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진 아사드의 낯을 마주한 시종장은 자신이 내쫓길 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하나 사반이 침실에서 쫓겨나는 것보다 아사드가 머리를 부여잡는 게 먼저였다. 마법사들의 수면 마법이 효과를 보인 거였다.
마법은 이제 막 첫 희락기를 맞이한, 아직 경험이 없는 미숙한 알파들을 위한 것이자 그 알파를 상대해야 할 오메가를 위한 것이었다. 마법을 이용해서라도 힘을 빼 놔야 했다. 상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어 그랬다.
아사드는 시간을 벌게 됐다. 고작 2시간도 안 될 유예였지만 말이다.
“이런 개 같은 기분을 계속 느껴야 한다는 게 짜증 나네…….”
“전하. 그렇게, 그렇게까지 황태자비님이 꺼려지십니까?”
“…….”
“저는 전하의 희락기가 정말 걱정됩니다. 첫 희락기라는 게…… 주위의 환경과 기분, 마음 따위에 영향을 많이 받음은 배워 알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더 걱정됩니다.”
휘청이는 아사드를 다시 침대로 인도하며 시종장 사반은 조심히 말을 꺼냈다.
아사드는 답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그저 황제에게, 그의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게 됐다.
〈엘바의 왕실에서는 희락기를, 그래, 그들 말로는 러트와 히트사이클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알파와 오메가를 고용한다고 하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거칠게 대할 수 없어서라는 우스운 핑계를 대면서 말이야. 그 애를 어찌 생각해야 할지 헷갈린다면, 뭐, 희락기를 보내기 위해 고용한 오메가 정도로 생각하렴.〉
불현듯 찾아온 희락기를 이유로 제 신부와 몸을 섞는다면, 어머니의 말처럼 되고 말 거다. 케이든은…… 제가 희락기를 무사히 보내는 걸 몇 번이고 돕다가 황궁을 떠날 사람이 되는 거다. 고용한 창부가 되는 거다.
아사드는 케이든을 그런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건 제 신부가 할 수 없을 일이기도 할 거다. 그 사람은 자기 얼굴값, 나잇값도 못 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베타에서 오메가로 형질이 변환됐다고도 했지. 그래서인지 제대로 된 페로몬 향도 나질 않았다.
그런 데다 겁까지 많은 이가, 저처럼 쥐뿔도 경험이 없는 알파와 희락기를 보내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었다.
본인의 희락기를 다른 놈과 함께해 본 적은 있을까?
없겠지. 희락기를 타인과 보낸 경험이 있는 오메가가 제가 준 손톱만 한 친절에도 쑥스러움을 느낀다는 건 말도 안 됐다. 모래 돼지도 안 먹을 인간 망종과 밤을 보냈다면 몰라도 말이다.
“황태자비에겐 알리지 마. 희락기는 나 혼자 알아서 할 거야. 문이나 잘 봉쇄해 놔.”
“전하…….”
“아무리 정신머리가 없어도 발코니 밖으로 뛰어내리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사드가 말했다.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 역시 그의 숨처럼 거칠어져 있었다.
페로몬을 통제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형질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고자 얼마나 노력했던가. 이깟 희락기도 홀로 넘겨 낼 자신이 있었다.
‘고작 이틀. 길어져도 나흘. 강하게 마음먹으면 이겨 내지 못할 건 없어.’
쏟아지는 졸음 속에서 아사드는 생각했다. 잠이 들기 직전까지 제 생각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 * *
아사드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세상은 막막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빛이라곤, 고작 문간을 간신히 밝히는 작은 등의 주홍색 빛뿐이었다. 하나 정신을 차릴수록 시야가 밝아져 갔다. 저 아래의 정원을 산책하는 반딧불이들이 내는 미약한 반짝임과 가느다란 달이 선심 쓰듯 나눠 준 흰 달빛 덕분이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미약한 빛밖엔 되지 않았다. 여전한 밤의 어둠 속에서, 아사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통각을 마비시키는 열기가 몸 전체를 채운 상태였다. 몸을 식힐 새가 없이 계속해 더운 기운이 밀려왔다. 용암에 몸을 담근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였다.
하나 미칠 것 같은 열기가 아사드를 새까맣게 태우진 못했다. 모든 걸 녹여 버릴 듯한 뜨거움 속으로, 찬 기운이 섞여 들고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제게 닿아 온 차가움을 붙잡고 싶었다. 잠시나마 정신을 들게 해 준 그 감각을, 이마와 머리칼 위에 닿았다 떨어지는 무언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사드는 잡아챘다. 힘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였다.
“아…….”
놀라움이 섞인 숨이 아사드의 옆에서 흘러나왔다.
아사드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저는 어둠에 가려진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식은땀이 맺힌 제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던 손이었다.
“너. 뭐야.”
입 안을 짓씹어 다시 정신을 차린 아사드가 말했다. 답이 없으면 공격하겠다는 경고를 담아서.
뿌옇게 변한 머릿속처럼 탁해진 시야와 어두운 방 안의 풍경이, 밤에 숨어든 방문객을 가려 주고 있었다. 단박에 몸을 일으킨 아사드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남자의 손을 제 쪽으로 끌었다. 남자는 싸울 의지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으며 아사드를 향해 순순히 끌려갔다.
아사드의 남은 손이 남자의 머리채를 붙들었다. 여차하면 그대로 벽에 머리를 처박은 뒤 목을 꺾어 버릴 생각이었다.
희락기에 접어든 아사드의 심장께가 적대감으로 거칠게 울렁였다.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황족의 희락기를 노리는 인간이 왜 없겠는가. 제 앞에 있는 이가 악의를 품은 침입자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도, 행동이 험해졌다. 첫 희락기를 맞은 어린 알파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 어둡고 뜨거운 탓이었다.
아사드에게 손목을 붙잡혔을 때와 달리, 남자는 숨도 뱉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몸을 붙여 오는 아사드를 가만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때마침 침실 안으로 기어들어 온 옅은 달빛이, 아사드를 찾은 남자를 잠시 비췄다.
“…….”
남자의 머리칼을 쥐고 있던 아사드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단단히 붙든 손목까지 놓아주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이 아프진 않을 정도론 힘을 풀었다.
내 신부가 여기, 내 앞에 있다.
뿌옇던 아사드의 시야가 차츰 선명해졌다. 케이든과 맞닿은 손에서부터 피어난 차가움이, 절절 끓고 있던 몸뚱어리에 퍼져 나갔다. 입 사이로 한결 편안해진 숨이 흘러나왔다.
“……미안.”
아사드는 사과를 건넸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케이든의 머리채를 붙잡았던 손은 길을 잃었다. 허공을 헤매던 손길은 결국 아래로, 케이든의 등허리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갔다.
얇고 부드러운 천에 닿은 손끝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제 신부는 뜨겁고도 차가운 걸까?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
홀린 듯, 아사드는 케이든에게 더 가까이 몸을 붙였다. 침묵하는 남자의 목덜미에 코를 대어 봤다. 몸을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는 물 내음과 씁쓸하고 단 향유의 향기가 코끝에 감돌았다. 오메가의 페로몬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아무런 페로몬 향이 느껴지지 않던 남자는, 희락기를 목전에 둔 알파의 페로몬에 질식할 지경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향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사드는 케이든을 품에 끌어안고 그의 체취를 느끼려 하고 있었다. 얇은 가운을 찢어발길 듯 구겨 가며 그의 몸을 지분대고, 케이든 위에 제 페로몬을 쏟아 냈다.
움찔대는 케이든의 허리춤을, 아사드는 단단히 붙들었다. 제게서 도망치지 못하게. 차마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하게.
제 신부를 붙잡고, 그저 품에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뿌연 열기로 꽉 막혔던 머릿속에 공간이 생기자 숨통이 트였다. 불구덩이에 던져진 듯 뜨겁기만 하지 않았다.
감각이 돌아왔다. 촉각과 통각, 후각, 시각. 그 모든 게 이제야 원래의 기능을 되찾고 있었다. 케이든의 모든 것이 온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나 육체의 기쁨과는 별개로, 아사드는 속으로 계속해 욕을 내뱉는 중이었다.
왜 케이든이 여기 있는 건지, 왜 자신은 케이든을 떼어 놓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몸을 붙여 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의문이 그의 안에서 빠르게 덩치를 키웠다. 너무나 혼란했다.
“누가, 당신을 여기까지 오게 했어. 누가…… 그렇게 만든 거야.”
아사드는 케이든의 귓전에 말을 속삭였다. 치밀어 오르려는, 반쯤은 폭력적이고 반쯤은 질척거리는 꺼림칙한 충동을 억지로 누르면서였다.
“전하의 페로몬이…… 점점 짙어지는 게 걱정이 돼서 왔습니다.”
누가 여기까지 오게 했냐니까 다른 소리를 한다. 남에게 책임을 돌려야 할 상황에서도 남의 탓을 하지 않는 사람다웠다.
아니. 케이든의 말이 맞는다면, 그를 여기까지 불러온 사람은 저였다.
헛웃음이 났다. 별궁 서관에 있는 제 신부에게 가 닿겠다고, 잠시 잠이 든 사이에 사방에 페로몬을 퍼트려 둔 몸뚱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랬다.
〈아사드. 고작 페로몬 따위가 너를 휘두르게 두면 안 된다.〉
〈알파라는 형질이 네 이름을 잡아먹게 둬선 안 돼.〉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가 자신의 손자에게 당부했던 가르침이 무색해진 듯했다.
아사드는 자신이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케이든을 당장 이곳에서 쫓아내야 함을 이해하면서도 그를 조금도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부터 그랬다.
그런 아사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케이든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 갔다.
“잠에서 깨어나시기 전에, 침실을 어둡게 만들어 뒀습니다.”
“…….”
“모든 준비를 마치고 왔으니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뭐든 하셔도 됩니다.”
케이든의 말을 들은 아사드는 말문이 막혔다. 그가 무슨 준비를 마쳤다는 건지, 뭘 원하는 대로 하라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