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름다운 신부 (43)화 (43/97)

아문의 손이 케이든의 이마에 닿았다. 손등을 이마에 대어 본 거였다.

따뜻했다.

그래도 아픈 사람처럼 열이 절절 끓는 정도는 아니었다. 살이 불덩이처럼 뜨겁지도 않았다. 그저, 요 며칠 제대로 쉬지 못한 몸이 휴식을 선언한 듯 보였다.

“전하께서도, 케이든 님의 페로몬 향을 싫어하셨습니까?”

이마 위를 맴돌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케이든의 눈썹을, 반쯤 감긴 눈가를, 마른 뺨을 스쳤다.

아문은 자신이 내뱉은 물음이 민망하고도 우스웠다. 케이든의 페로몬을 이제야 느끼고 있는 주제에 모른 척 괜한 소리를 건넸다. 사실, 아사드 메케리우스와 함께 보낸 밤이 어땠냐를 조금 많이 돌려 물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분이 내 체향을 느끼셨을지는…… 잘 모르겠어.”

곰곰이 생각해 보던 케이든이 답했다. 하지만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곧장 말 몇 마디를 더했다.

「알아채셨다고 해도 기억은 못 하실 것 같아. 원래 첫 희락기엔 모든 게 좋게만 느껴진다고 했어. 함께 희락기를 보낸 상대가 누구건 아름다워 보이고, 페로몬 향도 좋게만 느껴지는 법이라고 하던데…….」

「전하께선 그렇게 분별력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분명, 열기 속에서도 본질을 꿰뚫어 보셨겠죠.」

눈을 동그랗게 뜬 아문이 빠르게 말을 늘어놨다.

아문은, 아사드는 당황했다. 케이든의 말이 너무 이상해서 그랬다.

알파와 오메가의 희락기는 마법사들의 사랑 마법 따위에 발을 담그는 것과는 달랐다. 반쯤 이성을 잃고 본능에 따라 움직이게 되니, 좋고 싫음을 더 숨길 수 없어진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세상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기만 한단 말인가.

아사드 역시 그의 첫 희락기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지난 이틀간, 좋게 느껴졌던 건 오직 케이든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럼…… 나를 더 싫어하게 되셨을까?」

시선을 내리깐 케이든이 중얼거렸다. 어딘가 우울하게 들리는 음성이었다.

“네?”

아문이 되물었다. 상념에 잠겼던 탓에, 케이든이 혼잣말처럼 내뱉은 걱정을 완전히 귀에 담지 못했다.

“헛소리를 했어.”

“열이 나셔서 그래요. 정오까지도 잔열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약을 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문은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없는 케이든을 조심히 눕혀 주며 말을 이었다.

「전하께선 케이든 님의 페로몬 향을 이상하다 여기지 않으실 겁니다. 좋다고 느끼실걸요? 제 생각은 그래요.」

“…….”

「그러니, 페로몬 탈취제 따위는 절대 쓰지 마세요. 그런 건…… 말도 안 됩니다.」

저 위에 있는 엘바의 사정이 어떨진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 헬리오에선, 질 나쁜 자들이나 페로몬을 지우는 향수며 탈취제 같은 걸 썼다. 파렴치한 외도를 숨기기 위해서 쓰기도 할 테고. 그게 뭐든, 하나같이 케이든과는 거리가 먼 얘기들이었다.

불쑥 치밀어 올랐다 가라앉길 반복하는 오묘한 분노를 감추며 아문은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흐트러져 있던 이불을 빳빳이 펴서, 케이든의 가슴팍까지 끌어 올려 덮어 줬다. 하얀 이불 속에 누운 걸 보니 안심이 됐다.

“고마워.”

케이든은 아문에게 감사를 말했다. 미약한 웃음이 퍼져 있는 얼굴이 지쳐 보였다. 괜히 안쓰럽게. 또 마음이 찜찜하게.

왜인지 속이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아문.”

“네.”

“네가 보고 싶을 거야.”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케이든은 중얼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다가 저딴 말을 내뱉은 건지, 조금도 예상이 가질 않았다.

몸을 일으킨 아문은 황급히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황태자님은요? 그분은 안 보고 싶으십니까?”

잠을 헤매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에게 아문이 대뜸 물었다. 아사드의 입장에서 물은 거였다.

“……보고 싶지.”

나쁘지 않은 답변이었다.

“그분이 보고 싶으셨군요.”

어느새 눈을 감은 케이든에게로 아문의 몸이 기울었다. 케이든을 내려다보며, 아문은 소리 없이 웃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올걸. 그런 후회가 스쳤다.

첫 희락기를 시끄럽게 보낸 황태자가, 생전 처음 느껴 본 육욕에 정신이 팔려 날이 밝기 무섭게 헐레벌떡 황태자비에게 달려가더라. 이딴 헛소리가 퍼질 것이 분명해 참았더니……. 괜한 일을 신경 썼다 싶었다. 입만 산 것들이 떠들거나 말거나, 저는 제 할 일을 해야 했는데.

하얀 이불을 덮고, 케이든은 금세 잠이 들었다.

아사드는 눈을 감은 남자의 낯을 말없이 살폈다. 아문으로 모습을 바꾸고 복도를 달음박질칠 때 느꼈던 초조와 불안이, 우스운 서운함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게 느껴졌다. 심장께를 굳히던 긴장이 풀려 갔다.

훗날을 위해 세워 뒀던 계획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통 생각에 깊이 잠길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영양가 없는 계책을 세우는 일 따위는 조금 더 뒤로 미루고 싶었다. 희락기의 잔열이 덜 가신 머릿속이 조금은 몽롱하다는 핑계를 대면 될 것이다.

‘다음엔…… 더 잘해야지. 저렇게 힘들어하지 않게.’

아문의 상체가 케이든을 향해 조금 더 기울었다. 아사드는, 아문은 잠이 든 신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랑 없는 부부 사이에 할 만한 행동은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페로몬의 농간과 충동에 져 버린 것을.

“보고 싶은 분은, 잠에서 깨어나면 만나게 되실 겁니다.”

케이든의 까만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아문은 속삭였다. 어느덧 꿈속에 빠진 케이든은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 * *

아사드가 케이든을 찾은 건, 바로 다음 날이었다.

해가 완전히 저문 저녁에 아사드는 제 신부의 침실 문을 열어젖혔다. 차갑게 굳은 얼굴을 한 채 다급히 발을 들이는 행태가, 항시 여유롭던 제국의 황태자가 아니라 돈을 수금하러 온 사채꾼을 닮아 있었다. 그의 잘난 겉모습은 제외하고 말이다.

마주 앉은 두 남자 사이에 놓이게 된 테이블 위로 어색한 침묵이 깔렸다.

아사드는 케이든을 곁눈질했다. 아사드의 손끝이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어딘가 불안하게 들렸다.

긴 잠에서 깨어난 케이든은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 저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얼굴이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니, 죽었다 살아난 사람처럼 창백했다.

저와 고작 4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젊은 남자가, 저리 허약해서 어쩌나 싶었다.

일단 몸에 좋은 걸 먹이고, 잠도 오래 재워야지. 밖으로 데리고 나가 햇볕을 쐬게 하면…… 건강해지려나? 생전 걱정해 본 적 없던 남의 건강을 신경 쓰며 아사드는 머리를 굴려 봤다.

“…….”

아사드는 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문의 모습을 하고선 막힘없이 나왔던 말들이 자꾸 입 속에서만 맴돌았다. 지난 정사의 흔적을 숨기기 위해 입은, 상체를 다 가리는 튜닉이 괜스레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나 침묵이 길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초조가 아사드의 등을 떠밀었다.

“몸은, 괜찮나?”

테이블 위에 완전히 팔을 걸친 아사드가 케이든에게 물었다. 고작 이 한마디를 내뱉는 일에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네. 건강합니다.”

아사드의 물음에 케이든은 급히 답을 내놨다.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이, 저와 희락기를 보내기 전과 다른 것 하나 없었다.

그게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이전과 다른 게 있기는 했다. 바로 어제만 해도 침실 안에 가득 퍼져 있었던 케이든의 페로몬 향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단 점이었다.

별궁에 페로몬 탈취제 따위가 들어왔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으니, 억지로 향기를 지운 건 아닌 듯했다. 더군다나, 탈취제를 썼다면 케이든에게 들러붙어 있던 알파 페로몬도 함께 날아갔을 터다.

하나 케이든에게 묻어 있는 제 페로몬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여전히, 부끄러움도 모르고 그에게 진득하게 붙어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그 안에 노골적인 욕망을 담은 채였다.

‘자기 거에 이름 써 놓는 어린애 같네.’

너무 유치했다. 일단은 혼인을 한 사이니, 당분간은 저 남자가 내 것이고 내가 저 남자의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밤의 정원을 순행하는 빛무리를 마주한 새들이 내지르던 소리마저 그리워질 정도의 고요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케이든의 눈치를 살피며 아사드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왜 이렇게 초조한 기분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뭐라도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밀려왔다.

고민하던 아사드는 이내 결심했다는 듯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를 어색해하는 케이든과 억지로 눈을 맞추며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희락기를 함께 보내 줘서…… 고마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징그러운 소리였다. 입을 연 게 후회됐다.

“아닙니다.”

“당신이 날 완전한 알파로 만들어 줬잖아. 고마움을 표하는 게 맞지.”

후회는 더 길게 이어졌다. 이전보다 더 소름 끼치는 말을 해 버렸으니까. 당신이 날 완전한 알파로 만들어 줬다, 이건 너무…… 무르익은 연인 관계에나 오고 갈 표현이 아닌가. 어딘가 징그럽게 느껴져 속이 꼬였다.

아사드는 자신의 손에 뺨을 괴었다. 한껏 찌푸려진 얼굴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흔들고 있는 뜻 모를 조급함을 숨기려는 것이기도 했다.

저와 케이든이 몸을 섞었다는 사실이 이런 식으로 실감이 났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복잡해서, 맞닥뜨린 문제를 회피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사드 메케리우스와 회피.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어울려서는 안 되는 말이기도 했다.

아문의 모습으로 케이든을 찾아왔을 때와 지금의 감정이 달랐다. 아문도 나인데, 고작 모습이 바뀐 것만으로 속내가 달라졌다. 희락기 직후엔 차마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뒤늦게 찾아온 탓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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