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름다운 신부 (24)화 (24/97)

팔찌는 그저…… 장신구 가판대를 바보처럼 들여다보던 케이든이 신경 쓰여 산 물건이었다. 뭐, 정확히 말하면 물건을 고르며 요란하게 떠드는 남자들을 본 거였지만 말이다.

징그럽게 입을 맞춰 대는, 거기다 쫑알쫑알 시끄럽기까지 한 인간들에게 눈길을 보내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도 많이 보이던 시장 한가운데에서 공중도덕을 어기며 꼴같잖은 짓을 하는데 어떻게 눈이 안 가겠나.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연인을 바라보는 이가 낯선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걱정하며 내도록 부산스럽게 굴던 케이든이라는 건 이상했다.

왜 저 사람들을 본 걸까. 어쩌다 눈에 띄게 된 그 이상한 모습이 마음에 걸렸었다. 다 큰 어른인 케이든의 손을 꽉 붙들고 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아사드는 도통 답이 나오질 않는 고민을 해야 했다.

징그러운 인간들이 서 있던 곳이 하필 장신구를 파는 가판 앞이었기 때문일까. 수수하기 그지없는 케이든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었다. 형질과 성별, 나이 따위에 상관없이 온갖 장신구를 몸에 두르고 다니는 헬리오의 사람들 사이에 있는 케이든의 모습이, 마치 신을 위해 금욕하는 삶을 산다는 북부의 성직자처럼 보였기에 더 그랬다.

배우자를 둔 오메가가 성직자처럼 보이다니. 영 거슬리는 일이었다.

그러다, 아사드는 자신이 갖게 된 의문에 스스로 답을 내 보았다.

내 신부는 장신구가 가지고 싶은가 보군.

그 근거 없는 결론이 아사드로 하여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충동적인 선택을 하게 했다. 다시 장신구를 파는 가판대로 향하기로 마음먹은 거다. 기왕이면 재수 없는 남자들이 서 있던 곳으로 가는 게 좋을 듯했다.

아문은 예술품 구역에 케이든을 세워 둔 채로 길을 되돌아갔다. 어느 상단의 호위라는 덩치 큰 남자에게 돈을 쥐여 주고, 예술품을 지키듯 케이든을 지키라고 말을 전한 뒤였다.

이전에 본 연인이 떠난 가판대 앞에 서서 아문은 다시 고민에 잠겼었다.

제 신부와 어울릴 만한 목걸이는 없었다. 제 목에 시선이 닿지 않길 바라며 목깃이 있는 옷만 챙겨 입는 이에게, 다짜고짜 어울리지도 않는 화려한 목걸이를 건네긴 싫었다. 귀를 뚫지 않은 사람이니 귀걸이를 줄 수도 없었다.

반지는 안 됐다. 시종인 아문의 모습으로 케이든에게 반지를 건네는 건, 정말 안 될 일이었다.

그런 제 앞에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가 바로 팔찌였다. 팔찌를 선물하는 행위에 다소 음흉한 은유가 포함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영원한 사랑의 맹세라고 불리는 반지처럼 공식적인 의미를 가진 건 아니었다.

애초에 팔찌를 건넬 저부터가, 사람을 소유하고 싶어 하고 구속하고 싶어 하는 소름 끼치는 유형의 인간들과 거리가 멀었다. 속뜻 따위야 상관없었다.

여하튼, 그런 식으로 급히 고른 평범한 팔찌를 받아 들자마자 눈물을 보이던 케이든의 얼굴이 정말 짜증 났었다. 그깟 팔찌가 뭐라고. 사라진 신부를 두고 떠나지 않은 게, 결국 그를 찾아낸 게 뭐라고.

케이든의 눈물에 아사드는 큰 혼란에 빠졌었다. 말이나 낙타를 타고 1시간여를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사막의 금빛 모래로 세수를 해야 정신을 차릴 수 있겠다 싶을 정도의 혼란이었다.

누군가 제 오장육부를 손으로 쥐고 꼬아 대기라도 하는 양 속이 쓰렸고, 순간 숨이 막혀 얼굴 전체가 뜨거워졌었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눈물만 쏟는 케이든이 너무 답답해 보여 그런 게 확실했다.

아사드는 그날 잠을 설쳤다. 아니, 아예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화가 나서 그랬다.

내밀한 수족들까지 부려 가며 케이든이 시장에서 겪은 진짜 일을 알아내려는 스스로의 헛짓거리에 화가 났을까? 아니면, 사라진 신부를 찾아다니며 등신처럼 굴었던 제게 화가 났던 걸까?

도대체 뭣 때문에 머리에 열이 오른 건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나 제가 느낀 분노에, 팔찌를 받아 든 케이든의 눈물이 크게 한몫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동이 틀 이른 아침이 된 후엔, 내용이 다른 짜증이 아사드를 찾아왔었다.

〈그런데 케이든 님께 선물을 드린 사람이 제가 처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 팔찌보다 먼저 예물을 받으셨으니까요.〉

〈그건…… 내 몫이 아니니까. 나 말고 다른 분이 받아야 할 선물을 내가 눈치 없이 가로챘을 뿐이야. 갑자기 전하의 반려자 자리에 앉게 됐잖아.〉

제 신부는 아문이 음흉한 마음을 품고 건넸을지도 모를 팔찌는 평생 간직할 선물이라며 기뻐해 놓고, 이전에 받은 예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그 점이 아사드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저는 케이든에게 그런 소박한 팔찌 말고 더 좋은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혼인 예물이 자기 것 같지 않다면, 다른 물건을 주면 되잖아. 별궁 서관의 모든 게 저 남자의 소유란 걸 확실히 보여 주면 되는 일이지.’

지금은 얼떨떨한 상태인 것 같지만, 케이든도 정신을 차린 뒤엔 좋아해 줄 거다.

속으로 생각한 아문이 케이든의 앞으로 도착한 보석함 중 하나를 열어 봤다. 마침 그 안에 팔찌가 들어 있었다. 아문이 건넸던 것과 마찬가지로 푸른색 보석이 박힌 형태였다.

보석의 크기가 아주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빛깔만은, 케이든의 손목을 차지한 소박한 모양새의 팔찌에 매달린 것과 확연한 차이가 났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영롱했다.

보석이 고작 하나만 달린 것도 아니었다. 줄 사이사이에 끼여선 저마다 다른 푸른빛을 내는 보석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게 진짜 선물이 아니겠는가.

함께 할 반지도 목걸이도 있다. 모두, 화려한 걸 원치 않을 제 신부의 취향을 가늠해 골라 뒀다. 특히나 목걸이는 그 단정함이 과해 심심할 정도였다. 그래도 케이든의 목에 호기심 섞인 시선이 닿는 것보단 나으니 상관없었다. 뭐든, 저 남자의 눈에만 예뻐 보이면 될 일이었다.

“케이든 님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케이든을 향해 몸을 튼 아문이 말했다. 보석이 정말 아름답다는 추임새와 함께였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 연회며 모임에 참석하시게 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하셔야죠. 단정한 건 좋지만, 성직자 같은 모습은 안 됩니다.”

아문은 모른 척 케이든의 말을 잘라 냈다. 곤란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그가 뭐라고 말을 이어 갈지 대충 예상이 돼 입을 막아 버린 거였다. 기껏 받은 선물을 쓰지도 않고 구석에 밀어 놓게 내버려 둘 줄 알고?

「황태자비님께서 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여기서 조금만 더, 케이든 님이 황태자 전하의 반려자라는 걸 드러내자는 겁니다. 전하가 자신의 반려자를 아끼지 않는 천하의 쓰레기 같은 알파처럼만 보이지 않게요.」

쓰레기 같은 알파라니. 아문의 말을 되뇌어 보던 케이든이 화들짝 놀랐다. 그는 알아들었노라며 아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인지 낯이 점차 창백하게 변해 갔다. 그의 앞으로 온 선물을 하나하나 보여 주고 설명을 덧붙여 줄 때마다 얼굴이 점층적으로 하얘졌다.

‘저쯤 되면…… 사람이 아니라 유령에 가까운 상태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안색이 좋지 못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냐, 그럴 리가.”

“그러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십니까?”

아문의 물음에 케이든은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이제는 저 답답한 꼴에도 대충 적응이 된지라 짜증이 나진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지지도 않았다. 입을 열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는 일이니까.

뭐, 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니라면 됐다 싶었다. 신경 쓰이는 점이 있나 본데, 그 또한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제 신부의 마음에 굴러다니고 있는 걱정이, 그 스스로 치우질 못할 문제라면 대신 치워 주면 되지 않겠는가.

“너무 예뻐서. 그게 마음에 걸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케이든이 느릿하게 내놓은 답에 아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너무 예뻐서? 그게 왜 문제가 되지? 케이든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쓰기엔 너무 예쁘고 반짝여서, 정말 이상해 보일 거야……. 황태자님까지 덩달아 비웃음을 사게 될까 봐 걱정돼.”

“…….”

“그분은 이런 예쁜 것들에게 끌려다닐 일 없이 아름다우신데, 나는 아니니까.”

자신을 낮추는 방법으로 남을 칭찬하려는 건가. 아니면 진심으로 저러는 걸까. 아마 후자겠지. 아문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 남자는 정말, 기이할 정도로 스스로의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케이든의 오른뺨 아래에 남은 상처에 대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고 한들, 리헤트처럼 그의 외관에 호감을 보인 이들 역시 많았을 거다.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는 그의 성격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저 정도로 생긴 남자가, 꼭 무언가에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성격 파탄자들이 한데 모인 농장 안에 갇혀 살면서 저렇게 된 게 분명하지.

그래도 대놓고 물어볼 순 없었다.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 만약, 또 눈물을 흘리기라도 하면 어쩔 건가? 아사드는 케이든의 눈물을 마주하게 될 상황을 원치 않았다.

감당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무어라 설명할 길 없는 답답함에 발을 구르다 저 발코니에서 뛰어내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운이 나빠 뼈에 금이라도 가면 정신이 좀 들겠지만, 아쉽게도 제 몸은 고작 2층 높이에서 떨어진 걸로 뼈가 잘못될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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