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화
‘태워 버리자.’
남자의 그 말을 끝으로 혼자 남겨진 제하는 주변으로 조금씩 번져 가는 불길을 느꼈다. 매캐하게 타는 냄새가 진동해 진한 피비린내가 덮일 정도였다. 땀이 흐를 만큼 치솟은 기온에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일단은 시야부터 확보해야 했다. 눈을 가린 천을 벗겨 내려 바닥에 얼굴을 문질렀다. 천을 얼마나 꽉 묶어 둔 것인지 벗겨지기는커녕 쓸린 뺨만 홧홧하게 아팠다.
‘어떡하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불에 타 죽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저를 살리려 했던 부모를 생각해서라도 살아남고 싶었다.
이때, 안절부절못하던 제하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어느 어두컴컴한 동굴 속을 스승님께 의지해 걷고 있던 날이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마음을 차분히 하고 주변의 기운에 집중하면 눈을 감아도 주위를 분간할 수 있게 된다고 하셨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를지도 몰랐다.
제하는 크게 심호흡했다. 혼탁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쿵쿵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내력을 순환시켰다. 미약하게나마 익힌 심법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정순한 기운이 단전에 차올랐다. 제하는 기를 조금씩 외부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또렷하지는 않지만, 아주 희미하게 주변 사물의 형체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형체를 따라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다 보니 딱딱한 것에 이마가 닿았다. 그것에 얼굴을 문대며 쓰임새를 가늠해 보았다.
‘탁자인가?’
아무래도 탁자인 것 같았다. 그것의 옆 날을 뺨으로 더듬어 가던 제하는 마침내 뾰족한 모서리를 발견해 냈다.
‘됐다.’
눈을 덮은 천의 아랫부분을 모서리에 걸고, 있는 힘껏 머리를 숙였다. 뒤통수에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낑낑거리는 제하의 곁으로 뜨거운 불길이 번져 오고 있었다. 그 열기가 느껴져 조급해진 마음에 하던 일에 박차를 가했다. 숨이 막힐 듯한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거친 천이 관자놀이를 쓸며 벗겨져 나갔다.
어둠에 익숙해졌던 시야가 트이면서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었다.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새빨간 화염뿐이었다. 피부로만 느끼던 것을 눈으로 마주하니 덜컥 겁이 났다.
양손은 여전히 뒤로 묶인 채, 힘겹게 중심을 잡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뜨거운 온도 때문에 흘린 땀인지, 무서워서 흘린 식은땀인지 모를 것으로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눈이 붉은빛에 익숙해질 때쯤, 제하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이 온통 시체로 가득했다.
여기까지 기어 오는 동안 무릎에 차이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대부분이 제 또래의 어린아이들이었다. 어떤 것은 불에 활활 타고 있었고 어떤 것은 형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끔찍했다. 이렇게 많은 시신을 본 건 처음이었다. 집안이 멸문당했던 그날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다시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위험한 상황일수록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참으며 주변을 살폈다.
‘문…, 문이 어딨지.’
뿌연 연기 사이로 문을 찾아낸 제하는 불길을 요리조리 피하며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손이 묶여 있어 열 수도 없으니 몸으로 쿵쿵 들이박았다.
그러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밖에서 잠긴 것 같았다.
‘뒷문, 뒷문은 있을까.’
제하는 다시 방 한가운데로 돌아갔다. 어느새 화염은 몸집을 부풀려 벽을 타고 올라가 지붕까지 태우고 있었다. 점점 숨이 막혀 왔다.
불이 나면 연기만 마셔도 사람이 죽는다고 하던데. 그럼 나도 저들처럼 되는 걸까.
제하는 널브러진 시신들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자꾸만 그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막을 수 없었다.
저들을 구하러 온 사람은 없었겠지. 그래서 저렇게 목숨을 잃은 거겠지.
제하는 저도 모르게 시신들에서 제 모습을 찾았다.
누군가가 달려와 구해 주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런 기적이 벌어질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절망스러웠다. 뒷문 같은 게 없다는 건 애초에 알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쩍쩍 갈라지는 소음이 들려왔다. 마침내 불길이 온 집 안을 집어삼켰다. 사방의 벽이 불에 타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가쁜 숨을 내쉬던 제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폐에는 연기가 가득 들어찼고 온몸이 열기로 절절 끓었다.
‘누가… 누가 좀 도와주세요.’
아이의 기도는 하늘에 닿기도 전에 지붕에 막혀 버렸다. 위쪽에서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선명한 소리에 위를 올려다보니 불이 붙은 대들보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 피해야 하는데.’
몸이 굳어 버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제하는 멍하니 떨어지는 나무토막을 바라보았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속으로 되뇌던 그 순간.
어디선가 튀어나온 사람이 제하를 안고 옆으로 굴렀다.
곧이어 대들보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두 사람의 몸은 바닥을 몇 바퀴 굴러 시신 더미 앞에 멈추어 섰다.
하마터면 깔릴 뻔했다. 아니, 깔렸어야 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던 제하는 시선을 들어 제 몸을 감싸 안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객주님!”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후 내내 저와 시간을 보내 주던 다정한 사람. 그를 보는 순간 안도감이 물밀듯이 차올랐다.
‘나를 구하러 와 주었구나.’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린 청연은, 손을 덜덜 떨어 가며 제하의 손목에 묶인 밧줄을 풀어냈다. 제하는 곧장 청연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서늘한 체온이 끓던 몸을 식혀 주는 것 같았다. 아직 화염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이제 살았다. 나를 구해 줄 어른이 왔다.’
이 낯선 곳을 어떻게 찾아왔는지, 잠겨 있던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제하는 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객주님….”
“가자…. 집에 가자.”
청연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가 가자는 곳이 제집이 아님을 알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할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제하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그에게 몸을 맡겼다.
청연은 겉옷을 벗어 제하의 머리부터 뒤집어씌웠다. 열한 살 아이가 제법 무거울 만도 한데, 그는 군말 없이 제하를 번쩍 안아 들더니 불길을 뚫고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옥 같던 열기가 가셨다. 살짝 드러난 발목에 닿아 오는 밤바람이 시원했다.
제하가 청연의 어깨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 뒤집어쓰고 있던 겉옷을 끄집어 내렸을 때는 이미 불타는 건물을 벗어난 뒤였다. 그토록 굳게 닫혀 있던 문짝이 저 멀리 떨어져 나간 광경이 보였다.
제하는 활활 타오르는 폐가를 눈에 담았다.
오늘 밤 겪은 일로 몸도 마음도 고단했다. 호흡은 여전히 가빴고, 불붙은 시체의 잔상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안심이 되는 건….
제하는 고개를 돌려 청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을 내리깐 채 터덜터덜 걷는 그 사람은 너무나도 지쳐 보였다.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수척한 얼굴이었다.
“저, 객주님….”
조심스럽게 그를 불러 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저를 보면서 싱긋 웃어 주던 얼굴이 고왔다. 이토록 고운 사람은 어머니 다음으로 처음 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파리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에 걱정이 차올랐다.
“내려 주세요. 이제 괜찮으니 제가 걷겠습니다….”
청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반쯤은 넋이 나간 듯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렇게 한참이나 제하를 안고 걸어가던 그가 멈춰 선 건 화재 현장에서 충분히 벗어났을 때쯤이었다.
“제가, 제가 걸을게요….”
몇 번이나 반복된 간청 끝에, 청연은 제하를 내려 주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객주님!”
제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저앉아 청연의 어깨를 흔들었다. 불길 속에서는 든든하게만 느껴졌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래도 의식은 있는 것인지 긴 눈매가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객주님! 괜찮으세요? 객주님!”
“미안… 해.”
갈라진 입술 사이로 잔뜩 잠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안하다니? 뭐가?’
제하는 무의식적으로 청연의 손을 잡으려다가, 피투성이가 된 그의 손을 보고 깜짝 놀라 튀어 올랐다.
“피… 피 나요, 객주님…!”
양손이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푸른 소맷자락이 붉게 물들 만큼 피에 푹 젖어 있었다. 그제야 그가 닫힌 문을 어떻게 열었을지 머릿속에 그려지며 이름 모를 감정이 목을 타고 울컥 올라왔다.
“미안….”
목소리는 점점 사그라들었고 깜빡이던 두 눈도 완전히 감겼다. 고개가 힘없이 툭 떨어졌다. 그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정신을 잃었다.
“객주님! 정신 차리세요!”
세상은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이렇게 피까지 흘려 가면서 저를 구해 준 사람이 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지. 왜 이 사람 앞에서는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제하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 냈다. 마음대로 울지 않아야 어른이 되는 거라고 들었는데, 그런 거라면 차라리 아이로 남고 싶었다.
“뚝 하거라.”
머리 위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그곳엔 기척 하나 없이 나타난 스승님이 서 있었다.
“사내는 우는 게 아니래도.”
단호한 말투로 말하면서도 그의 얼굴은 보기 드물게 사색이 되어 있었다. 객잔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뛰어나온 티가 역력했다.
“스승님… 객주님께서….”
“괜찮으니까 뚝. 골 울린다.”
소명은 청연의 맥을 간단히 확인하고서는 그를 가볍게 둘러업었다. 한 손으로는 제하의 어깨를 토닥이며 객잔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사경을 헤매던 청연이 깨어난 것은 꼬박 사흘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