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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28)화 (29/145)

028화

제하는 탁자에 얌전히 앉아 식사했다.

객주님께서 차려 주시는 음식은 항상 입에 잘 맞았다. 맛도 맛이었지만 그 고운 손으로 직접 요리하시는 모습을 떠올리자면 백 그릇을 비워 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객주님의 일을 덜어 드려야 하는데, 덜어 드리기는커녕 이렇게 일을 더해 드리다니.’

어제 청소를 도우려던 것도 그의 만류로 실패했으니, 다음부터는 객주님 몰래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나저나 숙수님의 건강이 호전되어 이곳에 머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지만, 스승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을 터였다.

다시 객주님과 떨어져 있을 생각을 하니 심란해져 절로 한숨이 나왔다.

“무슨 일 있어?”

“에?”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아무런 기척 없이 다가온 남궁세가의 삼공자가 탁자 바로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뭐지? 공자님께서 왜 나한테 알은척을 하시지? 날 언제 보셨다고?’

제하는 의아한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한숨 쉬길래.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하고.”

“아….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객주님께서 저 공자님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갑자기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것도 뭔가 수상하고.

제하는 저도 모르게 경계를 바짝 세웠다.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미안. 소개가 늦었지? 나는….”

“누구신지는 압니다.”

“그래? 알고 있었구나. 지나가다 널 우연히 봤는데 내 또래 아이는 오랜만인 것 같아서 반갑더라고.”

도경의 말투는 청연 못지않게 상냥했지만, 제하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남궁세가에는 직계와 방계 혈족을 제외하고도 꽤 사람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그중에 또래가 하나도 없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심지어 형님들도 계시지 않은가.

“옆에 앉아도 돼?”

“…….”

주저하던 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딱히 그를 내칠 명분도 없었다. 차라리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었다가 객주님께 그대로 전해 드릴 생각이었다.

의자를 빼내 제하의 옆자리에 앉은 도경은 그릇에 담긴 음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객주님 말고는 일하는 사람이 안 보이던데. 혼자서 영업하시는 건가?”

“아, 일하는 사람들이 더 있기는 한데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혼자 하고 계셔요.”

“무슨 사정?”

“그게….”

사실대로 답하려던 제하는 아차 싶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조심하기로 해 놓고 벌써 잊을 뻔했다.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

도경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턱을 괴었다. 객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면 그를 경계하지도 않았겠다 싶을 만큼 사람 좋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사실 그동안 많이 심심했거든. 좀 전에도 말했지만, 주변에 또래 친구들이 없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그렇지만 형님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아. 뭐, 그렇지. 형님들이 계시긴 하지.”

머리끝을 만지작거리며 머쓱하게 웃는 모습이 조금 어색해 보였다. 혹시 형님들과 친하지 않은 건가. 제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저는 혼자라서 그게 참 부럽습니다. 공자님께서는 형님들과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십니까?”

“그냥 차를 마시거나, 요즘 정세에 대해 논의하거나….”

“무예를 겨뤄 보기도 하십니까?”

“아니. 나는 형님들을 상대할 실력이 안 돼서.”

“아….”

“형님들은 여러모로 뛰어나시니까.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야.”

‘그렇구나. 나도 그렇게 본받고 싶은 사람이 있지.’

제하는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들어 경계도 내려놓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습니다. 심신을 수양해 꼭 따라잡고 싶은 분이 계십니다.”

“그래? 우리 꽤 잘 통하는 것 같네.”

도경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면 나랑 잠깐 나가서 놀다 올래? 나는 여기 지리를 잘 모르거든. 이왕 이렇게 말도 튼 거,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예? 어….”

그건 좀 곤란한데.

제하는 청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혹시 할 일이 있는 거면 신경 쓰지 마. 나는 그냥 방에 가서 그림이나 그리면 되니까.”

도경의 미소 띤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 그 얼굴을 보자 제하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주변에 또래 친구가 없다는 게 사실이고, 형님들과 친하지도 않다면 정말 외로웠을 것이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니까. 훌륭한 스승님을 모시고 있지만 친구를 사귀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아무리 그래도 객주님께서 조심하라고….

“미안. 내가 불편하게 했지. 난 이만 방에 가 볼게. 밥 맛있게 먹어.”

“으아…! 공자님 잠시만요!”

제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도경을 붙잡았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도경은 이내 햇살처럼 환하게 웃음 지었다.

***

그렇게 해서 공자님과 함께 외출하게 되었는데.

제하는 옆에서 걷고 있는 도경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객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같이 어울려도 되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는데, 생각보다 그리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대화도 술술 잘 통했고, 시장에서 당호로를 살 때도 이런 건 연장자가 사는 거라며 먼저 돈을 내시기까지 했다.

제하는 손에 들고 있던 당호로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고 보니 객주님께서도 이걸 좋아하셨는데. 다음에는 한 개 더 사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도경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희 아버지 말이야.”

“예?”

“혹시 몸이 좀 안 좋으셔?”

이게 무슨 소리지.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아, 혹시 스승님을 보신 건가? 하긴 스승님이 내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시니 틀린 말도 아니지.

“아뇨? 건강하셔요.”

“그래? 지나갈 때마다 약재 향이 나던데.”

“아, 그건 약재를 많이 다루셔서요.”

“왜? 약방이라도 차리신대?”

“아뇨, 그건 아닌데….”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예에….”

그런데 왜 자꾸 이런 걸 물으시지. 꼬치꼬치 질문을 던지는 도경에 제하는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이른 나이에 혼자되셨네. 젊으시던데.”

“예? 아. 젊어 보이시긴 하는데 알고 보면 연세가 꽤 많으셔요.”

“그래도 스물 몇 살 아니야?”

“그래 보이시긴 하죠. 근데 그것보다 훨씬 많으셔요.”

“몇 살이신데?”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는데…. 적어도 일흔은 되셨을걸요?”

동시에 도경이 입에 물고 있던 당호로를 툭 떨어뜨렸다. 휘둥그레진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제하를 응시했다.

“뭐?”

“에?”

“어?”

“예?”

***

청연은 초조하게 문밖을 내다보았다. 제하가 도경과 함께 외출했다는 사실을 소명에게 들어 뒤늦게 알게 되었다.

‘대인께서는 왜 말리지 않으셨습니까?’

‘그 정도 앞가림은 할 줄 아는 나이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걸 어떡해.

‘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그 자리에 서서 세 번 정도 밖을 내다보았을 때, 마침 저 멀리서 걸어오는 제하의 모습이 보였다. 양팔을 앞뒤로 흔들고 발을 쿵쿵 구르면서 힘차게 걸어오는 모습이 참 씩씩…

한 게 아니라 화난 거잖아!

제하는 얼굴을 잔뜩 구기고 뛰듯이 걸어왔다. 그 뒤로는 도경이 뒷짐을 진 채 딴청을 피우며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그새 싸운 거야? 아니,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순한 애가 저렇게 화가 난 걸 보니 정말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청연은 객잔 안으로 들어온 제하를 붙들고 물었다.

“아가, 무슨 일 있었어? 공자님이랑 싸웠어?”

“아가 아니… 제가… 그게… 공자님이 저보고….”

“너보고 뭐?”

“객주님 아들… 아들이라고….”

“어?”

제하는 얼굴까지 붉혀 가며 씩씩거리다가 결국 홱 돌아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아니….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니? 내 아들이란 소리 들은 게?’

그나저나 우리를 부자지간으로 오해한 건가. 대체 뭘 보고? 내가 그 정도로 나이 들어 보이는 거야?

청연이 제 얼굴 생김새를 따져 보고 있을 때, 뒤늦게 객잔 안으로 들어선 도경은 저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지나쳐 갔다.

“제가 착각을 좀 했나 봅니다.”

“공자.”

정신을 차린 청연은 도경을 불러 세웠다. 그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었다. 계단 앞에 멈춰 선 도경은 의아한 얼굴로 청연을 돌아보았다.

“어젯밤에 누가 제 방에 몰래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방에 들어갔더니 부채는 부러져 있었고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누군가 방을 뒤진 모양인데, 지금 객잔 안에 그런 짓을 할 만한 인물이 도경밖에 더 있겠나.

‘그거 너 맞지?’

그 질문에 도경은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되물었다.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부채 하나 부러진 게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앞으로는 문단속을 철저히 하셔야겠습니다.”

“…….”

“워낙 흉흉한 세상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도경은 씩 웃어 보였다.

‘저게 진짜… 끝까지 모르는 척하겠다고?’

청연은 인내심을 발휘해 화를 꾹꾹 눌러 참아야 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친 청연은 침상 위에 앉아 부러진 부채를 만지작거렸다.

“…….”

누가 이렇게 엉성하게 붙여 놓고 가래. 또 부러졌잖아.

이제 정말 너를 보내 줄 때가 되었나 보다.

청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 한쪽에 놓인 궤로 향했다. 길쭉한 문을 열어 내자 두 사람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종이 몇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궤 안쪽 비어 있던 한 귀퉁이에 부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종이를 걷어 낸 곳엔, 여전히 흉흉하게 날을 세운 대도가 놓여 있었다.

“바보야.”

청연은 낮게 중얼거리며 대도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이름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뭐가 그렇게 좋다고….”

호연.

너무나도 익숙한 서체로 정갈하게 새겨진, 대도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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