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부교주는 무슨 대단한 학문 연구자 같았다. 안경을 눌러쓰고 나무 책상에 앉은 그의 주변으로 수십 권의 책과 먼지들이 늘어서 있었다. 의현이 들어서자마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자의로는 나갈 수 없으리라는 암묵적 암시였다.
“안녕하세요, 부교주님. 저를 부르셨다고요.”
의현은 예의를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젠 문제 해결을 위해 분위기를 맞추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오호…….”
책상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부교주가 고개를 들어 의현을 바라보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축 늘어져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데, 이리 가까이 올 수 있겠니?”
의현은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 아무리 사이비 교주라고 하더라도 이까짓 노인네에게 무력으로 질 확률은 영 퍼센트였다. 물론 여기서 능력을 쓰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으니 되도록 안 쓰겠지만.
“그 애한테 네 얘길 들었지. 신께 충성을 바치고자 한다는 것 말이다.”
부교주가 말하는 ‘그 애’는 아마 정재이겠지. 신에게 충성을 바친다느니 하는 말은 상황상 지어낸 것 같고.
“젊은 나이에 독실한 신앙을 갖기는 쉽지 않아. 네 이야기를 좀 듣고 싶구나. 여기 앉아 보렴.”
부교주는 제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손가락에 피어난 검버섯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다 의현의 불쾌감을 돋우고 있었다.
“별로 유쾌한 얘기는 아닐 텐데요.”
“괜찮다. 오래도록 이 안에만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바람에도 웃음이 터지곤 한단다.”
의현은 부교주의 옆자리에 앉았다. 작은 촛불 하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제멋대로 날아다니던 벌레 한 마리가 파스스 불에 타 죽었다. 불길이 크게 치솟았다가 가라앉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한번 믿어 보고 싶었어요. 세상은 이미 타락했는데, 누군가가 정리하러 내려온다는 게 매력적이잖아요. 그것뿐이에요.”
“다른 종교도 많을 텐데, 굳이 시초교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니니?”
“너무 신적인 존재는 저한테 필요 없어요. 저한테 제일 두려운 건 포탈이라서요. 포탈만 닫을 줄 알면 돼요.”
거짓을 말하진 않았다. 물론 부교주가 서 팀장같이 남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거짓말을 하다가 덜미가 잡히느니 원래 생각하던 바를 말하는 쪽이 훨씬 합리적일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하, 너는 참 재미있는 아이로구나.”
부교주의 손이 머리께로 올라왔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의현은 작게 움찔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분위기를 타 갑작스럽게 몸을 만져 오는 수법이 예사롭지 않았다.
“칭찬은 감사한데요, 이런 건 좀 부담스럽습니다.”
의현은 손을 들어 부교주의 팔을 걷어 냈다. 아마 표정 관리가 잘 안 됐을 것이다.
“오호…….”
부교주는 이상한 추임새를 넣으며 촛불을 손에 들어 의현의 얼굴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외모가 눈부시구나.”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의현은 그저 미간을 찌푸렸다. 바짝 붙어 앉아 무릎이 자꾸 닿았다. 의현은 몸을 뒤로 뺐다.
“하실 말씀 다 하셨으면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버릇은 좀 없는 편이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 의현을 보며 부교주가 히죽 웃었다. 자글자글하게 주름진 얼굴은 수상한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그 애는 외모가 화사하지. 봄에 만개한 꽃처럼 말이야. 비단 대교주님뿐만 아니라 목숨이 붙어 있는 모든 생명체가 다 그 애를 칭송해 마지않을 거다.”
“…….”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어. 그 애는 꽃이 아니란다.”
“…….”
“우리를 다 집어삼키려고 온 거야.”
부교주는 탄식하듯 쏟아냈다. 의현은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지. 이건 오래된 사람의 직감이란다. 아주 위험하고. 음험하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원래 곁을 내주지 않는 것들을 좋아한단다. 그것들은 고고해서 아무에게나 가 꼬리를 흔들지 않아.”
방금까지 정재이 얘기를 하던 부교주의 눈빛이 단숨에 바뀌었다. 그는 의현의 손을 붙잡아 의자에 끌어 앉혔다.
“아가, 네가 원하는 게 뭐니?”
이런 상스러운 발언을 하는 것에 일말의 거리낌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의자에 앉아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의현의 손을 주물거리며 부교주는 다시 한번 말했다.
“나는 네가 원하는 걸 줄 수 있단다. 뭐든 말을 해 보렴.”
고작 17지구 예배당의 부교주 주제에, 감히 의현에게 ‘원하는 걸 줄 수 있다’라고 확언하는 꼴이 우스웠다. 하하……. 의현은 작게 그를 비웃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전에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신을 창조해 내기 위해서 시초교에 들어왔다고.”
“…….”
“말이 안 되잖아요. 한낱 인간 따위가 고결한 신을 창조해 낸다는 게.”
의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주물거리던 부교주의 행동이 서서히 느려졌다. 의현은 제가 정곡을 찔렀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궁금했어요, 항상.”
“…….”
“신이라는 게 창조도 되는 건가?”
“…….”
“부교주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혹시 아실 수도 있을까요?”
의현은 살살 웃으며 부교주에게서 제 손을 빼 왔다. 허공에서 바르작거리던 부교주의 부패한 손가락들은 다시금 의현을 손에 쥐기 위해 꿈틀거렸다.
“모르신다면, 좀 실망스럽네요. 원하는 건 정말 다 해 주실 줄 알았는데…….”
의현은 난감하다는 듯 흩어진 제 앞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할 말이 없으니 나가겠다는 무언의 암시였다. 마음이 조급해진 부교주는 의현을 붙잡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건 네가 알 필요가 없는 일이다. 재미있지 않아.”
“재미있고 없고는 듣는 제가 판단해야죠.”
“…….”
“그렇지 않나요?”
“…….”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고요…….”
자리에서 일어난 의현은 고개를 뒤로 돌려 표정을 구겼다. 상황을 이렇게 이용해 먹는 건 좋았지만, 명백한 욕구의 대상이 되는 건 사실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십수 년도 전에, 아이들을 선별했던 적이 있었지.”
“…….”
“자세히는 몰라도, 그때 나라에서 신을 만든다고 말했었단다. 우리 시초교는 신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영광스럽게 임무를 수행했지.”
“임무요?”
“아이들을 선별해 보내는 것 말이다. 하층 지구는 항상 굶주려 있었기에, 돈을 좀 쥐여 주면 아무렇게나 아이들을 팔았지.”
입이 터진 부교주는 의현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이야, 네가 앉아야 내가 이야기를 이어 가지 않겠니?”
부교주의 눈은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저 빌어먹을 이상 성욕이 왜 제게 반응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의현은 이용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충분히 그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 * *
지정된 예배 시간이 지나면 예배당은 통제됐다. 직분이 있는 성도들만 예배당에 남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가차 없이 내쫓겼다.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한 팀장은 예배당 아래 계단에 주저앉아 손톱만 딱딱 씹었다. 서 팀장은 조사단 사람들을 이끌고 시내로 설문 조사를 나간다고 했다. 17지구에 머물 수 있는 날도 이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아까 보니까 본인도 일이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어요. 혹시 누가 은밀하게 의현 씨를 도와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해수가 소곤댔다. 얼굴에 났던 상처가 좀 아물어 딱지가 붙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종교를 건드릴 사람은 많지 않아. 특히 세례식 같은 경우는 말이야. 그걸 받는 순간 시초교 신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잠입 차원에서 당장 받고 싶다고 해도 쉽게 받을 수가 없거든.”
한 팀장은 까칠하게 대꾸했다. 사람 한 명 전담하는 게 이렇게 성가신 일일 줄은 몰랐다. 그냥 ‘뭘 하든 가만히 뒤로 따라붙으면 될 일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따라붙기 위해서도 명목이 필요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생긴 건 확실해. 그러지 않고선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 리 없으니까.”
“이것도 보고해야 할까요?”
“물론이지. 위에서는 이 일을 결코 가볍게 판단하지 않을 거다.”
한 팀장은 자신만만한 듯 말했다. 해수는 예배당 안쪽을 바라보며 작게 입을 우물거렸다. 의현은 머리가 좋았으니, 현재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명확하게 인식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해수는 불안했다.
“……저기 나와요!”
해수가 예배당 입구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넋 놓고 앉아 있던 한 팀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의현에게 달려갔다.
“무슨 얘기를 했어? 어떻게 된 거야? 그쪽에선 뭐래?”
의현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사정없이 흔들던 한 팀장의 손을 잡아 내리며, 의현은 평소와 다름없이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골 울려요. 흔들지 좀 마세요.”
“그런 식으로 말할 때야? 지금 본인 상황을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세례받게 생겼는데! 태연하게 골 울리니까 흔들지 말라고? 그게 지금 할 말이야?”
“세례는 제가 받는데, 왜 한 교수님이 난리세요.”
“이거 말하는 싸가지 좀 보게?”
한 팀장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결국, 파탄 난 의현의 인성을 꼬투리 잡았다. 사실 의현의 말이 맞았다. 세례받는 것도 권의현, 그래서 위에서 찍히는 것도 권의현, 그거 다 감당할 것도 권의현. 뭐 하나 한 팀장이 짊어져야 할 건 없었다.
“들어가기 전에 준 녹음기 있지! 그거 좀 줘 봐!”
“……아, 맞다. 그거요.”
의현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한 팀장의 볼펜형 녹음기를 꺼냈다. 주변은 날아다니는 벌레 한 마리 없이 조용했다. 의현이 볼펜 앞코를 세 번 누르니, 녹음됐던 음성이 재생됐다.
―뭐라고 하셨는지 잘 못 들었어요. 한 번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조사 관련된 사항 있으면 녹음해 오라고. 왜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만들지?
“여기부터 녹음을 했어?”
“네.”
“도대체 왜?”
“좀 더 들어 보세요.”
의현은 한 팀장의 귓구멍에 녹음기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도착했습니다. 안쪽에 부교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 열고 들어가면 되나요?
―그 전에 잠시만. 이것들은 제가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주보를 이렇게 구기시면 안 됩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해 주세요.
뭔가 덜컹거리는 소음이 들리더니, 이후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 팀장이 열받은 표정으로 얼굴을 쳐들었다. 의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애석하게도, 일이 이렇게 되어서요. 녹음을 할 수가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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