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맞추고 싶어.”
단단해진 살덩이가 케이든의 배 위에 비벼졌다. 아사드 본인은 모르는, 조금도 의도치 않은 일이었다. 하나 케이든은 차마 몸을 뒤로 빼지도 못한 채 얇은 천 위를 스치는 열기를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게 뭐든…… 원하시는 대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듯 보이는 아사드에게 케이든은 말했다. 바깥의 빗소리보다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하지만 아사드에겐 작지 않은 소리였다. 제 팔 안에 갇힌 남자에게 모든 신경을 쏟고 있던 아사드에겐, 케이든의 목소리가 천둥의 고함보다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전하의 희락기, 아니, 희락기가 아니어도 되니까요. 저는 괜찮습니다.”
“희락기가 아니어도…….”
케이든이 건넨 말을 곱씹어 보던 아사드의 얼굴 역시 금세 붉게 물들었다.
“내가 너무 호색한처럼 군 건가? 당신 냄새를 맡고 몸을 더듬어 대고…….”
“아뇨, 아닙니다.”
“혹시 내가…… 당신이랑 몸을 섞고 싶어서, 당신의 희락기가 오기만 기다리는 철없는 놈처럼 보여? 그래서 억제제를 못 먹게 한다고 오해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아니니까. 그런 거 아니야.”
억울하다는 얼굴을 하고 아사드는 항변했다. 기껏 마주 보고 누워 간신히 시선을 맞추고 한다는 소리가, 죄다 저는 그런 놈이 아니라는 걸 믿어 달라는 변명뿐인 것 같아 괜히 더 억울했다.
“그런 마음이 아니신 걸 압니다.”
“…….”
“정말요.”
그렇게 말하는 케이든의 목소리가 언제나처럼 다정했다.
쉽게 눈을 맞춰 주진 않는 케이든을 보며 아사드는 입을 달싹였다. 당장 그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를 안고 싶었다. 하지만 저런 어설픈 허락만 받아 들고, 케이든을 제 기분대로 다루고 싶지 않았다.
“마음대로, 그런 건 안 돼. 정말 내 마음만 중요한 게 아니잖아.”
“…….”
“내가 듣고 싶은 건 당신의 마음이야. 당신도 원해야…….”
“저도, 황태자님을 원합니다.”
케이든의 목소리가 아사드의 흐려진 말꼬리를 붙잡았다. 그답지 않은 서두름이었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당황해 급히 입을 다물어 버리기까지 했다.
선홍색을 머금은 적막이, 아사드와 케이든 두 사람의 뺨을 간질였다.
“나를 원해?”
아사드는 물었다. 케이든의 말을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심술을 부리는 거였다.
“케이든. 당신이, 나를 원하고 있어?”
답이 없는 남자의 이마 위에, 뺨 위에, 아사드는 차례로 입을 맞췄다.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른 채였다.
“……네.”
몇 번의 짧은 입맞춤이 오고 간 뒤에야, 케이든은 아사드에게 짤막한 답을 안겨 줬다.
왜인지 웃음이 났다. 저만 들뜬 게 아니었음을 알게 돼서 기뻤다.
시선이 맞닿자 배 속에 열이 올랐다. 아래로 완전히 피가 쏠리는 게 느껴졌다.
물렁하다 못해 무른 성격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언뜻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가진 남자의 얼굴에 퍼져 있는 열감이 아사드를 흥분케 했다. 희락기도 아닌데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눈을 감은 아사드는 케이든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지고 이내 서로의 숨과 혀가 얽히기 시작했다.
아사드의 손끝이 케이든의 몸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맞닿은 모든 곳이 저릿했다. 케이든의 몸을 가리고 있는 흰 천을 찢어발기고 그의 몸 이곳저곳에 제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부풀어 올랐다. 거친 망상을 모른 척 숨기는 게 힘들어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하나 입맞춤이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
아사드는 놀라 눈을 떴다.
케이든의 손이 아사드의 바지춤에 닿아 왔다. 그 손은 말릴 새도 없이 천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왔다. 꼿꼿하게 선 성기를 그러쥐었다.
별안간 찾아온 해방감과 함께 새빨간 성감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아사드는 속으로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좋았다. 너무 좋았다. 수치도 모르고 발딱 서 있던 성기 위에 케이든의 딱딱한 손가락이 감겼을 뿐인데, 그게 뭐라고 사정감이 치밀었다.
케이든은 자신을 보는 아사드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얼굴이 발갛게 익어선 아사드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벽 따위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손만은, 부끄러움 같은 건 모른다는 듯 계속해 움직였다. 엄지손가락으로 요도구를 간질이고, 귀두를 긁고, 두꺼운 기둥을 부드럽게 쓸고 흔들었다.
뜨거운 체온을 기분 좋게 식혀 주던 차가운 손이 제 열감을 고취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아니, 꽤 오래도록 케이든의 손을 잡을 때마다 난잡한 생각이 날 거다. 보송보송한 편안함 위로 한순간에 음흉한 붉은색이 덧칠될 게 분명했다.
“큿…….”
케이든의 손끝이 쿠퍼액으로 미끈해진 선단을 누르고 비비자, 아사드의 관자놀이께에 핏대가 섰다. 페로몬을 조절하는 게 힘들었다.
“케이든.”
아사드는 제 신부의 이름을 불렀다. 다시 간신히 마주하게 된 눈길을 계속해 붙들려는 듯, 다급히 말을 이었다.
“나는 뭘 하면 돼?”
“아무것도…….”
멍하니 말을 중얼거리던 케이든이 숨을 삼켰다. 아사드가 몸을 더 가까이 붙여 와서 그랬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가 맞닿았다.
“아무거나. 그게 좋겠다.”
제멋대로 말을 중얼거린 아사드가 케이든이 입은 긴 옷자락의 트임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다급히 바지를 끌어 내리고 긴장감에 딱딱해진 둔부를 더듬었다. 당황한 케이든이 말을 무어라 붙일 새도 없었다.
“……물이 흥건해.”
갈라진 틈 사이를 손으로 쓸며 아사드는 말했다. 짧은 탄식과 함께 케이든이 눈을 내리까는 게 보였다. 케이든이 창피해하는 이유를 아사드는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저처럼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쁘기만 했다.
“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대로였다. 아사드는 젖은 구멍 안으로 제 손가락 끝을 살짝 밀어 넣어 봤다. 저항감이 느껴진 것도 잠시였다. 물기 어린 안쪽이 금세 손가락을 물어 왔다. 마치 침입자가 들어서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다급히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손가락을 끌어들였다.
“아…….”
숨을 닮은 외마디 떨림이 아사드의 귓가에 닿았다.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자 케이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사드는 케이든의 감긴 눈꺼풀 위에 입을 맞췄다. 목소리를 숨기려 입술 위에 찾아든 손등 위에도 입을 맞췄다.
눈을 가늘게 뜬 케이든이 아사드의 얼굴을 힐끗 훔쳐봤다. 아사드는 케이든의 입을 가리고 있는 손을 떼어 낼 생각이 없었다. 억지로 그의 손을 잡아채고 싶지 않으니까.
당장은, 케이든이 저를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부끄러움이 많은 제 신부에게 미움받길 원치 않기도 하고 말이다.
아사드는 또 한 번 케이든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열리지 않는 문을 집요하게 두드리는 노크와 같은 입맞춤 아래에서 케이든은 허물어져 갔다. 얼굴의 반절을 가렸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숨기지 마, 응?”
“…….”
“우기잖아. 저 빗소리가…… 당신 목소리를 가려 줄 거야.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아사드는 케이든의 귓가에 속삭였다.
케이든은 머뭇댔다. 그의 손이, 잠시 입술 위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순간에 아사드는 케이든에게 입을 맞췄다. 이제는 손등이 아닌 입술 위에 노크를 했다. 순순히 벌어지는 입술 안으로 혀를 밀어 넣고 케이든의 숨을 마셨다.
요란하게 찔꺽이는 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섞여 들었다. 그것이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성기와 케이든의 손이 마찰하는 소리인지, 어느덧 세 개로 늘어난 손가락이 제 신부의 좁고 축축한 안쪽을 쑤셔 대는 소리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아마, 둘 다겠지.
“달아요.”
아사드의 입술이 떨어져 나간 찰나의 틈을 타, 케이든은 중얼거렸다.
“전하의 향기가 달아서, 좋습니다. 정말 좋아요.”
반쯤은 페로몬에 취해 몽롱해진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전신을 간질이는 달콤함이 좋아서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가늘어진 두 눈이, 곧 호선을 그렸다.
아사드는 목이 탔다.
‘페로몬이 아니라…… 내가 좋다고 해 줬으면 좋겠어.’
그런다면, 도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금지된 마법서를 훔쳐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아사드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목덜미가 서늘할 정도로 두렵고 당혹스러우면서도, 영문을 모를 기쁨에 열이 올랐다. 전신을 달구는 열기였다.
아사드는 눈을 깜빡였다. 눈을 감고 어둠을 대면할 때의 그는 음흉한 죄를 지은 죄인이 됐다. 하지만 눈을 떠 케이든을 볼 때의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을 발견한 모험가가 됐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을 떠올린 스스로가 한심하기만 했다.
케이든이 저를 좋아해 줄 리 없었다. 케이든은 권력자의 명을 거절하지 못해 이 사막까지 끌려온 사람이었다. 평생 발 들여 본 적 없는 낯선 곳에 나이를 헛먹은 순진한 남자를 억지로 끌고 와선, 아껴 주는 대신 박대를 했으니……. 저를 내심 미워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나는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야. 그럴 생각 없어.”
중얼거린 아사드가 순식간에 케이든의 위에 올라탔다. 열 오른 눈동자 속에 기묘한 희열이 서려 있었다.
케이든의 긴 상의가 마저 올라갔다. 바지 역시 완전히 끌어 내려졌다. 옷을 벗은 건 아사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려하게 반짝이던 아사드의 금빛 장신구 역시 금세 바닥을 구르게 됐다.
맞부딪쳐 소리를 낼 것들을 모조리 치워 버렸다. 케이든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방해하게 둘 순 없었으니까. 케이든의 목소리를 훔쳐 달아날 방해꾼은, 지겨운 빗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