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름다운 신부 (54)화 (54/97)

“무슨 생각 해?”

손끝으로 케이든의 턱을 들어 올리며 아사드는 물었다. 미간이 찌푸려진 걸 보아, 어딘가 심술이 난 모양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다 들킨 게 창피해 케이든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대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살갗에 닿은 아사드의 손이 너무 뜨거워서,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뭐야, 음흉한 생각 했어? 얼굴이 뜨겁잖아.”

“……제 얼굴이 아니라, 전하의 손이 뜨겁습니다.”

케이든은 아사드의 눈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뜨거운 건 자기면서. 맨날 저한테 얼굴이 뜨겁고, 손이 뜨겁다고 한다. 제 몸이 차가워서 좋다고 하다가도 이럴 때만 뜨겁다고…….

케이든은 억울했다. 말을 끝맺자마자 금세 다시 눈을 내리깔게 됐지만 말이다.

아사드는 케이든의 얼굴을 쥔 자신의 손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그 위로 보이는 다물린 입술을, 제 주인만큼이나 가지런한 속눈썹과 어두운 보랏빛 눈동자를 봤다.

혼란과 열기를 반씩 빼닮은 거센 충동이, 오늘도 아사드의 등을 떠밀었다.

아사드는 케이든에게 입을 맞췄다. 순순히 입을 열어 주는 남자에게 당혹스러울 정도의 사랑스러움을 느끼면서였다. 기쁨을 느끼면서였다.

케이든의 눈이 갸름해졌다. 예상하던 일이 일어났음에도, 당혹감을 완전히 떨치기 힘들었다. 하나 익숙한 온도를 받아들이며 차츰 안정되어 갔다.

입 안을 휘젓는 혀가 뜨거웠다. 역시나. 아사드는 모든 게 뜨겁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게 됐다.

아사드는 케이든의 몸을 끌어당겼다. 케이든은 아사드의 새 옷에 자신의 손이 닿지 않게 하고자 노력했다. 허공을 맴돌던 두 손을 등 뒤로 숨기려 들었다. 하지만 금세 아사드에게 붙들려 버렸다.

아사드의 손은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얼굴과는 달랐다. 검을 쥐는 단단하고 거친 손이, 케이든의 손에 깍지를 껴 왔다. 혼자서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집요한 옭아맴이었다.

“아…….”

혀끝이 입천장을 긁는 감각에 케이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사드의 손끝이 장난을 치듯 제 손등까지 긁어내리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사드와 닿는 모든 부분이, 너무나 간지러웠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낼까 무서웠다. 자신의 기쁨으로 아사드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겁이 났다. 그런데도 아사드를 밀어 내야겠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이대로, 그에게 붙들려 있고 싶었다.

페로몬 향이 느껴졌다.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아사드의 향기였다.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입맞춤이 길어질수록 아사드의 페로몬 향도 강해졌다. 그 속에 빠져 죽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까지 드는 달콤한 향기가 제게 한 번 더 입을 맞춰 주는 것만 같았다.

저를 찍어 누르는 페로몬이 아니라 저를 감싸 주는 페로몬이 케이든은 낯설었다. 그리고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아사드의 페로몬은 저를 지켜 주려 했다. 적어도 그와 입을 맞추는 동안엔,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의 평생에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안락한 보호 속에서, 케이든은 서글픈 황홀함을 느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안락함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당신 말처럼, 정말 뜨거운 건……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겠어.”

케이든의 귓가에 아사드는 속삭였다. 눈을 감은 케이든의 뺨 위에, 입술 위에 다시 정신없이 제 입술을 댔다.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코를 박고 미약한 향을 음미했다. 참을 수 없다는 듯 그 위에 입을 맞추다가는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

하지만 이내 뒤로 몸을 물렸다. 케이든을 붙잡은 손은 풀지 않은 채였다.

입맞춤은 끝났다.

케이든은 눈을 떴지만 위를 보지는 않았다. 입을 맞춘 후의 아사드를 마주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아사드의 두 눈이 너무 뜨겁고 밝아서, 그 안에 서린 갈망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케이든은 그 선명함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민망해서 그랬다.

「다시 입을 맞추고 싶어.」

아사드는 케이든의 손등 위에 엄지손가락으로 둥글게 원을 그렸다. 장난을 치는 어린애처럼 몇 번씩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하지만…… 안 돼. 내일은 결혼식에 가야 하잖아.”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 것과 지금의 입맞춤이 무슨 상관일까. 케이든은 답을 바란다는 듯 아사드를 빤히 바라봤다. 하나 아사드는 도통 답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딘가 곤란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 해.”

바보처럼 눈만 껌뻑이는 케이든에게, 그저 이렇게 속삭일 뿐이었다.

케이든은 아사드가 내놓은 결론에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대신 소리 없이 미소만 지었다. 미련이 남은 듯한 아사드의 목소리가 왜인지 안심이 됐다. 이상한 안도였다.

“……왜, 아쉬워?”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물음엔 재빨리 고개를 저어 가며 답을 해 줬다.

“그래?”

아사드는 휙 고개를 돌렸다. 무언갈 못마땅해하는 얼굴을 한 채였다.

“……침대가 너무 큰데.”

여전히 케이든에게서 반쯤 몸을 돌린 상태로 아사드는 힐끗 침실 한편에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다소 뜬금없는 말을 내놨다.

“쓸쓸하지 않겠어?”

“괜찮습니다.”

“낯선 곳이잖아. 생전 처음 발 들여 본 저택에서, 쓸데없이 큰 침대에 누워 혼자 자야 하는데?”

이상한 소리였다. 아사드는 그의 나이 3살에도 홀로 의젓하게 잠자리에 들었을 사람이었다. 분명,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푹 잤을 거다. 그런 사람이 3살이 아니라 23살인 제게 혼자 자기 두렵지 않냐고 묻는다. 농담을 건넨 건가 싶었다.

“…….”

케이든은 아사드의 고집스러운 옆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제게 힐끔힐끔 눈길을 보내는 아사드를 보고 있자니, 조금쯤은 그의 속내를 짐작하게 됐다. 아니, 속내라기보단…… 아사드가 원하는 대답 정도를 알게 됐다.

“다시 생각해 보니, 겁이 날 것 같습니다.”

“…….”

“지금은 황태자님과 함께 있어 괜찮지만, 혼자가 되면 쓸쓸해질 겁니다. 어딜 봐도 낯설기만 하니, 잠도 오질 않을 테고요.”

“그래?”

다시 저를 봐 주는 아사드의 얼굴이 묘하게 밝아졌다. 맞는 답을 내놓은 모양이었다. 제 손을 붙잡은 아사드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케이든은 아사드를 따라 자그맣게 웃었다.

〈오늘은 당신 침대에서 잘 거야.〉

〈내가 황태자비의 침실에서 잠을 자는 게 이상한가?〉

희락기가 끝난 다음 날, 저를 찾아왔던 아사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후로 같은 침대 위에서 함께 잠이 든 적이 여러 번이었다. 다른 뜻이 있어선 아니었다. 아사드는 그저, 저를 끌어안고 자기 좋은 시원한 쿠션쯤으로 여겼다. 조금 큰 쿠션이긴 했지만 말이다.

처음엔, 심장이 뛰는 소리를 아사드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 잠을 잘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사드의 온도에도, 숨결에도 익숙해졌다. 언제든 편히 눈을 감게 됐다. 맞닿은 아사드의 몸이 너무나 따뜻해 잠이 잘 오기도 했다.

하나 그건 사막에서의 일이었다. 북부는 마법이 없어도 추운 곳이었다. 벽난로에 불을 피워 둔 채 그 열기를 끌어안으며 밤을 보내야 했다. 적어도 여기 엘바에선, 아사드가 몸이 차가운 저를 끌어안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북부의 차가움도 사막의 태양이 될 사람의 열기를 빼앗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같이 자 줄게.”

아사드는 말했다.

케이든은 아사드에게 다시 답을 주진 않았다. 대신 한 번 더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아사드는, 엘바에 와서까지 당신과 함께 잘 거라고 선포하는 게 창피했나 보다. 밤이면 인형을 끌어안고 자는 아이들이 그 사실을 다른 친구들에겐 비밀로 하는, 그런 오묘한 마음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었다. 입 밖으로는 솔직히 꺼내 놓지 못할 이야기인 거다.

케이든의 수락을 받아 낸 아사드는 별안간 입을 다물어 버렸다. 케이든을 빤히 보다간 슬그머니 손을 풀었다.

“……씻고 올게.”

“네.”

“옷도 갈아입고 올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아사드는 소리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 침실을 나섰다.

달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완전히 문이 닫혔다. 어두운 나무 문을 멍하니 보던 케이든은 결국 참았던 웃음을 내비치게 됐다. 아사드의 앞에선 꺼낼 수 없었던, 조금 더 솔직한 것이었다.

아사드는 귀엽다.

귓가가 붉어진 채로 케이든은 생각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사드가 귀여워 보였다. 헬리오를 떠날 때까지 군말 없이 아사드의 시원한 봉제 인형 노릇을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밤. 케이든은 아주 약간의 쓸쓸함도 느끼지 못했다. 벽난로에서 춤을 추는 불덩이보다 뜨거운 남자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으니까.

* * *

엠마의 결혼식은 수도 서쪽 외곽에 자리한 커다란 저택의 후원에서 열렸다. 한때 엠마의 일터였던 곳이, 이제는 그녀가 자신의 배우자와 오래도록 함께 살 집이 됐다.

언제 비바람이 몰아칠지 모르는 북부에서 야외 결혼식이라니. 아무리 여름이 코앞에 왔다고 한들, 배짱이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선택이었다.

하나 까탈스러운 북부의 날씨도 엠마의 결혼을 축하해 주려는 모양이었다. 청명한 하늘에 뜬 환한 해가, 꼭 중부의 봄날처럼 따스한 얼굴을 하고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하얀 카펫 위에 흩뿌려진 꽃송이들이 햇빛을 머금어 반짝였다. 후원에 모인 손님들에게 말을 거는 바람 또한 쌀쌀맞지 않고 다정하기만 했다.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핀 후원의 보랏빛 풍경을, 케이든은 부지런히 눈에 담았다. 눈앞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느껴져 마음이 들떴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