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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8)화 (9/145)

008화

청연의 품속에서 잠이 든 제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고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다. 악몽을 꾸는 듯했다.

그럼 그렇지. 어린애가 그런 일을 겪고도 멀쩡할 리 없었다.

“제하야.”

아무래도 깨워 줘야겠다 싶어 어깨를 살짝 흔들었지만 제하는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떨림이 더욱 심해지고 입술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하야. 일어나.”

세게 흔들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호흡은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이걸 어쩐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부모를 잃은 것부터 시작해서, 어린 나이에 겪어서는 안 될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 당분간은 악몽에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청연은 바들바들 떨리는 아이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납치당하는 것을 막아 주지 못했으니,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괜찮아, 아가. 꿈이야. 다 꿈이야. 괜찮아.”

한참을 속삭이며 토닥인 끝에 제하의 떨림이 조금씩 멎어 갔다. 거칠었던 호흡이 점차 안정되고 쌕쌕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청연은 끊임없이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

그 후로도 제하는 살갑게 굴었다. 청연의 뒤를 졸졸 따르며 그를 챙기는 건 예삿일이었다.

“객주님, 약은 드셨어요?”

“응. 너는 밥 먹었어?”

“네! 숙수님께서 요리 솜씨가 참 좋으셔서 배불리 먹었어요. 객주님, 꼭 두 시진 후에 약 더 드셔야 해요.”

“으응….”

‘너 어차피 계속 따라다니면서 약 챙길 거잖아. 내가 그걸 어떻게 잊겠니.’

역시 주인공은 주인공이라고, 한번 목숨을 구해 준 은혜는 어떻게든 갚겠다며 따라다니는 게 제법 기특했다.

때로는 객잔에서 깽판을 치는 진상 손님들에게 청연 대신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제가 알던 그 소심한 아이가 맞나 싶은 정도였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주눅 든 모습의 아이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청연이 부러진 의자라도 고치려고 할 때면 득달같이 달려와 말렸다.

“객주님! 이건 제가 하겠습니다! 제게 맡겨 주세요.”

“어? 아니, 괜찮아. 이 정도는….”

“객주님께선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무리라니…. 겨우 이거 갖고….”

“그러다 다시 손을 다치시면 어찌합니까!”

“…….”

그렇다고 내가 너한테 이런 일을 맡기겠니….

“객주님! 당근을 직접 써시면 손을 베이십니다!”

“객주님! 청소는 제가 할 테니 앉아 계세요!”

“객주님! 저 사람들 싸움은 제가 말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들어가 쉬세요!”

“아가, 나 진짜 괜찮은데….”

“객주님!”

청연은 제하의 이런 행동이 귀여우면서도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주인공의 보호를 받는 엑스트라라니! 어린이의 보호를 받는 성인이라니! 아무리 네가 나를 지켜 주기로 했어도 이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단 말이다. 이런 건 미래의 네 애인에게나 해 줄래…?

그러나 이런 청연의 마음을 아이가 알 리 없었다. 제하의 과보호는 두 사제가 사천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대인.”

“신세만 지다 갑니다.”

‘신세라니요. 제 방이 대인께서 야금야금 밀어 넣은 약재들로 가득 찬걸요….’

소명은 제자를 구해 준 보답으로 청연의 몸에 좋을 만한 온갖 귀한 약재들을 가져다주었다. 덕분에 객잔이 아니라 약방을 차려도 될 정도였다.

“제하도 잘 가. 가서 스승님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

‘내가 말 안 해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제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답이 없었다. 입이 삐죽 나온 걸 봐선 떠나는 게 못내 아쉬운가 보다.

“손윗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데 무슨 버르장머리 없는 짓이냐.”

결국 스승님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청연을 바라보는 제하였다.

“객주님.”

“응?”

제하는 청연을 부르고서도 한동안 어물거렸다. 청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갈 곳을 잃은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한참 고르고 고른 말이 겨우 그거였다. 청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엽고 착하고 정도 많아. 제하가 없으면 저도 한동안 허전할 것 같았다.

“또 놀러 와.”

“네에….”

청연은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을 떠나보내는 감회가 남달랐다. 중간에 일이 꼬이긴 했지만 어찌어찌 해결했으니까 된 거겠지? 훗날 두 사람의 애정 전선에 문제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한 번씩 뒤를 돌아보던 제하는, 결국 다시 청연에게로 쪼르르 달려왔다.

“객주님!”

그러고서는 여느 때처럼 폭 안겨 들었다.

아이의 두 팔이 허리를 감싸고, 예쁜 두 눈이 청연을 올려다보았다. 또다시 울먹거리려는 눈빛에 청연도 조금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가기 싫어요. 여기 더 머물고 싶어요.”

“금방 또 오면 되지.”

“그래도… 객주님이 많이 그리울 거예요.”

어린애가 벌써 이런 말도 할 줄 알고.

새삼 주인공다운 모습에 감동한 청연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나도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정말요?”

“그럼. 이제 싸우는 손님들은 누가 혼내 주려나.”

“제가 다음에 와서 꼭 다 혼내 드릴게요!”

“착하기도 하지.”

제하는 맑게 웃었다. 청연의 허리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서는 무언가를 찾는 듯 품속을 뒤적거렸다.

이내 아이가 꺼내 든 것은 조그마한 자기 병이었다.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뭔데?”

청연은 그것을 받아 들었다. 병 안쪽에서 찰랑거리는 액체가 느껴졌다.

“지난가을에 스승님이랑 계화를 모아서 만든 향유예요. 객주님은 머릿결이 좋으셔서 필요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향이 좋아요!”

아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이걸 바르면서 제 생각이라도 해 달라는 듯이.

“그래, 고맙다. 잘 쓸게.”

청연은 웃는 얼굴로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조금 심란해졌다. 훗날 성인이 된 제하가 이 향유를 스승님과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알고 있으니 심란할 수밖에.

‘나한테 이런 거 주지 말라고….’

***

그날 저녁, 방 안에 쌓여 있는 약재를 정리하느라 분주한 와중에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그곳엔 얼굴에 먼지를 잔뜩 묻힌 해령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객주님, 손님 퇴실하시고 방 정리하다가 이런 걸 찾았는데요.”

해령이 들고 있는 것은 묵직해 보이는 철제 함이었다.

“침상 아래에 있더라고요. 먼지 쌓인 걸 봐서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 어떤 방인데?”

“객주님 예전에 쓰시던 방이요. 그래서 객주님 물건 아닌가 하고 가져와 봤어요.”

“아, 그 방.”

청연이 처음 빙의했을 때 깨어난 곳은 지금 쓰는 이 방이 아닌 건너편의 다른 방이었다. 창문이 없고 빛이 들지 않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우울해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객잔에 적응하기 무섭게 방을 옮겨 왔는데, 침상 아래까지 살펴보지는 않았던지라 저런 물건을 본 기억이 없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여기 두고 가.”

청연은 해령이 두고 간 함을 살펴보았다. 특별한 무늬가 새겨져 있지도 않은 평범한 함이었다.

다만 웬만한 서책보다 큰 크기에 무겁기는 더럽게 무거웠다. 거기에다 커다란 자물쇠까지 달려 있어 도저히 열 수가 없었다.

힘겹게 들어 올려 흔들어 보아도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안에 무언가 들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손님이 이런 걸 가져왔다가 두고 갔을 리는 없고. 그럼 진짜 내 물건인가?’

골똘히 고민해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으니, 청연은 함을 침상 아래로 밀어 넣었다.

뭐, 별거 있겠어. 나중에 다시 살펴보자.

그렇게 함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린 청연은 목욕을 마치고 노곤한 몸으로 침상에 누웠다. 제하가 준 향유까지 발랐더니 부드러운 머릿결에서 좋은 향기가 폴폴 올라왔다.

‘계화? 향이 좋긴 하네.’

제하는 지금쯤 도착했으려나. 요즘 하도 붙어 있었더니 잠깐 안 봤다고 아이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아이가 부디 잘 지내기를. 악몽에 오래 시달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빨리 큰 모습도 보고 싶다. 세상 미남이겠지?’

어른이 된 제하의 모습을 그려 보던 청연은 저도 모르게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생전 처음 보는 방 안이었다.

이곳이 꿈속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과 발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방과 처음 보는 옷.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낯설었다.

심지어 몸 상태가 더욱 안 좋게 느껴졌다. 가만히 서 있어도 기력이 부족한 게, 약을 들이부어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다.

‘설마 유청연의 기억인가?’

이게 정말 실제 기억에 근거한 꿈이라면, 과거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방은 특별할 것 없이 소박했다. 딱히 장식품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 그래도 필요한 살림살이는 모두 갖춰져 있었고, 바닥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창틈과 문 틈새로 서늘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공기가 상당히 차갑고 신선한 것이, 산속 깊은 곳에 들어와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청연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들떴는지 쉴 새 없이 발을 놀리며 작은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가슴속에 설렘, 그리움, 애틋함 같은 다채로운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누굴 기다리길래 이래?’

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감정에 청연은 어리둥절해졌다. 이 모든 게 꼭 제가 직접 겪은 일처럼 느껴졌다.

아, 몸의 기억이니 직접 겪은 게 맞는 건가.

기다림에 지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청연은 결국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동시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벌어질 뻔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이게 대체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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