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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2)화 (3/145)

002화

<스승님 뭐시기> 소설의 주인공 백제하. 하북성의 군소 가문 출신으로, 무관이었던 아버지가 역모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 바람에 온 가족이 몰살당했다. 작은 궤짝 안에 몸을 숨겨 살아남은 아이는 거리를 떠돌던 중 우연히 윤소명을 만나 그의 하나뿐인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주인수 윤소명. 한때 황실에서 태의로 일했던 그는 중원 최고의 명의이자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원작에서는 화경1)에 가까운 것으로 언급되었다. 현재는 금분세수2)하여 무림을 떠난 뒤 산속에서 은거하며 의술 연구에만 힘쓰고 있지만, 우연히 만난 제하에게 연민을 느껴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무공을 전수해 주게 되었다.

청연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소설에 묘사된 외양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주인수의 미모는 삿갓을 눌러썼음에도 숨길 수 없었고, 그를 따르는 어린아이는 아직 볼살이 포동포동하지만, 이목구비는 또렷한 게 분명한 미남의 새싹이었다.

이 역키잡 듀오가 사천을 방문할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해독.

사천당가는 독공 수련을 위해 희귀한 독을 많이 다루는 만큼 해독법에 대한 연구나 의술 또한 발달된 가문이었다.

사천당가가 기존에 보유한 의학 지식으로도 해독법을 찾지 못했을 때, 이들은 윤소명을 찾았다. 그는 신의라 불리는 만큼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었고, 극독에 중독된 이들도 침 한 대로 낫게 하는 대단한 재주가 있었다.

그러니까 당가에서 그를 불러오는 건 일종의 의학 세미나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혈족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가는 만큼 폐쇄적인 성향이 짙은 가문이지만, 윤소명만큼은 항상 귀빈 취급을 받았다.

당가에서는 소명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며 방까지 내어 주려 했지만, 그는 워낙 남에게 신세 지기 싫어하기에 객잔에서 머물기를 고수했다.

오늘이 바로 ‘그 객잔에서 머무는’ 날이었던 것이다.

소명은 무심한 성정 탓에 객잔에서 일어나는 의미 없는 싸움에 개입하지 않았다. 다만 환자가 있을 때는 말이 달라졌다. 전직 의원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마침 청연도 진짜 청연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을 벌이고 있으니, 지금 이 상황은 원작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었다.

“의원을 찾으셨습니까.”

객잔 안으로 들어온 소명의 시선이 바닥에 엉망진창으로 주저앉아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청연에게 향했다. 청연은 왠지 민망해져 입가의 피를 소매로 대충 닦아 냈다.

‘왜 하필 이런 꼴로 주인공들을 마주친 거야.’

그러고 보면 소명과 청연은 친하지 않을 뿐이지 서로 안면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원래 소명 같은 고수들은 기억력도 좋아 한 번 본 엑스트라의 얼굴도 잊지 않는 법이다.

“오셨습니까, 대인.”

청연이 먼저 알은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기력을 다한 몸은 휘청이며 다시 주저앉을 뿐이었다. 해령이 옆에서 잡아 주지 않았다면 넙죽 큰절을 해 버렸을 거다.

“객주님.”

역시나 청연을 알아본 소명이 성큼성큼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해령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의원님이세요?”

“잡기를 조금 익혔을 뿐입니다.”

청연은 그의 겸손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마치 S대 병원 원장이 ‘어렸을 때 병원 놀이 좀 해 봤어요.’ 하는 꼴이었다.

소명은 말없이 청연의 얼굴을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내상을 입어 어혈을 토해 내신 듯한데 아직 배출되지 못한 피가 몸속에 고여 있으니 이를 빼내야 합니다. 이곳은 소란스러우니, 방으로 올라가시겠습니까?”

‘뭐야. 지금 눈으로만 보고 진찰한 거야?’

놀란 청연은 어안이 벙벙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대인께서 직접 진료해 주신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으나 당장 자리를 뜨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검을 들고 날뛰는, 정파의 탈을 쓴 악의 무리를 가리키며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제 객잔이 망해 가는 중이라서요.”

“아.”

소명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들은 제가 해결할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하야.”

“예, 스승님.”

얌전히 그의 뒤를 지키던 아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스승의 부름에 답했다.

“객주님을 도와 방으로 올라가거라.”

“예.”

제하는 쪼르르 달려와 청연의 한쪽 팔을 붙들었다. 아이의 키는 청연의 가슴께 정도밖에 오지 않았지만, 손아귀 힘이 제법이었고 몸에 균형이 고르게 잡혀 있어 그동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청연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소명은 이미 싸움터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전광석화와도 같아 일반인의 눈으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청연은 한참 동안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응시한 뒤에야 그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무기 하나 들지 않은 소명은 그저 식지를 세워 진상 손님들의 혈도를 찍어 내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팔에 고통을 호소하며 검을 놓치거나, 몸이 마비되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가 하면 아예 잠에 빠져드는 이도 있었다.

‘와, 나도 저런 거 하고 싶었는데.’

객잔은 조금 전까지의 소란이 무색하게도 빠르게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청연은 감동의 눈물을 삼켜 내며 소명을 응원했다.

‘잘한다 잘한다 우리 형! 아 몰라 멋있으면 다 형이야. 환자에게는 이렇게나 친절하다니, 까칠수 무심수라고 했던 거 취소할게요.’

그렇게 소명은 원한 적 없던 동생을 하나 갖게 되었다.

***

“통증은 없으십니까?”

“예! 정말 신기합니다.”

소명이 침을 찔러 넣은 혈 자리마다 시커멓게 죽은피가 줄줄 흘러나왔건만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한결 편안해졌다.

“감사합니다, 대인. 제가 큰 신세를 졌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머무시는 동안 방값과 식사비는 받지 않을 테니 편히 지내세요.”

“그러자고 한 일이 아닙니다.”

소명은 역시나 단호했다. 몇 번이고 무료 숙식을 제안해 봐도 돌아오는 건 거절뿐이었고, 진료비조차 받지 않았다. 그의 무덤덤한 얼굴에는 놀라울 정도로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런 사람을 제하는 도대체 어떻게 꼬신 거야…? 원작에서 제하가 스승님의 관심 한번 끌어 보겠다고 벌이던 눈물의 똥꼬쇼를 기억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보니 진입 장벽이 훨씬 더 높아 보였다.

방 한구석에 가만히 서 있는 아이를 곁눈질하니 이를 눈치챈 소명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거둔 제자입니다. 사천에 데려오는 건 처음이지요.”

“예. 제자분께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씀 낮추세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소명은 제하를 돌아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가만히 서서 뭐 하는 것이냐. 이 스승이 손윗사람에게 그리하라고 가르쳤더냐.”

스승의 꾸짖음에 잔뜩 위축된 제하는 조심조심 걸어 나왔다. 조그마한 손으로 포권을 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객주님. 저, 저는 백… 제하라고 합니다.”

스승님 말 한마디에 주눅이 든 모습이 안쓰러웠다. 하긴, 이 시점에 두 사람의 사이는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가 필요로 했던 건 따뜻한 관심이었고, 소명은 누구보다도 엄한 스승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과정이 있어서 훗날 사랑이 이어졌을 때 더 큰 만족감을 느꼈겠지.

청연은 하얗고 말랑해 보이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똑같이 포권을 했다.

“백 소협을 뵙습니다.”

“소, 소협이라뇨…. 저는 아직 심법3)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였는데….”

당황하네. 귀여워라. 청연이 싱긋 웃어 보이자 제하는 휘휘 내젓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사천은 처음이라며? 우리 객잔 음식 맛있으니까 이것저것 다 먹어 보고 가.”

“예…, 예.”

이렇게 말랑한 애가 자라서 천마의 목을 치고 전쟁 영웅이 되었다니.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대인, 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청연의 말에 한창 침을 뽑아내던 소명이 시선을 맞춰 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진맥을 받고 싶습니다.”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어디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기력이 쇠하고 자주 앓아눕습니다.”

사실 소명이 객잔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던 그 순간부터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이 있었다.

왜 청연은 진작 소명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지? 무슨 병이든 고치는 명의라며. 그러면 분명 병약한 체질에 대한 해결책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친한 사이가 아니라도 안면이 있으니 그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소명은 망설임 없이 청연의 팔을 잡더니 맥을 짚기 시작했다. 피부에 닿는 듯 닿지 않는 듯 가벼운 손놀림이 마치 깃털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짧은 진맥이 끝나고 청연이 물었다.

“어떻습니까?”

“처방을 써 드리겠습니다. 이대로 약을 지어 드시면 기력을 조금은 보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조금은… 이라니요? 효과가 한시적이라는 겁니까?”

“예. 이게 최선입니다.”

머리가 띵했다. 신의도 못 고치는 병이라고? 그게 대체 뭔데?

“완치할 방법은 없는 겁니까?”

“안 된다는 걸 객주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대체, 대체 무슨 병입니까? 제 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그 말에 소명은 멈칫했다. 평온하기만 했던 얼굴이 처음으로 동요했다. 그의 얼굴을 가득 채운 건 의아함이었다.

소명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청연을 바라보았다.

“지금 농을 하시는 겁니까?”

“농이라니요.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정말 모르신다고요?”

“예.”

“그걸 어떻게 본인이 모를 수가….”

소명은 미간을 찌푸리며 청연의 아랫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단전4)이 파괴되지 않으셨습니까.”

“…….”

예…? 단전이… 뭐가 어쨌다고요? 그러니까 단전이 있었는데… 없어졌다고요?

솜사탕을 물에 씻은 너구리처럼, 청연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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