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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35)화 (36/145)

035화

식사 후에 잠시 자리를 비웠던 제하는 머지않아 말 한 마리를 끌고 객잔 앞에 도착했다. 준비를 마치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청연도 소리를 듣고 문 앞까지 나갔다. 그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말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웬 말이야?”

“멀지는 않지만 성도 외곽까지 나가야 하니, 말을 타는 게 객주님께도 편하지 않을까 싶어 빌려왔습니다.”

“나 때문에 말을 빌려 왔다고? 아니, 너 말 탈 줄은 알아?”

나는 제주도 수학여행 갔을 때 타 본 게 전부란 말이야!

“경공을 배우기 전에는 몇 번 타 보았으니 염려 마세요.”

“몇 번? 그게 몇 년 전인데?”

걱정스러운 청연의 물음에 제하는 씩 웃어 보이며 말 위에 올라탔다. 가뿐한 몸놀림으로 안장 위에 착지한 그는 청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객주님.”

“…….”

청연은 제하와 말을 잠시 번갈아 보다가, 결국 그의 손을 붙잡았다. 탄탄한 팔뚝이 청연의 몸을 끌어당겨 말 위에 앉혀 놓았다.

“천천히 갈게요.”

그렇게 말한 제하는 고삐를 잡고 슬슬 말을 몰기 시작했다. 청연은 긴장한 채로 뒤에서 뻗어 나온 그의 양 팔을 꼭 붙들었다.

말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꾸만 흔들거리는 몸이 불안했다. 청연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몸의 주인도 말 같은 건 타 본 적 없구나.

성도의 중심지를 벗어나자 제하는 조금씩 속도를 붙였다. 느리게 걷던 말이 걸음을 빨리할수록 청연의 불안감은 커졌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제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좀만 천천히….”

제하는 청연의 겁먹은 얼굴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속도를 늦췄다. 한시름 놓은 청연은 작게 중얼거렸다.

“와, 제주도에서 타 보고 이게 얼마 만이야.”

“제주도요? 그게 어딥니까?”

“그런 데가 있어. 그나저나 너는 애가 무슨 돈이 있다고 말까지 빌렸어?”

“애라니요. 벌써 제 키가 객주님보다 이만큼이나 큰데.”

“크면 얼마나 크다고. 겨우 손가락 한 마디만큼 차이 나면서.”

“금방 더 클 겁니다!”

제하는 늘 키 이야기에 민감했다. 제가 청연보다 작았던 시절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양.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자랄지 알고 있는 청연은 웃음을 삼켰다. 아직 놀릴 수 있을 때 실컷 놀려 둬야지.

“그리고 돈은 스승님께서 항상 넉넉하게 주십니다.”

“그래? 그럼 나 당호로 사 줘.”

“드시고 싶으세요? 지금 갈까요?”

“야, 농담이야, 농담.”

청연은 정말로 고삐를 돌리려 하는 제하를 만류하며 웃었다.

“당호로 사 주면 맛있게 받아먹던 그 꼬맹이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훌쩍 컸을까?”

“객주님께서 거짓말만 하지 않으셨다면 더 맛있게 먹었을 겁니다.”

“거짓말? 무슨 거짓말?”

“스승님께서 숙식비를 선불로 주셔서 제 돈은 필요 없다던 거짓말이요. 제게 돈을 받지 않으려고 그리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너 그거 알고 있었어?”

청연은 깜짝 놀라 물었다. 거짓말을 들킨 것보다도 자신이 5년 전에 대충 늘어놓은 말들을 제하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어려서 기억력도 좋은 건가.

“제가 바보도 아니고…. 그걸 몰랐을 리가요.”

제하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고삐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객주님께선 제게 너무도 다정하셨습니다. 남궁 공자님께도 마찬가지고요.”

“남궁 공자가 여기서 왜 나와?”

“제게는 그 공자님을 조심하라 말씀하시더니, 정작 객주님께선 공자님께 마음을 여시고 호형호제하지 않으십니까?”

“그게 부러웠어? 그럼 너도 형님이라고 불러.”

“…그런 거 아닙니다.”

두 사람을 태운 말은 어느새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방이 초목으로 둘러싸여 상쾌한 풀 냄새와 물에 젖은 흙냄새가 풍겨 왔다. 청연은 감탄하며 숲속을 둘러보았다.

“풍경이 좋다더니 진짜 좋긴 하네. 그동안 너무 일만 하면서 살았나 봐. 이렇게 한적한 데 오니까 마음이 다 편하다.”

“다음엔 더 멀리 갈까요?”

“더 멀리? 어디?”

“몇 년 후 약관이 되면 저도 비무대회에 참가할 계획인데, 그때 함께 가 주시겠습니까?”

“비무대회?”

아, 맞다. 원작 소설 속 제하가 참가해서 우승한 그 비무대회. 무협 세계관인 만큼 크고 작은 대회가 여기저기서 열릴 테지만 원작에서 언급된 대회는 단 하나였다. 그게 지금부터 4년 후에 열릴 예정이던가.

“벌써 준비하는 거야?”

“준비는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객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면 제게 큰 힘이 될 겁니다.”

“좋아. 같이 갈게.”

청연은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아가 다른 건 몰라도 비무대회에서 제하가 우승하는 그 장면은 아주 멋지게 잘 표현했단 말이지.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말이야.’

어려서부터 보아 온 아이가 노력의 결실을 보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면 얼마나 짜릿할까. 그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약조하신 겁니다?”

“약속할게.”

제하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흘러와 청연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머지않아 그는 손가락을 들어 언덕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쯤에서부터 걸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언덕을 넘어가자 제하는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춰 세웠다. 그는 먼저 말에서 내려 청연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고는 고삐를 나무에 단단하게 묶어 고정했다.

다행히 경사가 완만해 걷기에 힘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수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제하야.”

“네?”

“요즘 뭐 재밌는 일 없어?”

“재밌는 일이라니요?”

청연은 이걸 어떻게 돌려 물어야 하나 고민했다. 스승님에 대한 마음을 키워 가고 있는지, 지금 그 마음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지만, 직설적으로 물으면 제하가 민망해할 것 같았다.

“음, 너 이제 열여섯 살이잖아. 몸과 마음에도 크게 변화가 생길 것 같은데. 안 그래?”

“확실히 그렇긴 하죠.”

“예를 들면?”

제하는 눈을 굴리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답했다.

“육체적 변화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다 보니 좀 더 사내다워지고, 아,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내는 원래 그런 것이니 놀라지 않아도 된다고….”

“아니! 아니, 아니! 그런 거 말고!”

“예?”

청연이 기겁하며 손을 내젓자 제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런 걸 물으신 게 아닙니까?”

“그런 거 아니야! 마음! 마음의 변화는 어때?”

하마터면 사춘기의 신체 변화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을 뻔했다. 청연은 땀을 삐질 흘리며 고쳐 물었다.

“마음이라…. 저는 어려서부터 항상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심신을 수양했기에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으니 나아가 하고 싶은 것들,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지요.”

뭔가 핀트가 어긋난 것 같은데.

궁금증을 참지 못한 청연은 조금 더 직설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면 혹시 관심 가는 사람은 없어?”

“관심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보다 좀 더 마음이 쓰인다든가, 기쁘게 해 주고 싶다든가. 그런 사람 말이야.”

“아, 그런 분이라면 당연히 스승님이죠.”

확신에 찬 제하의 답을 듣고 청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스승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게 맞나 보다.

“스승님께서는 저를 어려서부터 돌봐 주시고 많은 걸 가르쳐 주셨으니까요. 물론 어려서는 그런 스승님을 대하는 것이 어렵고 서러울 때도 많았지만, 그때 객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이 흐르니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다. 스승님이랑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모두 객주님 덕분입니다. 제가 스승님의 가르침을 곡해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청연을 바라보는 제하의 눈빛이 따뜻했다. 두 사제의 관계가 원작 스토리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안심되었다.

“저기 샘이 있으니 잠시 쉬었다 갈까요?”

“난 괜찮은데. 괜히 나 때문에 쉬어 가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제가 기력이 부족해서 그래요. 혼자서 쉬면 쓸쓸하니 객주님께서 같이 쉬어 주세요.”

“오 년 전에 네가 나랑 같이 당호로 먹어 준 것처럼?”

제하는 밝게 웃었다. 그는 청연을 나무 그루터기 위에 앉히고, 저는 흙바닥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목이 마르지는 않으시냐 물으며 깨끗한 나뭇잎 하나를 주워 샘물을 떠 주기까지 했다. 크게 될 다정공이구나, 생각하며 청연은 물을 받아 마셨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해?”

“힘드세요? 제가 괜히 객주님을 모시고 나와 무리하시는 것은 아닐까 염려됩니다.”

“괜찮다니까.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힘드시면 꼭 말씀해 주셔야 해요.”

제하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며 덧붙였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월야초는 그 이름대로 음지에서만 자라는 풀이라고 합니다. 저쪽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용이 날아오르는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나오면 오른쪽 길로 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동굴 하나가 나올 거라고요.”

원작에서 그랬던가. 청연은 한 번 더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한 걸음 앞서 걸어가던 제하는 청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서부턴 독초가 많다고 스승님께서 일러 주셨습니다. 위험할 수준은 아니지만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으니 아무 풀이나 만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객주님께서도 기억해 주세요.”

“그럼. 당연하지.”

이래 봬도 벌써 무협 빙의 5년 차라고. 아무런 풀이나 무턱대고 만질 만큼 경솔하지 않아.

자신감에 찬 청연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야 말았다. 제가 빙의한 곳은 단순한 무협 세계가 아닌 무협 BL 세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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