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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44)화 (45/145)

044화

“그 객잔 주인장 맞잖아! 내, 내가 사람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히게 기억한다고! 나, 나 여기서 꺼내 줄 거지? 응?”

말을 더듬으며 실성한 듯 웃음을 터뜨리는 중년 남자의 눈빛이 섬뜩했다. 머리는 마구잡이로 헝클어져 있었고 두 뺨은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처럼 핼쑥했다. 구멍 틈새로 삐져나온 거친 손에는 손가락이 단 두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게 무슨….”

청연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이 사람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심지어 이런 곳에서 조우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이렇게까지 달라진 모습으로.

그 사람은 바로 구 년 전, 매일 같이 객잔에 찾아와 술판을 벌이던 도박꾼 장 씨였다. 상단주 송원과 함께 갔던 도박장에서 남자들에게 끌려간 뒤 완전히 자취를 감췄던 인물이었다. 당시에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여태 살아 있었다니 말문이 막혔다.

‘이걸 보여 주려고 여기까지 데려온 건가.’

청연은 지홍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무슨 일인지 당장 설명하라며 따지려는 참이었는데, 그는 오히려 청연보다 더 당황한 눈치였다.

“뭡니까?”

“그게… 저도 잘….”

얼버무리던 지홍은 급히 계단을 올라와 문 앞을 가로막으며 덮개를 내렸다. 청연을 문에서 몇 걸음 떼어 놓으려는 듯 어깨에 손을 올리기까지 했다.

“조금만 뒤로 물러나시겠습… 헉.”

청연의 어깨를 살며시 뒤로 밀던 그가 갑자기 숨을 헉 들이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매가 굳어졌다.

지홍은 뻣뻣한 목을 천천히 돌려 계단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청연도 그를 따라 눈길을 돌렸다. 야명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그곳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고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한 청연은 다시 지홍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 위를 흐르는 한 줄기 땀방울이 보였다.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홍이 한쪽 무릎을 꿇어 앉았다. 이어서 뒤에 서 있던 남자들도 같은 행동을 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청연은 얼떨떨한 얼굴로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주, 주군!”

지홍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검은 인영이 어둠을 가르고 나와 빛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사람 그들의 주군,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무호는 여느 때보다 차가운 눈을 한 채 계단을 올랐다. 문 너머의 장 씨는 이미 잠잠해져 몸을 사리고 있었고, 무릎 꿇은 세 명의 수하들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청연만이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워 심장이 떨려 왔지만 청연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저 얼굴이 어둠과 꽤 잘 어울린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청연은 용기를 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이야?”

“…….”

“이 사람이 그때 널 밀고한 거야? 그래서 여기다 가둬 둔 거야?”

몇 계단 아래에 멈춰 선 무호는 말없이 청연을 응시할 뿐이었다. 반면에 주군을 대하는 그의 격식 없는 말투를 듣고 놀란 지홍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나,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내가 뭘 했다고 여기 잡혀 와서….”

넋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리는 장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연은 제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무호가 답답해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의 한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이 눈에 띄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건 납작한 타원형 모양의 검은 물체였다. 그 위에 구멍이 몇 개 뚫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청연의 시선을 느꼈는지 무호의 손등에 힘줄이 섰다. 그러자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무호는 느릿하게 계단 몇 개를 더 올랐다. 마침내 청연이 서 있는 계단 바로 아래에 멈춰 선 그는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누가 이런 곳까지 모시고 오라고 했지.”

눈으로는 청연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지홍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당장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무호는 무릎 꿇고 있는 지홍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그의 눈짓 하나하나에서 살기가 느껴져 청연은 제가 다 불안해졌다.

이윽고 바닥을 짚고 있던 지홍의 한쪽 손에서 콰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호의 발이 그의 손을 밟은 채 꾹 내리눌렀다. 무자비하게 짓밟힌 손은 빨갛다 못해 시퍼레졌고, 소리를 참는 듯 이를 악문 지홍의 이마에 힘줄이 툭 불거졌다.

“다음번엔 경맥을 끊을 것이다.”

이 지하 감옥을 통째로 얼려 버릴 만큼 냉랭한 목소리였다. 한마디 경고를 내뱉은 무호는 계단을 마저 오르며 그들을 지나쳐 갔다.

참담하게 으스러진 지홍의 손을 내려다보던 청연은 겁도 없이 무호를 돌아보았다. 그를 붙들고 이게 다 무슨 짓이냐며 묻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곳은 엄연히 그의 구역이었고, 그의 말이 곧 법이었다. 제가 무어라 첨언할 권리 같은 건 없었다.

뒤통수로 전해져 오는 따가운 시선을 느낀 무호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청연을 훑어보았다.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어 휑하게 드러난 목덜미에 매서운 눈길이 닿았다.

청연의 눈앞에 검은 소맷자락이 휙 하고 스쳐 지나간 건 순식간이었다. 묶었던 머리칼이 스르륵 흘러내리는 걸 알아챘을 땐 이미 무호의 손에 푸른 머리 끈이 들려 있었다. 눈 깜짝할 새 머리 끈을 강탈당한 청연은 그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

지하 감옥을 빠져나온 청연은 지홍의 손을 곁눈질로 살폈다. 밝은 곳에서 보니 가관이었다. 시퍼런 손가락이 이리저리 뒤틀려 마른오징어 다리 같은 꼴을 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손은 괜찮으세요?”

“예? 아, 괜찮습니다.”

“도를 쓰시는 분인데 손을 다치셔서 어떡해요.”

“이 정도는 금방 낫습니다.”

“제가 붕대라도 감아 드릴까요?”

물론 청연에게 붕대 같은 게 있을 리는 만무했지만, 심하게 다친 손을 보는 게 안쓰러워 건넨 말이었다. 그러자 지홍은 놀라 펄쩍 뛰어오르며 멀쩡한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청연에게서 한 보 물러났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눈으로 거리를 재며 조금 더 멀리 떨어져 걸었다. 옷자락이라도 스치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말이다.

심란한 마음을 안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 청연은 지홍에게 물었다.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그 사람은 어떻게 된 건가요?”

“그건 주군께 직접 여쭤보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

제가 묻는다고 걔가 답을 해 주겠나요.

그래도 이번 일로 한 가지 확실해진 게 있었다. 무호는 저를 감옥에 가두거나 죽일 생각이 없었다. 물론 제 하찮은 목숨은 그의 앞에서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니 그가 언제 마음을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만, 왠지 그러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걷던 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청연의 정신을 깨웠다. 마교의 본거지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라니,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 청연은 주변을 살폈다. 저쪽 담벼락 밑에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웬 애들입니까?”

청연이 묻자 지홍은 기다렸다는 듯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전에 잡혀 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아이들입니다. 주군께서 취임하시며 모두 풀어 주셨는데, 그중에 부모를 잃어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이곳에 남기로 했습니다.”

“아….”

“주군께서는 저 아이들이 아직 마공을 익히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고 판단하시어, 글공부하는 시간 외엔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지금은 평신도들과 함께 지내는데 나이가 차면 알아서 장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무호가 의외로 애들한텐 무른 편인 건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청연의 머릿속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그때, 청연을 발견한 한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청연에게로 쪼르르 달려왔다. 그러고는 커다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청연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선녀님! 책에 나오는 선녀님 맞죠?”

“나 말이야?”

얼떨떨해진 청연은 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청연은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견뎌 내느라 혼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선녀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어어? 나 여기 잡혀 왔, 아니, 그냥 왔는데. 근데 내가 왜 선녀야?”

“머리는 왜 풀었어요?”

“머리 끈을 누가 훔쳐 가서….”

“와! 그래서 선계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예요?”

기 빨린다. 제발 한 명씩 물어봐!

쏟아지는 질문에 청연이 난감해하자 지홍이 끼어들어 아이들에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씁.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이.”

그러자 금세 기가 죽은 아이들은 지홍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가 미간을 찌푸려 인상을 쓰자 겁을 먹고 저만치 달아나기까지 했다. 호위대 대주씩이나 되는 사람의 위엄을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 몰랐던 청연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저 애들이 어려서부터 시커먼 사내들만 보며 자라서 그럽니다. 요즘 한창 서책을 읽기 시작했다더니 선녀 이야기에 꽂혀 버린 모양입니다. 너그럽게 이해하십시오.”

“선녀…. 천마신교에서도 그런 걸 믿나요?”

“주군께서 이끄시는 현재의 천마신교는 이전과 그 결을 달리합니다. 종교적 색채는 옅어지고 아이들을 세뇌하는 일도 없어졌지요. 아이들이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이야기를 하든 주군께선 관여하지 않으십니다.”

원작에서의 마교는 말 그대로 악의 무리 그 자체였고, 천마를 광적으로 떠받드는 광신도들의 집단이었다. 그런 마교에서 아이들을 세뇌하지 않는다니 청연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래도 되는 건가?’

어찌 되었든 얌전히 방으로 되돌아간 뒤, 청연은 다시 감금되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무료하기 짝이 없는 나날들을 보낼 걸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이지 천마에게 날개옷을 빼앗긴 선녀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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