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핏방울 형제의 주머니에서 나온 열쇠는 두 개였다. 하나는 아까 모임을 가졌던 작은 기도실 열쇠, 하나는 복도 계단 열쇠. 기도실은 3층에 있었고 대교주의 방은 4층에 있었으니 기도실 열쇠는 쓸모가 없었지만, 복도 계단 열쇠는 뜻밖의 큰 수확이었다. 여차하면 무력으로 자물쇠를 뜯고 다닐 계획이었는데.
의현은 방문을 조금 열고 복도를 살폈다. 야심한 시간답게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현은 복도로 나와 구석에 있는 계단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위층 계단으로 향하는 문은 철사로 둘둘 감겨 있었다. 끄트머리에는 자물쇠가 하나 있었는데, 의현은 핏방울 형제의 주머니에서 찾은 열쇠로 어렵지 않게 자물쇠를 땄다.
철사를 옆으로 밀어내고 계단을 올라갔다. 불이 다 꺼져 주변이 어슴푸레했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지 않게 부단히 노력하며 의현은 4층에 도착했다.
대교주가 있는 곳이라고 하니, 괜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정재이는 대교주와 어릴 적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혹시 대교주의 방을 털다 보면 정재이에 관한 정보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가슴이 떨렸다. 정재이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지만, 까짓거 찾아내면 될 일이다. 징징대면서 비굴하게 알려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었다.
4층의 복도는 3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의현은 복도 가운데에 섰다. 바로 오른쪽에 대교주의 방이 있었다. 복도 쪽으론 창문이 하나도 없어, 이 방에 들어가기 위해선 열쇠가 필요했다. 열쇠는 부교주가 가지고 있을 테지만, 의현은 같은 일을 굳이 두 번 반복하긴 싫었다. 부교주한테 갔다가 붙잡히면 다시 탈출해서 여길 와? 굳이? 그럴 바엔 바로 대교주 방 문을 따고 말지.
의현은 차분히 주변을 살폈다. 계단에 CCTV가 없는 걸 확인하고 올라왔는데, 4층 복도 끝에선 빨간색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녹음되고 있는 CCTV였다. 의현은 손가락을 들어 앞으로 쭉 끌어당겼다.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CCTV는 잔뜩 으스러진 채 의현의 앞으로 툭 떨어졌다.
어려운 일은 거의 없었다. 무생물이나 일반인 상대란 포탈 속에서 징그럽게 버틴 의현에겐 아주 사소한 것들에 불과했다.
의현은 옷소매를 길게 빼 대교주의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잠겨 있을 줄 알고 확인차 돌려보려고 한 것이었는데, 예상외로 손잡이가 부드럽게 돌아갔다.
철컥-.
문이 열렸다. 걱정했던 게 쉽게 풀리면 사람은 으레 당황하는 법이었다. 의현은 소매로 잡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불이 꺼져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주머니 속에 초를 챙겨오긴 했지만, 괜히 불빛을 내보여 침입자가 왔음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의현은 숨죽이고 대교주의 방으로 들어섰다. 쿰쿰한 비린내 섞인 라벤더 향이 가득했다. 저 멀리서 탁탁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향초를 피워 놓은 건가? 의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낮췄다. ‘대교주를 발견하는 즉시 얼굴을 내보이지 말고 기절시킨다.’ 이것이 의현의 일차적 목표였다.
수십 개의 책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의현은 자신이 지금까지 현장에서 겪어 온 사건들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다. 보통 진입이 쉬운 경우에는 문제 해결 단계에서 애를 먹기 마련이었다. 의현은 책 뒤로 숨어 어둠 속에서 갑자기 들이닥칠 누군가의 공습을 대비했다.
향초는 계속해서 타올랐다. 의현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대교주의 모습을 찾았다. 부교주의 말을 빌리자면 모임 축사도 못 할 만큼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의현은 향초 근처까지 다가갔다. 불쾌할 정도로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처음 맡았을 땐 모호했지만, 이건 분명히…….
“…….”
무릎을 세워 앉아 살펴보려니 바지가 축축해졌다. 의현은 손을 내려 바닥을 적신 물기를 닦아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댔다. 어두운 가운데 유독 짙은 검붉은 색이 의현의 눈에 가득 담겼다.
……피?
의현은 향초가 올려진 책상으로 달려갔다. 뒤로 젖혀 쓰러진 의자 옆으로 얼굴에 구멍이 뚫린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의현은 향초를 손에 들고 피 칠갑이 된 얼굴과 손을 살폈다.
잔뜩 짓뭉개진 얼굴은 원래 생김새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됐다. 손등에 검버섯 자국이 선명하고. 의현은 숨을 몰아쉬며 핏물에 젖어 무거워진 남자의 옷을 가슴팍까지 들어 올렸다. 주름진 살이 축 늘어져 있었다. 언뜻 보아도 부교주보다 훨씬 연배가 있어 보였다.
……대교주다. 대교주가 죽었다.
의현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숨을 참았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대교주에게 원한이 있었나? 살해할 만큼?
“하…….”
참았던 숨을 몰아쉬자, 진득한 피 냄새가 코를 찔러오기 시작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제 손바닥을 옷에 문질러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이 어이없는 상황을 겪으면 넋이 나간다는데, 지금 의현이 그랬다.
“얼른, 얼른 봐야 해. 얼른…….”
나사 하나 빠진 얼굴로 차분하게 대주교의 서랍을 열어젖힌 의현은 그 안에 든 모든 걸 다 끄집어냈다. 라벤더 향은 점점 짙어졌다. 꼭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끝에 끈적거리면서 붙어 오는 대교주의 핏물을 무시하며, 의현은 미친 듯이 종이에 적힌 글씨를 읽었다.
[우리는세상의정의를수호하는겁니다.우리들의피맺힌희생으로말이죠.신이우리를선택한이유가분명히있을겁니다.나는오늘신을보았습니다.신께서친히제게강림하셨습니다.그래요.나는구원을받은겁니다.나는선택받았습니다.그래서그가계신아름다운낙원으로갑니다.부디슬퍼하지마세요.나는평생행복할거예요.너무나도완전한.하나의오점도없는.시초님의품에서.영원히.]
“……이거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띄어쓰기 하나 안 되어 있는 종이 위 글씨는 검정에 취한 듯 구불구불했다. 의현은 종이를 구겨 바닥에 내던졌다. 자신의 죽음마저도 신의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작태에 소름이 끼쳤다. 불쾌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열려 있는 책상 서랍을 모두 연 의현은 무릎을 굽히고 자세를 낮췄다.
“정신 차려. 권의현, 정신 차려…….”
자꾸만 한숨이 튀어나왔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알아야 종교에 대한 신념도 생기는 건데, 수찬 씨는 그런 걸 모르고 믿는 것 같아.’
‘그래도 한 번 알고 나면 몰랐을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서 팀장이 수찬을 보며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정신 나간 사람들. 도대체 왜 이러고 살아. 도대체 왜?
“……씨발!”
아무렇게나 비속어가 튀어나왔다. 서랍 속에서 꺼낸 종이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떨어졌다. 의현은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대주교의 서랍 제일 마지막 칸이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의현은 자물쇠를 손으로 붙잡고 바로 뜯어버렸다. 힘 한번 써 보지 못한 자물쇠는 산산 조각나 부서졌다. 의현은 그 안에서 파일 하나를 꺼냈다.
[선별 작업 – 13일 이후 바로 파쇄해 주세요]
파일의 맨 앞장에는 검은색 펜으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파일은 여기저기가 벗겨지고 오염돼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났다. 의현은 향초 바로 옆으로 파일을 가지고 갔다.
아무 말 없이 파일을 넘겼다. 의현의 눈동자는 빠르게 안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제일 위에 날짜, 아래쪽에 이름, 가족 관계, 테스트 점수, 그리고 사진 한 장과, 부모님의 서약서…….
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지나갔다. 열 살 넘는 애가 없어 보였다. 앞니가 빠진 채로 이게 뭔지도 모르고 방긋방긋 웃고 있는 애들 사이에서, 의현은 어딘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카메라를 쳐다보는 무표정한 얼굴에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얘가 여기에 왜…….”
이름은 없었지만, 그건 흡사 정재이의 얼굴같이 보였다. 의현이 사진을 손에 쥐는 사이, 견고하게 닫혀 있던 대교주의 방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 이게 무슨…….”
역광이었지만, 촛불을 들고 있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부교주였다. 의현은 입술을 깨물고, 곧바로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이미 누군가 이 방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들킨 상태였다.
의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대교주의 방 뒤에 창문이 있었는데, 저걸 깨고 탈출한다면 이 방에선 벗어날 수 있었다. 일단 1층으로 내려갔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3층 방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해진 시간 안에?
“당신 누구야! 숨어 있지 말고 당장 나와! 지금이 무슨 상황인 줄 알고…….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데…….”
부교주의 발음이 자꾸 샜다. 이쪽도 정상 상태는 아닌 모양이라고 의현은 생각했다. 부교주는 뭐라 뭐라 중얼거리며 아주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의현을 포획하려는 것 같았다. 더는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의현은 정재이의 사진이 박힌 종이를 손에 쥐고 창문으로 달려갔다. 허공에 공기층을 먼저 내보내자, 유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깨졌다. 의현은 그 아래로 뛰어들었다. 도망치면, 어떻게든 될 거다. 정재이에 대한 정보는 얻었잖아. 그러니까 최소한…….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눈 깜짝할 만큼 빨라야 했다. 뭐든 추락이란 그런 법이 아닌가. 하지만 의현은 자신이 아주 느리게 떨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신이 오셨다! 포탈이다! 신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러 오신 거야!”
“오! 시초님이시여! 불쌍한 저희를 구원하러 친히 오시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시초님! 기원합니다!”
“봐! 시초님이 보내신 구원의 사제들이 오신다! 아아, 나 같은 존재도 낙원으로 갈 수 있는 거야!”
허공에서 일렁이고 있는 것은 포탈이었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포탈 속에서 괴물이 우수수 떨어졌다. 전에 봤던 그 지옥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아주 낭만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의현은 실소했다. 일이 이렇게 틀어질 수는 없었다.
“저 아래에 있는 악마가 대교주님을 죽였다! 살인자다! 구원의 날에, 저 악마가 대교주님을 죽였다-!”
창문 앞에 선 부교주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 향기로운 표정 그대로 목만 돌려 의현을 바라보았다.
“살인자다! 저 자는 구원을 방해하는 악마다!”
죽음을 앞둔 자들의 광기 어린 눈이 의현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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