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화
청연은 다친 제하를 도와 마차에 올랐다. 출발하기 전 시비 한 명이 다가와 수통과 깨끗한 천, 그리고 붕대가 담긴 상자를 건넸다. 그걸 받아 든 청연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호가 보낸 건가.’
그는 마차가 출발할 때까지 창밖을 내다보았다. 완만한 경사로를 골라 덜컹거리며 내려가기 시작하자 그제야 제하를 돌볼 수 있었다.
제하는 여전히 분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와 달리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었고, 시선은 청연의 목에서 떠나질 않았다.
“제하야.”
“…….”
“일단 피부터 닦자, 응? 그래야 상처를 제대로 보지.”
몇 번이고 제하를 달랜 끝에야 그의 윗옷을 벗길 수 있었다. 지혈된 곳은 이미 말라 버린 피가 옷에 들러붙어 조심조심 떼어 내야 했다. 청연은 제 살갗이 다 아픈 느낌이 들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속상해 죽겠네….”
천을 물에 적셔서 그의 얼굴부터 깨끗하게 닦아 준 후 상처 부위를 피해 몸을 살살 문질렀다. 혹시나 그를 아프게 할까 천이 닿을 듯 말 듯 조심히 움직였다.
상체만 닦았을 뿐인데 천이 벌써 붉게 물들었다. 혈흔이 사라지니 여기저기 벌어진 검상이 또렷하게 보였고, 심지어 복부의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청연은 참담해진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약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자 제하는 말없이 벗어 놓은 옷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청연은 약통처럼 보이는 그것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보았다. 언젠가 꿈속에서 보았던, 소명이 들고 다니던 금창약이었다.
“금창약이네.”
“스승님께서 금창약 정도는 늘 지니고 다니라고 하셔서….”
마차에 탄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연 제하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이다. 뒤돌아 봐. 등부터 발라 줄게.”
청연은 고분고분 뒤로 돌아앉은 제하의 등에 가루약을 조금씩 펴 발랐다. 그러면서 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말을 걸었다.
“스승님은 어디 계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니?”
“제가 객잔에 당도해 객주님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바로 스승님께 서신을 썼습니다. 스승님께선 잠시 출타 중이셨기에 아직 서신을 읽으셨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저도 급하게 달려오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잠깐….
그의 말을 듣던 청연은 무언가 의심쩍었다.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분명 제하와 스승님이 같이 객잔에 찾아왔어야 했다. 거기서 술 한 잔 걸친 뒤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으로 발전했어야 하는 건데.
그런데 제하가 또 혼자 왔다니. 몇 년 전 그와 함께 약초를 찾으러 갔을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스승님께서 어디 가셨는데?”
“그 또한 모릅니다. 제 나이가 어느 정도 찬 후에는 언질 없이 하산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까요.”
원작에서도 소명이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건 맞다. 자꾸만 제하를 두고 혼자 떠돌아다녀서 제하가 속병을 앓았던 걸 기억하는 바였다. 그런데 이 시점에 그랬다고?
“이상하네.”
“뭐가요?”
“아무것도 아니야. 상처는 어때? 많이 아파? 더 살살 바를까?”
“아픈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세는.”
청연은 약을 조금 더 집어 제하의 어깨에 난 상처 위에 발랐다. 그나저나 그의 벗은 몸은 처음 보는데, 그 조그맣던 애가 언제 이렇게 큰 건지 새삼스러웠다.
“와, 등 근육 장난 아니다.”
“…….”
“부럽다, 부러워. 이제 애기라고 놀릴 수도 없겠네.”
그는 제하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계속해서 칭찬을 건넸다.
“팔 단단한 거 봐. 내 허벅지만 하겠어. 만져 봐도 돼?”
“…안 됩니다.”
“왜. 이쪽 팔은 다치지도 않았는데. 한 번만 만져 보자.”
그러자 제하의 귓바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청연은 숨죽여 웃으며 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이제 다시 뒤돌아. 앞에도 약 바르자.”
그가 다시 돌아앉는 순간, 청연은 표정 관리를 해야만 했다. 등보다 심각한 상처가 다시 눈에 들어오자 그가 어떻게 싸웠을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 탓이다.
청연이 말이 없어지자 제하는 약통을 빼앗아 가려고 했다.
“앞은 제가 바르겠습니다. 객주님께서도 쉬셔야지요.”
“아니야. 내가 해 줄게.”
어느새 피가 멎은 상처 주변을 다시 한번 닦아 낸 뒤, 조심히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말 아픈지 제하도 미간을 찡그리며 주먹을 꾹 쥐었다. 묵묵히 상처에만 집중하던 청연은 입을 열었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혹시라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오지 마.”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니라 네가 나 때문에 다치면 내가 속상하잖아. 마음 찢어질 것 같단 말이야.”
“…….”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아무리 제하가 먼저 마교에 침입하려고 했다지만, 제가 그곳으로 끌려가지만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니까. 생판 모르는 남이 이만큼 다쳤다고 해도 신경이 쓰일 텐데, 제하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 온 각별한 아이였다. 친동생이 다쳤다면 이런 기분일까.
“차라리 내가 다치고 말지. 애 몸에 이게 다 뭐야….”
그는 상처 하나하나 약을 바를 때마다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제하도 덩달아 심각해져 말이 없었다.
“이제 약 다 발랐으니까 붕대 감자. 도착하면 꼭 의원한테 제대로 치료받고.”
청연은 상자에서 붕대를 꺼내 제하의 몸에 칭칭 감았다. 단단하게 매듭을 묶어 고정할 때까지도 제하는 조용했다.
“다 됐다.”
마침내 응급 처치를 마친 청연은 피를 많이 흘린 제하의 체온이 떨어질까 걱정되어 그가 벗어 놓았던 옷을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리고 앞섶을 여며 주려는데, 갑자기 손등 위로 물 한 방울이 톡 떨어졌다. 시선을 들어 올려 제하의 얼굴을 마주 본 청연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제하가 울고 있었다. 큰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방울이 하나씩 툭 툭 떨어지다가 결국엔 주르륵 흘러넘쳐 두 뺨 위에 길을 만들었다. 당황한 청연은 차마 눈물을 닦아 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몸을 굳혔다.
그가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소리를 참는 듯 앙다문 입술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와중에 어깨는 주체할 수 없이 들썩였지만.
“제하야.”
청연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흥건하게 젖어 버린 그의 뺨을 쓸었다. 그렇게 밝았던 아이가 다치고 우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많이 아팠어?”
제하는 시선을 아래로 깐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아프게 한 거야?”
“너무 아파요, 객주님….”
그는 울음 섞인 목소리를 내뱉으며 청연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청연은 그의 상처를 건드리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손을 올려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프면 말하지.”
“너무 아파요. 아파서 못 참겠어요.”
“미안…. 미안해, 아가.”
가슴팍이 점점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서글프게 흐느끼는 소리가 마차 안을 가득 채웠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해. 어린 너한테 나를 지켜 달라며 짐을 지워서 미안해.
청연은 진심으로 사과하며 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아지처럼 복슬복슬했던 갈색 곱슬머리는 어느새 예쁘게 자라 물결처럼 굽이치며 흘러내렸고, 덩치도 청연보다 훨씬 커져 안아 주기 버거울 정도였지만, 그를 아끼는 마음만큼은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었다. 그건 제하도 마찬가지일 거라 굳게 믿었다.
“구하러 와 줘서 고마워. 두고두고 기억할게.”
“객주님.”
“응?”
제하는 훌쩍거리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저 너무 화가 나요.”
“…….”
“객주님이 속상하신 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속상합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이 물기를 머금은 채 청연의 목을 바라보았다.
“객주님 몸에 이런 걸 남긴 사람한테도, 그걸 막지 못한 저한테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울었어?”
청연은 제하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을 소매로 닦아 주며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하게 보인다는 거 알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상관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자가 객주님께 상처를 입혔습니다. 제게 소중한 사람을 건드린 자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비장하게 말하는 그에게 청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운명이 원작대로 흘러가지 않기를 가장 바라는 건 저였으니까.
“다들 그러더군요. 마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전쟁을 준비해 왔고, 이제 교주가 바뀌었으니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요.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거라고 말입니다.”
“제하야….”
“저는 그들이 중원 땅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양민을 해치고 제게 소중한 사람들을 앗아 가도록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제하는 청연의 목에 남은 잇자국을 엄지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다시금 눈물이 차오르려고 하자 그는 눈을 벅벅 비볐다.
“…일단 좀 쉬자, 제하야. 너 많이 다쳤잖아.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눈 좀 붙이자.”
청연은 그의 다치지 않은 쪽 팔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것 말고는 도저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제하는 청연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댔다. 한 손으로는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청연의 손을 잡아 왔다.
“손이 찹니다.”
“네 손도 차가워.”
“저는 괜찮… 이건 무슨 반지입니까?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
그의 말에 청연은 여태 잊고 있었던 반지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홍옥이 영롱하게 빛나며 저를 잊고 있었냐 타박하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청연은 대충 둘러대며 반지를 빼냈다. 그리고 제하가 한눈을 판 사이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언제 돌려줄 수 있을지 모르는 물건을 계속 보관하고 있느니 차라리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없애 버리고 싶었다.
제하는 청연의 어깨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이윽고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청연은 그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어깨를 굳히며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차는 이제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일어난 일이 전부 꿈 같았다. 마교에 납치되어 죽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보니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매일 약재가 들어간 식사를 하고 약욕을 해 몸 상태는 더 좋아졌고, 오랜만에 객잔 일에서 벗어나 커다란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게다가 무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고, 그와 침상에서 입을 맞췄… 이건 좀 빼자.
모든 걸 잊고 잠이나 자기로 결심한 청연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린 터라 졸음이 쏟아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에 빠질락 말락 한 그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제가 그자의 목을 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