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름다운 신부 (50)화 (50/97)

“어차피 아문에게 옷을 한 벌 사 주려고 해서…… 아니, 의상실에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제 옷도 함께 샀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멋진 옷도 정말 좋지만, 조금만 더 평범한 것으로요.”

“…….”

“제가 모아 둔 돈을 썼을 겁니다. 아문의 돈이나 황실의 돈은 쓰지 않았을 거예요.”

쓸데없는 일에 돈을 두 번 쓴다고 아사드가 저를 한심하게 여기기라도 할까, 케이든은 미리 변명을 늘어놨다. 억지로 덧붙인 말이었다.

아사드의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웃음이 사그라든 남자는 어딘가 심기가 불편한 듯했다. 설핏 서운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케이든은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했다고 여겼다.

“아문이 준비해 준 옷이 싫다는 건 아닙니다. 정말 멋있고 좋습니다.”

“아문이 아니라 내가 준비한 거야.”

케이든에게 대어 봤던 옷을 거두며 아사드는 말했다.

“과한 건 알지.”

“…….”

“무난한 옷 좋지. 그게 맞고. 하지만 너무 평범한 건 말고 조금만 더 괜찮은 걸 입히자, 그런 마음으로 옷을 바꿔 가다 보니 이 꼴이 났어. 내 눈이 너무 높았던 모양이야.”

“이게…… 전하께서 준비해 주신 옷이었군요.”

케이든은 평소라면 되풀이하지 않았을 말을, 이미 아사드가 한 번 내놓았던 말을 반복해 되뇌었다.

저런 이야기를 입에 담은 아사드의 두 눈에 뜻 모를 쑥스러움이 묻어나 있는 것처럼 보여 기분이 이상했다.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다간 이유 없이 오른뺨을 매만지게 됐다.

‘나를 생각해서 직접 준비한…….’

아사드가 저를 아낀다는 착각을 할 법한 이야기였다. 순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 버렸다.

하나 케이든은 혼란한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했다. 아사드가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점점 더 상대방의 행동을 왜곡해서 바라보게 되는 걸까? 스스로를 향한 걱정이 들었다.

“왜. 내가 준비했다니까 싫어?”

“아닙니다. 정말…… 기쁘고 좋습니다.”

저를 보지 않고 있는 아사드에게 케이든은 답했다. 진심을 말했다. 싫었다면, 심장께가 이렇게 간지러울 리 없었다. 잠시나마 하늘을 나는 듯 붕 뜬 기분을 느끼지도 않았을 거다.

하나 쓸데없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됐다. 삿된 감정을 느끼면 안 됐다. 그걸 알았기에, 빨리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잘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아사드는 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제 비루한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었다. 이런 좋은 옷을 마련해 준 것도 그 때문일 거다. 정작 저를 마주할 왕국 사람들은 제가 헬리오의 황태자비 자리에 잠시 앉아 있다는 걸 모르겠지만, 아사드와 호위들은 알지 않나.

〈무난한 옷 좋지. 그게 맞고. 하지만 너무 평범한 건 말고 조금만 더 괜찮은 걸 입히자, 그런 마음으로 옷을 바꿔 가다 보니 이 꼴이 났어. 내 눈이 너무 높았던 모양이야.〉

그래도, 케이든은 기뻤다. 의미 없을 친절에 홀로 기쁨을 느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도통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심장이 쿵쿵 뛰어 댔다.

“뭘 그렇게 변명해? 그러지 않아도, 당신이 내 정성을 무시하지 않을 사람인 걸 알아.”

“……감사합니다.”

“그래, 새 옷을 사자. 당신 친구의 혼인식에서 입을 굉장히 무난한 옷.”

준비해 뒀던 옷을 다시 침대 위에 툭 내려놓으며 아사드는 웃음 지었다.

“이건 이것대로, 언젠가 필요할 날이 있겠지.”

쭉 아사드의 말이 이어졌다.

“의상실엔 함께 갈 거야. 당신 옷 말고도 사야 할 옷이 또 있으니까.”

“옷이 필요하십니까?”

“응. 내 옷. 내가 가져온 건…… 아무래도 당신이 안 좋아할 모양이라서. 아문의 것은 내가 더 좋은 걸로 맞춰 줄 테니 머릿속에서 지워 버려. 대신, 내 옷을 사 줘.”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은 아사드가 건넨 말이 케이든은 의아하기만 했다. 아문 대신 내 옷을 사 달라니, 무슨 소린가 해서였다.

케이든은 주택가 한편에 모인 상가에 있을 의상실에 가 볼 생각이었다. 진열된 기성품에 간단한 수선을 해 줄 재단사가 있는, 그런 평범한 의상실 말이다.

평범하다는 말을 수준이 낮다는 말처럼 여기는 건 아니었다. 그 말을 내려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저는 평범함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할 밑바닥 인생이 아닌가.

하지만 아사드는…… 평범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그가 아문을 대신해 저를 따라왔다고 해도 그랬다.

“내가 준비한 옷에 문제가 있으면 바꿔야지. 나도 당신을 따라 혼인식, 아니지, 결혼식에 갈 것이니 더더욱.”

“……전하께서 결혼식에요?”

“당신 혼자 가게 둘 순 없잖아.”

“결혼식에서 무슨 일이라도 날까 염려가 돼서 그러십니까? 저는, 호위를 봐 주시는 분들께 부탁해서…… 일행이 아닌 척 함께 가면 됩니다.”

“부탁하겠다? 내 귀엔, 그 말이 혼자 갈 거란 소리로밖엔 안 들리는데.”

이 말 역시 억지였다.

“안 돼.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당신을 혼자 다니게 둬. 나는 당신 배우자야. 내가 호위와 시종 노릇 다 해 줘야지.”

제 말을 잘라먹는 아사드에게, 케이든은 도대체 왜 그러시냐고 묻고 싶었다. 혼자 남은 제게 문제가 생기면 더 좋은 게 아닌가 싶어 의아하기도 했다. 2년하고도 조금 남은 부부 생활이 더 빨리 단축될 테니 말이다.

케이든의 의문이 길어지진 않았다. 그는 금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한눈판 사이에 왕국령에서, 그것도 수도 한복판에서 제국의 황태자비가 수모를 겪었다……. 큰일 날 일이지. 조심해 둬야 하지 않겠어?”

아사드는 황태자비인 제가 헬리오가 아닌 엘바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에 휘말릴까, 혹은 사고를 저지를까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저를 걱정한다기보단, 귀찮은 일이 생길 가능성을 걱정하는 거였다.

“안 그래?”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아사드의 물음에 케이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뭐, 내가 함께해 줄 테니 안심해. 이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당신 옆을 지키고 서 있을 텐데, 누가 감히 허튼짓을 벌이겠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이든은 아사드가 엠마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아사드가 내민 호의를 다급히 붙들었다.

케이든의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불안감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사드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제게는 그 무엇보다 큰 안도가 된다는 사실이 멋쩍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론 자꾸만 아사드의 말을 되뇌게 됐다. 당신의 옆을 지키고 서 있을 거란, 그 말을.

고개를 돌린 아사드가 슬쩍 창밖을 내다봤다. 이전보다 채도가 낮아진 하늘의 귀퉁이에 옅은 보랏빛이 번지고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완전한 어둠이 하늘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남은 얘기는 밤에 마저 해. 해가 다 지기 전에 나가 봐야지.”

아사드의 두 손이, 그를 따라 창밖에 시선을 주고 있던 케이든의 어깨를 붙잡았다. 장난기가 어린 눈빛과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당신이 바라는 옷을 파는 의상실이 어디에 있는지,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고. 당신이 아는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도 좋겠군.”

“알겠습니다.”

“밖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것도 괜찮겠지. 호위들이 뜯어말리겠지만.”

“저는……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뭐든 따르겠습니다.”

다소 얼떨떨한 얼굴을 한 케이든이 급히 답을 내놓았다. 해가 저물기 전에 나가 보자며 말을 걸어온 아사드의 웃음 띤 얼굴이 너무 들떠 있어서,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황궁을 벗어나서 즐거운가 봐. 신난 것 같아.’

지금 아사드에게 중요한 건 새로운 옷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옷을 핑계로 밖을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쁜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들떠 있는 아사드가…… 어딘가 귀여워 보였다. 아사드와 아문이 고작 1살 차이밖에 나질 않는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보기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분이 고귀한 신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케이든 님보다 4살이 어린…… 앤데요.〉

언젠가 아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보다 4살이 어린, 애구나. 조용히 눈만 깜빡이던 케이든이 이내 아사드를 따라 미소 지었다.

* * *

재단사 밀로아는 자신의 의상실 한편에 삐딱하게 폼을 잡고 섰다.

밀로아는 제 밑의 유일한 조수이자 이 작은 가게의 하나뿐인 직원 라이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라이나와 함께 있는 훤칠한 남자 손님들을 보는 건 덤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라이나는, 옷 만드는 걸 배우겠다며 다짜고짜 수도에 발을 들인 귀찮은 시골내기였다. 디자인 능력도 바느질 실력도 비참하기만 했지만, 그래도 아주 못 쓸 조수는 아니었다. 거짓말로도 성격이 좋다고 말하지 못할 저보다는 접객을 잘했으니까.

그뿐인가. 라이나는 결코 당황하는 일이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이 동네에서 이제껏 본 적 없던 미남자들을 ―한 놈은 알파였다― 앞에 두고도 평소처럼 웃으며 옷을 팔고 있지 않은가. 바늘구멍만큼의 수줍음도 타질 않았다.

저런 걸 보면, 라이나를 써 보기로 했던 게 아주 잘못된 선택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손해는 아니었다.

나이 든 재단사 밀로아의 가게는 외곽 지역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작위는 없어도 재산은 가진 자들의 아름다운 저택과 평범한 민가가 곧장 이어져 있는 복잡한 동네였다.

밀로아의 주 고객층이 돈을 가진 자들은 아니었다. 평범한 주택가에 사는 이들이 그녀의 손님이 됐다.

얼굴이 낯선 고객보단 낯이 익은 단골이 많기도 했다. 맞춤 의상을 만드는 것보단, 진열대에 걸린 기성복이나 손님들이 들고 온 옷을 수선해 주는 일이 더 많은 작은 의상실이니 말이다.

그런 의상실에…… 길을 오가면서도 본 적 없던 남자들이, 마네킹으로 삼으면 좋을 듯한 미남자들이 찾아온 건 또 처음이었다. 이 일대의 의상실 중 제가 꾸려 가는 의상실만큼 괜찮은 곳이 없으니 추천을 받아서 온 거겠지 싶었다.

「…….」

밀로아는 라이나보다 키가 큰 남자들에게로 다시 시선을 올렸다. 그녀는 얼굴 한편에 엷은 흉이 남아 있는 남자와 아름다운 헬리오 남자를 빤히 봤다.

한쪽은 그 분위기가 겨울 하늘처럼 칙칙했고, 다른 한쪽은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번쩍 빛이 났다. 아니, 뜨거웠다. 서로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통에 그 분위기가 더 대조적으로 보이는 듯했다.

‘자신만만한 낯짝을 가진 놈이, 칙칙한 놈의 기운을 다 빨아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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