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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9)화 (20/145)

019화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꿈속에서 들었던 세화라는 이름을 그가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 아는 걸까. 처음부터 무언가 알고 접근한 걸까.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음독까지 한 데다 스스로도 과거를 알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에서 순순히 맞는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일단은 무조건 발뺌하면서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캐내 보기로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맞을 텐데요. 유세화, 당신 본명.”

“무언가 착각하신 듯싶습니다. 누굴 찾고 계신 건지 알려 주신다면 제가 한번 알아보겠….”

“모르는 척하시겠다?”

송원은 팔짱을 끼며 의자에 기대앉았다. 입가에선 차가운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면 계속 모르는 척하세요. 어차피 시간은 많습니다. 밤은 기니까요.”

입을 열 때까지 보내 주지 않겠다는 건가. 청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마음이 바뀌실 때까지 구경이나 계속할까요.”

그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눈이 크게 뜨였다.

“지원자가 나왔군요.”

청연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의 말대로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검은 옷을 입은 평범한 남자였다.

“재밌지 않습니까. 그까짓 돈이 뭐라고 목숨까지 거는 자들이 있다는 게.”

“하나도 재밌지 않습니다.”

송원은 청연을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세화가 맞는다고 시인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숨긴 물건이 있다고 했지. 그걸 찾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걸까. 저 사람 말고도 그걸 찾는 사람들이 있을까.

청연은 답답한 심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사실 저들 중 하나는 제가 심어 놓은 사람입니다.”

송원이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제가 사람을 심어 두고, 가장 값진 물건이 나올 때 참가하라고 일렀습니다. 저기 수염을 기른 자가 그자입니다.”

“사람 목숨을 가지고 노시는 겁니까.”

“음, 정확히 말하자면 아닙니다. 저는 내기에 걸린 상품을 모를 뿐이지, 어떤 방식으로 내기가 치러질지 귀띔받고 있으니까요. 저 중에 어떤 것이 약이고 어떤 것이 독인지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저자가 죽을 일은 없습니다.”

이제는 짜고 치기까지. 어이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돈이라면 충분히 있지 않으십니까.”

“그래도 욕심이라는 게 있는지라.”

“그렇다면 직접 나서지 않으시고요.”

“체면이라는 것도 있는지라.”

청연은 그와의 대화를 포기하기로 했다. 시선을 옆으로 옮겨 또 다른 지원자를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목숨을 걸고 나왔을 사람.

검은 옷을 입은 그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고 체격이 다부졌다. 그의 얼굴을 뜯어보던 청연은 무언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평범해도 너무 평범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었다면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했을 만큼. 얼굴에서 잡아낼 특징 하나 없었다. 이 정도로 평범한 사람은 난생처음 보는 것 같았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던 걸까. 남자의 고개가 들렸다. 그의 눈길이 청연이 앉아 있는 창가를 향했다.

‘어, 눈 마주쳤다….’

둘 중 누구도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말없이 서로를 응시할 뿐이었다. 청연은 그 눈빛이 왠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 사람 혹시….’

“그럼 두 번째 내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두 분은 각자 탁자에 놓인 사발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무력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탁자 앞에 섰다.

한바탕 쟁탈전이 벌어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선택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송원이 심어 둔 남자가 먼저 사발 하나를 집어 들었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도 불평 없이 다른 하나를 집었다.

“선택하신 것이 과연 약탕일지 독탕일지! 자, 그럼 먼저 선택하신 이쪽 분부터 시원하게 들이켜시지요.”

관중이 웅성거렸다. 수염 난 남자가 망설임 없이 사발에 든 검은 액체를 마시기 시작하자 웅성거림은 환호로 바뀌었다.

“세상에, 잘도 마시네. 목숨이 걸렸는데도 아무렇지 않은가 봐.”

“대장부네, 대장부야.”

대장부는 무슨. 다 짜고 치는 판인걸. 청연은 속으로 생각하며 그의 표정 변화를 자세히 살폈다.

액체를 벌컥벌컥 삼켜 내고 입가를 손등으로 닦아 낸 남자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건 분명 자신감 넘치는 승리의 미소였다.

역시나 탕약이었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청연은 흡족하게 웃고 있는 송원에게 쏘아붙였다.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결과는 끝까지 지켜봐야겠죠.”

상대가 독을 마시고 죽는 꼴을 꼭 봐야겠다는 거군. 이런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본성을 숨겨 온 건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청연은 제 사람 보는 눈을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진행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그럼 다음 분도… 어?”

동시에 모두가 놀랐다. 독이 들었음이 분명한 사발 속 액체를,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이켰다.

이윽고 그가 사발을 내려놓았다. 절반이 비어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이미 피를 토하며 쓰러져야 했을 남자는 멀쩡한 얼굴로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어떻게 저걸 마시고 살아 있을 수가 있지? 극독이라며?”

“독이 안 든 거 아냐? 둘 다 탕약이었는데 거짓말을 한 거지.”

“에이, 설마. 거짓말을 왜 하겠어?”

관중석이 소란스러워졌다. 제각각 내기의 진위를 따지기에 바빴다. 그러자 진행자는 의자 위로 올라가 팔을 휘휘 흔들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러분!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내기는 어떻게 되는 거요?”

“승부를 가려야지!”

이 사람들은 정말 누군가 독을 먹고 죽는 걸 보고 싶었던 걸까. 승부가 제대로 갈리지 않은 것에 대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진행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사람들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송원이 말했다.

“어쩌면 제가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셔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물론 이기는 게 좋겠지만 진다고 해도 그리 나쁜 건 아닙니다. 오늘 밤 그보다 더 큰 수확이 있을지도 모르니.”

“…….”

“당신이 숨겨 놓은 그 물건 말입니다.”

청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관중의 원성은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그때, 객석에서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둘 중 한 명은 독에 내성이 있는 걸지도 모르니, 둘이 사발을 바꾸어 마셔 보는 게 어떻겠소?”

옳소, 좋은 생각이오, 하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송원과 내기를 짜고 치려던 진행자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스쳤다. 수염이 난 남자 또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때,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수염이 난 남자의 사발을 빼앗아 들었다. 무얼 하려는 건지 사람들이 알아채기도 전에, 그는 사발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남아 있는 탕약을 순식간에 비워 냈다.

탁, 소리를 내며 내려놓은 그릇은 물기 한 방울 없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오, 대장부는 저쪽이었구먼!”

“대단해! 이봐, 당신도 마셔야지. 뭐 하는 거야!”

쏟아지는 원성에 수염이 난 남자는 덜덜 떨며 송원과 청연이 앉아 있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송원은 그를 외면할 뿐, 나서지 않았다.

“나는… 나는 기권하겠소!”

사색이 된 그가 외치자 다시 한번 야유가 터졌다.

청연은 한숨을 쉬며 송원을 노려보았다. 사람을 저 지경까지 몰아 놓고 여유롭게 차나 홀짝이는 머리통을 한 대 때려 주고 싶었다.

이윽고 기권을 외친 남자가 냅다 도망을 시도했고, 그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1층이 시끌벅적해졌다. 그사이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상품으로 걸렸던 대도를 집어 들었다. 마치 별거 아니라는 양,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빙빙 돌리기까지 했다.

그와 청연의 눈이 다시 한번 마주쳤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귀를 톡톡 가리켰다.

“이제 하던 얘기를 마저 하시겠습니까.”

송원이 청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에 숨겼습니까, 그 물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그쪽이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하하, 여전히 기억이 안 나시나 봅니다.”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 알려 주신다면 기억이 날 것도 같습니다만.”

허공에서 마주친 두 사람의 시선 사이로 불꽃이 튀었다. 절대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고, 청연은 마음먹었다.

“어떤 물건인지 알려 드릴 수는 없지만, 기억이 나도록 도와드릴 수는 있지요.”

“이번엔 기억을 되찾는 독이라도 먹이시겠습니까.”

“그런 독이 세상에 어디 있답니까. 영약이라면 모를까. 저는 영약보다 더 좋은 걸 준비했습니다.”

“이 하찮은 몸에게 영약보다 좋은 걸 주신다니 아주 기대가 됩니다.”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하는 청연의 대답에 송원은 피식 웃으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기대를 충족시켜 드려야 할 텐데요.”

그가 품속에서 꺼내 든 것은, 날카롭게 빛나는 비도였다.

“…….”

‘저 미친놈이….’

그는 칼끝을 살살 쓰다듬으며 청연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십니까?”

“조금 전에 커다란 마도를 보았는데, 그따위 비도가 눈에 차겠습니까. 너무 작습니다.”

“그래요? 이 친구는 당신이 마음에 든다는데.”

“사양하겠습니다.”

“…잘도 까부는군.”

동시에 칼날이 청연의 목에 닿아 왔다. 소름 끼치는 서늘함에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여전히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사지가 원망스러웠다.

“어딨어.”

위협적인 목소리에 청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수를 세기 시작했다.

14… 15… 16….

이윽고 17을 외치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견고히 닫혀 있던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칼을 겨누고 있던 송원이 오만상을 쓰며 외쳤다.

“어떤 놈이야!”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듯한 발걸음으로, 당당히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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