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부부의 뜻에 따라 간략하게 진행됐다. 손을 맞잡은 두 여자가 흰 아치 아래에 선 성직자의 앞에서 사랑을 맹세한 게 다였다.
그 간단하지만 확실한 맹세 뒤로는 피로연이 이어졌다. 피로연 또한 저녁 전에 빠르게 끝을 낼 거란 알리나의 선언이 함께였다.
사람들은 수군댔다. 웃음과 농담이 섞인 투정이었다.
〈나는 상단주가 저러는 게 이해가 된다? 젊잖아. 신부랑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지. 어, 이렇게 좋은 하루를, 어, 우리 같은 손님들한테 통으로 뺏기기 싫은 거야.〉
근처에 있던 중년의 여자가 그녀의 친구에게 건네는 말이 케이든의 귀에도 박혔었다.
엠마의 배우자인 알리나가 어떤 사람인지 케이든은 잘 알지 못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여자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냉랭한 낯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알리나가 엠마에게 푹 빠져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저택에서 일할 당시에는 몰랐던 그녀의 성격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엠마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사람이 좋다고 누누이 말해 왔었다. 대신 제 앞에서 대놓고 본성을 내보이는 건 안 된다는, 깽판을 치려거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쳐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도 붙었었다.
엠마가 데면데면하던 저택의 주인과 어쩌다 평생을 약속하게 된 건지, 케이든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알리나가 엠마의 이상형에 완벽히 부합할 거란 묘한 확신이 들었다.
지금도 그랬다. 알리나는 엠마의 앞에서만 웃었다. 엠마의 시선이 닿지 않을 땐, 자신의 배우자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들을 경계하기 바빴다. 케이든은 언제나 밝은 엠마와 그런 엠마에게 조금 집착을…… 하는 듯 보이는 여자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주인공들은 후원을 돌며 결혼식을 찾아 준 이들과 말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도 그렇고, 후원에 모인 손님 대부분이 저택의 주인인 알리나의 초대장을 받은 이들 같았다. 케이든도 얼굴을 아는 세탁방의 하인들만이 엠마의 손님이 아닐까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려서라도 북부에 오길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좋은 날, 엠마가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손님 중 하나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행복한 엠마를 볼 수 있어 기쁘기도 했다. 알리나에게 말을 거는 엠마의 모습이 꼭 하얀 매에게 속닥이는 종달새 같아 웃음이 나왔다.
새삼스럽지만, 케이든은 다시금 아사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가 제 부탁을 들어주고 배려해 준 덕분에 이렇게 엠마의 하객이 될 수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함께 와 주기도 했고…….’
케이든은 힐끗 고개를 돌려 아사드에게 시선을 줬다. 그리고 민망하게도, 곧장 아사드와 눈이 마주치게 됐다.
멋쩍은 우연이었다. 하나 아사드의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눈을 피한 건 아사드가 먼저였으니까. 시선이 부딪침과 동시에 아사드는 다시 앞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위에 탑처럼 쌓인 샴페인 잔을 째려보는 아사드의 낯을 케이든은 유심히 살폈다.
‘뭔가…… 불편한 게 있는 걸까.’
걱정이 돼서 그랬다.
사람들의 눈길이 아사드에게 닿았다 떨어지길 반복하고 있는 걸 알았다. 슬며시 훔쳐보거나 대놓고 바라보거나, 시선의 종류도 참 다양했다. 그래서 더 괜한 걱정이 들었다. 아사드를 신경 쓰게 됐다.
저택의 후원엔 멋지게 차려입은 남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케이든의 눈에는, 아사드처럼 빛이 나는 사람은 없었다. 본연의 아름다움은 숨겨지지 않는구나 싶었다. 마법으로 눈 색을 바꾸고, 낯선 옷을 입고, 남의 이름을 빌려 와 봤자였다.
오늘 오전, 고저택을 나서는 아사드를 보며 케이든은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아사드가 입은 옷이 꼭 수도 중앙에 있을 고급 의상실에서 만들어진 맞춤옷처럼 보여서 그랬다. 옷을 함께 샀으면서 그런 착각을 했다. 아사드라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넝마를 걸쳐 입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망상이 함께였다.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
도울 방법이 없어 안타까웠다. 사람들의 눈을 가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결혼식도 피로연도 짧게 끝을 맺을 거란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케이든은 아사드가 불편함을 길게 느끼지 않길 바랐다.
“선배.”
“……어?”
아사드의 부름에 케이든이 한 박자 늦은 답을 내놨다. 선배라는 호칭이 낯설어 그랬다.
“신경 안 쓰여요?”
“…….”
“어떤 새끼가, 배우자가 있는 오메가를 너무 더럽고 추잡스럽게 보잖아요. 나는 되게 신경 쓰이거든. 눈을 뽑아도 계속 저럴 수 있을까요? 아니, 그건 너무 비인도적인 방법이니까 불로 지지는 편이 낫겠죠?”
저를 향해 몸을 붙인 아사드가 중얼대는 말을 듣고 케이든은 깜짝 놀랐다.
“저 사람.”
손을 뻗은 아사드가 키가 훤칠한 젊은 남자 하나를 가리켰다. 케이든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사드가 그 자신을 향한 시선을 거슬려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건 다행이지만, 이상한 사람이 있다니 걱정이 됐다.
남자는 그의 옆에 있는 다른 남자들과 말을 나누고 있었다. 부유층으로 보이는 어린 신사들은 모두 모난 곳 없이 평범해만 보였다. 하지만 겉모습만으론 모를 일이었다. 아사드가 저런 험악한 소리를 입에 담게 됐을 정도니, 확실히 보통의 시선은 아니었을 거다.
‘배우자가 있는 오메가라면…….’
엠마. 엠마를 말하는 걸 거다. 낯선 엘바에서, 그보다 낯설 이 저택에서 아사드가 아는 오메가는, 그것도 배우자가 있는 오메가는, 엠마밖에 없질 않은가.
이렇게 평화로운 결혼식에 참석해선 신부에게 불순한 시선이나 보내다니. 아사드가 집어낸 남자가 그저 취향이 더러운 호색한이어도 문제였고 엠마의 옛 애인이어도 문제였다.
‘결혼식을 방해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이 들어 마음이 철렁이기도 했다.
하나 일단은 걱정을 삼킨 케이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사드의 과격한 물음에 답을 주기 위함이었다.
“눈은 뽑으면 안 돼. 그러지 마.”
케이든은 아사드가 엠마를 신경 써 준 게 고마웠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알아채 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아사드가 그의 난폭한 바람을 실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진담보다는 짜증 섞인 농담에 가까운 말을 뱉은 것이겠지. 그런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리게 됐다. 그의 시선에 관한 처분은 엠마와 그녀의 배우자에게 맡겨야 했다.
“……불로 지지는 건 괜찮다는 거죠?”
“그, 그것도 안 돼. 내가 엠마한테 따로 말해 볼게. 널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걱정된다고 전해 주면 돼. 그 사람이 엠마의 마음에도 걸린다면 바로 쫓겨날 거야.”
“엠마?”
케이든의 말을 들은 아사드가 얼굴을 찌푸렸다. 헛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숨을 내뱉으면서였다.
“그쪽 일은 그쪽이 알아서 하라고 해요. 난 관심도 없어요.”
“…….”
“내 말은…….”
자신의 말뜻을 곡해하고 있는 케이든과 단단히 시선을 맞춘 아사드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밑에서 들려온 자그마한 박수 소리가 케이든의 주의를 사로잡는 바람에 말을 똑바로 잇지 못했다.
「위에 계신 신사분들. 잠시 밑을 봐 주세요.」
아사드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갑자기 찾아온 작은 방해꾼들을 향해서였다.
두 사람에게 말을 걸어온 이는, 이제 막 10살이나 됐을까 싶은 어린 여자애였다. 여자애의 옆에 그 또래로 보이는 남자애 하나가 똑같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자그마한 바구니 하나를 끌어안고서였다. 그 안에 꽃이 한가득 담긴 바구니였다.
제게 닿은 두 어른의 시선이 만족스럽다는 듯 여자아이는 방긋 웃었다. 뒤이어, 아이는 남자애가 든 꽃바구니 속에서 줄기를 짧게 자른 꽃 두 송이를 꺼내 들었다.
「자, 이제 받으세요.」
말을 마친 여자애가 꽃송이 하나씩을 케이든과 아사드에게 건넸다. 아이들이 귀 위에 꽂고 있는 흰색 꽃과 똑같은 것이었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케이든의 말을 가볍게 받아친 여자애가 곧장 남자애의 손을 붙잡고 멋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미련 없이 뒤를 돌아 떠났다. 좋은 시간 보내라는 말과 함께였다.
거친 바람이 왔다 간 기분이었다. 케이든은 아이에게 받은 꽃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옷이며 머리 장신구 위에 꽂아 보려고 노력하던 게 이거였구나 싶었다.
‘손에 들고만 있어도 괜찮겠지.’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꽃을 느릿하게 흔들어 보며 케이든은 미소 지었다.
“……나 봐 봐요.”
웃음기를 머금은 아사드의 목소리가 케이든의 시선을 들어 올렸다.
아사드는 그가 받은 흰 꽃을 케이든의 재킷 빈 앞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케이든의 손에 들려 있던 꽃은, 그대로 가져가 본인의 귀 위에 꽂았다. 꽃을 주러 왔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괜찮나?”
그리고 뻔뻔하게 웃어 보였다. 순간, 케이든은 할 말을 잃었다.
“왜 웃기만 해요? 괜찮냐고 물었는데, 답은 안 해 주고.”
귀 위에 꽃을 꽂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린아이의 주먹만 한 꽃송이는 아사드와 정말 잘 어울렸다. 얇고 풍성한 잎을 가진 새하얀 꽃이, 아름다운 미남자의 선명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조금쯤은 부드럽게 바꿔 주기도 했다.
“……잘 어울려서.”
“그래요?”
“응. 예쁘다.”
케이든은 순순히 제 속내를 고백했다. 어차피, 슬쩍슬쩍 아사드를 눈에 담고 있을 사람들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