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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72화 (72/185)

72화.

아침 예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의현은 입구에서 나눠 주는 주보를 받고 안으로 들어섰다. 수찬은 의현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서 팀장은 우르르 몰려다니면 좋을 게 없다고 말했는데, 의현 역시 그에 동의하는 바였다.

“오늘은 유독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네요.”

“네. 멀리서 참관을 와서요.”

“은혜로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의현은 되도록 거슬리지 않을 표정을 지으며 예배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찬이 절룩거리며 얼른 뒤로 따라붙었다.

“예배만 드리는데, 건물이 이렇게까지 높을 이유가 있어?”

“예, 예배당이 이거 하나만 있지는 않죠. 그, 그리고 위에 가, 가끔 높으신 부, 분들이 묵기도 하셔서요.”

“숙소도 겸하는 건가?”

“그, 그렇게 들은 것 가, 같아요. 저도 자, 잘은 모르지만요.”

의현은 빈자리 아무 데나 앉아 주보를 펼쳤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이 잔뜩 그려진 주보는 흡사 동화책같이 보였다.

“여기서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해? 예약?”

“제, 제가 글을 못 읽어서……. 주보에 저, 적혀 있지 않나요?”

“안 적혀 있어서 그래.”

“노, 높으신 분들께 말씀드려 보세요. 아마 시, 신님을……. 아니, 의현 학생님을 아, 알아보면 바로 된다고 할 거, 겁니다.”

“참고할게. 고맙다.”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였다. 애초에 의현은 신이 아니었으니, 예배당 사람들을 붙잡고 얘길 꺼낸다고 해도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될 뿐, 조금의 이득도 얻지 못할 게 뻔했다.

화장실 간다고 했다가 뒷문으로 슬쩍 빠져 볼까? 잠복은 나쁘지 않게 할 자신이 있는데……. 의현은 숨을 들이마시고 주변을 살폈다.

“어머, 이거 왜 이러세요! 저는 그냥 화장실만 가려던 건데!”

그때, 서 팀장이 경비들에게 붙잡혀 안으로 끌려오고 있었다. 사고 안 친다고 말한 지 삼십 분도 안 돼서 자발적으로 친 사고에 의현은 할 말을 잃었다. 뭐? 누굴 죽이고 감방에 들어가?

의현은 차분히 화장실 계획을 파기하고 얌전히 예배에 집중하기로 했다.

설교사로 나온 사람은 나이 든 남자였다. 드문드문 희게 센 머리에 아집이 있어 보였다. 보통은 하얀색 성가대복 같은 걸 입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검은색 도포를 걸치고 있었다. 도포 중앙에 그려진 건 핏방울 모양. 저건 시초교의 문양이었다. 시초 능력자가 포탈을 막고 온몸에서 피를 내뿜으며 죽어서, 거기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이 저 인간이야?”

“아니요. 저, 저분은 부교주님이시고, 대교주님은 보, 본 예배 설교만 하세요.”

“교주가 몇 명인데?”

“부, 부교주님 한 분이요. 대, 대교주님도 한 분이고……. 그 밑으로도 다, 다른 일 하, 하시는 분들 마, 많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내려온 의현에게 수찬은 꽤 많은 도움을 주었다. 따지고 보면 수찬은 열렬한 시초교 신자였으니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게 많은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사람들은 원래 외관에 따라 상대방을 낮잡기 마련이었다. 수찬의 앞에서는 방심해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정보를 풀었을 수도 있다.

“수찬아, 내가 대교주를 좀 만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그, 그냥 원래 저, 정체를 고백하는 편이 나, 낫지 않을까요?”

“그게 안 돼서 그래. 복잡하다니까.”

“음…….”

예배 전 찬송이 시작됐다. 주보 사이에 가사가 끼워져 있었지만, 그걸 보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의현은 대충 입을 벙긋거리며 수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번 주 수, 수요일 저녁에 세, 세례식 같은 걸 하는데요. 세, 세례받은 사람은 기도실에서 하, 하루 종일 기도를 해, 해야 한다고 해요. 저는 해 본 적 어, 없지만요…….”

“세례 신청은 어떻게 하는데? 나 받을래.”

앞에서 부교주가 모두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고 의현도 따라 일어났다.

“그, 그건 저도 모, 몰라요…….”

“그래, 일단 알겠어. 알려 줘서 고맙다. 알아서 할게.”

“아마 새, 새 신자는 세례 받기 어, 어려울 거예요…….”

수찬은 자신이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퍽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의현도 수찬에게 모든 걸 맡길 생각은 없었다. 여차해서 안 좋은 상황이 생겼을 때 의현은 스스로를 감당할 자신이 있었지만, 수찬은 그럴 수 없으리라 생각했으니까.

“괜찮아. 신경 안 써도 돼. 어떻게 해서든 받을 테니까.”

의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 팀장과 얘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서 팀장이 가진 정신 능력의 도움을 받으면 의현이 잠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

찬송 시간이 끝났다.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 의현은 자리에 얌전히 앉아, 아까 못 읽은 주보를 유심히 읽었다. 확실히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와는 다르게 세세하고 현실감이 느껴졌다.

“오늘은 아침부터 많은 사람이 와 주셨군요! 분명 세상의 혼란함에 개탄하는 사람들이겠죠. 이럴수록 우리는 시초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시초님이 내려와 우매한 자들을 벌하고 우리를 구원해 줄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부교주는 아침부터 쩌렁쩌렁 목소리를 높였다.

기원합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기원하다’는 시초교 사람들 특유의 언어였는데, 시초가 기원과 같은 뜻이라 사용하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사용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뭐 두 쪽에 다 걸치기 위해 사용한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긴 했다.

“예예, 기원합니다아.”

의현은 성의 없이 대꾸했다. 사람들이 많아, 이래도 묻히는 게 웃겼다. 수찬은 제 옆에 시초님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 힘든 듯 계속해서 의현을 흘끔거렸다. 제 신앙심을 내보이기 위해 열렬히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시초님, 저를 구원해 주세요! 저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

수찬은 마치 의현 들으라는 듯 크게 기도했다. 물론 의현은 다 들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소원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진짜 구원과 행복은 의현의 손에 달려 있지 않고, 시초 능력을 손에 쥔 사람은 행방불명된 상황이었으니.

분위기를 틈타 의현도 목소리를 내어 기도했다.

“맞아요. 시초님, 제발 돌아와 주세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무능한 인간이 될수록 좋다는 그런 개소리 다신 안 하겠습니다. 제가 뭐라고 시초님이 눈물을 보이셔야 했는지. 지난날들을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그러니까 제발 돌아와 주세요.”

의현의 기도는 이상하게 구체적이었다. 수찬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금세 잊었다. 무계획적인 둘의 예배는 이렇게 끝이 났다.

* * *

“와! 여기 와서 발 좀 담가 봐! 진짜 시원해!”

서 팀장은 반바지를 걷고 첨벙첨벙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너무 투명하고 맑아 안이 훤히 비쳤다.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다가 서 팀장의 발을 보고 미친 듯이 도망쳤다.

“저희가 놀러 왔냐고요, 서 조교님…….”

“자연환경 조사도 하고 좋지 뭐! 성과 없으면 좋은 추억이라도 가져가야 할 거 아니야!”

같은 상황이어도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의현은 매사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툭 튀어나오는 자신을 생각하며 헛웃음 지었다.

여름의 해가 떠올랐다. 트럭 아저씨가 곧장 동물 병원으로 가 집으로 돌아갈 마땅한 차편이 없었다. 서 팀장은 여기서 천천히 놀다가 시내에서 밥이나 먹고 저녁 예배드리고 돌아가자는 의견을 냈다. 현재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의현은 계곡 옆 돌무더기 위에 셔츠를 깔고 앉았다.

“이것 봐! 나 물고기 잡았다! 우리 이거 구워서 저녁 식비 아끼자!”

서 팀장이 와하하 웃다가 뒤로 자빠졌다. 물고기는 서 팀장의 손아귀에서 쏙 빠져나갔다.

의현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서 팀장을 쳐다보다가 이내 예배당에서 들었던 세례식을 떠올렸다.

“……서 조교님!”

의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얌전히 물을 들여다보고 있던 해수가 깜짝 놀라 의현을 쳐다보았다. 의현은 그 시선을 슬쩍 외면했다. 그는 이 계획을 떠벌릴 생각이 없었다. 물론 다 같이 한마음으로 내려온 조사였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왜 불러?”

“아……. 아니, 저도 물고기 잡으려고요.”

“좋은 생각이야! 돈 아끼고 좋지, 뭐!”

현장 1팀 팀장이면 돈 쓸 시간이 없는 게 문제지 돈이 없는 게 문제겠어. 하여튼, 돈도 차고 넘치게 많으면서 진짜 이상한 사람…….

의현은 바지를 걷고 계곡에 발을 담갔다. 밖에서 볼 땐 시원하게 보였는데, 막상 물에 닿으니 머리가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다.

“그 셔츠, 그물처럼 휘두르면 딱 좋겠다! 나한테 좀 줘 봐!”

“이걸요?”

“응! 그거!”

서 팀장은 얼른 달라는 듯 손을 들썩였다. 물은 의현의 허벅지까지 왔다. 짭짤한 바닷물보단, 맑고 깨끗한 계곡이 의현의 취향에는 더 맞았다.

“……서 팀장님, 개인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의현은 셔츠를 건네주는 척 서 팀장에게 가까이 붙어 속삭였다. 서 팀장은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는 듯 태연하게 셔츠를 휘둘렀다.

“의현 학생, 셔츠 이쪽 끝 좀 잡아 줄래?”

“이쪽이요?”

“응. 바짝 당기고 있어 봐.”

서 팀장은 반대쪽 셔츠를 잡고 끈끈하게 당겼다. 정말 물고기를 잡는 줄 알았던 의현은 시키는 대로 셔츠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억!”

“으하하! 장난인데-!”

의현이 손에 힘을 주자마자 서 팀장은 웃으며 손을 탁 놓았다. 중심을 잃은 의현은 그대로 물속으로 자빠졌다.

“도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잡으라더니, 손을 놓으시면 어떻게 해요!”

“어머, 괜찮아? 내가 손에 힘이 좀 약해서. 이걸 어째.”

서 팀장은 얼른 다가와 의현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 순간, 서 팀장의 생각이 빠르게 의현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아까 화장실 간다고 소란 피우면서, 나 붙잡은 경비 직원 하나 정신 조작 걸어 놨거든? 저녁 예배 때 그 사람이 의현 씨한테 말 걸면 조용히 따라 나와. 새 신자인 척하면서 말이야. 기원합니다, 라고 말하면 돼. 어디에 티 내지 말고.」

자의가 아니라 완벽히 타의로 언어가 머릿속에 구겨 넣어졌다. 의현은 혼란스러워 멍하니 서 팀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용서해 줄 거지? 자긴 학생이고, 나는 조교잖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연기하는 듯 표정은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주변에서 또 시작이냐며 웃음이 터졌다.

“장난 좀 그만 치세요, 재미없습니다.”

의현은 인상을 구기고 평소와 다름없이 서 팀장의 1인극을 무시했다. 이런 둘의 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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