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예배당에 도착한 의현은 맨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 앉아야 들어오는 사람들을 찬찬히 지켜볼 수 있었다. 몇 번 봤다고 익숙해진 신도들은 이제 조사단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요주의 인물인 서 팀장을 제외한다면.
“이번엔 진짜 조용히 한다니까요. 제가 원래 막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당당하게 앞에 가 앉으려는 서 팀장을 경비는 끌어와 맨 뒤에 앉혀 놓았다. 서 팀장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찬양 인도자가 앞에 나왔다. 종이에 가사가 적혀 있었지만, 그걸 보고 부르는 사람은 조사단밖에 없었다. 신도들이 글을 못 읽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가사를 외워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의현이 자리에 서서 입을 벙긋거리는 사이, 다른 신자들도 하나둘씩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수찬아, 새 신자가 왜 안 올까?”
부교주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강단에 섰다. 어제는 부쩍 기운이 없어 보였는데, 저 늙은이가 반나절 만에 양기를 회복한 듯이 표정이 좋아 보여 의현은 배알이 꼴렸다. 어제 뭔 일이 있었는데?
“그, 글쎄요……. 기도실에 이, 있어도 아침 예배는 나올 텐데…….”
수찬은 난감한 표정으로 뒷말을 이었다.
“뭐, 뭔가 힘든 이, 일이 있던 걸까요? 모, 몸을 많이 써, 썼다든지……. 저도 가, 가끔 힘들면 예배 모, 못 나오기도 하니까.”
“새 신자가 몸이 힘들 일이 뭐가 있을까……?”
자리에 앉아 다리를 덜덜 떨던 의현은 손에 쥐고 있던 오늘 자 주보를 와작 구겼다. 주보를 이렇게 막무가내로 구기면 다른 신도들이 보기에 안 좋다고 말하려던 수찬은, 의현의 살벌한 눈을 보고 금세 입을 다물었다.
“이게 말이야. 좋은 쪽으로 잘 생각이 안 된단 말이지…….”
의현은 작게 중얼거렸다. 제대로 된 종교라고 해도 수상하게 생각될 판국에, 사이비 종교라니.
외모 탓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정재이는 객관적으로 사람이 꼬이기 좋은 외모였다. 특히 웃을 때.
“하…….”
교주와 함께 하하 호호 웃으며 뒷문으로 들어가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인 설교가 시작됐다. 수찬은 제 옆에 신이 앉아 있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졸지도 않고 눈을 바짝 떴다. 그가 간헐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흘끔거릴 때마다 의현은 욕을 짓씹고 있었다. 이 새끼, 나한테 들킨 거 알고 또 튄 거 아니야? 도대체 내가 뭘 했는데, 나랑 술래잡기지? 지금 판 키워 놓은 것도 아마 감당이 안 될 텐데.
실속 없는 설교를 듣는 동안 의현의 인내력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장 정재이를 만나도 조사단 사람들에게 댈 핑곗거리가 없었는데, 일단 걜 잡아서 눈앞에 갖다 놔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중앙 기준 맨 끝자리, 왼쪽엔 수찬이 앉아 있고 오른쪽은 벽이다. 의현은 이 자리가 완벽한 사각지대라고 생각했다.
이 시간이 끝나면 한 팀장과 해수는 의현이 뭘 하든 따라붙을 것이 분명했다. 사람을 그렇게 줄줄 이끌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정재이를 찾으러 다닐 수는 없었다.
화장실 간다고 하고 잠깐 나갈 수 있겠지? 나가서 좀 찾아보든지 해야겠어. 의현은 짧게 생각하며 슬쩍 몸을 굽혔다. 타이밍을 봐서 단숨에 나갈 생각이었다.
“옆으로 좀 가 주실래요?”
누군가 의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목소리는 낮고 듣기 좋았다. 세상에 모든 스트레스를 혼자 다 짊어진 표정을 짓고 있던 의현은 미간을 구기며 옆을 쳐다보았다.
“네?”
“좀 앉게요. 제가 좀 늦어서요.”
“이, 미친……. 읍-!”
의현의 입이 순식간에 틀어막혔다. 바로 눈앞에서 정재이가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예배 중인데, 소리를 지르면 안 되겠죠?”
눈을 크게 뜬 채로 의현은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사실은 멱살을 잡고 싶었는데, 앞에 앉아 있던 신도가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손이 멈췄다.
수찬은 어제 봤던 새 신자임을 알아채고 눈치 빠르게 옆으로 약간 이동했다. 의자는 가로로 길었기에 큰 동작 없이도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의현은 재이의 발을 콱 지르밟았다.
“아야…….”
정재이는 눈썹을 구기며 작게 신음했다. 의현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자리 없다고요.”
“있잖아요.”
의현의 얼굴에서 손을 뗀 재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작은 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미치셨어요, 진짜?”
“제가요? 아니요? 전혀요?”
앞에 앉은 신도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며 눈치를 주었다. 저기요, 조용히 좀 해 주세요. 예배에 집중이 안 되잖아요. 그 말에 정재이는 살살 눈웃음치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어머, 어제 새 신자 등록하신 분 아니세요?”
“맞아요. 안녕하세요.”
“가까이서 보니까 너무 예쁘게 생기셨다. 몇 살이에요?”
조금 전까지 심기가 불편했던 신도는 몸을 아예 뒤로 튼 채로 본격적으로 정재이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저기, 예배에 집중 안 하세요?”
의현은 전혀 친절하지 않은 말투로 단숨에 신도의 추근거림을 잘라 냈다. 신도는 입술을 삐쭉거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미련이 남는다는 듯 정재이의 얼굴을 한번 훑고 간 시선을, 의현은 분명히 포착했다.
“너…….”
의현은 복화술로 속삭였다. ‘너’라는 단어 뒤에 와야 할 말이 너무 많아 고르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못 본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새 정재이는 선이 좀 굵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예쁜 얼굴이긴 했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전과 조금 달랐다. 성격도. 얘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얼결에 받아치긴 했지만, 뒤늦게 생각하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너 어떻게 혼날래?”
이어진 말에, 정재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하하. 그 경쾌한 웃음소리에 수찬이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의현은 덜덜 떨던 다리를 멈추고 빡친 표정으로 정재이의 발을 다시 밟았다. 야, 웃지 마.
“어떻게 혼내 줄 건데요?”
“되묻지 말고, 답을 해. 지금 장난 칠 기분 아니야.”
“아니, 나는 다 좋아서.”
의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성격 바뀐 거 맞았다. 이거 정재이 맞나? 의현이 눈만 굴려 그를 살폈다. 재이의 손목에 걸린 시계는 깨져 있었지만, 분명 의현이 사 준 게 맞았다.
“내가 지금 사정이 있어서, 이 시간 끝나면 너랑 길게 얘기를 못 해. 그래서 하는 말이니까, 너 오늘 당장 저택으로 돌아가.”
“…….”
“요금 얼마 나오든 택시 불러.”
“…….”
“오늘 당장 안 올라가면, 나 진짜 너한테 실망할지도 몰라.”
부교주 설교 소리에 의현의 목소리가 묻혔다. 없는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재이 탓에 둘의 몸은 바짝 붙어 있었다. 정재이는 의현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이내 답했다.
“홍삭이랑 사진 찍었던데요.”
“그게 지금 왜 나와?”
“문자 봤어요. 나도 가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됐어요.”
“오늘 돌아가라니까?”
“속상하게 했다면, 미안해요.”
사과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물론 사과를 받긴 해야겠지만, 그건 의현이 이 조사 업무를 끝내고 돌아간 저택에서였다. 모든 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정재이는 저택 2층으로, 권의현은 헌터부 현장 1팀으로.
“너 지금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오늘 못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
“설마 아니지?”
의현의 손에서 주보는 완전히 아작이 났다. 구겨지다 못해 찢어져 너덜거리는 주보를 내던지며 의현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도와줄게요.”
“네가 날 돕기 위해서는 저택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어.”
“세례식에 형 이름 올렸어요.”
“뭐? 이건 또 무슨 개소리…….”
의현이 낮게 욕하는 사이, 설교를 마친 부교주가 기도하겠다고 했다. 모두 눈을 꼭 감았다. 부교주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이쪽을 쳐다보았다. 시선은 명확히 정재이에게 닿았다.
“……눈 감아야죠.”
눈을 꽉 감은 정재이가 의현의 허벅지를 간질이며 말했다. 부교주의 열렬한 시선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의현은 형형하게 눈을 뜬 채로 고개만 처박았다.
“부교주가 너한테 뭐 했지?”
말투에서 불쾌함이 뚝뚝 떨어졌다. 정재이는 눈을 감은 채 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 부교주가 큰 소리로 기도하는 소리가 의현에겐 마치 벌레 윙윙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세례에 이름 넣는 거 분명 쉬운 일 아니라고 들었거든?”
“…….”
“나 어제 너 부교주랑 사라지는 거 분명히 봤어.”
성도들이 열성적으로 하늘에 손을 뻗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웠다. 의현은 슬쩍 눈을 치켜들었다가 부교주가 마이크만 든 채로 아직도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친, 완전히 정신이 나갔어.
“정재이. 대답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안 좋은 쪽으로는 특히. 열받은 의현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정재이는 두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모아 기도했다. 시초 능력자의 재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신도들 사이에서, 시초 능력을 가진 자가 몹시 뻔뻔하게도.
“형.”
정재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기도가 끝났다. 신도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찬양을 시작했다. 부교주는 강당에서 내려오며 정재이를 향해 눈짓했다.
“이상한 짓 안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뭐?”
“실망하게 해서 미안해요.”
의현이 알던 재이는 항상 물렀다. 의현을 이기려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런데 나 오늘 못 가.”
정재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다시 사라져 버릴 듯이.
“가지 마. 너.”
의현은 재이의 손목을 붙들었다. 차갑게 식은 피부는 의현이 알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숨 쉬듯 다정을 연기했던 순간들.
“……나, 나한테 이러지 마. 왜 그러는 거야. 말로 해. 이해해 줄 수 있어. 너 외롭게 한 거? 그래, 형이 미안해. 사과하고 앞으로 안 그럴게. 같이 올라가자. 어?”
위선으로 얼룩진 기억이라도, 상관없었다. 의현은 이번 생엔 꼭 살고 싶었다. 누구도 다치거나 죽지 않고. 지극히 평범하게.
“나는 형이 무력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형을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정재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몸을 돌렸다. 부교주가 사라진 바로 그 방향으로.
‘너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가만히 있어.’
‘네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될수록 난 좋아.’
과거에 대한 죗값일까?
의현의 손은 허망하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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