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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신부 (62)화 (62/97)

“당신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나서지 않으려고 했어.”

자신을 봐 주는 케이든과 눈을 맞추며 아사드는 말했다. 그는 느릿한 제국어를 이어 갔다. 누군가 듣기라도 할까 다시 입가에서 왕국어를 지워 버렸다.

“그 남자도, 결국 당신이 거부하면 물러날 줄 알았어. 이제 당신이랑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아니, 애초에 제대로 된 고용주도 아니었지.”

“…….”

“그런데 내가…… 너무 상식적으로 생각한 거였네. 당신한테 진작 말도 걸지 못하게 만들어 뒀어야 했는데.”

아사드는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제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아사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을 땐 몰랐던 사실을 케이든은 뒤늦게 알아채게 됐다.

“당신이 말리지 않았으면, 그 새낄 죽였을 거야.”

잠시 얼굴을 굳혔던 아사드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두 눈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케이든은 침묵했다. 뒤늦은 안도와 새로운 불안 속에서 길게 탄식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기 자신을 향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창피합니다…….”

“…….”

“전하께 이런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 그냥, 제 모든 게…… 창피합니다. 왜 더 똑바로 살지 못했나…… 후회가 돼요.”

두서없이 이어진 케이든의 말은 혼잣말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분이 제게 했던 말, 전하께 했던 말…… 다 맞습니다. 틀린 이야기 하나 없어요.”

케이든은 하루가 지나면, 아니 단 몇 분만 지나도 새로운 후회를 낳게 될 고백을 했다. 아사드에게 건네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건네는 것인지 모를 말을 이어 갔다.

“그래도 여러 사람한테 몸을 팔고 그런, 그런 적은 없어요. 성병 같은, 그런 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헬리오에 계신 의사 선생님들이 이미 다 확인하셨습니다.”

“…….”

“진작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어요. 속이려고 그런 게 아닌데……. 죄송합니다. 전하의 희락기가 오기 전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음을 알지만…….”

케이든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는 자취를 감췄다.

“죄송합니다.”

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케이든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한심했다. 저는 지금, 내가 이렇게 반성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아사드에게 빌고 있었다. 그래 봤자 달라질 건 없는데. 괜한 말을 지껄이며 비굴하게 굴어 아사드를 곤란하게 했다.

“케이든.”

아사드는 케이든을 따라 벽에 몸을 기댔다. 다만, 케이든을 마주 볼 수 있게 왼쪽으로 몸을 돌린 채였다.

「당신이 말하는 똑바름이라는 게 뭔지, 나는 몰라. 누군가는 나를 보면서, 더럽게 삐뚤어졌다고 하겠지. 똑바로 살지 않는다고 욕할 거야. 제멋대로 살고 있잖아. 지금도 봐. 사람 얼굴을 으깨 놓고 오는 길인데.」

“하지만…….”

「케이든. 난 당신을 몰라.」

“…….”

「저 작자와 당신 사이의 이야기는 더더욱 몰라.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똑바름에서 가장 엇나간 인간이, 저 골목 안쪽에 뻗어 있는 멍청한 놈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 후회를 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식이야.」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아사드가 미간을 구겼다.

「케이든. 당신은 죄인이 아니야. 그런데 왜, 당신부터…… 잘못한 게 없는 사람한테, 스스로에게 죄를 물으려고 해.」

아사드의 목소리가 케이든의 귓전에 닿았다. 그의 가슴께를 두드렸다.

“당신이 아니꼬울 새끼들, 다 좆 까라고 해.”

아사드는 황궁의 입구에도 가 닿지 못할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았다.

“당신은 죄가 없으니까.”

마법이 덧씌워진 갈색 눈동자 위로, 사막의 모래알 같은 금빛이 스쳤다. 그 찬란한 색에 시선을 뺏겨 멍청하게 선 채로 케이든은 눈을 깜빡였다.

어쩌면 저는…… 한 번쯤은, 딱 한 번쯤은 저런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제게는 잘못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눈가에 열이 올랐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꼭 우는 사람처럼 심장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손가락질해 보라고 해. 그 재수 없는 인간들, 내가 모조리 찾아낼게. 찾아서, 손가락을 죄다 잘라 줄게.”

거친 표현을 실은 아사드의 목소리가 더없이 부드러웠다.

머리에 다시금 열이 올랐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케이든은 고개를 내리려 했다. 하지만 그런 케이든을 아사드가 붙잡았다.

아사드의 손은 언제나처럼 뜨거웠다. 그의 눈 속에 서린 열기보다 더 뜨거웠다.

“이제 끝났어.”

“…….”

“당신이 싫다고 했잖아. 다시 돌아갈 일 없다고 했잖아.”

“…….”

“그랬으면 된 거야.”

그랬으면 된 거다. 뭐가 됐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사드가 단언한 짧은 한마디가 케이든에겐 너무나 어렵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아사드의 얼굴이 또 목소리가 너무나 가볍고 홀가분해서, 안도가 됐다. 그의 홀가분함이 제 마음 한구석까지 흘러들어 와 불안을 몰아냈다.

〈길 위에서 잠을 자게 된다고 해도, 다시 도련님 밑으로 들어갈 일은 없어요.〉

그제야, 케이든은 자신이 알렉스에게 했던 말을 되뇌어 보게 됐다.

케이든은 알렉스를 거부했다. 꿈에서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을 말을 전했다. 감히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일을 해냈다.

헬리오에서 보낸 시간이 아니었다면, 아사드가 저를 이대로 두고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그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제가 믿은 건, 적어도 호위 중 한 사람은 저를 죽지 않게 해 줄 거란 희망 같은 게 아니었다. 저는 아사드가 이대로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으려 애써 모른 척했던 믿음이었다.

마주 선 남자의 반짝이는 두 눈을 보며, 케이든은 자신의 진짜 속내를 들여다보게 됐다. 알아차리게 됐다.

“내가 당신을 나무랄 줄 알았어?”

아사드의 물음에 케이든은 쉬이 답을 내놓지 못했다. 아사드를 심란하게 하는 머뭇거림이었다.

“나를 저 쓰레기랑 비슷한 자리에 놨다면 실망인데.”

“아뇨, 그, 그건 말도 안 되는…… 그런 생각 한 적 없습니다.”

“그럼 됐어.”

“…….”

「다신. 저 인간이랑 마주칠 일 없을 거야. 남은 평생을 그럴 테지. 내가 장담할게.」

아사드의 몸이 가까워졌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거니까.」

귓전에 닿아 온 낮은 목소리엔 케이든이 모를 확신이 담겨 있었다. 어딘가 불퉁해졌던 아사드의 얼굴 위로, 순식간에 웃음이 피어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아사드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사드가 제게 진실만을 속삭인다고 믿게 됐다. 그에게 불가능할 일 따윈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았다.

“케이든. 내가 당신을 지켜 줄 거야.”

“…….”

“감히, 그 누구도, 당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어.”

아사드의 눈동자에 사로잡힌 채로 케이든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의 머릿속으로 아문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전하께서 케이든 님을 지켜 주실 겁니다. 감히, 그 누구도, 당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농담처럼 느껴졌던 아문의 말 위로 아사드의 목소리가 덧입혀졌다.

자신을 지켜 주겠노라 말하는 아사드를 앞에 두고, 케이든은 침묵했다. 심장이 요란하게 뛰는 소리가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가 또 새까맣게 만들기를 반복해 그랬다. 끝내는, 모든 게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버렸다.

“싫어?”

저와 아사드 사이에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사드가 입에 담은 평생이, 말 그대로의 평생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래도, 좋았다.

저를 지켜 주겠다는 아사드의 말이 내일이면 잊히고 말 허름한 거짓말이어도 괜찮았다. 이 순간만큼은 제 평생에 남을 테니까. 제 기억 속에만은 영원히 남게 될 테니까.

“……아니요.”

“…….”

“싫지 않습니다.”

한참을 머뭇대던 케이든이 답했다.

케이든을 빤히 바라보던 아사드가 이내 벽에서 몸을 뗐다. 아사드는 케이든을 향해 다시 손을 내밀었다.

“가자.”

“…….”

“길 잃어버리기 싫으니까, 당신이 내 손 잡아 줘야 해.”

당황한 케이든은 얼떨결에 아사드의 손을 붙잡게 됐다. 갑작스럽게 닿았기 때문일까, 추운 날 이불 속에 언 손을 넣었을 때처럼 손끝이 저릿해졌다.

“쓰레기를 만난 기억은 여기 버려두고 돌아가는 거야. 저 밖에서부턴 내 생각만 해.”

“……전하 생각을요?”

“싫으면 말고.”

“아, 아뇨. 하겠습니다.”

삐딱해지려는 아사드의 심기를 알아챈 케이든이 황급히 답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 다시 선배라고 불러야겠다. 밖에 사람 많잖아.”

“…….”

“그렇죠?”

케이든을 붙잡은 아사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를 보는 아사드의 얼굴에 귀여운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저 골목 안에서 보냈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천진한 낯이었다.

아사드에게 붙잡힌 손이, 더는 떨리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요.”

“……응.”

아사드를 따라 케이든은 발을 옮겼다. 저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가는 아사드를 쫓아 걸음을 내디뎠다.

저물기 직전의 붉은 노을이 사람들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그 붉은 세상을 향해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 까만 어둠에 잠긴 골목을,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 * *

「개자식.」

제게 주먹을 휘두르던 어린 알파를 떠올린 알렉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씩씩대는 그의 입술 사이로 지독한 술 냄새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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