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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56)화 (57/145)

056화

“끼어들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청연의 뒤에서 해우가 말했다.

“얼마 전부터 나타난 뒷골목 무뢰배 중에 하나예요. 말도 안 통하는 작자라 시비 한번 붙었다 하면 몇 대 얻어맞는 걸로 끝나지 않는대요. 그러니까 그냥 난동 부리다가 가게 내버려 두세요.”

“그렇지만 여긴 내 영업장이고 쟤는 내 점원인데?”

“객주님 몸도 좋지 않으시잖아요. 그러다가 크게 다치실 수도 있어요.”

남자는 탁자를 엎은 걸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옆자리 손님들에게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손님들이 피하려 하자 그는 탁자며 벽이며 여기저기를 커다란 주먹으로 내리치고 손에 집히는 물건은 죄다 집어 던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청연은 주방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 남자가 집어 던진 잔 하나가 주방 바로 앞 탁자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로 휙 날아왔다. 깜짝 놀란 청연은 몸을 날렸다. 다행히 아이가 맞기 전에 날아오던 잔을 잡아챈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방에 잠깐 들어가 있을래?”

차라리 객잔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기엔 저 진상 손님이 출구까지 가로막고 있었다. 청연은 아이에게 주방으로 들어가라며 휘휘 손짓해 보이고는 남자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와, 이게 다 얼마야.”

그는 부서진 채 널브러진 가구와 집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수리비로 은자 열 냥은 받아야겠는데.”

“이건 또 뭐야?”

“아, 우리 애 맞은 것까지 스무 냥 받아야 하나?”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청연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반면 청연은 이제 이까짓 거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어디 한번 때리려면 때려 봐라. 그러면 서른 냥 받을 테니까.

청연이 얼굴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주먹을 피하려던 참이었다.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뾰족한 물체가 그의 귀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남자의 손을 겨냥했다. 그리고 그대로 주먹에 박혀 들었다.

“끄아아악….”

남자의 손가락을 관통해 손등까지 뚫고 단단히 박힌 그 물체는 젓가락이었다. 고작 나무로 만든 젓가락 하나가 뼈와 근육을 갈랐다. 그는 피가 줄줄 흐르는 손을 감싸 쥐고 소리쳤다.

“누구야! 어떤 새끼야!”

고래고래 외치며 난동을 부리던 그는 이윽고 다시 청연에게 달려들었다. 화풀이라도 할 작정인 듯했다. 그의 멀쩡한 한 손이 청연의 목을 쥐려 할 때, 또다시 젓가락 하나가 날아들었다.

대체 어느 쪽에서 날아오는 건지 방향을 추측하기란 불가능했다. 마치 원래부터 공중에서 떠돌아다니던 것인 양 빠르고 자유로운 움직임이었다.

이번에는 젓가락이 남자의 손이 아닌 어깨에 박혔다. 기다란 것이 어깨마저 관통하자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청연은 그 젓가락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경고할 테니 꺼져라.’

왼쪽으로 조금만 방향을 틀었다면 목을 뚫었을 위치였다. 이 젓가락을 던진 사람의 능력이 부족해서 목이 아닌 어깨를 겨냥했을 리 없었다. 이건 일종의 경고였다. 이번엔 어깨를 뚫었으니 다음번엔 목을 뚫을 거라는 살벌한 경고.

청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숙여 남자의 가슴팍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품속에 있을 전낭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남자는 아직도 기운이 남았는지 다치지 않은 손으로 청연의 손을 홱 쳐 냈다.

“허….”

계속 이렇게 군다면 더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앞섶이 찢겨 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칼이 옷을 베어 내기라도 한 것처럼 깔끔한 모양새였다. 청연은 바닥에 툭 떨어진 그의 전낭을 집어 들었다. 손바닥 위에 탈탈 털자 은자 몇 개가 굴러 나왔다.

“애걔? 이게 다야?”

망가진 가구를 복구하기에는 충분한 돈이었지만, 그렇다고 다친 점소이의 마음을 위로할 정도는 아니었다. 자고로 맞아서 생긴 상처에는 금융 치료가 최고인 법이다.

청연은 빈 전낭을 그의 발치에 툭 던지며 물었다.

“더 없어?”

남자의 어깨가 고통과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멀쩡한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양쪽 바짓단이 잘려 나가며 그의 발목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흑….”

누군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혹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이용해서 청연을 돕고 있음이 명백했다. 남자가 발목에 따로 묶어서 바지 안쪽에 잘 감춰 두었던 전낭까지 드러나게 되었으니까.

청연은 그걸 주워 열어 보았다. 이번에는 은자가 몇 개 더 많았다. 이 정도면 다친 점소이의 마음을 충분히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객잔 수리비랑 치료비. 잘 쓸게.”

만신창이가 된 그는 이제 완전히 기가 죽어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계속해서 공격당하는 처지였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돈을 두둑이 챙긴 청연은 그에게서 돌아섰다.

상황을 지켜보던 손님들은 신이나 한바탕 시끌벅적해졌다. 대체 누가 그를 공격한 건지, 어떤 방법을 쓴 건지에 대한 논의가 끊이질 않았다. 반면에 망신을 당한 남자는 양쪽 발목에서 핏방울을 뚝뚝 떨구며 객잔 밖으로 사라졌다.

한편, 청연은 곧장 주방 앞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말없이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일전에 제가 가져다준 젓가락 한 쌍이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그는 허리를 약간 숙여 아이와 시선을 맞춘 뒤 물었다.

“아가. 너 이름이 뭐야?”

아이는 눈을 한 번 끔뻑일 뿐 답이 없었다.

“말할 줄 알아?”

청연이 다시 묻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작은 입술이 열리고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양양.”

“양양? 그게 네 이름이야?”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아무리 거친 세상을 살아온 거지 아이라지만, 소동이 벌어졌을 때부터 잔이 얼굴을 향해 날아올 때까지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뭐 어쩌겠어.’

일단 밥이나 챙겨 줘야지.

청연은 난장판이 된 식당을 뒤로한 채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주방으로 향했다.

***

객잔을 비웠던 제하가 돌아온 건 일각 정도가 지난 후였다. 쭈뼛거리며 객잔 안으로 발을 들여놓던 그는 탁자 몇 개가 사라져 텅 빈 공간과 더러워진 바닥을 쓸고 닦는 점소이를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그는 주방 앞 탁자에 앉아 있는 청연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와 물었다.

“객주님 괜찮으세요?”

“어? 어어, 괜찮아. 별일 아니었어.”

“또 누가 저런 짓을 한 겁니까? 알려 주시면 제가 가서 잡아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이미 수리비도 다 받았거든.”

“그러셨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 애는 누굽니까?”

제하는 청연의 맞은편에 앉아 우물우물 밥을 먹던 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양양이라고 내 새 친구야.”

“친구… 양양이요?”

“응. 그나저나 우리 할 얘기 있지 않아?”

청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제하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그가 이렇게 불편해하는 걸 보면 이번 일을 대충 넘겨 버리고 싶었지만, 앞으로 계속 볼 사이에 그런 행동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젯밤 제하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후원으로 갈까?”

“…예.”

“가자. 아가는 여기서 밥 먹고 있어. 다 먹으면 돈 안 내고 그냥 가도 돼. 알았지?”

청연은 아이에게 단단히 이르고 제하와 함께 후원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시원한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제도 말했지만 정말 신경 쓸 거 없어. 너무 그렇게 민망해하지도 말고. 나는 너랑 어색해지는 거 싫단 말이야. 너도 그렇지?”

“예…. 저도 객주님과 어색한 사이가 되는 건 싫습니다.”

“우리 알고 지낸 지 벌써 구 년이잖아. 내가 너 어려서부터 얼마나 예뻐했는데. 겨우 이런 일로 틀어지지 말자고.”

그는 제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너도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거 아니야. 아니면 이미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아무튼 그 사람이랑 접문하게 되면 그걸 처음인 걸로 치자. 이번 건 그냥 사고였으니까.”

“사고….”

“그래, 사고.”

청연은 첫 접문 따위에 크게 의미를 두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원작에서 그게 제하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달래는 데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무호도 처음이었겠지…. 몰라, 그건 내 잘못도 아니었는데 알 게 뭐야.’

무호의 뜨거운 체온과 입가에 번지던 통증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했다. 대화도 제대로 못 하고 떠나왔는데, 어떻게 잘 지내고 있으려나. 부디 잊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잠시 그날을 떠올리던 청연은 제하의 작은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니다.”

“응? 뭐라고?”

“아닙니다.”

“아니라니? 뭐가?”

“사고 아닙니다.”

제하는 아래로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진지한 눈빛을 보내오는 갈색 눈동자가 여느 때보다도 깊어 보였다. 그걸 지켜보던 청연은 왠지 모르게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첫 접문이었습니다.”

“…어?”

“객주님이랑 한 첫 접문이었어요. 사고가 아니라.”

살랑살랑 불어온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칼을 살며시 훑고 지나갔다. 말을 잃은 청연은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하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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