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하릴없이 시간만 때우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오가 지나 햇빛은 무섭도록 뜨겁게 내리쬈다. 더위에 헉헉거리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깔고 누웠다. 이쯤 되니 정말 피서를 온 건지 조사를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판 누워서 자던 사람들은 점심 먹을 때가 되어서야 미적거리며 일어섰다. 잡은 물고기는 단 두 마리였다. 조그마한 송사리까지 포함하면 다섯 마리. 이건 누구 코에 붙일 수도 없었다.
“근처로 이동하죠? 밥도 먹어야 하는데.”
“걸어서 한 시간은 가야 할 거예요. 수찬 씨는 다리도 불편해서 오래 걷지 못할 텐데…….”
“저, 저는 괜찮습니다!”
수찬은 저 때문에 사람들이 이 계곡에 묶인 줄 알고 불안해했다. 의현은 슬쩍 수찬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제가 여기 있을게요. 물고기 잡은 거 수찬 씨 드리고요.”
“의현 학생은 밥 안 먹게?”
“저 원래 끼니 대충 챙겨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점심 못 먹으면 저녁까지 쫄쫄 굶어야 해. 그래도 된다고?”
“상관없어요.”
정말 상관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주변에서 우물거리고 있던 해수가 분위기를 틈타 손을 들었다.
“저도 여기서 그냥 쉴게요. 전 원래 밥을 잘 안 먹어서…….”
“해수 학생은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쓰러져 죽을 것 같아.”
“맞아, 해수 학생은 같이 가서 밥 먹어요.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아니, 다들 그냥 가 주시면 안 돼요? 저는 혼자 있어도 되는데.”
조사단 사람들은 굳이 한 명이 남아야 한다는 듯 굴었다. 의현은 그 사고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꼭 누가 남아야 하는데? 그냥 각자 일 보고 오는 게 더 편하잖아.
“저 진짜 괜찮아요. 제가 의현 씨랑 여기 남아 있을게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행정팀 한 팀장은 김해수를 자기가 낳은 듯 굴었다. 팀원 아끼는 건 어느 팀이든 그럴 수 있겠지만, 가끔 저렇게 유별나게 굴 때마다 수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우, 배고파 죽겠어. 수찬 씨를 잘 부탁해. 의현 학생-.”
서 팀장은 무리를 이끌고 앞장섰다. 이 길로 쭉 나가면 시내가 나오더라고요. 다들 힘내서 맛있는 거 먹읍시다!
언젠 물고기 잡아서 식비를 아끼자고 하더니, 이젠 의현을 여기 두고 가는 행위에 거리낌도 없었다.
“너무 늦기 전에 오세요. 저녁 예배 시간 아시죠?”
의현은 혹여 제 계획이 어그러질까 걱정했다. 서 팀장은 하늘 위로 손을 치켜들고 휘적거렸다. 의사가 확실히 전달된 건지는 알 수 없어도 현재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
모두 사라지고 난 이후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먼저 말을 꺼낼 사람이 의현밖에 없었다. 수찬은 바닥에 축 늘어져 죽은 물고기 대가리를 돌로 쾅쾅 내리쳐 손질했다. 이런 일에 거리낌 없다는 게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해수 씨는 왜 남았어요?”
“……배가 안 고파서요.”
“나를 감시하려는 건 아니고요?”
의현은 잠결에 해수가 했던 말을 명확히 기억했다. 그게 혹시 꿈이 아닐까 고민하긴 했지만, 지금 해수의 반응을 보니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의현 씨 지금 상황 안 좋은 거 아시죠?”
“알죠. 이번에 김철춘 사살했다고 위에서 날 완전히 찍어 누르던데.”
“……그거 너무 가볍게 보지 마세요.”
“왜요, 또 의심하라고 하게요? 그 대상이 뭔지도 모르는데?”
밑도 끝도 없는 해수의 이런 태도는 정말 의현을 질리게 했다. 화내면 안 된다고 생각해 계속 억누르려고 해도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저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왔다.
“정신계가 정신계를 조작할 땐 찌꺼기가 남아요. 완벽히 끝나는 법이 없죠.”
해수는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계곡은 한가롭고 안온했다. 물고기 내장을 다 발라낸 수찬이 자랑이라도 하듯 그걸 들고 의현에게 다가왔다.
“의, 의현 학생님! 이, 이것 좀 보세요! 깨, 깨끗하죠?”
“응, 그거 수찬이 먹어.”
“가, 같이 먹어요.”
“아니야. 나 생선 안 좋아해. 진짜 괜찮아. 수찬이 너 먹어.”
수찬은 시무룩한 얼굴로 생선을 나무 꼬챙이에 끼워 총총 멀어졌다. 불을 피우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혼자서 저렇게 잘 살면, 굳이 나쁜 말 들어가며 트럭 아저씨 아래에서 일하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겠죠. 애초에 정신계 능력자의 기억을 조작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수찬이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 의현은 다시 말을 이었다. 해수는 손에 들고 있던 조그마한 조약돌을 계곡 속에 내던졌다. 퐁당!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조약돌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해수는 또 다른 조약돌을 찾아 바닥을 더듬거렸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면, 지금 본인이 기억을 조작당했다고 나한테 털어놓은 건데.”
말이 툭 끊겼다. 의현은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김해수 씨.”
“…….”
“나한테 왜 이래요?”
“…….”
“도대체 누구 편이에요?”
의현은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복잡한 눈으로 해수를 쳐다보았다. 조약돌을 주워 든 해수는 장난으로라도 웃지 않았다. 초연하고 버석한 얼굴, 의현은 해수라는 사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옛날에, 나 의현 씨한테 빚진 적 있어요. 본인은 기억 못 하겠지만.”
“…….”
“그러니까 조심해요. 상황 안 좋다고 한 거, 그냥 한 말 절대 아니에요.”
“…….”
“들려도 귀 닫고 보여도 눈 막고 그냥 그렇게 살아요. 되도록 희미하고 무력하게. 그러면 오래 살 수 있을 테니까.”
해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미하고 무력한 삶. 그건 언젠가 의현이 재이에게 요구했던 모습이었다.
“좋죠. 희미하고 무력한 거.”
“…….”
“……근데 내가 여기서 어떻게 더 무력해져?”
정재이는 늘 의현을 죽였다. 의현만이 아니라 모든 세상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러니, 그가 무력해지길 바랐던 것뿐이다. 하지만 권의현은 아니다. 지금까지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더 희미해지라는 거예요.”
“…….”
“나는 지금도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답답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의현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지금도 너무나 무력하고 희미한 존재였다.
“아니, 당신은 화려해요. 눈에 띄어.”
항상 말끝을 흐리던 해수가 웬일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확신에 가득한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의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은 제법 빠르게 갔다. 생선 두 마리와 어디서 따 온 야생 과일까지 해치운 수찬은 의현에게 조잘조잘 말을 붙였다. 해수와 어색하던 차에 마침 잘됐다고 생각해 의현 역시 대화를 잘 받아 주었다. 몸이 후덥지근해지면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다시 나와 누웠다. 그걸 두어 번 반복했더니 조사단 사람들이 멀찌감치서 얼굴을 드러냈다.
“다들 잘 지키고 있었어? 짠! 먹을 거 사 왔지롱-!”
서 팀장은 히죽 웃으며 손에 든 봉투를 건넸다. 아까 먹은 음식만으로는 배가 차지 않았던 건지 수찬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앉은 자리에서 제 몫을 다 해치웠다. 의현은 무른 과일 몇 개만 집어 먹고 기름진 음식은 입에 대지 않았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괜히 체해 일을 그르칠까 염려가 됐다.
“예배 시작할 때 안 됐나?”
“곧 시작할 거예요. 종 치면.”
한 팀장은 돌아오자마자 해수의 옆에 붙어 별일 없었냐고 물었다. 해수는 시선을 조금 아래로 깔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답을 들었음에도 한 팀장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저 사람도 알고 있나? 해수가 과거에 기억 조작을 당했다는 걸? 그래서 저렇게 싸고도는 건가? 의현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빤히 쳐다보자, 한 팀장이 뭐 불만 있냐는 듯 눈을 번뜩였다.
땡땡땡-!
타이밍 좋게 예배당에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저녁 예배는 아침 예배보다 사람이 훨씬 많대요. 시내 나가서 보니까 다 다른 지역 분들도 저녁 예배는 꼭 참석한다고 하더라고요. 포탈 관련해서 물어볼 수 있으면 눈치껏 물어보도록 합시다.”
정말 조사 비슷한 걸 하고 온 모양인지 지원팀 팀장은 사기를 북돋았다.
오전에 받은 주보를 손에 쥐고 의현은 다시금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한번 물에 젖었다 마른 옷은 꼬깃꼬깃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거의 그랬으니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기원합니다-!”
경비가 환하게 웃으며 의현의 손을 붙잡았다. 정말 기뻐서 웃는 게 아니라 억지로 입매를 당겨 웃는 듯 표정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예, 그쪽도 기원합니다.”
“…….”
“그런데, 혹시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죠?”
익숙한 얼굴의 경비원이었다. 의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뒷말을 덧붙였다.
“화장실이요?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경비 직원은 한 방향을 가리키며 의현을 안내했다.
“화, 화장실 다녀오시게요?”
“응. 좀 급해. 먼저 들어가 있어.”
“예, 예배 시작하면 주, 중간에 못 들어오실 텐데……. 뒤, 뒷자리에 앉아 있을게요. 스, 슬쩍 들어오시면 아무도 모, 모를 거예요.”
의현의 옆에 앉아 같이 예배를 드릴 계획이었던 수찬은 괜히 아쉬운 얼굴을 했다. 의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수찬의 어깨를 쳐 주었다.
“알아서 들어갈게. 신경 쓰지 마.”
“네…….”
수찬은 주보를 손에 꼭 쥐고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의현은 주변을 유심히 살피며 경비원의 뒤를 따랐다.
“주변이 어지럽게 되어 있어, 길 찾는 게 쉽지 않으실 거예요.”
“괜찮습니다.”
경비는 신도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뒷길을 이용해 걸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은 복도는 어둡고 음산했다. 제대로 된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서 그런지 연신 꺼림칙함이 느껴졌다.
“이쪽입니다.”
모퉁이에서 두 번 돌았다. 지나온 방의 개수는 다섯 개. 왼쪽 벽에 걸린 그림은 피 흘리고 죽은 시초 능력자 꼬마. 바닥에 깔린 양탄자의 색은 빨강…….
의현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지나온 모든 정보를 기억했다. 경비가 문고리에 열쇠를 끼워 넣었다. 열쇠고리에는 수십 개의 열쇠가 걸려 있었다.
“열쇠가 많네요.”
“그럼요. 방이 많으니까요.”
“마스터키 같은 건 없나요? 번거로울 것 같은데.”
떠보려고 한 질문에 남자는 기괴하게 얼굴을 떨며 웃었다.
“그런 건 저한테 없습니다. 저는 낮은 자인걸요. 들어가시죠.”
황금색의 문고리가 돌아가며, 끼익 불쾌한 소음을 냈다. 의현은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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