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기억 복구 작업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예전에 마음을 읽었던 것처럼 손만 잡으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했더니 서 팀장은 분개했다.
‘일단 기억 복구는 나 혼자만의 힘으론 불가능해. 둘은 필요해. 물리적으로 말이야.’
‘A급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A급이 무슨 S급씩이나 되는 줄 알아? 그리고 정신계는 S급 인력 거의 없어. 다들 나이 먹으면 미쳐 가지고 정신 병원 들어가거든.’
‘오…….’
‘내가 자기 기억에 접근하는 동안, 내 의식을 붙잡고 있을 사람이 필요해. 삭제 복구는 자기 머릿속에 내가 직접 침투해서 여기저길 샅샅이 뒤지는 거라, 삭제보다 곱절은 힘들거든. 잃어버린 물건 하나 찾는 게 그 방 물건 싹 가져다 버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거랑 비슷한 논리지. 그나마 나 정도 되니까 둘이서 가능하다고 말하는 거야. 원랜 이 작업에 열 명은 떼 지어서 들어간다고. 물론 국가적인 업무에 한정이지만.’
어쨌든 현재는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지금 당장 가능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기억을 되찾아야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텐데.
‘서주연 팀장님 아는 사람 중에, 은밀하게 우리 편이 돼 줄 사람은 없겠죠?’
‘자기가 나한테 했던 말들을 생각해 봐. 정신 병원에 처넣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한번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얘길 도대체 누가 믿는데?’
‘그건 그렇죠.’
의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했는데, 끝이 좋지 않아서 조금 망설여졌다.
‘당장 기억 못 찾는다고 하면, 당분간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래? 다행이네.’
‘아, 물론 팀장님은 있으시죠.’
의현은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분위기를 깼다.
‘머리띠 쓰는 대신 제 부탁 들어주기로 하셨잖아요.’
‘…….’
‘약속을 잘 지키는 상냥한 어른이시라면서요.’
‘…….’
‘그렇죠? 서주연 팀장님.’
뭐든 공짜는 없는 법이다. 의현은 머리에 매달려 반짝거리는 머리띠의 고양이 귀를 손으로 붙잡아 흔들었다. 무슨 아수라 백작처럼, 서 팀장은 헤죽거리다가 금세 정색하길 반복했다.
‘그래서, 제 부탁이 뭐냐면요…….’
* * *
“헉, 허억……. 힘들어!”
“거의 다 왔어요.”
“미친, 서주연! 얼굴에 정신 나가서, 그런 얘기를 왜 했을까?”
서 팀장은 땀을 뚝뚝 흘리며 산길을 올라갔다. 의현의 별장은 작은 산꼭대기에 있었는데, 차량은 허가를 받아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윤 기사의 차를 타고 오려면 서 팀장과의 관계를 설명해야 했다. 위험 부담이 큰 일을 굳이 나서서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힘드세요? 좀 들어 드릴까요?”
“든다고? 누구를?”
“팀장님이요.”
“어우, 내가 이렇게 보여도 몸무게가 꽤 무거워. 자기가 나를 어떻게 든다는 거야?”
산 아래쪽에 차를 대고 둘은 일찌감치 걸어 올라가는 중이었다. 머리띠 하나에 황금 같은 주말을 반납한 서 팀장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의현의 뒤를 따랐다.
“말씀 안 드렸나요? 저도 능력자예요.”
“뭐?”
“들어 드릴게요.”
의현이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자, 서 팀장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와! 뭐야! 무슨 능력이야?”
“글쎄요, 자연계인데요. 공기층을 좀 만질 수 있어요.”
“희귀한데? 인간이 아닌 건 어느 정도까지 들 수 있어? 그럼 지금 특수 능력 학교 다니는 거야? 졸업하면 헌터 되겠네? 몇 급이야? 현장 1팀 들어올 수 있어?”
“하나씩만 물어보시면 안 될까요?”
제가 걷지 않으니 살 만한 건지 서 팀장은 본격적으로 드러누워 떠들었다. 곧 윤화와 수찬을 소개하고 자신을 대신해 이들의 대리인이 되어 달라고 말할 참이라, 의현은 꽤 몸을 사리고 있었다.
“아, 나 방금 기가 막힌 가설이 떠올랐는데 말이야. 혹시 나를 팀장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과거에 자기가 우리 팀 직원이어서……?”
“맞아요. 현장 1팀.”
“맙소사, 서주연. 사내 연애는 절대 안 된다니까. 미치겠네…….”
“무슨 상상 하시는지는 몰라도, 그런 사이 아니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과거 얘기를 하며 십 분쯤 걸었을까, 커다란 별장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잔디 깔린 바닥에서 뛰어놀고 있던 윤화가 먼저 의현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형아-!”
“뛰지 말고 와, 뛰지 말고!”
의현의 주의가 무색하게 윤화는 앞으로 철퍼덕 엎어졌다. 무릎이 죄 까졌다. 형아, 흑……. 윤화는 금세 징징 울며 의현에게 손을 뻗었다. 의현은 한숨 쉬며 뛰어가 윤화를 일으켜 세우고 옷을 툭툭 털었다.
“뛰지 말라고 했잖아.”
“원래 안 넘어지는데, 오늘만 이상하게 넘어진 거야!”
잔디 바닥이라 돌이 박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의현은 별장에 들어가는 대로 얼른 윤화의 무릎부터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야? 숨겨 둔 아들? 나이가 애매한데…….”
“아, 윤화야 인사해.”
윤화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서 팀장을 손가락질하며 신기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우와!
“이쪽은 네 특별 대리인이 되어 주실, 서주연 팀장님이셔.”
“뭐어-?!”
허공에 누워 있던 서 팀장은 의현의 말에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중앙의 통유리창으로 한낮의 따사로운 햇볕이 작열했다. 바람에 따라 흔들거리는 화사한 벚꽃과, 푸르른 녹림.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운 이 별장을, 의현 역시 꽤 좋아했다.
“특별 대리인이라고 해도 거창한 건 아니에요. 제가 어려서 처리하지 못하는 법적인 부분에 이름만 올려 달라는 건데요.”
“착한 건 좋은데, 왜 이렇게까지 하려는 거야? 18지구 출신인 게 불쌍해서? 그런 이유로 이 사람들을 구해 온 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 안 되잖아.”
서 팀장은 꼭 예전 의현처럼 말하고 있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의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서 팀장을 진정시켰다.
“불쌍한 사람 물론 많죠. 제가 선의 베푼다고 그 사람들 인생 전부 행복해질 거란 생각 안 해요.”
“…….”
“근데요. 그냥 인간답게 살게 하고 싶어요.”
“…….”
“자기 이름 글로 쓸 줄 알고요. 자기 행동, 말, 신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요.”
“…….”
“적어도 산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을 정도만요.”
“…….”
“그건 어려운 일 아니잖아요.”
의현은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서 팀장의 눈이 크게 뜨인 것만 알았다.
거실 소파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서 팀장은 들고 있던 과일을 툭 떨어트리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런 말을…….”
아주 간단했지만, 누구도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가족 전부가 시초교에 빠져 멍청하게 허우적거릴 때, 인간 서주연은 그게 잘못된 줄도 몰랐다. 동네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까.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게 뭐가 나빠? 다 똑같지.
그렇게 살다가 그냥 죽을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매일 예배드리고. 뭔지도 모르는 신이 그냥 우릴 행복하게 해 준다니까 믿고. 동생들은 배곯아 죽었는데, 병원이 뭔지도 모르고.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무지한 건 우리의 죄가 아니었다. 배운 적이 없는데, 글을 쓰거나 읽을 줄 모르는 게 어떻게 죄가 될 수 있어. 서주연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어찼다. 마치 뚝 떨어진 섬처럼 이 공간은 철저하게 방임되고 있었다.
서주연이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갑자기 동네 사람들이 머리를 끌어안으며 땅바닥에 엎드렸다.
피를 토하고 환청이 들린다며 소리치는 사람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서주연은 맨발로 뛰어나와, 시초교 예배당으로 달려갔다. 위쪽으로 전화를 좀 걸어 달라고 할 참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전부 이상해요. 다, 다 이상해요……. 그렇게 말하며 신도들을 찾았지만, 예배당엔 아무도 없었다.
교주는 시초님이 저주를 내렸다고 말했고, 신도들은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고 물속으로 뛰어내려 수장됐다. 아는 게 없는 한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서주연 혼자 남았다. 머리가 다 터져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숫자도 못 읽는 서주연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일이 어떻게든 알려져 헌터부에서 사람을 파견했을 때, 서주연은 다 쓰러져 가는 집 마당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너 괜찮니?’
얼굴에 뭘 쓴 남자가 그렇게 물었다. 볼이 푹 팬 처참한 몰골의 서주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어?’
그때 본 하늘의 구름이 참 예뻤지.
‘일단 너를 좀 이송해야겠다. 너 말곤 다 죽었어.’
죽는 건 뭐고 사는 건 뭐야.
눈 감으면 죽은 거고 눈 뜨면 산 건가? 내가 저 사람들이랑 다른 게 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나만 산 건데?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사람 몇 명이 다가와 조심스레 서주연의 팔다리를 붙잡았다. 가죽만 남은 팔은 아주 약간의 충격에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했다.
다 쓰러져 가는 집, 뭔지도 모르고 물에 뛰어들어 수장된 사람들, 자신이 믿는 게 뭔지도 모르고 눈을 감은 영혼들과 혼자 남은 멍청한 서주연.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서주연.
‘불쌍해요…….’
목에선 먼지 섞인 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무 작고 볼품없어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았다. 서주연은 마음을 가득 채운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불쌍해요, 불쌍해요, 불쌍해. 너무 불쌍해요…….’
머리가 아팠다. 이제 그만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 모두 이렇게 허망하게 삶을 끝내는 거겠지.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서주연은 커다란 차에 실리면서도 계속 말했다. 불쌍해요. 불쌍해…….
‘불쌍하지. 하지만 누구나 행복할 수는 없단다.’
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서주연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의식이 희미했다. 듣고 싶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래도, 행복할 수 있어.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적어도 그것만으로도.
아무도 제게 해 주지 않은 말을 혼자 되뇌면서, 서주연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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