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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8)화 (19/145)

018화

청연은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필 저를 바라보며, 원작의 운명을 줄줄이 읊어 댄 여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쪽으로.”

송원과 함께 들어간 방에는 창이 뚫려 있어 1층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였다. 청연은 자리에 앉아 준비되어 있던 차를 따라 마시며 목을 축였다.

“그 여인이 과거에 점쟁이였다 하셨습니까?”

“하하, 그걸 아직도 신경 쓰고 계십니까. 헛소리이니 그냥 잊으십시오. 이럴 때 보면 참 순진하십니다.”

순진하기는….

청연은 결국 포기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1층에서 벌어지던 도박판은 이미 모두 정리된 후였다. 사람들은 중앙 공간을 원형으로 비워 둔 채 얌전히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진행자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중앙으로 뛰어 들어가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외쳤다.

“자,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산금장의 전매특허! 오늘 밤에도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상품? 이것도 도박인가?

“단주님께서도 참여하실 생각이십니까?”

청연의 질문에 송원은 은은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보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상품이라는 게 뭡니까?”

“진귀한 물건들입니다. 영약이나 비급서일 때도 있고, 때로는….”

마침, 도박장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검은색 상자를 가지고 등장했다. 고풍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상자가 진행자의 손에 들렸다. 그는 관중의 기대감을 증폭시키려는 듯 상자를 높게 쳐들고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저건 영약처럼 보이는군요.”

송원은 턱을 괸 채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치 다른 걸 기대했다는 듯이.

이내 진행자가 상자의 뚜껑을 열었고, 그 안에는 동그란 단환이 하나 들어 있었다.

“첫 번째 물건은 바로! 소림사의 소환단1)입니다!”

동시에 관중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청연도 놀라 송원에게 물었다.

“소환단이면 아주 귀한 영약 아닙니까? 저런 물건을 어떻게….”

“돈이 되는 것은 다 이런 곳으로 흘러들어 오게 돼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무관심해 보였다. 반면에 청연은 누가 소환단을 차지하게 될까 흥미가 생겨 목을 쭉 빼고 내려다보았다.

진행자는 상자의 뚜껑을 도로 닫으며 큼큼 헛기침하고서는 말했다.

“이번 판은 꼬리 붙이기로 승부를 가릴 겁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들은 나오셔서 여기 탁자에 앉아 주세요.”

우레와 같던 함성과 다르게, 선뜻 참가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앞으로 나선 사람은 딱 두 명이었다. 20대로 보이는 청년 한 명과 청연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중년 남성 하나. 바로 얼마 전 객잔에서 두들겨 맞던 장 씨였다.

‘세상에. 그 꼴을 당하고도 아직 못 끊은 거야?’

청연은 혀를 내둘렀다.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데다, 죽기 직전까지 맞았던 이를 또 이런 데서 발견하다니.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런 사람이 왜 영약을 탐내지?”

청연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송원이 답했다.

“다 돈 아니겠습니까. 저걸 팔아 또 도박을 하겠지요.”

“단주님께서도 장 씨를 아십니까?”

“그럼요. 여기 올 때마다 봅니다.”

탁자에 앉은 두 사람은 이미 시합을 시작한 지 오래였다. 모두의 이목이 그들을 향해 있었다.

“그러면 이번 내기에서 이기는 사람이 소환단을 차지하고. 지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릅니다.”

“장 씨는 그럴 돈이 없을 텐데요.”

“꼭 돈으로 값을 치르란 법은 없습니다.”

순간, 청연은 송원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돈이 아니면 뭐로 치르는데?’

“그렇다면….”

“저길 보세요. 장 씨가 질 것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장 씨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더니 이내 들고 있던 패를 내려놓았다. 명백한 패배였다.

“승자가 가려졌군요.”

소환단은 청년의 손에 쥐어졌다. 그는 기뻐하며 상자를 꼬옥 끌어안았다. 반면 장 씨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제 어떻게 됩니까?”

“글쎄요. 제가 알기론 오늘이 저자에게도 마지막 기회였을 텐데….”

곧이어 우락부락한 몸집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장 씨를 에워쌌다.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아악! 살려 줘!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내가 다음 판은 꼭 이길게! 제발!”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도박꾼에게는 도박꾼다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 씨는 사내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발악해 댔다. 그의 모습이 자취를 감춘 후에도 한동안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청연은 할 말을 잃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음이 불편해져 그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방 안은 침묵에 잠겼고, 오래 지나지 않아 다음 내기가 시작되었다. 이번 상품은 아주 크고 기다란 물건으로, 무명천에 둘둘 싸여 있어 그 정체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오. 이번엔 재밌네요.”

송원이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고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검인가? 도일 수도….”

진행자는 이전처럼 물건을 높게 들어 보였다. 다만 이번에는 무게가 상당한 듯 다른 사내들의 힘을 빌려야 했다.

“그럼 이번 상품을 공개하겠습니다.”

무명천이 스르륵 벗겨져 내린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대도였다.

검고 반질반질한 자루에는 붉은 술이 달려 있었고, 넓은 면적의 칼날이 위로 살짝 휘어져 있어 맹렬해 보였다. 게다가 평범한 사람이 보더라도 보통 물건이 아님을 알 만큼 사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살짝 닿기만 해도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갈 것처럼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평범한 대도가 아닌, 마도입니다.”

진행자가 말을 이었다.

“전장에서 수천 명의 목을 벤 극악무도한 놈이지요. 피와 원기가 깃들어 사악한 기운을 지녔으니, 쓰는 사람에 따라 영광을 부르기도, 재앙을 부르기도 하는 물건입니다. 평범한 이가 주제도 모르고 휘둘렀다간 자멸하게 될 겁니다.”

관중이 술렁거렸다.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물건인 데다, 사악한 기운까지 품고 있다니 사람들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청연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오는데….’

거기서 나오면 안 되는 거잖아. 아직 등장하려면 한참 멀었잖아. 그만 들어가! 썩 꺼져!

그러니까 그 대도는, 원작에서 무호가 천마가 된 후에 주로 사용하던 무기였다.

사천이 마교에 함락된 뒤, 청성파의 무기고에서 발견되어 천마에게 빼앗긴 바로 그 물건이었다. 검보다는 투박해 보이지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대도를 무호는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며 현월도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검을 주로 사용하는 청성파에서 왜 그런 무기를 갖고 있는지 의아했는데, 이런 식으로 흘러들어 온 거였어? 누가 저걸 가져다가 팔기라도 한 거야?

“이번엔 정말 귀한 물건인 만큼, 보다 특별한 방식으로 내기를 해 볼까 합니다.”

진행자의 앞에는 사발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각 사발 안에는 불투명한 검은색 액체가 들어 있었는데, 겉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앞에 놓인 사발 중 한 개는 기력 보충에 도움이 되는 탕약이 들어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한 개는 단 한 모금만 마셔도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극독이 들어 있지요.”

…뭐?

“이번에도 두 분을 모시겠습니다. 각자 사발 하나씩을 골라 마시고 숨이 붙어 있는 쪽이 승자가 되는 겁니다.”

청연은 숨을 흡 들이쉬었다. 머리가 띵해졌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제 목숨까지 걸고 내기를 하겠다고? 겨우 저 대도 하나 얻자고?’

이건 정말 아니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다.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어… 음… 단주님. 저는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청연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딴 걸 보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객잔에 돌아가서 무호에게 글이나 가르치는 게 더 생산적이겠다.

“왜 이리 서두르십니까.”

송원이 청연의 손목을 잡았다. 손끝에 은근한 힘이 실려 있었다. 청연은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이런 자리가 불편합니다.”

“앉으세요.”

싸늘한 명령조였다. 날카로운 눈빛이 청연을 훑었다. 항상 웃고 있던 얼굴이 차갑게 굳어져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흥이 깨지지 않습니까.”

이윽고 살짝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가 서늘한 눈매와 대비되어 더욱 기괴한 인상을 주었다.

“…….”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잘못 걸렸다.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무는 건 위험하다고, 청연의 본능이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급히 할 일이 생각나서 가야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윽.”

순간 온몸의 힘이 풀렸다. 팔다리가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의자 위로 주저앉은 청연은 눈앞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았다.

“예, 음독하셨습니다.”

송원이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째서….”

청연이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눈을 깜빡이고 혀를 놀리는 것뿐이었다. 어째서일까. 제게 뭘 원하는 걸까 고민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비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릴 테니. 그때까지 객주님께선 저와 담소나 나누시면 됩니다.”

“담소… 라니요.”

“객주님께서 숨기신 그 물건에 대해 말입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숨긴 물건이라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과거에 대한 비밀이 당장이라도 밝혀질 것만 같았다.

송원은 느릿한 손길로 찻잔을 들더니 한 모금 마시고서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유세화. 당신 이름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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