 대체 뭐에 쓰는 거요? 위에다가 철판을 덧대니 미끄러워서 밟고 올라갈 수도 없겠구먼.”

“미끄럼틀이라고 부릅니다. 애들이 타고 노는 거요.”

“아해들이 저런 걸 타고 논다고? 아니, 그럼 저 사다리는 뭐요? 사다리가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꺾어지는데. 저런 쓸모없는 사다리는 난생처음 보오.”

“구름사다리요.”

“저것도 아해들용인가?”

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수들이 울타리 안으로 들여놓은 놀이 기구들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특히 저 커다란 정글짐이 마음에 들었다. 뭐라고 부를지는 고민을 좀 해 봐야겠지만.

객잔 안에 만들어진 놀이방은 그가 어렸을 때 뛰어놀던 감자탕집의 그것과 닮아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선명한 고채도의 삼색 아이스크림과 오락기 몇 대만 있었다면 완벽했겠지만 지금 모습도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어른들이 치고받고 싸움만 하는 공간이 아닌, 아이들도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 객잔은 노아해존이 아니니까 마음껏 자녀들을 데리고 오시라.

그런 의도였지만, 무림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문을 들은 세가의 자제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정글짐 위에서 경공을 펼치고, 물구나무선 채로 미끄럼틀을 거슬러 오르는 기예를 선보이는가 하면, 구름사다리 위에서 생사를 건 결투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아해들의 배틀 그라운드로 전락해 버린 놀이방이 청연의 손에 철거된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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