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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53)화 (54/145)

053화

두 사람을 실은 마차는 몇 날 며칠을 달렸다. 제하가 의원에게 치료받거나 잠시 객잔에서 쉬어 갈 때를 빼면 종일 마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청연은 쉬어 갈 틈이 생길 때마다 제하가 조용히 운기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고는 했다. 그 덕분인지 그의 몸 상태는 나날이 호전되었다. 애초에 튼튼한 몸을 가져 상처 회복도 놀랍도록 빨랐다. 오죽하면 청연의 목에 남은 자국들이 사라지는 게 더 느리게 느껴질 정도였다.

제하가 무리 없이 경공을 구사하게 되었을 때는 귀환을 단 하루 앞둔 밤이었다. 두 사람은 한적한 마을의 작은 객잔을 찾아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제 겨우 회복한 제하를 좀 더 쉬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방은 침상이 두 개 있는 방으로 잡았다. 제하가 청연과 떨어지는 걸 불안해했기에 밤에도 붙어 있는 편이 나았다. 그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저녁 식사를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주문했다.

“객주님,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미 여러 번 말했잖아. 나는 객잔으로 돌아갈 거라고.”

“하지만 그놈들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데….”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제하는 시무룩해졌다. 그는 청연이 제가 사는 산으로 함께 가길 원했다. 이번 일로 많이 불안해졌을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너희 스승님께 더 민폐 끼치기 싫단 말이야. 그리고 이제 다시 잡혀갈 일 없어.”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요.”

“…내가 알아. 이제 안 그럴 거야.”

청연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무호에게 자신을 다시 납치할 생각이 있었다면 애초에 마차를 내어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결정을 번복할 만한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에게 저를 해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더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객잔은 마음에 걸립니다. 저와 함께 가기 싫으시다면 차라리 타지로 이사를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소용없어. 그쪽에서 날 찾고자 한다면 어디에 있든 찾아낼 거야. 난 그냥 객잔에 있는 게 마음 편해.”

“그렇다면 남궁세가는요? 그쪽에는 뛰어난 무사들이 많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제하의 말에 청연은 피식 웃었다.

“언제는 내가 남궁세가 간다고 하니까 그렇게 싫어하더니?”

“지금은 얘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도경이랑은 요즘 어때? 아직도 많이 싸워?”

“싸우긴 합니다만 예전처럼은 아니…, 말 돌리지 마세요.”

그때 마침 점소이가 식사를 들고 찾아와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소박한 요리 몇 가지가 탁자 위에 놓이자 청연은 젓가락을 들었다.

“그나저나 그곳에서 식사는 제대로 하신 겁니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제대로 했지…. 너무 제대로 해서 탈이지.”

여태 약을 안 먹고도 버틸 정도니까.

청연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소채를 입에 넣었다. 제하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힐끔 보더니 젓가락을 집었다.

“객주님께선 제게 비밀이 너무 많으십니다.”

“비밀? 내가?”

“예. 그자와 무슨 관계인지 여쭤보아도 항상 답을 피하시지 않습니까.”

“그냥… 별거 아니야.”

“늘 그렇게 별거 아니라고 넘어가시지요. 정말 별거 아닌 사이라면 어째서 납치를 당하시고 목에 그런 자국까지….”

“아악! 그 얘기 그만!”

청연이 질겁하자 제하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대답을 피하고 넘어가면 캐묻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저러는 걸 보면 정말 궁금한 모양이었다. 청연은 차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말했다.

“그 애 어렸을 때 인연이 좀 있었어.”

“인연이라니요?”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애가 날 도와준 적이 있어. 반대로 그 애가 위험했을 땐 내가 도와주지 못했고.”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시는 겁니까?”

“왜? 네가 보기엔 내가 걔한테 마음 쓰는 것 같아?”

제하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 관계라면 솔직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죽을 위기에서 객주님 손에 구해진 뒤로 늘 보답해 드리고 싶었으니까요.”

“그건….”

“하나 제가 이해하는 건 객주님 마음뿐입니다. 객주님을 그렇게 강제로 데려간 자에게는 어떠한 이해도, 관용도 베풀 수 없습니다.”

“…….”

“감정은 그 누구에게도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해도 부족할 시간에 강압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될 일이지요.”

청연은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얘는 연애도 건강하게 잘하겠구나 생각하면서.

늦은 저녁 식사를 마무리한 두 사람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청연은 빨리 아침이 오길 바랐다.

***

이번 꿈은 어딘가 이상했다. 청연은 매번 눈을 뜨던 설산도, 객잔도 아닌 생전 처음 보는 산 위에 와 있었다.

하늘도 붉고 땅도 붉었다. 습한 공기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고, 고요한 산중에 까마귀 우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청연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걸으면 걸을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제가 밟고 있는 땅의 질감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를 내려다본 그는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 그의 발밑에 있는 것은 단순한 흙바닥이 아닌 사람의 시체였다. 피투성이가 된 채 이리저리 뒤틀린 시신이 눈을 허옇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청연은 급히 시신에서 내려오려고 했지만 그의 옆에도, 또 그 옆에도 전부 시신뿐이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본 그는 여태까지 걸어온 길 전체가 시체로 덮여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앞으로 나아갈 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끔찍한 길에서 벗어나고자 그는 빠르게 달렸다. 발밑에서 물컹한 것이 뭉개지는 느낌이 생생했다.

그렇게 달리던 그의 앞에 드디어 산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길 한복판에 무릎을 꿇고 앉은 한 남자의 뒷모습이. 그를 알아본 청연은 달려가며 외쳤다.

“제하야!”

청연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음에도 제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다가간 청연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제하야, 여기서 뭐 해? 여긴 어디야? 이 시신들은 다 뭐고?”

“…다 죽었어요.”

“뭐?”

“전부 죽었어요.”

당황한 청연은 그의 멍한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창백한 얼굴로 잠든 도경이 누워 있었다. 너무나도 고요하게 잠들어 있어 죽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얘가 왜 여기….”

“죽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도경이가 왜 죽어?”

“스승님도 죽었어요.”

그의 말에 청연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잠든 도경의 옆에는 또 한 사람이 누워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죽립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죽립을 들어 확인하려고 하자 제하가 실소를 흘리며 물었다.

“확인하시게요?”

“해, 해야지….”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제하의 말투가 어딘가 비틀려 있었다.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청연을 바라보았다.

“너 왜 그래? 응?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 봐.”

“그걸 객주님이 모르시면 어떡해요. 다 객주님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

“당신이 그 사람을 감싼 탓에 전부 죽은 거라고.”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은 제하는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몸에도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비틀비틀 앞으로 나아가는 뒷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제하야! 어디가!”

청연은 급히 몸을 일으켜 그의 뒤를 따랐다. 아무리 그를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고 발밑에는 여전히 시체들만 가득했다.

“제하야!”

“여기 좀 보세요.”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선 제하는 청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은 바닥에 놓인 누군가의 시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사람도 죽었잖아요.”

청연은 덜컥 겁이 났다. 그가 가리키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또 누구일까 두려웠다.

“안 보실 거예요?”

“…….”

“저는 소중한 사람을 전부 잃었는데 객주님은 아무도 잃지 않으시겠다고요?”

비아냥거리는 그의 말이 가슴을 푹푹 찔렀다. 청연은 숨을 죽이고 한 걸음 한 걸음 그에게로 다가갔다. 마치 수십 년이 흐르는 것처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을 확인했을 때 청연은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눈처럼 흰 옷자락을 붉게 물들인 피와 희다 못해 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안 돼….”

청연은 차갑게 식은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을 이런 모습으로 재회하다니.

그를 시체들 사이에서 건져 올려 끌어안았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품 안에 가득 안으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목 안쪽에서는 제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청연은 그를 꼭 끌어안은 채 하염없이 그의 이름만 불렀다.

“시랑….”

“어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분이?”

제하는 그런 청연을 바라보며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다 그 사람 짓이에요. 객주님이 마음 쓴다던 그 사람이요.”

그는 날카로운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 드릴까요? 그 사람이 바로 저기 있는데.”

뾰족한 검 끝이 가리킨 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시체를 밟고 서있었다. 청연은 눈물을 쏟아 벌게진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곳에 예전과 같은 온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해 드려요? 네?”

제하가 다시 한번 묻자 청연은 낮게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죽여.”

“정말이죠? 후회하시기 없어요.”

“죽여 버려.”

알겠어요 하고 쾌활하게 말한 제하는 이내 검을 든 채 달려갔다. 그가 남자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하얀빛이 번쩍하며 온 세상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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