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화
객잔 앞에 당도한 세화는 멍하니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청연(淸緣). 맑은 인연이라.’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객잔 주인이라니 정말 뜬금없기 짝이 없었다. 그것도 이런 외지에서 말이다.
세화는 마차에서 몇 안 되는 짐을 내린 뒤, 느릿하게 문을 열고 객잔 안으로 첫걸음을 디뎠다. 제법 멀쩡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낡디낡은 데다 퀴퀴한 냄새까지 났다.
‘누님께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객잔을 덜컥 사셨습니까?’
분명 아는 사람이라는 그 작자에게 속아서 사셨겠지. 예전부터 인정이 많아 남의 말을 의심도 없이 곧잘 믿는 분이셨으니까.
일단은 이 고약한 냄새부터 빼야겠다 싶어 객잔의 모든 문과 창문을 열어젖혔다. 마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탓에 벌써 온몸이 피로함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마냥 누워서 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구석구석 청소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석양이 졌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린 세화가 낡은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자 끼익하는 불안한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가구는 전부 갈아 치워야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세화는 탁자에 엎드렸다. 열심히 쓸고 닦아 그나마 깨끗해진 바닥을 보니 자꾸만 그 사람이 생각나 울적해졌다. 청소 같은 걸 왜 네가 하냐며 매번 빗자루를 빼앗아 가던 사람이.
“봐. 나도 혼자 할 수 있잖아. 너는 너무 극성이었어.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그러고 보니 여기 와서 여태 차 한 모금 안 마셨던가. 세화는 찻주전자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갑자기 몸이 비틀거림과 동시에 현기증이 일었다. 간신히 의자를 짚어 몸을 지탱한 세화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폐에서부터 번지는 통증에 그는 황급히 옷소매로 입을 가렸다.
곧이어 쿨럭거리며 기침이 터져 나왔다. 소매가 끈적이는 피로 붉게 젖어들수록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바닥에 풀썩 쓰러진 세화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누님. 아무래도 그게 진짜 마지막 인사였나 봅니다.’
떠나오기 전 누님께 단단히 부탁했다. 은혜도 모르는 이 못난 아우는 이제 없는 셈 치고 잊어 달라고. 저와 엮여서 좋을 것 하나 없으니 누군가 찾아오거든 모르는 사람이라 답하시라고.
이렇게 금방 떠날 줄 알았으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해 드릴걸. 유서 한 장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서러웠다.
후회는 항상 늦었고 눈물 한 방울 흘릴 여력조차 남지 않았다. 세화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이 청소라니 참으로 우스웠다.
그렇게 시야가 흐려지는 와중에, 죽립을 쓴 누군가의 인영을 본 것도 같았다.
***
“진짜 죽은 거 아니야? 오라버니가 가서 확인해 봐.”
“내가 그걸 무슨 수로 확인해?”
“오라버니 지금 겁나서 그러는 거지? 에휴, 됐다. 내가 간다!”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세화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저기요. 이봐요! 죽었어요?”
“해령. 쓰러진 사람을 그렇게 흔들면 어떡해.”
“이렇게 해야 일어나지. 오라버니도 저기 다리 잡고 흔들어 봐.”
“이, 이렇게…?”
“더 세게!”
그 난리 통에 세화는 간신히 입을 벌려 소리를 냈다.
“그만…. 일어났으니까 제발….”
“오! 봐 봐. 흔드니까 일어나지?”
죽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세화는 간신히 눈을 뜨고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흐릿했던 시야에 초점이 잡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 머리맡에 앉은 여자아이는 열두세 살 정도 되어 보였고, 다리 쪽에 앉은 남자아이는 그보다 두어 살 많아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남매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똑 닮은 얼굴이었다.
두 아이 모두 비쩍 마르고 몰골이 꾀죄죄한 게, 개방의 거지거나 동네 거지거나 떠돌이 거지거나 셋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뭐가 됐든 거지라는 소리다.
세화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고통이 몸을 무겁게 짓눌렀는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가뿐했다. 꼭 의원에게 치료라도 받은 것처럼….
‘아, 죽립 쓴 남자를 본 것 같은데.’
그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저를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 혹시 죽립 쓴 남자 한 명 못 봤어? 흰옷을 입은 것 같기도 하고….”
“아뇨? 혼자 쓰러져 계시던데요.”
“아… 그래?”
지나가던 이가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은혜를 베푼 건가. 세화는 이름 모를 은인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나저나 너희는 여기서 뭐 하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저를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묻자 해령이라고 불렸던 여자아이가 당차게 답했다.
“저희 일 구하러 왔어요!”
“일? 무슨 일?”
“무슨 일이든 좋아요. 저희 잡일 잘하니까 아무거나 맡겨 주세요. 급료만 잘 챙겨 주시면 돼요.”
그러자 잠자코 있던 남자아이가 끼어들어 말했다.
“얘 말고 저만요. 일은 저만 할 거예요.”
“오라버니 무슨 소리야! 이제 같이 하기로 했잖아.”
세화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객잔 문을 열기도 전인데 갑자기 굴러들어 온 거지 아이들끼리 일자리 쟁탈전이라니.
“둘 다 조용히 해 봐. 생각 좀 하게.”
입을 합 다문 아이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세화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거절했다가는 커다란 실망을 안겨 줄 것만 같았다.
‘어쨌든 일꾼을 구할 생각이긴 했는데. 근데 얘들은 너무 어린 거 아닌가?’
세화는 의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해령이 갑작스레 눈물방울을 뚝뚝 떨구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저희, 저희 부모님도 없고요. 집도 없고요.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어린아이가 서럽게 흐느끼자 당황한 세화는 진땀을 빼며 아이를 달랬다. 결국 알겠다, 여기서 일해도 된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온 뒤에야 해령은 눈물을 그쳤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쩡해진 눈매와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상당히 의심스러웠지만 이미 뱉은 말을 돌이키기에는 늦어 버렸다.
“그래서 너희 이름이 뭔데? 이 쪼그만 애는 해령이고.”
“저는 해우예요.”
“해우랑 해령이구나. 그래. 내 이름은….”
생각 없이 제 이름을 내뱉으려던 세화는 멈칫했다. 이제는 이 이름마저 버려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쓰디쓴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청연이야. 이 객잔 이름이랑 같아.”
***
알고 보니 해우는 그 어린 나이에 다른 객잔 주방에서 보조 숙수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못된 객주에게 잘못 걸려 일한 만큼 돈도 못 받고 쫓겨나긴 했지만. 덕분에 그는 세화도 모르는 사천 음식에 대해 줄줄이 꿰고 있었고, 손재주가 탁월해 무슨 요리든 뚝딱 만들어 냈다.
해령은 아직 나이가 많이 어려 가벼운 잡일 정도만 주었는데, 자꾸만 제가 일을 찾아서 하는 바람에 세화는 골치가 아팠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달래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일손이 모자랄까 봐 아이들보다 좀 더 나이가 많은 점소이도 한 명 구했는데, 그는 매번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워 손님들에게 욕을 얻어먹기 일쑤였다. 결국 보다 못한 해령이 대신 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점소이는 얼마 못 가 해고당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굴러들어 온 복덩이들이 따로 없었다. 세화는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후원의 별채까지 내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주방에서 접시가 깨지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세화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갔을 땐 새빨갛게 익은 손을 붙들고 발을 동동 구르는 해령과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해우의 모습이 보였다.
“다쳤어?”
세화는 깨진 조각들을 발로 대충 치우며 해령에게 다가갔다.
“손 좀 봐 봐. 괜찮으니까 울지 말고. 아이고, 아프겠다.”
뜨거운 음식이 쏟아지며 손을 제대로 덴 모양이었다. 그러게 이런 일은 직접 하지 말라고 여러 번 일렀거늘. 세화는 혀를 쯧쯧 차며 찬물이 담긴 물동이를 들고 왔다. 그 위에다 빨개진 손을 얹고 바가지로 물을 퍼 졸졸 부어 주었다.
“죄, 죄송해요. 접시 못 쓰게 돼서….”
“지금 그게 문제냐.”
화상 정도가 생각보다 심했다. 세화는 해령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면서도 아이가 정말 손을 쓰지 못하게 될까 내심 걱정되었다. 결국 그는 해우에게 바가지를 건네주고 의원을 부르기 위해 주방에서 뛰쳐나갔다.
그때였다.
“이걸 쓰십시오.”
급하게 객잔을 나서려던 세화의 등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우면서도 귀에 꽂히는 듯한 목소리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죽립을 푹 눌러쓴 한 남자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저런 손님이 있었던가?’
세화는 의아한 얼굴로 그가 건넨 물건을 받아 들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금창약입니다. 화상에도 효과가 있도록 특별히 조제했으니 바르면 금방 나을 것입니다.”
“이거 하나면 된다고요?”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건만, 그에게서 풍겨 오는 기운이 남달라 절로 믿음이 갔다. 세화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주방으로 돌아갔다. 해령의 손에 묻은 물기를 깨끗한 천으로 닦아 주고 약을 살살 펴 바르니 순식간에 붉은 기가 덜해지고 수포가 사라졌다. 해령도 신기한지 눈물을 그치고 제 손을 들여다보았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뒤 세화는 제대로 감사를 표하기 위해 남자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이미 비어 버린 소흥주 병과 동전 몇 닢만이 남아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세화는 마침 객잔을 떠나려는 듯 문간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다시 보니 절대로 평범한 사람의 몸이 아니었다. 분명 검을 쥐었던 무인의 몸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세화는 그에게로 달려가며 외쳤다.
“대협!”
객잔 밖으로 걸음을 내디딘 남자가 세화를 돌아보았다. 죽립을 푹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차분한 눈빛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가 많이 다칠 뻔했는데 덕분에 나았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대협의 도호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떠돌이 의원에게 도호랄 게 있겠습니까.”
“예?”
그는 세화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번 고개를 까딱하고는 돌아섰다. 객잔에서 점점 멀어지는 걸음걸이가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웠다. 세화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혹시 그때 그 사람인가?’
보답하겠다는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의 병을 낳았고, 마음의 병은 육신의 고통보다 무서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화는 말수를 잃어 갔다. 방에 홀로 틀어박힌 채 세상과 담을 쌓는 일이 익숙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