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어색해 보이기만 할 낯을 하고 케이든은 억지로 웃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
쓸 일 없는 말 한마디만 더 내놨다.
“말들이 보고 싶진 않아요? 걔들한테 정 많이 줬을 텐데. 선배 성격에, 안 그랬을 리 없잖아요.”
아사드가 가볍게 건넨 물음을 받아 들고, 케이든은 자신이 돌봐 줬던 말들을 떠올려 봤다. 검은 말과 흰 말, 얼룩이 섞인 말 세 마리였다.
그때만 해도 말들에게는 별다른 이름이 없었다. 저택의 주인이 말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아 그랬다. 케이든과 함께 일하던 남자는 그 애들을 대충 흑마, 백마, 얼룩말이라고 부르라고 했었다.
그래도, 동물을 좋아하는 엠마가 저택의 안주인이 됐으니 곧 이름이 생기겠지 싶었다. 이미 이름을 가졌을지도 몰랐다.
“잘 지낸다는 안부는 전해 들었어. 엠마가 편지에 짧게 써 줬거든.”
“전해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건 다르죠.”
“……그런가.”
“내일 만나러 가요. 저택에 다시 오는 김에, 걔들 얼굴도 보는 거야.”
멈춰 선 아사드가 케이든의 눈을 보며 말했다.
조금 놀랍게 들리는 제안이었다. 보통,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마구간을 멀리했으니 말이다. 그들이 자신의 말을 사랑하고 교감하는 것과는 별개로, 정작 말들이 머무는 근처에 발을 들일 생각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도 보고 싶어서 그래요.”
“…….”
“당신이 돌봤다는 말들, 황궁의 개들처럼 당신한테 꼬리라도 흔들려나?”
잠시 상단 후배의 모습을 지워 낸 아사드가 케이든을 향해 웃어 보였다. 여전히 아사드의 귀 위에 꽂혀 있는 꽃송이가, 바람을 맞아 가볍게 흔들렸다.
아사드의 웃음 속에서, 케이든은 자신을 향한 조롱도 연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사드는 그저, 어쨌든 가까이 지내게 된 남자가 돌봤다던 말들을 궁금해할 뿐이었다. 제 뺨 아래에 남은 흉터엔 문제가 없다고 말을 해 줬을 때와 똑같았다.
“……말들의 주인께서 허락하시면요.”
천천히 눈을 깜빡이던 케이든은 아사드를 따라 웃었다.
켜켜이 쌓여 가던 이른 걱정과 불안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붙잡힌 손을 딱딱하게 굳혔던 창피함이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케이든은 아사드가 대단한 마법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사드의 옆에 있을 때면, 매분 매초 이렇게 마법에 걸린 듯한 기분만을 느끼게 됐다.
아사드는 내 상처를 마음대로 헤집지 않을 거다. 억지로 들쑤시지 않을 거다.
그런, 이상한 믿음이 들었다.
어느덧 하늘에 엷은 분홍빛이 그리고 주홍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케이든과 아사드는 후원과 저택을 지나 활짝 열린 철제 대문 밖에 다다랐다. 이제, 마차 보관소가 두 사람의 새로운 목적지가 됐다.
헬리오에서부터 끌고 온 마차는 저택 너머의 주택가를 따라 걷다 보면 등장하는 큰길 뒤편의 마차 보관소에 세워져 있었다. 여전히 마법이 걸려 있는 채로 말이다. 저택 앞이 하객들의 마차로 북적일 걸 대비해 근처에 따로 주차해 둔 거였다.
케이든과 아사드는 느릿한 걸음을 걸어 가로로 길게 이어진 저택의 담벼락을 지나쳤다. 다세대 주택의 1층을 차지한 크고 작은 가게들 사이를 말없이 걸었다. 마차 보관소로 가기 위함이었다.
둘은, 여전히 손을 맞잡은 채였다. 주택가는 저택의 후원보다 길이 복잡하니까, 이번에야말로 정말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게 손이 맞닿은 유일한 이유가 됐다. 길을 모른다던 아사드가 어느새 케이든보다 반걸음 더 앞장서서 걷고 있음에도 맞잡은 손은 풀리지 않았다.
이제 아사드의 손을 놔줘도 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다 아사드가 길을 잃게 된다면? 그럴 순 없었다. 아사드가 미아가 될까 봐 걱정됐다.
어쩔 수 없이, 케이든은 아사드의 손을 놓지 못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저건 뭐야?”
걸음을 멈춘 아사드가 케이든에게 물었다.
케이든은 아사드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작은 빵집 앞에 선 가판대를 두고 어린애들이 몰려 있는 게 보였다.
아이들은 가판대 기둥에 묶어 둔 작은 통 안에 돈을 담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빵집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설탕을 잔뜩 묻힌 빵을 바삐 건네줬다. 쇠막대에 꽂혀 있던 빵을 빼내 툭툭 자르고 설탕 위에 도르륵 굴리는 모습이 경쾌했다.
케이든은 아사드의 물음에 답을 줄 수 없었다. 그 역시 저것이 뭔지 몰랐으니 말이다. 케이든이 알 수 있는 건,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앞두고 군것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분명, 집에 돌아가면 혼이 나겠지.
케이든은 북부의 땅 엘바에서 나고 자랐다. 하나 아사드만큼이나 북부를 잘 몰랐다. 어릴 땐 외출이 금지된 고아원 안에서만 생활했고, 더 자라선 외지에 있는 농장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농장을 나온 뒤로는 일거리를 찾고 돈을 버느라 바빴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엠마 덕분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게 된 후에도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도시와 멀찍이 떨어져 있던 농장에서의 생활을 몸이 기억하는 건지, 그저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어려워 그랬는지…… 도통 저택 밖을 나설 엄두가 나질 않았으니까.
적어도 저게 무엇인지 알 정도로는 밖을 둘러봐 뒀어야 했다. 그랬으면, 아사드에게도 금세 해답을 줬을 텐데.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몰라?”
“네.”
아사드의 물음에 케이든은 순순히 대답을 내놨다.
“그럼 저 남자한테 물어보자. 먹어도 보고.”
말을 마친 아사드가 맹한 얼굴을 한 케이든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가 케이든과 함께 향한 곳은 당연하게도, 가판대 앞이었다.
아이들의 뒤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던 아사드는 오래 지나지 않아 그의 궁금증을 해결하게 됐다.
「왜 머리에 꽃을 달고 다녀요?」
「내 맘이야.」
어린애가 아사드에게 건넨 물음부터 해결한 뒤에 말이다. 뻔뻔한 낯으로 답을 내놓은 아사드를 보고, 아이는 잘 어울리긴 한다며 칭찬 한마디를 남겼다.
작은 통 안에 동전을 넣은 아사드는 가판대를 지키고 선 남자에게 간식의 정체를 물었다. 그리고 굴뚝빵이라는 투박한 이름을 전해 듣게 됐다.
가판대 남자와의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던 남자는 이내 빵 하나씩을 종이에 감싸 두 사람에게 건네줬다.
아사드는 줄을 서는 동안 잠시 떨어지게 된 케이든의 손을 다시 붙잡았다. 여전히 시끌벅적한 아이들을 피해, 이르게 빛을 내기 시작한 등불 아래로 느릿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먼저 먹어 볼게. 이상할지도 모르잖아.”
자리를 잡고 선 아사드는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하고 케이든에게 말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케이든은 아사드를 말리지 못했다. 이 동네 애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어딘가 신이 나 보이는 아사드의 재미를 빼앗고 싶지 않아서였다. 먼저 빵을 해치운 아이들이 서로 꼬리잡기를 하며 기운 좋게 날뛰고 있는 걸 보면, 빵에는 문제가 없을 거다. 케이든은 그런 안일한 핑계를 대 봤다.
아사드는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아사드가 느끼는 즐거움이 점점 더 부풀어 가는 게 눈에 보였다. 하얀 가루를 듬뿍 묻힌 길거리의 간식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당신도 먹어 봐. 맛있어.”
기분이 좋아 보이는 아사드의 시선을 마주한 채로 케이든은 급히 빵을 베어 물어야 했다.
빵은…… 굉장히 달았다. 순간, 혓바닥이 녹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여러모로 오묘한 맛이 나는 간식이었다. 확실한 표현을 하기가 어려웠다. 생전 이런 걸 먹어 본 적이 없어 낯섦을 느끼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굴뚝빵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게 알게 됐다.
아사드는 단 걸 잘 먹는구나. 단 걸 좋아하는지까진 알 수 없었다. 그저 잘 먹는 것과 단것을 잘 먹는 건 다르니 말이다.
“……단 걸 좋아하세요?”
별안간 찾아온 작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케이든은 용기를 내 아사드에게 물었다.
“응. 좋아해.”
빠른 긍정이 돌아왔다. 단 걸 좋아해서 잘 먹는 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아사드와 함께 식사를 하고 마주 보고 앉아 말을 나눌 때는 몰랐던 사실을, 먼 엘바에 와서야 알게 됐다. 기분이 묘했다. 아사드가 좋아하는 걸 더 알고 싶다는, 주제 모를 욕심이 들었다. 아주 사소한 기호라도 좋았다.
“당신은 안 좋아하지?”
“좋아하지 않는지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아사드의 목소리는 왜인지 확신에 차 있었다. 케이든은 그런 아사드의 확신이 어렵게 느껴졌다. 정작 케이든은 자기 자신에게 그 어떤 확신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케이든은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잘 알지 못했다. 좋고 싫음을 구별할 만큼의 다양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어 더욱 그랬다. 스스로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아사드에게 건넨 답 속에 머뭇거림이 섞일 수밖에.
“내가 보기엔 그래. 좋아하지 않는 게 확실해.”
아사드는 자신감이 넘쳤다. 케이든은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좋아하지 않는 게 확실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제 표정이 영 아니었나 보다.
케이든은 자신이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입이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일까 싶어 민망하면서도 왜인지 기분이 좋았다.
저도 몰랐던 사실을 아사드가 알아봐 줘서, 그가 가장 먼저 알아봐 줘서, 그게 좋은 걸지도 몰랐다. 민망함 뒤에 숨은 자그마한 기쁨이 케이든의 가슴팍을 툭툭 치며 웃어 댔다.
“다음엔, 당신이 좋아하는 걸 먹자.”
“제가 좋아하는 거요?”
“짭짤한 거. 그런 거 아닌가?”
모르고 있던 스스로의 기호를 한 가지 더 알게 된 케이든이 놀란 얼굴을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아 더 신기했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진 않는 걸 이렇게 쉽게 나눌 수 있었구나. 케이든은 감탄했다. 남들이 한심해할 소리라는 걸 알기에 제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머뭇대던 아사드가 말을 이어 갔다.
“계속, 아까처럼 내 선배 노릇 해 주면 안 되나?”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