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예배가 끝났다. 수찬은 의현의 앞에서 손을 흔들거렸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 가만히 숨만 쉬던 의현은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섰다. 멀리 서 팀장이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서 팀장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서……!”
목소리를 높이자마자 한 팀장의 시선이 와 박혔다. 의현은 별일 없다는 듯 대외적으로 웃다가 금세 표정을 굳혔다.
이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었으나, 과연 모든 정보를 다 털어놓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내가 세례식에 참석하게 되면 다 알게 되는 거 아닌가? 굳이 지금 말할 필요가 있나?
주저하는 사이, 누군가가 다가와 의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어머, 안녕하세요. 세례 등록하신 의현 형제님 맞으시죠?”
“네?”
“이쪽으로 와 주세요.”
인자해 보이는 중년 여성이 의현을 잡아끄는 걸 보고 한 팀장은 눈이 뒤집혀 달려왔다. 저 사람은 뭐든 제 눈앞에서 설명을 들어야 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무슨 일입니까?”
한 팀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의현을 째려보았다. 의현은 저도 모르겠다는 듯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한 팀장의 시선이 금세 중년 여성에게로 옮겨졌다.
“별일은 아닙니다. 부교주님께서 형제님을 좀 만나 뵙고 싶어 하셔서요. 혹시 지금 괜찮으실지 여쭈려고 한 것이에요.”
“왜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세례 관련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는 건 아닐까요?”
“세례요?”
“그럼요.”
한 팀장의 시선은 다시 의현에게 돌아갔다. 의현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순진하게 웃었다. 물론 이래도 아무도 속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혼자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저희는 단체로 내려왔는걸요.”
“부교주님은 의현 형제님을 단독으로 뵙길 원하십니다.”
“말씀 좀 전해 주시면 안 됩니까? 딱 저 한 명만 따라 들어가는 거 가능하냐고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옆에만 있을 겁니다.”
중년 여자의 표정은 무서웠다. 그러니까 흉측한 표정을 짓고 있어 무서운 게 아니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무서웠다. 사이비들은 대체로 이런 건가? 공허함이 가득한 눈은 뭘 얘기해도 타격감이 없는 듯했다.
“네, 의견은 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저기요. 아직 말씀도 안 전해 주셨잖아요?”
“그런 사소한 것을 물어보기 위해 할애할 시간은 없습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형제님. 뭐가 그렇게 억울하세요. 마음의 짐을 좀 내려놓고 시초님을 향해 진심으로 기도를 드려 보세요.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아주 편안해진답니다.”
전형적인 사이비식 논리였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진행된다면 한 팀장이 이길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이들과는 말이 안 통했다. 비상식인이었다. 이들에게 있어 모든 것은 결국 신에게로 귀결되었으니까.
“하……. 그럼 잠시만 얘기 좀 하겠습니다.”
한 팀장은 의현을 향해 손짓했다. 작당 모의를 하는 악당처럼 구석에 자리 잡은 둘은 중년 여성을 향해 세상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바쁘게 소곤거렸다.
“세례라니 무슨 소리야?”
“저도 처음 들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뭘 하고 다닐 시간이 없었다는 거 아시잖아요.”
“아니, 당당하게 세례받고 시초교 신자가 되려는 거야? 그냥 조사만 나온 건데 뭐 하러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이는 거야.”
“저도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저도 이 미친 종교 무서워요.”
“이봐 의현 씨, 우리가 지금 서로 약간 애매한 관계이기는 해도 명목상으로 보면 한배를 탄 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조사단에서 얻은 개인의 성과도 어차피 모두 조사단의 성과가 된다고. 개인행동은 절대 안 돼.”
한 팀장은 입에 속사포를 단 듯이 빠르게 속삭였다. 담배 태운 냄새가 났다. 해수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여기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지금 머리가 가장 복잡한 사람이 의현이라는 사실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이거 들고 들어가. 음성 녹음기야. 눈속임용이라 용량은 비교적 적지만.”
“녹음해 오라고요?”
“조사 관련된 내용이 있으면 녹음해 오라는 거야.”
그 말인즉슨, 조사와 관련 없다고 판단된다면 녹음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의현은 볼펜처럼 생긴 녹음기의 꼭지를 꾹 누르며 한 팀장을 향해 되물었다.
“뭐라고 하셨는지 잘 못 들었어요. 한 번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조사 관련된 사항 있으면 녹음해 오라고. 아니, 왜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만들지?”
“제가 요즘 귀가 안 좋아요. 여기 내려온 이후로 몸이 성치 않아서 그런가 봐요.”
“젊은 사람이 말이야. 픽하면 토하고 쓰러지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선 말이야.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돼. 능력은 능력이고, 그거랑 별개로 항상 자기 계발을 해야…….”
“네네.”
의현은 싸가지 없이 한 팀장의 말을 툭 잘랐다. 한 팀장의 이마 위로 힘줄 하나가 솟았다. 이 사람은 원래 약간 다혈질이었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얘기 끝나면 바로 튀어나와.”
“그럼요.”
해수는 의현과 한 팀장, 그리고 손에 든 녹음기를 번갈아 보며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쳤다. 물론 이 모든 일이 세례식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아직 몰랐겠지만.
“대화는 다 끝나셨을까요?”
“네.”
“그럼 저를 따라와 주세요. 이쪽으로.”
신도들이 죄다 나간 예배당은 한가롭고 어쩐지 오싹했다. 중년 여성은 차분한 말투로 의현을 이끌었다.
당연히 어제 정재이가 들어갔던 강대상 뒤편 문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여자는 의현을 옆의 쪽문으로 데리고 갔다. 새빨간 커튼을 옆으로 밀자 나타난 문에는 음각으로 무언가 그림이 새겨 있었는데, 하나의 별을 향해 수십 명의 사람이 허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중년 여성은 열쇠를 하나 꺼내 들었다. 모양이 특이하게 생긴 열쇠를 비쭉 튀어나온 손잡이에 넣고 돌리니 끼익- 작은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얼른 얼굴부터 들이밀고 싶었지만, 의현은 급하지 않은 척했다.
“강단 뒤쪽에도 문이 있던데, 그건 뭔가요?”
“거긴 대교주님께서 작업하시는 곳입니다. 저희 같은 낮은 자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죠.”
“대교주님이 허락하시면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네. 그렇죠. 그분은 신의 목소리를 전해 주시는 분이니까요.”
단순히 부교주와 커넥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대교주까지 줄줄이 끌려 나올 줄은 몰랐다. 일이 이렇게 클 줄 알았으면 어제 정재이를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텐데……. 의현이 짧게 한탄하는 동안, 두 사람이 들어온 문이 닫혔다.
“바닥 조심하세요.”
“아니, 무슨 책이…….”
바닥은 흡사 쓰레기장 같았다. 호텔 로비 같은 바깥과는 분위기가 몹시 달라, 의현은 크게 당황했다. 오래된 책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못해 몇 권은 종이가 찢어진 채 너덜거렸다.
“여기서 뭐 의식 같은 거 해요?”
“말씀 조심해 주세요. 의식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세례가 예정되어 있는 형제님께서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쓰시면 안 되죠.”
“네, 죄송합니다. 기도요.”
중년 여성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가운데 있는 수상한 문양을 보니 포탈 앞에서 귀신 불러낸다고 개지랄을 하던 또 다른 이상한 집단이 떠올랐다. 이건 의현이 1회 차 인생을 살 때 있었던 일인데, 하도 어이가 없어 아직도 기억이 선명했다.
세상이 흉흉하니까 이상한 놈들이 자기 이상한 줄 모르고 점점 더 맛이 가는구나……. 의현은 중년 여성의 뒤에서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기도하면 정말 시초님이 살아오시나요?”
“시초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네?”
의현은 혹시 정재이가 제 정체를 다 밝혔나 생각했다. 자기가 시초님이라고 선언하고 능력도 몇 번 보여 줘서 대교주를 구워삶은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며 입 안쪽 살을 잘근잘근 씹는데, 중년 여성이 계단을 오르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분은 언제나.”
“……아, 예.”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의현은 썩은 표정으로 거미줄 따위를 피했다. 불빛은 무슨, 촛불만 일렁이는 이 공간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둥글게 이어진 계단을 오르며 의현은 좀 전에 지났던 아래 공간을 내려다보았다. 핏방울이 떨어진 모양의 표식이 어지러운 책 가운데에서 환히 빛나고 있었다. 역시, 미친 종교. 제정신 아닌 사이비.
“도착했습니다. 안쪽에 부교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 열고 들어가면 되나요?”
“그 전에 잠시만.”
중년 여성은 의현의 몸을 더듬거렸다. 의현이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과 한 팀장이 좀 전에 챙겨 줬던 볼펜이 모두 적출당했다.
“이것들은 제가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주보를 이렇게 구기시면 안 됩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해 주세요.”
의현이 예배 시간에 찢고 구긴 주보가 중년 여성의 손에 내걸렸다. 보통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이런 애를 도대체 왜 세례식에 참석시키는 거야 하고 의문스러워하기 마련인데, 이 여자는 그런 것도 없어 보였다. 마치 세뇌된 장난감처럼 제게 주어진 일을 아무 감정 없이 처리할 뿐이었다.
“네, 죄송합니다.”
의현은 대충 사과했다. 바닥엔 배를 까뒤집고 죽은 벌레 사체가 즐비해 있었다. 이 안은 청소를 아예 안 하는 모양이었다. 왜? 바깥은 그렇게 깨끗하게 관리하면서.
똑똑똑-.
“부교주님, 권의현 형제님이십니다.”
중년 여성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퉁이가 썩어 가는 나무문은 두꺼웠다. 여기에도 여전히 핏자국 음각이 찍혀 있었다.
“들여보내세요.”
“네.”
대답은 짧았다. 나무문이 끼이익 스산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의현은 조금 옆으로 비켜섰다. 중년 여성은 문을 열고 의현을 향해 안쪽으로 손짓했다. 들어가시지요.
“저 혼자 들어가나요?”
의현의 물음에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쪽은 빛 한 점도 없이 어둡기만 했다. 무슨 이상한 소음 같은 게 계속 들렸다. 의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열린 나무 문 사이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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