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택시 기사는 이런 걸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멀찌감치 떠난 한 팀장과 김해수의 차량을 쫓아 빠르게 달리는 동안, 수찬은 신기하다는 듯 창문에 붙어 쭉 뻗은 도로를 구경했다.
여름의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여기에도 비가 내렸는지 택시가 달릴 때마다 주변으로 물이 튀었다. 축축한 물 냄새를 맡으며, 의현은 형체도 없는 제 궁금증을 해결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택시는 5지구를 벗어나 4지구, 3지구로 올라갔다. 여러 일을 겪어 피곤했던 건지 창문에 매달려 있던 수찬은 금세 코를 골며 잠들었다.
“……펜이랑 종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택시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현은 그가 전해 준 종이에 주소와 함께 짧게 글을 적었다.
“내릴 땐 저만 내릴게요. 옆에 있는 사람은 이 주소로 좀 데려다주세요. 이 종이 보여 주시면 돈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나야 그쪽이 헌터 선생님이라는 거 믿지만, 그래도 요즘 같은 의심이 판치는 세상에 종이 하나만 대뜸 내밀기는 좀…….”
“이건 제 시계인데요.”
택시 기사가 우물쭈물하는 걸 보고, 의현은 망설임 없이 제 손목시계를 풀었다. 며칠 요란한 일에 휘말려 자잘한 흠집이 나긴 했지만, 그 장소에 있을 상대가 이게 의현의 것임을 모를 리 없었다.
“어우, 주소 보니까 3지구네. 혹시 여기가 본가예요? 헌터 선생님들은 다 좋은 데 산다고 그러던데. 진짠가벼-.”
“별장이에요.”
“별장도 있어요? 역시 헌터 선생님들은 다르네-.”
본가에서 오래 일하다가 별장으로 장소를 옮긴 유모는 드물게도 의현과 사이가 꽤 좋았다. 그 탓에 권중섭과 사사건건 부딪치곤 했지만, 대대로 이 집안에서 일해 오던 사람이라 쉽게 내쫓을 수가 없었다. 차후에 그녀의 일터가 집에서 별장으로 옮겨졌을 땐 온 직원들이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현의 입장에선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권중섭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편하게 쉴 곳이 생긴 것이니.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가시기 전에 이쪽으로 전화 한 번만 남겨 주세요. 제가 미리 연락을 못 드려서, 좀 놀라실 수도 있거든요.”
“당연하죠! 그 정도는 예의 아닙니까, 예의-!”
택시 기사는 의현이 건네준 쪽지를 받아 조수석에 올려놓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손님이 옷걸이가 좋으셔서 그런지 셔츠만 입었는데도 얼굴이 확 삽니다요!”
“…….”
“좀 웃어 보세요! 웃어야 좋은 일이 생기는 겁니다!”
칙칙하고 헐렁한 기사 셔츠는 기동성이 좋았다. 의현이 미간을 팍 구기자, 택시 기사는 울적한 표정으로 꿍얼거렸다. 말 되게 안 들으시네…….
얼마 지나지 않아 2지구로 들어섰다. 2지구와 1지구는 특히 면적이 좁아,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의현은 GPS 신호를 다시 확인했다. 한 팀장의 차가 아주 가까운 곳에 멈춰 서 있었다.
“…….”
의현은 숨 쉬는 법도 잊고 핸드폰 속 빨간 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미동도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여기까진 얼마나 걸릴까요?”
“가깝네요! 밟으면 삼십 분? 왜요, 급해요?”
“네. 지금 좀 큰일이라서…….”
“또 이런 거 내가 못 참지! 십오 분 컷 해 줄 테니까, 이 은혜 절대 잊지 말라고요-!”
흥분한 택시 기사는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액셀을 세게 밟았다. 몸이 훅 뒤로 젖혀졌다. 의현은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머릿속으로 계획 비슷한 걸 계속 상기했다. 그게 뭐든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혼자서 조용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마주친 수많은 인연을 떠올리며, 의현은 손에 들린 서 팀장의 핸드폰을 꽉 쥐었다.
* * *
케사디안 광장의 관람차 뒤편엔 추모원이 하나 있었다. 헌터로 일하다가 명예롭게 죽은 사람들은 거기로 가서 묻혔다. 추모원에는 특별 유공자도 몇 있었는데, 시초 능력자가 그 대표였다. 의현으로선 처음 와 보는 케사디안 광장이라 낯설었다.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의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시야를 가로막는 나뭇잎을 걷어냈다. 그러자 목재로 만들어진 낮은 담이 하나 보였다. 능소화가 담 주변을 휘감은 채였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지만, 묘하게 야생적이었다.
김해수가 이런 곳엔 도대체, 갑자기, 왜……?
의현이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머리카락이 된통 젖어 몸이 떨렸다.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수면 부족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친 탓이었다. 높은 담장 위로 올라서자 안쪽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흰색 자갈이 깔린 관리 잘 된 정원과 동양풍의 건물까지. 모든 것이 의현의 눈에는 의심스러웠다. 티끌 한 점 없는 공간은 묘하게 위험하고 꺼림칙한 분위기를 풍겼다.
‘내일 김해수 따라가요. 그럼 형이 궁금한 거 해결할 수 있어.’
정재이가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눈앞에 있는 존재가 욕심나 견딜 수 없다는 표정과 감정에 취해 벌게진 얼굴. 걔가 무슨 세뇌라도 건 거 아니야? 왜 자꾸만……. 아니야, 그만 생각해. 그만, 좀……. 의현은 도리질 치며 담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카메라만 조심한다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일을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갈 위에 가볍게 안착한 의현은 얼른 건물 옆쪽에 붙었다. 정자와 가까운 곳에 출입구가 있어 일단 그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건물에 바짝 붙어 걸음을 옮기며 의현은 청각을 바짝 곤두세웠다. 두 사람이나 이 안에 있으니 무슨 말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추모원의 문은 양쪽 모두가 열린 채였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의현은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가 아주 길었고, 붉은색의 얇은 천이 여기저기 내걸려 있었다. 추모원이라고 하더니, 색만 보면 꼭 시초교 예배당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의현은 긴 나무 복도를 따라 쭉 걸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으려는 거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인해 살이 끈적였다. 의현은 땀이 찬 손바닥을 바지에 대충 문질러 닦았다.
그때였다.
쾅! 문이 부서지면서 사람 하나가 튀어나왔다. 의현은 재빨리 늘어진 천 뒤로 몸을 숨겼다. 시폰 재질이었지만, 벽에 붙으면 멀리서 봤을 땐 티 나지 않을 정도였다.
“……너는 여전히 쓸모가 없구나.”
얇은 나무가 중간중간 덧대어진 종이 문은 아주 연약했다. 종이를 찢고 밖으로 튀어나온 남자는 볼품없이 바닥으로 엎어졌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축 늘어진 팔다리를 필사적으로 일으켜 무릎 꿇고 앉은 남자의 몸은 계속해서 덜덜 떨렸다.
“멍청하고.”
짝-!
“아둔하고.”
짝-!
“쓸모도 없는, 쓰레기야.”
짝-!
종이 문 안쪽에서 누군가의 팔이 튀어나왔다. 무릎 꿇고 앉은 남자의 얼굴을 계속해서 내려치는 손길은 폭력적이고도 무자비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의현이 서 있는 구석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남자는 버티지 못하고 끝내 바닥에 쓰러졌다. 반항도 못 하고 그저 흐느끼며 우는 몸은 빼빼 마르고 작았다. 의현은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김해수였다.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해수는 남자의 다리에 매달려 울며 애원했다. 의현의 시선이 해수를 따라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저 정말 잘할게요. 선생님, 저 딱 한 번만 더 하면, 정말 열심히…….”
해수는 바르작거리다가 이내 뒤돌아 도망쳤다. 활짝 열린 현관을 향해 뛰쳐나가는 해수를 향해 남자는 총을 똑바로 쳐들더니. 아무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총을 맞을 때마다 격렬하게 발작하던 해수의 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축 늘어졌다.
“이 쓰레기, 당장 갖다 치워.”
김해수에게 폭언을 뱉은.
김해수의 뺨을 때린.
김해수를 죽인.
……남자가 천천히 복도로 걸어 나왔다.
“예! 장관님!”
한 팀장은 잔뜩 겁먹은 듯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곤 바짝 고개를 숙이며 엎드렸다.
권중섭을 향해서.
“도대체, 똑똑하게 일을 처리하는 놈이 없군. 마음에 안 들어.”
“죄송합니다!”
생각이 멈췄다. 뇌로 사고를 이어 주는 회로가 고장 난 것 같았다.
권중섭은 종이 문을 열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손톱을 똑똑 깨물던 한 팀장은 이내 바닥에 주저앉아 김해수의 시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두 눈이 시뻘겠다. 곧 피눈물이라도 쏟을 듯이.
그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다가, 의현은 천을 걷어 내고 밖으로 나왔다. 한 팀장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어, 나야……. 안으로 사람 좀 보내 줘. 좀 치워야 해……. 어. 도구도 다 들고 와. 아니……. 흑…….”
목소리가 볼품없이 갈라졌다. 의현은 느리게 걸어 한 팀장의 앞에 섰다. 김해수의 몸에서 쏟아진 피로 바닥이 온통 엉망이었다. 의현의 구두가 피 웅덩이를 밟고 서자, 한 팀장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귀신이라도 봤다는 듯 순식간에 하얗게 질리기 시작하는 얼굴을, 의현은 무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이건, 내가 좀 궁금해해도 되는 거죠?”
의현이 물었다. 한 팀장은 땅을 짚으며 뒤로 물러섰다. 누가 봐도 겁먹은 얼굴이었다.
의현은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이 훼손된 김해수의 시체를 지나, 권중섭이 들어갔던 방문 앞에 섰다.
“…….”
한 팀장이 무릎으로 기어 와 의현의 종아리를 잡아 쥐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닿아 오는 손길에도 그 의미가 전해지는 게 문득 신기하게 느껴졌다.
의현은 발을 한번 털어냈다. 한 팀장의 손이 내팽개쳐졌다. 김해수의 피가 사방으로 튄 흰 종이 문이 꽤 징그럽게 보였다. 의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
총 수십 정이 의현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S급으로 일찍이 유명세를 치른 몇 없는 국가적 인재도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 의현은 작게 환호했다. 몸에 활력이 도는 게 느껴졌다.
“오랜만이구나, 아들아.”
이 모든 이들 사이에서, 권중섭은 마치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아주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러게요.”
의현은 짧게 대꾸했다. 평소처럼 말이다. 권중섭은 손을 까딱거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죄 달려와 의현의 몸에 달라붙었다. 사람 수십 명을 달고 바닥에 꿇어앉은 의현의 얼굴을 누군가가 강제로 쳐들었다.
“너는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쫓는구나.”
“…….”
“아버지로서 참 서글픈 일이다.”
“…….”
“위험한 사상에 물들지 말라고 내가 분명히 경고하지 않았어.”
권중섭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현의 두 눈은 권중섭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주눅 들거나 겁먹지 않은 건방진 그 눈을, 권중섭은 사실 꽤 마음에 들어 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니?”
권중섭은 의현의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성의 물질은 의현이 가진 무궁무진한 능력 앞에선 한없이 연약했지만, 의현은 반항하지 않았다. 상황이 어그러졌다. 갱생의 여지가 없었다. 권중섭이 경고했던 그 순간부터, 이번 생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음엔 실패 안 해요.”
“다음?”
“기대하세요. 전 준비가 됐거든요.”
의현의 눈은 자신만만했다. 권중섭은 하하하 큰 소리로 웃다가 이내 의현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가는 길 외롭지 않도록 네게 선물 하나 주도록 하지.”
얼굴이 가깝게 붙었다. 권중섭은 오래도록 의현을 괴롭게 한 그 지독한 쇳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네 진짜 아버지가 아니다.”
“…….”
“너는 조작된 기억을 붙잡고 평생을 살아왔던 거야.”
“…….”
“네 비참한 삶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
“잘 가거라, 아들아.”
탕-!
의현의 머리에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스템이 허공에 번쩍 떠올랐다.
〈 리셋하시겠습니까? Y/N 〉
한 번도 기다리거나 기대한 적 없었는데…….
의현은 골 때린다는 듯 한참을 웃었다. 와, 재밌네, 인생. 이렇게도 흘러가고. 몇 년 만에 와 보는 깊은 어둠 속이었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달았다. 지겨웠지만 얼른 다시 보고 싶었다. 무덤 속에 끌고 들어갈 악인의 얼굴을.
“YES.”
답하는 목소리가 밝았다. 시스템은 밝은 빛을 내뿜었다.
〈 세이브 포인트를 불러오시겠습니까? Y/N 〉
의현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곧 대답했다.
“NO.”
〈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
5, 4, 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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