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22)화 (23/145)

022화

“이게 무슨 소리야?”

“뭐가 터졌나?”

시장의 상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동요하며 수군거렸다. 청연도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소리의 근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 뭔가 폭발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객주님, 방금 그 소리….”

해령이 입을 떼기 무섭게 다시 한번 쾅 하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진동으로 인해 청과상의 가판대가 흔들려 수북이 쌓여 있던 과일들이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무언가 신발을 툭 치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청사과 하나가 굴러와 발치에 놓여 있었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청연은 그 사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과…. 무호가 좋아하는….’

“객주님!”

그때 해령이 다급히 외치며 청연의 팔을 붙들었다.

“방금 그 소리요! 우리 객잔 있는 방향에서 났잖아요!”

“아….”

청연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왜지. 왜 이렇게 현실감이 없지.

분명 소리도 들리고 진동도 느껴지는데. 모든 장면이 느리게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정신 차리라며 소리치는 해령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들렸다.

객잔 근처에서 이렇게 큰 소란이 벌어질 일이….

그리고 가슴속에서 슬며시 고개를 든 건 미칠 듯한 불안감이었다. 청연은 손에 들고 있던 야채를 툭 내려놓았다.

“가자…. 가 보자.”

두 사람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아무리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도 객잔에 닿을 수가 없었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이 일제히 한곳을 바라보며 길을 막고 있었다.

빨리 가야 하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걸 확인해야 하는데.

자꾸만 사람들에게 막혀 나아갈 수가 없었다. 청연은 점점 커지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라는 말을 반복해 외쳤다.

“아!”

뒤에서 들려온 짧은 비명에 돌아보니 해령이 사람들에 치여 넘어져 있었다. 부랴부랴 돌아가 해령을 일으켜 주려는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리는 목소리에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래. 마교인들이 저렇게 많이….”

“말세다, 말세야. 대낮에 저리도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그 소문이 틀린 건 아닌가 봐.”

“무슨 소문?”

“마교에서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문!”

손끝이 덜덜 떨렸다. 눈앞이 뱅글뱅글 돌고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마교에서 왔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럼 무호는?

‘왜 하필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청연은 급히 해령을 일으키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는 누구와 부딪히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되는 대로 밀치고 인파에 밀리면서도 앞만 보고 나아갔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닿은 곳은 역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객잔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큰 구멍이 벽에 뚫려 있었다. 그리고 객잔 안에서부터 밖으로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인파의 행렬이 이어졌다. 가운데에 있는 누군가를 에워싼 채.

“안 돼….”

청연은 중얼거리며 앞에 서 있는 구경꾼들을 밀쳐 냈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자 인파에 둘러싸여 있는 그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아…. 안 돼….”

무호는 구속구에 온몸이 칭칭 감긴 채 그들에게 끌려 나오는 중이었다. 희번덕거리는 눈은 여느 때보다도 매서웠고 얼굴과 옷에 피가 잔뜩 묻어 있어 지옥에서 돌아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피가….”

다쳤어? 많이 다친 거야?

그 충격적인 모습에 청연이 앞으로 달려 나가려 하자 해령이 팔을 붙잡았다.

“가시면 안 돼요!”

“애가 다친… 것 같은데…. 잠시만.”

“안 돼요, 객주님! 너무 위험해요.”

해령은 사정사정하며 청연을 놓아주지 않았다. 여기서 끼어들면 정말 위험하다, 가만히 계셔야 한다고 설득하는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결국 모두가 객잔 밖으로 쏟아져 나왔을 때, 그 수는 수십이 아니라 백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쇠사슬을 비롯한 온갖 구속구를 몸에 휘감은 무호는 그들에게 끌려 나오면서도 격렬히 저항하는 중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큰 상처가 없고, 주변인들이 다리를 절거나 팔을 감싸고 있는 걸 봐서는 무호의 몸에 묻은 피가 그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충격이 가시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데.

청연은 조금 전 그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내가 떠났으면 좋겠어?’

‘네가 가고 싶다면 막을 생각은 없어.’

그런 말을 해서일까.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머리가 정상적인 사고를 거부하는 것만 같아, 청연은 지난 일들만 끊임없이 되짚어 보고 있었다. 무호의 시선이 자신에게 붙박여 있는 것도 모르는 채.

어떻게 된 걸까. 어떻게 알고 왔을까.

송원인가? 그 사람은 무호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객잔 손님 중에 마교도가 숨어 있었나? 아니면 도박장? 시장?

경우의 수는 많았다. 그동안 너무나도 경솔했다.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하도록 꼭꼭 숨기거나, 아니면 차라리 일찍 떠나게 해야 했는데.

지금 이 상황이 전혀 현실 같지 않아, 청연은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의 눈이 제대로 마주쳤을 때까지도.

“…….”

‘왜 그렇게 봐….’

왜 그렇게 상처받은 눈으로, 생전 처음 보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건지 청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주변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뭐가 어떻게 된 거래?”

“저 객잔에 마교 애새끼 하나가 숨어 있었다잖아. 그래도 알아서 데려가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게.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객잔 주인이 알아채고 정보를 팔아넘겼다는데?”

‘어? 그게 무슨…. 내가 언제. 내가 왜 무호를 팔아넘겨.’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청연은 그 말을 꺼낸 사람을 부여잡고 물었다.

“객잔 주인이 팔아넘겼다니, 어디서 그런 말을 들으신 겁니까?”

“에? 아, 사람들이 다들 그러던데요? 객잔이 저렇게 무너질 걸 알면서도 밀고한 걸 보면, 돈을 아주 두둑하게 받았겠다고….”

“…….”

청연은 여전히 저를 바라보는 무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나 아니야….”

“…….”

“나 진짜 아니야….”

여기서 하는 말이 그에게 전해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외치고 싶었다. 절대 아니라고. 누가 그런 말을 지껄였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너는 전음 할 줄 알잖아. 뭐라고 말 좀 해 봐. 내가 시장에 다녀오겠다고 했잖아. 다녀와서 저녁에 맛있는 거 해 주겠다고 그랬잖아.’

그러나 무호는 말없이 청연을 바라보던 시선마저 거두어 버렸다. 저항을 멈추고 체념한 듯 보이는 옆모습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너는 나 믿어?’

‘딱히.’

그에게 업혀 가던 그날 밤에도, 믿지 않는다고 했었지. 그렇게도 믿음을 주지 못했던 걸까. 너한테 나는….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 난장판 속에 끼어들어 그를 도와줄 능력도 없고, 주변에서는 이상한 말들만 들려오고.

설마 원작에서도 모든 게 다 누명이었던 걸까. 억울한 누명을 쓴 유청연이 천마가 된 무호에게 잡혀가 죽을 때까지 고문당한 거라면.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오!”

때마침 어디선가 떨어진 벼락같은 호통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거기에는 고풍스러운 녹색 비단옷을 차려입고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녹색 옷을 입은 장정 여럿이 줄지어 따랐다.

마교도의 선봉에 서 있던 사내는 노인을 보더니 흥미롭다는 듯 미소 지었다.

“당가주께서 직접 행차하시다니요.”

그러니까 저 백발노인이 사천당가의 가주라고.

고집스러운 인상의 그는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 키와 곧은 자세를 자랑했다. 매서운 기세를 품은 채 위엄을 풍기며 걸어오는 모습이 명문세가의 가주다웠다.

그는 자리에 멈춰서 주변 상황을 눈에 담았다. 노기 서린 눈이 엉망이 된 객잔과 구속구에 묶여 있는 무호를 훑고 지나갔다.

“감히 우리 사천 땅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소.”

선봉에 서 있던 마교도는 그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저희 집 개 한 마리가 집을 나가서 찾으러 온 것뿐입니다.”

“개라면….”

“저기 묶여 있는 놈 말입니다.”

그는 무호를 가리키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 찾았으니 가 보려던 참입니다만.”

“이런 소란을 벌여 놓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오?”

“그냥 넘어가도록 두시는 게 이로울 겁니다. 겨우 저희 집 개 하나 찾아가는 길이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몸 상하십니다.”

“지금 협박하는 건가.”

“협박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저희는 누구네들처럼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서 말입니다. 하나 소란에 관해서는 사죄드리겠습니다. 저놈이 워낙 독한 놈인지라.”

“…….”

“그럼 저흰 이만.”

그는 뒤에서 대기하며 서 있던 마교도들에게 외쳤다.

“가자!”

분개한 당가 사람들을 뒤로한 채, 마교도들은 줄지어 행렬을 이어 나갔다. 청연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서 있던 무호도 덩달아 그들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안 돼….’

청연은 그의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떨리는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여전히 모든 게 꿈같았다.

원작에서는 청연이 그를 팔아넘겼다고 했으니, 저만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게 괜찮을 줄 알았다. 그렇다면 무호도 마교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떤 운명은 노력해도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땐 너무 늦어 버렸다.

마교의 행렬이 모습을 감춘 뒤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청연은, 이윽고 객잔 안에서 들려온 비명에 정신이 들었다.

‘해령…?’

제 팔을 잡고 있던 해령은 어느새 사라졌고, 어린 여자의 비명이 객잔 안쪽에서 들려왔다. 청연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붙들고 뻥 뚫려 버린 벽을 넘어 들어갔다.

“하….”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탁자와 의자는 모두 산산조각이 난 채 널브러져 있었고, 그 가운데 익숙한 사람이 창백해진 얼굴로 누워 있었다.

“객주님. 우리 오라버니…. 오라버니 어떡해요?”

바닥에 주저앉은 해령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정신을 잃은 해우의 배에 난 상처를 손으로 꾹 압박하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붉은 피가 고여 웅덩이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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