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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4)화 (15/145)

014화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뒤, 청연은 아픈 몸을 이끌고 침상에 드러누웠다.

“너 대체 왜 그랬어?”

“…….”

“누가 너보고 밥값 하래? 하고 싶었으면 일이나 돕든가. 왜 거길 끼어들어?”

놀란 마음에 종알종알 잔소리를 늘어놓는데, 그에게 불려 온 무호는 맞은편에 앉아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반성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 듣고 있어? 응? 천무호.”

“들려.”

“사람 함부로 치는 거 아니야. 그러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다시는 그러지 마.”

“…알았다고.”

마지못해 대답하는 얼굴에 귀찮음이 가득했다. 제대로 듣기는 한 건지. 앞으로도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라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무협 세계관이라도 그는 이미 마교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었다. 그렇게 된 이상 지금부터는 보다 평범한 인생을 살길 바랐다. 무조건 강해지기 위한 삶이 아닌, 사람들과 어울리며 공존하는 삶을.

“일이 생기면 주먹이 아니라 대화로 먼저 해결하는 거야. 알겠어? 앞으로 사람 안 때린다고 나랑 약속해.”

“…….”

“약속해, 안 해?”

“해.”

어렵사리 답을 받아 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가 자라온 환경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제하는 얘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자주 울기는 해도 의젓하고 어른스럽고. 아, 생각하니까 보고 싶네. 아가 잘 지내고 있으려나.

문득 생각이 딴 길로 샌 청연은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종이 한 장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그 사람들이 흘리고 간 건데 뭐라고 쓰여 있는지 좀 읽어 주라. 차용증 같던데.”

장 씨를 잡으러 왔던 남자가 무호에게 두들겨 맞는 중에 떨어뜨린 것을 혹시 몰라 주워 왔다. 빌린 돈의 출처가 적혀 있는 것 같았다. 마침 무호가 탁자 근처에 있었기에 그에게 부탁했다.

무호는 말없이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뭐라고 쓰여 있어?”

“…….”

“응? 왜 답이 없….”

“몰라.”

그는 종이를 집어 청연에게 건네주었다. 먹으로 쓰인 글자를 바라보는 눈길에 착잡함이 묻어났다.

“뭘 몰라?”

“글.”

“글 읽을 줄 모른다고?”

“…….”

글을 못 읽어?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열다섯 살이 되도록 글도 안 가르쳤다니. 자고로 사람은 읽고 쓸 줄 알아야 견문도 넓어지는 것을!

청연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자칫하다 그의 기분을 해칠까 표정을 갈무리했다. 모르는 건 가르치면 그만이었다.

“괜찮아! 모르면 배우면 되지. 내가 가르쳐 줄게.”

“필요 없어.”

“너 그 필요 없다는 말 좀 그만해. 뭐 다 필요 없대.”

청연은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붓을 꺼내 왔다.

공중도덕에 글까지, 앞으로 가르쳐야 할 게 산더미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도 이 세계에서는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자, 쥐어 봐.”

무호가 말을 무시하려 하자 청연은 그의 손에 붓을 억지로 쥐여 주었다. 처음에는 자세가 엉망이었으나 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으며 교정해 주니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음, 그런데 뭐부터 가르쳐야 하지? 숫자? 하늘 천 따 지? 아니다. 일단은 획 긋는 것부터 천천히 하자.

청연은 그의 뒤에 서서 붓 위로 손을 감싸 쥐었다. 크고 선이 굵은 손 위에 길쭉하고 고운 손이 겹쳐졌다.

그대로 붓에 먹을 묻혀 종이 위에 가져다 대고 가볍게 미끄러트렸다. 두 개의 손에 쥐어진 붓이 약간은 어설픈 획을 그려 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보기 좋았다.

“어때? 이렇게 획만 긋는 것도 재밌지 않아?”

“…….”

“기본부터 차근히 시작하면 금방 배울 거야. 아마 책이 있을 텐데, 이따가 한번 찾아볼게.”

“귀찮아.”

“귀찮아도 해. 읽고 쓸 줄 알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무호는 귀찮다 말하면서도 종이에 새겨지는 획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사용해 보는 붓과 먹이 신기한 듯이.

청연은 어쩐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 속 악역에게 처음으로 글을 가르치는 사람이 된 거잖아?

그는 다시 한번 고민했다. 제목을 <천마의 스승님이 되었습니다>로 수정해야 하나.

***

그 후로도 글공부는 계속되었다. 역시 머리가 좋은 건지 빠르게 글을 익히는 무호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게 가르치는 보람이구나.

그는 늘 귀찮다, 하기 싫다, 필요 없다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막상 자리에 앉혀 놓으면 진지하게 책을 읽고 필사했다. 참 기특한 일이었다.

다만 붓을 잡는 자세가 매번 이상하게 달라진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청연이 손을 잡고 교정해 주면 곧잘 고치고는 했다.

아침 장사가 끝나고 한가로운 오후, 청연은 식당 의자에 늘어져 필사 중인 무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건 아무 문제 없으면서 또 자세가 틀려 서체가 삐뚤삐뚤 어지러웠다.

머리도 좋은 애가 왜 저러는지. 일부러 그러는 건가.

“천십칠.”

“왜.”

“너 그 사과는 어디서 났냐.”

청연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사과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한입 베어 문 청사과가 마치 방금 따 온 것처럼 싱싱해 보였다. 분명 객잔 주방에는 사과가 없었는데.

“시장에서.”

“샀어? 너 돈 없잖아.”

“그냥 주던데.”

“청과상 그 짠돌이 아저씨가 그냥 줬다고? 어떻게?”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러던데. 다 가져가라고.”

이런. 설마 그 ‘죽여 버리겠다’ 눈빛으로 쳐다본 거니.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었을 청과상 아저씨를 생각하니 측은해졌다.

“널 어떡하면 좋으니….”

“그래도 하나만 가져왔어.”

“그래…. 착하다. 다음엔 돈 줄 테니까 그걸로 사라….”

혹시 돈 세는 방법도 가르쳐야 하나. 갈 길이 구억 만 리였다.

청연은 나른하게 탁자에 엎어진 채로 무호의 필사를 지켜보았다. 붓을 이상하게 쥐고 있는 자세는 여전했다. 이쯤 되면 자기만의 고유한 서체를 만들려고 노력 중인 건가 싶기도 했다.

“서체가 아주 개성 있구나. 춤을 추다 못해 날아가겠어.”

“칭찬인가.”

“칭찬이지. 기백이 넘쳐흘러서 지나가던 이무기도 이걸 보면 승천할 거야.”

“신묘하군.”

“이걸 이마에 붙여 놓으면 곤륜산의 요괴들도 가까이 오지 못할 거야. 대단해.”

“영험하군.”

청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무호의 옆에 섰다. 그의 손을 잡아 붓을 제대로 쥐게 하고 획을 그으니 드디어 제대로 된 모양의 글자가 그려졌다.

그런데 여기서 손만 떼면 다시 돌아간단 말이지.

쳥연은 그의 손을 잡은 채 몇 글자를 더 써 내려갔다. 이번에는 감을 좀 잡길 바라며.

“아 참, 그러고 보니까 네 이름 쓰는 법을 안 가르쳐 줬네.”

그 중요한 걸 깜빡하다니. 이제라도 생각나서 다행이었다.

“중요한 거니까 잘 봐.”

그의 이름을 쓰려는데, 마침 창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와 종이 한 귀퉁이가 팔랑거렸다. 청연은 무호가 먹던 사과를 집어 한입 베어 물고는 종이 위에 올려놓아 고정했다. 그리고 차분히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갔다.

“이게 네 이름이고.”

그러던 중, 문득 제 긴 머리가 흘러내려 무호의 목덜미에 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혹시라도 간지러울까, 머리칼을 한쪽 어깨 너머로 쓸어 넘겼다. 그리고 세 글자를 더 적어 내려갔다.

“이건 내 이름.”

굳이 내 이름까지 가르칠 필요는 없지만. 스승님으로 생각하고 잘 모시도록.

청연은 한 종이 위에 곱게 쓰인 두 사람의 이름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어떻게 글도 잘 쓰는지, 저는 역시 못 하는 게 없었다.

“어때, 쉽지?”

무호를 흘깃 내려다보려던 청연은 그와 정통으로 눈이 마주치고서는 할 말을 잃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일렁이며 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청연은 머쓱하게 자신의 턱을 쓸며 물었다.

“뭐야, 글자를 보라니까 왜 나를 보고 있어. 너 이거 쓰는 거 제대로 봤어?”

“…….”

“너무 빨랐나? 다시 쓸 테니까 잘 봐.”

그렇게 다시 한번 글자를 쓰려는데, 손안에서 무언가가 우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손을 떼 보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붓이 무호의 손안에서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심지어 가운데 부분은 잘게 으스러져 가루가 되어 흘러내렸다.

“야…. 너어는….”

그걸 왜 부러뜨리니…. 글 쓰기가 또 싫어진 거니.

어이가 없어 바라보고 있는데, 부러진 반쪽짜리 붓대가 데굴데굴 굴러 탁자 밑으로 떨어졌다. 청연은 한숨을 내쉬며 그걸 줍기 위해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아, 어딜 간 거야. 안 보여.”

붓대가 생각보다 깊숙이 굴러 들어간 모양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팔을 쭉 뻗으려던 그의 몸이 순간 중심을 잃어 기울어졌다.

청연은 빠르게 옆에 있던 무호의 허벅지를 한 손으로 짚었다. 덕분에 넘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휴, 넘어질 뻔했네.”

“…….”

그때, 무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청연의 몸을 홱 밀쳤다. 그 바람에 청연은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아, 또 왜! 왜 밀어!”

청연은 안 그래도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무호를 쏘아보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화가 나 있었다. 무시무시한 검은색 기운이 주변으로 잔뜩 뿜어져 나왔고, 살기 가득한 한 쌍의 눈이 분노로 일렁이며 청연을 노려보았다.

처음 만났던 그날 밤을 연상시키는 눈빛에 청연은 다시 한번 쫄고 말았다. 밤하늘 같은 검은 눈동자가 이럴 때면 꼭 붉은색으로 빛나는 것만 같았다.

‘진짜 무서워…. 무슨 어린애가 저렇게….’

“꺼져!”

무호가 성질을 내며 외쳤다. 그는 자리에 서서 한참 분을 삭이더니 이내 걸음을 돌려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얼떨떨해진 청연은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왜 화를 내는 거야? 포인트가 뭐야? 내가 뭐 기분 나쁠 일 했어?’

저 나이대 애들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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