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핏방울 형제는 당황했다. 비단 핏방울 형제뿐만이 아니라, 수찬, 한 팀장을 비롯한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목소리가 크게 날 줄 몰랐던 의현은 벽 쪽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제대로 망한 기분이었다.
“어우, 목소리가 우렁차고 용맹하시네요. 형제님.”
“…….”
“이 용맹한 대답이 분명히 시초님께도 닿았을 거예요.”
핏방울 형제는 인자하게 의현의 쪽팔림을 포장했다. 뒤를 돌아보았던 사람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금세 몸을 돌렸다. 이제 이쪽을 응시하는 사람은 서 팀장 하나였다.
“…….”
서 팀장은 핏방울 형제의 얼굴을 머릿속에 박아 넣겠다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면 예배가 거의 끝난 것 같으니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저, 잠깐 화장실 좀 들렀다가 가면 안 될까요?”
“화장실이요?”
“급해서요.”
“그럼 당연히 가셔야죠. 제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편하게 일 보세요.”
핏방울 형제는 상냥하게 대꾸했다. 예배가 끝나 사람들은 마무리 찬양을 하며 기도했다. 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로비로 나왔다. 몇 번 들르긴 했지만, 안쪽 깊이 들어간 적은 거의 없어 구조가 어떻게 돼 먹은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화장실은 이쪽입니다. 형제님.”
의현이 이상한 곳으로 가려는 걸 핏방울 형제가 막아 냈다.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의현은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서 팀장이 따라 나와 저 남자와 대면할 시간을 벌어 줘야 했다. 의현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제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잠시 그러고 있었을까,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의현은 서 팀장이 핏방울 형제와 대면했음을 알았다. 문에 귀를 대고 숨죽이자, 바깥 음성이 조금씩 들려왔다.
“어우,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요. 자주 픽픽 쓰러지고 혼절을 하기도 해요. 이거 폐를 끼쳐서 어쩌죠?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소리만으로도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의현은 마음속으로 느리게 숫자를 세며 적당한 타이밍을 쟀다. 곧 바깥이 아무 소리 없이 조용해졌다. 의현은 변기 물을 내리고 손에 물기를 탈탈 털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밖으로 나왔다.
서 팀장이 방긋방긋 웃으며 핏방울 형제 옆에 서 있었다. 능력자로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A급 정신계 능력자의 조작을 버텨 낼 재간은 없을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의현과 눈이 마주친 뒤 서 팀장은 휘청거리던 몸을 바로잡고 섰다. 역시 적이 되면 무서운 사람이야. 의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핏방울 형제의 뒤를 따랐다.
처음 올라가 보는 위층이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는 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핏방울 형제는 수많은 문 중 하나를 따고 들어갔다. 예전에 서 팀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소회의실과 비슷하게 생긴 구조였다. 벽지는 온통 새빨갰고 금박으로 알 수 없는 그림이 새겨 있었다.
“방 안에 계단이 있다니, 특이하네요.”
“그런가요?”
말이 더 이어질 줄 알았건만, 핏방울 형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부교주가 욕구에 눈이 멀어 줄줄 과거를 내뱉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형제님이 오늘 묵게 될 기도실은 3층에 있어요. 거긴 조용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거예요. 온전히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죠.”
“핏방울 형제님께서도 기도실에 갔던 적이 있었나요?”
“물론이죠. 기도실에 들어가는 건 시초님과 가까워지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이니까요. 여기서 일하는 모두는 거기에 다 한 번씩 들어갔다 나와야 하죠.”
둘은 계단을 올랐다. 예배당은 천장을 약간 터놓아 넓게 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2층은 천장이 몹시 낮았다. 보이는 모든 곳이 빨갰다. 일부러 위압감을 주기 위해 이런 색의 벽지를 선정한 거라면 합격점을 주고 싶었다.
둘은 한 층 더 올라갔다. 3층이었다. 핏방울 형제는 손에 들고 있던 양초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가 몇 번 딸깍이다가 이내 불이 타올랐다. 여전히 낮은 천장과 불쾌한 벽지. 의현은 핏방울 형제의 뒤를 따라 조용한 복도를 걸었다.
“이쪽 방입니다. 세례 전에는 금식 기도가 원칙이라, 식사는 따로 제공되지 않아요.”
“네. 그런데 무슨 모임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세례자들의 모임이요? 그건 밤 아홉 시에 있을 거예요. 안에 들어가셔서 옷 갈아입고 편히 쉬고 계시면 제가 문을 세 번 두드리겠습니다.”
“세 번이요?”
“네, 저희 시초교는 홀수를 좋아하죠.”
핏방울 형제는 수줍게 웃었다. 보통 홀수는 불길하다고 꺼리지 않나? 하긴, 인제 와서 그런 걸 따지는 것도 우스웠다. 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정된 방문을 열었다.
“그럼, 저녁 시간에 뵙겠습니다. 형제님.”
핏방울 형제는 의현의 방에 들어와 초에 불을 켜 주었다. 바깥과 마찬가지고 시뻘건 방에는, 침대나 형광등 같은 게 전혀 없었다. 시초교에서 만든 성서 비슷한 것과 담요, 베개, 양초가 끝인 단출한 살림에 의현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아홉 시에 세례자 모임이 있을 때까지 좀 쉬다가 상황 보고 그때그때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는 없는 것 같고…….”
복도나 계단에도 카메라는 없었다.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기에는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의현은 바닥에 드러누워 성서를 펼쳤다. 가뜩이나 여름이라 덥고 습한데, 선풍기도 없이 좁은 방에 갇혀 있으려니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벽지라도 시원한 색으로 좀 해 놓지.
성서는 시초 능력자의 일대기에 망상을 덧붙여 줄줄 적어 놓은 것이었다. 결론은 소설이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소설에 빠져 지금 앞뒤 분간 못 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피곤하다…….”
이런 낯선 곳에서 느끼면 안 되는 감각이었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느라 푹 잠을 자지 못했던 의현은 옷도 못 갈아입고 바닥에 누워 있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 * *
똑똑-.
노크 소리에 눈을 떴다. 방 안에는 시계가 없어 지금이 몇 시인지 알기 위해선 손목시계를 봐야 했다. 밖은 비가 내리는 건지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의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똑똑-.
노크는 한 차례 더 반복됐다. 의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잠결이라 생각이 다소 짧았던 부분은 인정해야겠지만.
“분명 세 번 두드린다고 하지 않았나?”
“…….”
“확인도 안 하고 문을 열면 안 되죠.”
“…….”
“위험할 수 있잖아요.”
얼굴에 시뻘건 봉지를 쓰고 있었지만, 의현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재이임을 단숨에 알아챘다.
“……너 뭐 나랑 술래잡기라도 하는 거야?”
“좀 들어갈게요.”
“너 들어올 자리 없어.”
의현은 쾅 다리를 뻗어 문 입구를 막았다.
눈구멍 두 개 뚫린 빨간색 봉지 아래로 정재이가 작게 한숨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좋네요. 여기서 떠들다가 같이 적발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왜 가출했는지, 저택에 당장 못 올라가는 이유가 뭔지, 대교주를 어떻게 구워삶아서 나를 세례식에 꽂아 넣었는지, 내가 세례식 참여하려는 거 미리 어떻게 알고 서 팀장 구슬렸는지. 전부 말해.”
정리하고 말한 것도 아닌데 줄줄 나왔다. 제가 정재이에게 쌓인 게 많다는 사실을 의현은 자각했다. 사실 이것 말고도 시간만 있다면 하루 종일 줄줄 말할 수도 있었다.
“일단 한 개만 먼저 말할게요.”
“야. 장난해?”
“대교주를 어떻게 구워삶았냐고 물었죠?”
뚫린 눈구멍 사이로 정재이의 형형한 눈동자가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하자마자, 정재이는 의현을 안으로 툭 밀고 문을 닫았다. 의현은 허무할 정도로 너무나도 쉽게 휩쓸렸다.
“대교주가 저를 알아요. 어렸을 때 만난 적이 있거든요.”
“너는 세인트 해피 보육원 출신이잖아. 여긴 17지구야.”
“형, 제가 보육원에서 태어났을까요?”
정재이는 시뻘건 봉지를 잡아당겼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축 늘어져 있었다. 더위에 붉어진 볼, 화사한 얼굴. 역시 정재이가 맞았다.
“그럼 네가 17지구 출신이라는 거야?”
“뭐, 그 비슷하겠죠.”
“그럼 세인트 해피에는 왜 있었던 거야?”
의현의 말투가 날카로웠다. 조금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정재이가 세인트 해피에 있었기에 의현은 그와 엮일 수밖에 없었고, 권다원을 비롯한 모든 업보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게 아닌가?
“글쎄요, 그건 좀 복잡해요. 저는 어리잖아요.”
“어린 거랑 복잡한 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형은 오늘 밤에 여길 털 계획이겠죠?”
“너 미래도 보니?”
의현이 실소했다. 어이없는 표정에도 정재이는 제 턱을 문지르며 뭔가 고민하는 척했다.
“이제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이 없을 거예요.”
“너 내가 알던 정재이 맞지?”
낯선 기분이었다. 의현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괴물이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것도 봤다. 사람의 외관을 한 괴물도 하나쯤 있을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눈앞에 있는 수상한 존재에 대한 의심이 치솟았다. 이상해. 확실히 이상하잖아…….
“형이 알던 정재이인 걸 어떻게 증명해요?”
“뭐?”
“우리가 처음 갔던 바다 얘기를 할까요? 아니면 같이 봤던 호러 영화 얘기를 할까요?”
느물느물 웃는 얼굴로 익숙한 추억들을 툭툭 쏟아냈다. 의현은 숨을 깊이 들이마신 채로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너 몸 괜찮아?”
정재이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틀었다.
“몸이요?”
“이상 있으면 말하라고 했잖아, 내가.”
능력 발현을 한 정재이, 의현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다. 두려웠다. 불안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의현은 아직 스물넷이 아니었고, 정재이는 미성년자였다. 결전의 날이 오기까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는데 모든 게 이렇게 급작스럽게 들이닥칠 리 없었다.
“몸은 괜찮아요. 아무 이상 없어요.”
정재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땀에 젖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보기 좋은 이마가 드러났다.
“그런데 형.”
“…….”
“내일 김해수 따라가요. 그럼 형이 궁금한 거 해결할 수 있어.”
나와서는 안 될 이름이 정재이의 입을 통해 뱉어진 순간, 의현은 이번 생을 돌이킬 수 없음을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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