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세례가 예정된 사람들은 저녁 예배 후에 따로 모임이 있다고 했다. 또 개인행동을 하겠다는 의현의 말을 듣고 한 팀장은 입에 거품을 물었다. 너 진짜 장난하냐, 이러면 팀으로 움직이겠다고 얘기한 게 뭐가 돼? 친구에게 말하듯 몹시 가벼운 말투는 한 팀장의 현재 열받음 상태를 나타냈다.
“혹시 뭐 정보 얻으면 말씀드린다니까요.”
“너를 세례식에 넣은 사람이 누군데? 뒷배도 없이 종교에 얽혀 드는 게 말이 되는 일이야?”
“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몇 번을 말해요. 팀이라면서 말을 못 믿는 건 무슨 경우인데요?”
“아니, 본인이라면 믿을 수 있겠어? 갑자기 어떤 사람이 자길 세례식에 집어넣었는데, 그게 누군지도 모르고 알 방법도 없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의현은 아무 말도 없이 눈을 흘겼다. 한 팀장의 말이 맞았다. 정재이라는 변수를 끼워 넣지 않으면 어떤 상황도 설명이 안 됐다.
“……아무튼, 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저도 진짜 모릅니다. 다른 분들한테는 제가 설명할게요.”
하지만 의현도 정재이가 도대체 어떤 재주로 일을 성사시켰는지는 알 수 없었기에, 진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그렇구나 하고 수긍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 뭐, 본인이 말했던 대로 본인이 받는 세례니까 생판 남인 나는 난리 안 치고 가만히 있을게-.”
한 팀장은 의현이 했던 말이 마음에 남은 듯 비아냥댔다. 의현의 입장에서 보면 한 팀장과 김해수는 의현에게 적이었다. 의현이 무슨 일을 하든 낱낱이 관찰해 상부에 보고를 올리는. 그 주제에 의현이 세세하게 얘기해 주지 않으면 기분 상하는 이 구도는 도대체 어떻게 형성된 건지, 의현으로선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 일단 바, 밥을 먼저 드시죠. 아,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모, 못 먹을 수도 있어요…….”
수찬이 갑작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일 뭘 못 먹어, 배가 좀 고픈 것 같기는 했다.
“수찬 씨, 혹시 예전에 세례받아 본 적 있어요? 오랫동안 시초교 믿으셨다면서요.”
“맞아! 수찬 씨가 신도였지! 세례 절차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뭐 아시는 것 좀 얘기해 주세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수찬은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우물거렸다. 얼굴뿐 아니라 귀까지 온통 빨갰다.
“저, 저는 세례를 못 받았는데요…….”
“네? 오랫동안 종교 활동하신 거 아니에요?”
한 팀장의 질문에 수찬은 민망한 듯 고개를 내리깔았다. 그의 시선을 따르니, 바닥이 떨어진 낡은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다.
“저, 저는 그, 글을 모르고. 또 제, 제가 신을 믿으면 아, 안 좋아할 거라고 다들 그래서요. 그냥 예배만 드, 드렸어요.”
“아니,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신 앞에서 어수룩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이건 신성 모독입니다!”
한 팀장은 열을 냈다. 수찬의 외관이나 그가 사는 방식 등이 상층 지구의 사람들에게 안쓰러움을 느끼게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한 팀장은 수찬을 꺼리는 듯하면서도 그를 은근히 신경 써 주었다.
“하지만! 괘, 괜찮아요. 저, 저는 구원을 약속받았으니까요!”
의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수찬은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저런……. 아이고…….”
내막을 모르는 한 팀장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시궁창에 처박힌 수찬의 인생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 * *
하늘이 어슴푸레했다. 시내로 설문을 나갔다 온 서 팀장 무리와 합류한 의현은 자신이 오늘 저녁, 기도실에서 묵게 됐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는 얼굴로 서 팀장이 의현을 쳐다보았다. 있었던 일을 길게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난감한 것은 의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기도실 들어가는 건 저녁 예배가 끝난 직후에 이뤄지는 거야?”
“네. 누가 저를 데리러 온대요.”
“누가?”
“글쎄요. 그건 그때 상황 돼 봐야 알 것 같아요.”
한 팀장이 뒤에서 ‘도대체 아는 게 뭐야!’ 하고 소리쳤다. 이런 식으로 무능력한 역할이 되긴 처음이었다. 서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현의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어우, 그래도 의현 학생이 우리 대학 최고의 아웃풋! 연구를 위해 내려왔지만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깨닫고 세례까지 받은 진정한 학문인!”
「상황 봐서 나랑 그 사람 마주칠 수 있게 기회 좀 만들어 줄 수 있어?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글자들이 또 제멋대로 머릿속을 밀고 들어왔다. 의현은 서 팀장의 손가락을 걷어 내며 지겨워 죽겠다는 듯 대꾸했다.
“저한테 잘하세요. 이러다가 진짜 종교의 길로 들어서게 될 수도 있으니까.”
“너무 앙큼해! 내가 여기서 어떻게 더 잘해?”
상황에 맞지 않은 대화였지만, 의미는 분명히 통했다.
땡땡땡-!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던 예배 종소리가 울렸다. 오늘 하루 의현을 못 본다는 생각에 부쩍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도 수찬은 착실히 의현의 뒤를 따랐다.
“그럼 오늘도 보람찬 예배드리기를 바라!”
서 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신도들의 눈은 평온했다. 의현은 표정을 관리하며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는 낯설지도 않았다.
정재이는 없었다. 이 자식은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건지 새 신자라면서 예배를 밥 먹듯이 빠졌다. 도대체 이런 자식 뭘 보고 새 신자로 등록을 시켜 주고 추가로 권의현의 세례까지 허락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부교주가 자신에게 품던 욕망 어린 눈빛을 보면 혹시 얘도 그런 식으로 꼬여 낸 건 아닐까 했는데, 그것만은 아니어야 했고,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정재이는 미성년자였다. 도대체 뭔 생각으로 하는지 좀처럼 모르겠는 애였지만, 그래도 성적으로 이상한 일에 연루되는 건 절대 안 됐다. 그것도 보호자가 권의현으로 있는 한에는 더욱.
내가 걔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 그런데 신님이 세, 세례를 받아도 되는 거예요?”
모두가 찬송을 부를 때, 수찬이 개미만 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전히 입만 벙긋거리는 의현을 한 팀장이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수찬 씨가 뭐래요?”
이쯤 되니, 한 팀장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의현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양쪽에서 의현을 가운데 두고 소곤거리는 통에, 의현은 예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럴 거면 두 분끼리 얘기하시는 게 어때요?”
항상 동민의 팔자가 사납다고 생각했건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일 팔자가 사나운 건 권의현 본인이었다. 한가롭게 남 걱정이나 할 때가 아니었는데…….
찬송이 끝나고 부교주가 강단 위에 섰다. 인자한 얼굴 뒤에 숨겨진 변태 같은 성욕을 의현은 알고 있었다.
‘그럼 나라에서 아동 매매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거네요?’
‘눈을 빛내는 걸 보니, 이 이야기가 꽤 흥미로운가 보구나.’
‘부교주님은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제가 궁금한 것 다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저런,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니?’
‘애들을 선별해서 어디에 보냈다고 했잖아요. 그건 혹시 어디로 보낸 건가요? 그래서 결국엔 거기서 신을 만든 건가요?’
‘궁금한 게 아주 많은 아이로구나.’
모든 의문을 다 털어 버리고자 의현은 부교주 앞에서 질문을 쏟아 냈다. 애걸할수록 이 끈끈한 관계에서 부교주가 우세를 잡을 걸 알고 있었지만 치솟는 의문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 섬은 오래전에 사라졌단다.’
‘……사라졌다고요?’
‘감히 인간 된 몸으로 신을 창조하려고 하니, 벌을 받은 거야.’
부교주의 눈이 광기에 젖어 번들거렸다.
‘신은 창조할 수 없다. 그는 완전한 모습으로 잉태된다.’
‘…….’
‘그게 우리 시초교가 내린 결론이란다.’
분명한 확신이었다. 어떠한 반증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더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오늘 저녁 기도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렴. 아이야, 내가 기꺼이 너를 찾아갈 테니까.’
부교주가 의현의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의현은 표정을 굳히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성이 의현의 물건을 돌려주었다. 표정은 여전히 온화하기 짝이 없었다. 이 사람은 자기네 교주가 이렇게 변태같이 구는 걸 알까? 알고서도 계속 이러고 있는 걸까?
시초교를 생각하면 체한 듯이 가슴께가 답답했다. 해결되지 않는 의문의 연속. 만약 그 순간, 바깥에서 손톱이나 뚝뚝 물어뜯고 있던 한 팀장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의현은 정말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다시 현재. 부교주는 말씀을 전하며 의현이 앉은 쪽을 힐끔거렸다. 눈이 마주친 횟수만 다섯 번이 넘었다. 그때마다 의현은 더러운 벌레 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일 세, 세례받으실 때 축하드리러 꼭 오, 올게요!”
“오지 마. 안 와도 돼.”
“수찬 씨가 뭐래? 왜 자꾸 둘만 얘기해?”
“아, 이럴 거면 자리 옮기시라고요. 둘이 붙어 앉으세요. 저는 따로 앉을 테니까.”
의현이 불만스럽게 대꾸했다. 수찬과 한 팀장은 번갈아 가며 의현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같은 걸 계속 물어볼 때마다 의현은 진심으로 소리치고 싶었다. 신이 왜 세례를 받느냐고? 신이 아니니까! 수찬이랑 무슨 얘기를 했냐고? 내가 신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이 지겨운 놀음은 예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기가 다 빨릴 때쯤 되어서야 누군가 의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형제님, 내일 세례받기로 하셨죠?”
무슨 가정 방문 판매원 같은 말투였다. 순박해 보이는 젊은 남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오늘 기도실 안내 및 내일 세례를 도와드릴 핏방울 형제입니다. 저를 부르실 땐 그냥 형제님이라고 칭해 주세요.”
몹시 종교인스러웠다. ‘형제님’이라는 호칭이 입에 잘 붙을 리가 없었다. 하하……. 의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서 팀장을 찾았다. 의현보다 앞자리에 앉은 서 팀장은 곧 신을 영접하기라도 할 것처럼 열정적으로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솔직히 교주가 제정신이었다면, 권의현이 아니라 서 팀장에게 세례식을 권했어야 했다.
「상황 봐서 나랑 그 사람 마주칠 수 있게 기회 좀 만들어 줄 수 있어?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완전히 혼이 빠진 서 팀장에게 눈치를 주기 위해, 의현은 꽤 골몰했다. 일전에 서 팀장이 그랬던 것처럼 난리를 칠 자신은 없었다.
“그…….”
입을 떼는 의현을 핏방울 형제는 웃으며 바라보았다. 의현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태어나서 냈던 소리 중 가장 큰 소리를 내질렀다.
“그럼요! 핏방울 형제님!”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