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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은 신부가 보이질 않는다.
황태자비의 침실이며 발코니, 그 옆에 딸린 욕실과 의상실을, 하다못해 서관 2층에 있는 모든 방의 문을 열어젖혀 보던 아사드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문의 모습을 하고서였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시 침실에만 처박혀 있는 남자가, 제가 올 걸 알면서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케이든이 별궁을 나섰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도 아니니 더욱 이상했다. 호위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 하나만을 침실 앞에 남겨 두고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한숨을 쉰 아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종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종들이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며 대기를 하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다행히, 커다란 빨간 쿠션 위에 늘어져 쉬던 남자 시종 하나가 케이든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
〈1층 응접실로 가시던데? 동관 말고 여기 서관.〉
왜 뜬금없이 응접실에 갔단 말인가. 2층도 아니고 1층 응접실에. 다급히 계단을 내려가며 아문은 속으로 툴툴댔다.
케이든에게 손님이 찾아왔다는 보고 역시 받지 못하긴 했지만…… 친척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모자란 것들을, 별 쓸데없는 인간들을 만나고 있지는 않나 싶어 걱정이 들었다. 마탄 같은 놈이 제국어가 서툰 제 신부를 붙잡고 억지로 말을 거는 중일지도 몰랐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아문의 걸음이 빨라졌다.
찬란한 정원의 풍경을 짊어진 1층 응접실은, 혼자만의 고요에 잠겨 있었다.
케이든은 없었다. 그를 따라갔으리라 여겼던 호위들 역시 보이지 않았다. 케이든을 찾는 아문의 입장에선 영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다.
‘정원에 간 건가.’
마법적 재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케이든이 연기처럼 증발할 리는 없었다. 응접실과 이어져 있는 정원으로 갔을 듯했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어려워하는 자이니, 어떻게 해서든 시종과 호위를 떼어 놓고 혼자 갔을 거다. 호위들은 정원 초입에서 케이든을 기다리고 있겠지 싶었다.
속으로 한숨을 쉰 아문이 발코니를 향해 갔다. 정원 안으로 들어설 요량이었다.
빛의 정원은 네모난 모양으로 이어져 있는 별궁의 한가운데에 자리했는데, 그 속에 자연 연못과 커다란 분수대를 품은 일종의 비밀 정원이었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연못의 아름다움이 특히나 장관이었다.
정원을 산책하는 취미는 없어 보였던 케이든이 왜 저와의 약속까지 잊고 여기에 온 건지, 도통 예측이 가질 않았다.
작은 소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아문은 정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버릇처럼 허리춤의 단도 위에 손을 댄 채였다. 이내 아문은 부산스러운 소리를 잡아채게 됐다. 큰 동물이나 인간이 낼 만한 소리였다.
뚱한 얼굴을 한 아문이 방향을 틀어 나무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를 가로막으려 드는 나뭇가지를 신경질적으로 밀쳐 내면서였다.
그리고, 나무가 마저 가리지 못한 빛 아래에 멈춰 섰다.
“여기서…… 뭘 하시는 겁니까?”
인상을 찌푸린 아문이 물었다.
제가 찾아 헤매던 바보 같은 남자가, 까슬까슬한 흙바닥 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낯이 익은 개들과 함께였다.
검은 개 두 마리와 얼빠진 얼굴을 한 케이든.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상한 조합이었다.
제 목소리를 듣고 놀란 케이든의 표정도 가관이었다.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얼뜨기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도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안 그래도 엉뚱하게만 느껴지던 풍경이 더욱 터무니없이 느껴졌다.
“내가…….”
“…….”
「내가 안 보여서 찾아온 거구나. 미안해. 시간이 가는 걸 모르고 있었어.」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케이든이 슬쩍 개들을 가리고 섰다. 그의 다급한 마음을 따라 자연스레 왕국어가 튀어나왔다.
케이든은 마치 개들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 성격 더러운 개들의 체구가 워낙 거대한지라, 대충 키만 큰 케이든의 몸으론 제대로 가려지지 않았다. 아문은 저 남자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했다.
건방진 개들이 저를 향해 눈을 흘겼다. 고작 겉모습이 바뀌었다고 사람 하나 못 알아보는 멍청한 놈들. 입가에 빵 쪼가리가 붙어 있는 꼴을 보니, 제 신부에게 무언갈 얻어먹은 모양이었다.
“개들한테 먹을 걸 챙겨 주셨습니까?”
“……응.”
케이든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개들을 막아설 때처럼 어딘가 필사적인 구석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그는 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얼굴이 잘생겨서 저리 절박한 인상을 주는 거지, 아니었다면 그저 비굴해만 보였을 터다.
「케이든 님이 챙겨 주실 필요가 없는 개들입니다.」
아문의 말을 받아든 케이든은 침묵했다. 그의 창백한 얼굴 위로 짙은 불안이 번졌다.
도대체 뭘 걱정하고 있는 걸까. 원래도 그 속내를 짐작하기 쉽지 않은 남자였지만, 지금은 더 이해가 어려웠다.
「산과 란. 두 놈 다 황녀님의 개들입니다. 정말 많은 시종이 유학 간 황녀님을 대신해 저것들을 돌보고 있고요.」
아문은 질질 끌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내 놨다. 케이든의 긴장한 꼴이 보기 싫어 그랬다.
당황한 케이든은 제 뒤에 있는 개들을 한 번, 다시 몸을 돌려 아문을 한 번 봤다. 아문은 케이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황녀님의 개? 잘 돌봐 줬다고? 저렇게 말랐는데?’ 분명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몸이 삐쩍 마른 건, 사막 토종견들의 특징입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힘들게 도망을 다니느라 그런 게 아니에요.」
「떠돌이 개들인 줄 알았어.」
케이든은 배신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억울하다는 얼굴을 했다. 남자의 그런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개가 우는 소리가 나서 찾아와 보니까, 몸에 뼈밖에 안 남은 개들이 힘없이 엎드려 있길래…… 그때부터 먹을 걸 챙겨 줬는데…….」
사람이 어수룩하다 싶더니만, 이젠 개들한테까지 사기를 당하는구나. 제가 아니었으면 꽤 오래도록 저것들한테 속았을 거다. 쯧쯧. 아문은 속으로 혀를 찼다.
「불쌍한 척을 잘하는 놈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짊어진 척하며 털썩 쓰러지는 게 특기죠. 특히나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잘 그럽니다.」
슬그머니 케이든의 뒤로 몸을 숨기는 검은 개들을 향해 아문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주인이 있다니 다행이다.」
케이든은 힘이 빠졌다는 듯 웃어 보였다. 허망함 대신 안도가 담긴 웃음이었다.
「시종들한테 개들을 돌봐 달라고 하셔도 됐을 텐데요. 홀로 여기까지 와 저것들에게 먹을 걸 나눠 주시는 대신 말이죠.」
「그러면 안 될 줄 알았어.」
「왜요?」
「괜히 쟤들 얘기를 했다가…… 저 애들이 쫓겨나게 될까 봐. 혹시 다칠까 봐, 그래서 말을 못 했어.」
계면쩍다는 얼굴을 한 케이든이 말했다.
분위기를 살피던 개들이 케이든의 손에 은근슬쩍 머리를 비볐다. 케이든에게 쓰다듬을 받으며 기분 좋다는 듯 눈을 반쯤 접는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내가 일했던 곳에도 떠돌이 개들이 많이 찾아왔었거든. 이 애들처럼 삐쩍 말라선 여기저기 다쳐 있는 게 불쌍해서 챙겨 줬었는데…….」
조곤조곤하게 이어지던 말끝이 흐려졌다. 입을 다물고는 대충 웃는 꼴을 보니, 더는 말을 이어 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왜 말씀을 하다 마십니까.」
이미 흐려진 말이 완전히 풀어져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기 전에, 아문은 그것을 붙잡았다.
이대로 대화를 끝마쳐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케이든이 숨긴 뒷말이 듣고 싶었다. 제 신부의 멍청한 웃음이 어딘가 찜찜하게 느껴져서 그랬다.
「……내가 못 본 사이에 그 개들이 문제를 일으켰나 봐. 도련님이, 주인어른의 아드님이 그 애들을 쏴 죽였어.」
“……네?”
한결 작아진 케이든의 목소리를 귀에 담던 아문이 생각을 멈췄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그 안에 실은 내용이 경악스러웠다.
「개들이 농장을 돌아다니게 내버려 둔 내 탓이지. 괜히 돌봐 줘서, 사람을 친근하게 느끼게 만든 것도 내 잘못이었고.」
“…….”
「그 후론 농장에 찾아오는 개들을 모른 척했어. 여기에서도……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긴장을 풀고 살았나 봐.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야.」
아문의 눈치를 슬쩍 본 케이든이 말했다.
그런 남자의 모습이 꼭 내 잘못을 모른 척해 달라고, 한 번만 봐 달라고 숙여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기분이 나빴다. 저 바보 같은 남자가 여기엔 존재하지도 않는 도련님이란 작자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그랬다.
「케이든 님은 황태자 전하의 하나뿐인 반려이십니다. 감히 누가, 그림자 아래에 사는 이들을 향한 황태자비님의 연민을 비난하겠습니까?」
뜸을 들이던 아문이 말을 이었다.
「이 별궁엔, 떠돌이 개들이 보인다고 해서 다짜고짜 검이니 총 따위를 들 사람은 없습니다. 사나운 사막 들개들이 인간을 뜯어 먹으러 찾아온 것도 아니고…….」
「…….」
「그러니, 이놈들 말고 진짜 떠돌이 개가 나타난다고 해도 억지로 모른 척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뭐, 개를 키우고 싶으시다면…… 황태자 전하께 말씀해 보세요. 부탁을 들어주실 겁니다.」
「아니야.」
그새 얼굴이 밝아진 케이든이 아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꼬였다. 남편에게 원하는 걸 말해 보라고 한 것뿐이다. 그게, 저렇게까지 질색하며 거부할 소린가?
「개를 좋아하시는 듯하여 말씀을 드려 본 겁니다.」
「키울 순 없어. 아무리 좋아해도…… 평생 옆에 있어 주지 못한다면, 그래선 안 돼. 갑자기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잖아. 개가 상처받을 거야.」
웃어 보인 케이든이 얄미운 개들의 머리통을 조심히 쓰다듬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