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17지구에 등장한 포탈 때문에 10지구 이하의 하층 지구 전체 비행기 가동이 정지됐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화물 운반을 멈출 수가 없어 야간열차가 운행된다는 점이었다. 열차는 두 시간에 한 대, 한 팀장 무리가 먼저 출발했다고 해도 시간만 잘 맞추면 같은 열차를 탈 수 있었다.
“토할 것 같네…….”
의현은 벽을 짚으며 미간을 구겼다. 저 싸구려 트럭이 이렇게까지 빨리 달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같은 열차 타겠다고 이렇게까지 발악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
“모, 몸이 그렇게 야, 약하셔서 어떻게 해요…….”
“내가 원래 경험 못 해 본 거에 좀 약해.”
요리도 그랬고 돼지 트럭도 그랬다. 대체로 다 잘 해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줄곧 해 왔던 일이라서 잘했던 거였다. 이번 생에서 의현은 자신도 몰랐던 성향에 대해 꽤 많이 알게 됐다.
“그, 그런데 저희 언제까지 수, 숨어 있어야 해요?”
“열차 시간 오 분 남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원래 제가 지금 자, 잘 시간이라서요…….”
“수찬아, 잠은 너 혼자 자니? 나도 피곤해.”
열차는 꽤 길었다. 의현은 출발하길 기다렸다가 일부러 화물칸에 들어앉을 계획이었다. 웬만하면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표도 예매하지 않았다. 열차 운행소 뒤편 창고에 숨어 시간을 확인하며 의현은 졸기 시작하는 수찬의 턱을 툭 쳤다.
“잠들면 어떻게 한다고 했지?”
“노, 놓고 내린다고요…….”
“눈 바짝 뜨고 버텨. 알겠지? 네가 나 따라오기로 선택한 거니까.”
“네에…….”
수찬의 말끝이 늘어졌다. 잠 못 자게 하는 게 어지간히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잠든 수찬을 데리고 비밀스럽게 이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신경 써 주기 힘든 상황이었다.
“열차가 출발하면, 내가 너를 들어서 저 화물칸 앞에 갑판으로 뛸 거야. 저기 맨 앞에서 신호 주는 모자 쓴 남자 보이지? 저 사람이 직원이거든? 들키면 안 돼.”
의현은 고개를 내밀고 멀찍이 선 인형을 손가락질했다. 수찬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거리를 보니까 열차가 출발해서 저 직원 앞까지 가는 데 십 초가 안 걸릴 것 같아. 내가 화물칸 따고 들어갈 때까지 숨죽이고 있어. 그게 네 역할이야.”
“수, 숨죽이는 게 뭐예요?”
“조용히 하라는 거지.”
“그건 쉬, 쉽죠. 저만 미, 믿으세요!”
수찬은 제 가슴팍을 팍팍 두드렸다. 날카로운 눈으로 직원이 선 쪽을 유심히 쳐다보던 의현은 다시 한번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부터 십 초야. 수찬아.”
열차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직원이 앞을 보고 출발 신호를 보내는 사이, 의현은 허공에 투명한 구를 만들어 수찬을 그 속에 집어넣었다.
“웁, 우읍-!”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수찬은 입을 틀어막은 채로 버둥거렸다. 그나마 열차 패널 돌아가는 소리에 묻혀 다행이었다. 의현은 아주 가볍고 빠르게 뛰어 화물칸 갑판 위에 자리했다. 풍선처럼 수찬이 허공에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5, 4, 3…….
예상했던 초가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쾅! 의현은 꽉 잠긴 화물칸 자물쇠를 주먹으로 쳐서 부수고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2, 1.
버둥거리던 수찬이 화물칸 바닥으로 콩 떨어졌다. 그의 주위에 있던 투명한 구를 의현이 거둔 탓이었다. 열차는 빠른 속도로 출발했다. 의현은 화물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쇠파이프를 구부려 화물칸 문을 고정했다. 일반인 손목 두께의 쇠파이프가 고무처럼 휘어지는 걸 보며 수찬이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런데 정말 시, 신이 아니세요?!”
“왜?”
“다른 사람들은 모, 못 하는 걸 다 하시잖아요. 하늘도 마, 막 날고! 사, 사람도 날게 하고! 히, 힘도 세고! 이게 시, 신님이 아닐 수 있어요? 사람은 아, 아닐 텐데…….”
수찬은 구구절절 신 타령을 시작했다. 사람을 면전에 두고 칭송하는 걸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의현은 서 팀장이 준 핸드폰을 꺼냈다. GPS 점이 의현과 겹쳤다. 한 팀장과 김해수는 현재 이 열차 안에 있었다.
“세 시간 잘 수 있어.”
“자, 자면 놓고 내린다면서요…….”
“정정할게. 깨웠는데 안 일어났을 때 경우로.”
“……그럼 저 자, 자도 되는 거예요?”
수찬은 상자 사이 좁은 틈에 몸을 구기고 들어갔다. 어딘가에 눌려 있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시, 신님이 주무세요……. 제가 깨, 깨워 드릴게요!”
의현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혼자서 사명감에 불탄 수찬은 잔뜩 잠이 온 제 눈을 집게손가락으로 잡아 벌렸다.
“너는 조용히 하고 자는 게 나를 도와주는 거야. 깨우면 제때 일어나기나 해. 제발.”
“아, 안 주무셔도 돼요? 피, 피곤하실 텐데…….”
“신경 쓰여서 어떻게 자. 난 다 끝내고 잘 테니까, 너나 얼른 자.”
“네에…….”
커어어-. 대답한 지 얼마나 됐다고 금세 코 고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머리만 대면 잘 수 있는 거야? 의현은 어이없는 얼굴로 수찬을 쳐다보았다.
열차 운행소에 있던 시간표에선, 새벽엔 화물 위주라 15, 10, 5지구에서만 멈춘다고 했다. 그렇다면, 거리를 따져 봤을 때 5지구 도착까지는 앞으로 세 시간 정도. 거기서 또 이동 수단을 물색해서 뒤를 쫓아야 했다.
“하…….”
한숨만 푹푹 내쉬느라 바닥이 뚫릴 것 같았다. 의현은 팔짱 끼고 벽에 기댔다. 잠도 못 자고, 미친 듯이 머리와 몸을 쓰느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 건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기차가 멈춘 것은 새벽 여섯 시였다. 열차는 5지구에 도착했음을 여러 번 알렸다. 의현은 수찬을 흔들었다.
“일어나. 내려야 해.”
“으음…….”
수찬은 들은 체도 안 했다. 두꺼운 몸은 바닥에 질펀하게 늘어진 채 꿈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깨우면 곧장 깨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래도 놓고 간다는 협박이 먹힐 거라고 아주 약간은 기대했었는데……. 의현은 한숨 쉬며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수찬의 몸을 허공에 띄웠다.
GPS의 점이 이동했다. 한 팀장과 해수가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열차는 승객들이 내리는 통로와 화물을 내리는 통로가 달랐다. 승객들을 내려 준 후 열차는 창고로 이동해 화물을 내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창고에서 억지로 끌어 내려지기 싫으면 지금 내려야 했다.
5지구는 하층 지구와 달라서 역 근처엔 감시 카메라가 깔려 있을 확률이 높았다. 대뜸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건 나 수상한 인물이니 잡아가라며 광고하는 꼴이었다.
열차는 금세 출발했다. 의현은 열차가 역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화물칸은 주변이 꽉 막혀 있어서 현재 위치가 어딘지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의현은 대충 몸으로 느껴지는 속도로 지점을 계산했다.
열차의 속도가 빨라졌다. 의현은 구부려 놓은 철근을 잡아 뜯고 밖으로 나왔다.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휘날렸다. 열차는 바닥에 돌이 깔린 평지를 지나갔다. 민폐 끼칠 생각은 없었으므로 의현은 다시 문을 닫아 주었다. 안에 있는 상자를 문 앞에 갖다 대 놨으니, 열차가 달리는 동안 쓸데없이 문이 열릴 일은 없을 것이다.
“헉, 이, 이, 이게 다 뭐예요?!”
바람 때문에 잠에서 깬 건지 수찬이 왁 소리치며 버둥거렸다. 의현은 벽을 붙잡고 갑판 위 펜스로 올라갔다.
“응, 내리려고.”
“내, 내리는 게 아니잖아요! 저, 저랑 가, 같이 주, 죽으시려고요? 저는 죽기 싫어요!”
“수찬아 미리 말하는데, 입 좀 막고 있을래?”
열차는 옆으로 급격하게 휘어졌다. 한 팀장과 더 멀어지기 전에 얼른 이 열차에서 내려야 했다. 미칠 듯이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의현은 태연한 표정으로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으, 으읍! 으으으읍-!”
수찬은 양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은 채 질겁했다. 그래 봐야 허공에 둥둥 떠 있어서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는데 말이다.
“너 때문에 들키겠어.”
“괘, 괜찮으세요?!”
“보다시피.”
의현은 옷을 툭툭 털었다. 아직도 사제복을 입고 있는 것만 빼면, 모든 게 괜찮았다.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선 옷부터 갈아입을 필요가 있었다. 의현은 GPS를 확인했다. 역에서 내려 바로 차에 탄 건지 빨간 점의 이동 속도가 빨랐다.
“일단 이 개 같은 옷부터 어떻게 좀 하자.”
“그, 그런 말 하시면 시, 시초님께 버, 벌 받아요…….”
“난 안 받아.”
수찬은 허공에 매달린 채 의현에게 계속 말을 붙였다. 몇 번 떠 있다 보니 나름대로 적응한 모양이었다. 하긴, 가만히 있는데 남이 들어 옮겨 준다고 하면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왜요?”
“네가 믿는 시초님이 나를 좋아해.”
“네! 그, 그건 그렇겠네요! 저 같아도 그, 그러겠어요!”
말도 안 되는 의현의 주장에도 수찬은 마냥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이라 문 연 옷가게가 없었다. 거추장스러운 옷소매를 뜯어내며 의현은 혀를 찼다. 수찬을 바닥에 내려주면서 역 주변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택시 한 대가 불을 반짝였다. 다른 택시는 없는데 부지런한 택시 기사다. 다행이었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닌데요-.”
의현은 택시 문을 열고 대뜸 말했다.
“손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전부 이상한 사람이던데요.”
“여분 옷 좀 있으세요? 좀 살려고 하는데.”
“여분 옷은 없는데…….”
“그럼 그 옷 좀 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급해서요.”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는데요?”
택시 기사는 의현의 꼴을 보고 갑자기 흥정을 시작했다.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하려던 의현은 문득 제 모든 소지품이 아직 17지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
의현의 얼굴이 느리게 돌아갔다. 수찬은 어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댔다. 의현이 뜬금없이 왜 제게 시선을 보내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수찬아 너 돈 얼마 있어?”
“저, 도, 돈은…….”
수찬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동전 몇 개가 짤랑거리며 튀어나왔다. 의현은 진심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봐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당신들 이상한 사람 맞지?”
“저기, 이런 말 하면 못 믿겠지만-.”
“이런 말 하는 놈들은 꼭 못 믿을 말만 하더라. 저기요, 새벽부터 일하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왜 벌써 그러고 살아요? 남의 장사 망치지 마시고 가서 일이나 좀 구하세요.”
택시 기사는 바닥에 퉤 침을 뱉었다. 초장부터 액땜했다는 듯 구는 그의 앞에서 의현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제가 헌터거든요.”
“허이구! 그쪽이 헌터 선생님이시면 나는 대통령이겠네! 사기를 쳐도 말이 되는 걸 쳐야지!”
“제가 지금 좀 급해서요. 비밀 임무가 좀 있거든요.”
의현은 다시금 GPS를 확인했다. 꽤 멀었지만, 이 정도면 과속으로 달리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사정이 있어서 신분증이랑 다 잃어버렸는데, 제가 어떻게 하면 헌터라는 걸 믿으실 수 있을까요?”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장사 방해하지 말고 썩 꺼지라니까!”
택시 기사는 의현을 밀어냈다. 조금만 더 긁으면 신고라도 할 기세였다. 의현은 고개를 돌렸다. 근처 공사 중인 건지 주차장에 덤프트럭 몇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음, 일단은 저쪽 좀 봐 주실래요?”
의현이 택시 기사의 뒤편을 가리켰다.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택시 기사가 고개를 돌렸다.
물론, 무슨 일이 나긴 했다. 의현이 덤프트럭 다섯 대를 동시에 허공으로 들어 올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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